461화. 냉전
고청운은 계속 활을 쏴서 몸이 피곤해지자 멈칫하더니, 고영진이 건넨 수건을 받아 닦으며 아까의 화제에 대해 말을 이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무조건 나만 바라보고 있어서는 아니 된다. 이 아버지도 언젠가는 늙을 것이니, 내가 하면 안 된다. 내게 바라지 말거라. 게다가 할아버지와 손주 간의 친밀감은 아주 높은 편이지 않느냐. 지금 짱짱이와 나의 관계만 봐도, 나는 지금 매번 짱짱이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약해진단다.”
“아버지께서는 안 늙으실 거예요! 올해 3월에 있던 축국 경기에서도 살풍경하게 주변을 다 평정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들 저희가 형제 같다고 하던걸요?”
이 말은 고영진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마음이 여렸던 그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은근히 입을 삐죽거렸다.
그의 아버지는 입으로야 듣기 좋은 말을 하지만, 사실 벌을 줄 때마다 조금의 정을 두지 않고 무자비했다. 최근 어린 조카가 노는 데 정신이 팔려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게 된 후, 꼬맹이는 요 며칠 동안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오동통했던 얼굴이 쑥 패이면서 정말이지 동정을 금할 수 없었다.
애석하게도 그런 상황에서 그는 별 도움이 못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들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그저 내심 어린 조카를 격려하고 다시는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입에 발린 말을 하는데, 너는 대놓고 얘기하는구나.”
고청운은 그를 힐끗 보고 쥐고 있던 화살을 내려놓은 뒤, 다시 몸을 푸는 동작을 진행했다.
고영진도 옆에서 같이 몸을 풀었고, 고청운과 고영진은 마지막에 같은 동작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두 부자는 이 넓은 정원에서 오늘 해야 할 운동량을 다 채웠다. 동작이 큼직하니 체형도 비슷해, 지나가던 하인은 발걸음을 늦추고 몰래 그 둘을 훔쳐보았다.
“말해 보거라, 오늘 퇴근하고 돌아와서도 육육(六六)이에게도 안 가보고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나한테 얘기할 일이 있는 게냐? 할 말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이리 배배 꼬면 어찌하느냐?”
육육이는 고영진이 자신의 딸을 위해 지은 아명이었다. 이 아이는 6월에 6근(*약 3.6kg)의 무게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명이 육육이가 된 것이었다.
다들 이 이름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아이의 아버지인 고영진이 작명하기로 했으니 모두 그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폐하께서는 아버지를 출항단에 넣으려고 하시는 걸까요?”
고영진이 고민 끝에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 그 소식은 어디서 들은 게냐?”
고청운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오늘 아침 조례가 끝난 후, 그는 황제와 어서방에서 이 일에 대해 의논했는데, 황제는 아마도 한 번 출항하면 2, 3년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기에 결코 강경하게 이 일을 떠넘기지 않고, 아직 상의의 여지를 두고 있는 것 같았다.
고청운이 아는 바에 따르면, 오늘 황제는 여러 관리들을 불러들여 대화를 나누었다. 품계는 자신과 비슷하지만 황제의 심복이거나 혹은 박학다식한 인재들을 불러들였는데, 특히 다른 나라에 관해 연구했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되었고, 그의 하관인 봉 소경도 포함되었다.
솔직히 고청운은 이 소식을 확인하고는, 비록 이전에 이런 상황을 예상해 보기는 했었으나, 막상 황제가 자신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는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는 자신의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싫어했는데, 경성에서 보내는 나날이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지금은 그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병행하며 지낼 수 있었다. 다만 유명한 말이 있잖은가, 관직에 몸담은 사람은 그 일신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 말이다. 아무리 황제가 말을 편하게 했다고는 하나, 사실 자신에게 흥정의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가 그 일을 입 밖에 낸 순간, 그는 이미 그 일의 실행 가능성에 대해 깊이 궁리해야 했다.
사신이 쓴 책을 토대로 그동안 봐온 자료들을 생각하면, 고청운은 자신이 바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지금 서방 세계의 국가들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해 오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종이에 써진 것만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어, 자신이 행여 실수라도 할까 봐 직접 가서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두들 몰래 의논하고 있는 내용인걸요. 궁중의 소식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매우 재빠르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고영진은 입을 삐죽이 내밀어 턱짓하더니 또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그래서 이 소식이 진짜예요? 아니면 아닌가요? 아버지께서는 대체 어찌 생각하고 계십니까? 설마 정말 출항할 준비를 하고 계시는 건가요? 그 일에 참여하시게 되면 2, 3년은 걸려야 돌아오실 수 있다고요!”
고영진은 이 임무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게 안전 문제라고 생각했다. 바다에 나갔다가 돌아오려면 조상님의 보우가 필요한데, 만약 아버지가 사고라도 당한다면……. 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버지, 안 나가실 수도 있나요?”
고청운이 말없이 있는 것을 본 순간, 고영진의 표정이 변했다.
‘터무니없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다니!’
고영진은 조급해진 나머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잠깐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충신의 사상을 걱정했다. 그는 처음으로 황제가 너무 몰인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의 부친은 이제 쉰 살이 다 되어 가는 나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람을 바다로 내보내겠다고 하다니, 만일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집안이 어떻게 되겠는가?
고청운은 작은아들의 어깨를 덥석 껴안고, 그와 함께 후원을 향해 걸어가면서 상황을 참작하여 계속 의논했다.
“그건 대체로 폐하의 뜻을 살펴야 하는 문제이지, 만약 조정에서 나를 원한다면 내가 반드시 가야 하지 않겠느냐. 나는 홍려사의 사경직에 있다. 바다로 나가 외교하는 것이 내 직책이고, 폐하께서는 내가 가진 학식과 외국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고 계시지. 또 나는 내가 기대한 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단다.”
이번 출항의 주요 목적은 해외의 국가들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특히 군사 수준이 어떠한지를 알아내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당연히 거기에 하 왕조의 강대함을 널리 알리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다면 더욱 좋았다.
고청운은 속으로 계산해 보았는데, 조정에서 선단을 조직하여 바다로 나가는 건 정말이지 실보다는 득이 더 많은 일인 것 같았다. 다른 나라의 발전 상황에 대해 더 잘 파악할 수 있고 의도가 충분하다면, 자원을 먼저 선점할 수도 있었고, 항해 기술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단점이라고는 이 임무에는 돈이 꽤 많이 들어 적어도 은자 몇백만 냥은 들 거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정의 재무 상황이 여유로웠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바다 밖에 나갔다 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이 단점은 그가 출항했을 때, 가는 김에 한 차례 외국과 교역 사업을 하게 되면 돌아와서는 오히려 흑자를 창출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버지!”
고영진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그의 팔짱을 끼며 정색을 하고 물었다.
“혹시 나가실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있는 건 아니십니까?”
그의 눈에는 선명한 초조함과 공포심이 드러나 있었다.
“저는 아버지께서 바다 밖으로 안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는 속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만약 아버지가 정말 이 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어떻게 해서라도 황제 폐하의 결정을 되돌려 보고자 노력했을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지금 아버지는 오히려 아침부터 지금까지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자신보다 키가 더 자라 어른이 되어있는 이 아이가 어릴 때 자신에게 애교를 부렸던 것처럼 자신에게 얼굴을 파묻고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고청운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달랐다.
“소어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이렇게 많은 책을 번역했는데도 외국에 대해 이렇게나 궁금한 것이 많구나. 그리고 그간 경성에서 이리 오래 지냈으니, 솔직한 말을 하자면 나는 나가서 세상을 둘러보고 싶다.”
고청운은 고개를 들어 석양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너는 조정의 일에 자신감을 가져 보거라. 선단을 서양으로 보낸다 한들,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게야. 지금의 항해술은 예전보다 더 발전되어 있으니, 이번엔 무슨 문제도 없을 게다.”
그는 “내 몸이 병에 걸리지 않는 한 말이다.”라며 슬며시 한마디 더 덧붙였다.
사실 황제도 자신의 건강한 면모를 간파했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그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열심히 해 왔기에 신체적 조건이 정말이지 좋았다.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그를 기쁘게 하는 일이었는데, 예전이 노력이 이렇게 빛을 발한 것이었다.
“만약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고영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고청운이 모험을 감수하게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아까 나에게 내가 아직 젊다고 하지 않았느냐. 안심하거라, 아버지의 건강 상태는 당연히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아무 문제 없을 게야.”
자신의 권유가 고청운을 설득하지 못했음에도, 고영진은 여전히 고개를 저어댔다.
고청운은 식후에 고전각에게 놀러가라며 잠시 내보낸 후, 바로 이 사실을 다른 가족들에게 알렸다.
* * *
고택에서 이 소식으로 말미암아 큰 파문을 일으켰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무한한 신임을 바탕으로 고청운이 행한다고 하면 어떤 말이나 계획도 모두 받아들이던 고대하와 소진씨는 최소한 2년을 바다에 나가 생활해야 한다는 말에 반대부터 하고 보았다. 고청운의 끈질긴 설명에 소진씨는 귀를 막고 공포에 떨기까지 했다.
방인소는 침착한 얼굴이었지만,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고경은 방정심과 눈을 마주치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이 일은 좀 더 신중히 검토하셔야 합니다.”
그녀는 그간 책을 많이 읽고 외국의 풍토와 문화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지내 오면서 아버지가 늘 외국의 발전 상황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특히 신문물 분야의 발전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보였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녀는 자신이 직접 바다에 나갈지언정, 아버지가 그런 모험을 감수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모두가 그를 붙잡고 장황하게 설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청운은 고심을 거듭한 끝에 역시 황제의 분부를 따르고자 했고, 이를 반대한다는 그 어떤 의견도 전달하지 않기로 했다.
고청운은 처음으로 집에서 무시를 당하면서 가족들로부터 냉대를 겪어보게 되었는데, 이 상황을 두고 다른 가족들이 그를 무시했다는 표현은 옳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일방적으로 냉전을 선언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가 자신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하 왕조의 선박기술에 대해 매우 자신감이 있었다. 게다가 요 몇 년 동안은 해상 무역이 더욱 발달하며 항해도까지 제작되는 등 정확한 계절풍의 흐름에 따라 항해하고 있어, 항해의 안전성이 크게 높아져 있었다. 어차피 어찌 보아도 평행시공을 건너는 것보다 서양으로 파견 나가는 것이 더 안전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