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또 하나의 인재
“아버지, 갑자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고영진이 생각에 잠겨 있는 고청운을 보고, 차를 따라주며 물었다.
정신을 차린 고청운은 그들이 자신을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별거 아니다, 자 심심이(*방정심) 자네도 이 엽차 좀 음미해 보게. 자네 고향인 상성의 야생차인데, 진가아의 진외당숙이 지난해 시험을 치러 경성에 오면서 가져다 준 것이네.”
그는 줄곧 차 마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마셔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그는 이 야생차에 대해서만은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그 차는 매번 진교가 경성에 올라올 때마다 좀 챙겨와 주고는 했다.
방정심은 고청운의 말을 듣고 얼른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가,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
이를 보고 있었음에도 미처 막을 겨를이 없었던 고영진이 얼른 방점심에게 물었다.
“아이고, 이 차가 너무 뜨거웠지요?”
방정심이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렇게 뜨거운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화상의 고통을 지그시 참아보았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진작에 알았더라면 여종이 차를 가져올 때 내가 손을 뻗어 온도를 좀 확인해 보는 건데.”
고영진이 한마디 중얼거렸다.
그들이 이야기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고청운은 고경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져서 바로 다른 핑계를 대고 방문을 나서 안채가 있는 후원으로 곧장 걸어갔다.
* * *
고청운이 문에 들어섰을 때, 그들 침실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 간미와 고경만 함께 있었는데,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경의 얼굴에는 수줍음이 어려 있었다.
소진씨와 연 씨는 이미 고경과 말을 마친 것 같았다.
“부군, 어찌 오셨습니까? 심가아(*방정심)는요?”
그를 본 간미는 그의 뒤쪽을 살펴보았는데, 텅텅 빈 것이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진가아가 그 애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소. 나는 우리 딸을 찾으러 왔다오.”
고청운은 손을 뻗어 잡히는 대로 아무 의자나 하나를 끌고 와 고경의 맞은편에 앉아 이렇게 질문했다.
“소아야, 방가네 식구들이 네게 어떻게 하더냐? 지내기는 어떠하니? 특히 심심이가 네게 어떻게 하든?”
간미는 입을 가린 채 미소를 지었다. 지금 부군은 방금 자신이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경은 헛기침을 하고 머리를 약간 숙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 그들은 제게 아주 잘해주셨어요. 시어머님도 상냥하고 시동생과 시누이들과도 지내기 좋았어요.”
그녀는 말을 마치자 갑자기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시집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안 좋은 상황이 벌써 생겼겠어요? 아버지, 안심하세요. 정말 안 좋은 일이 있다면 제가 절대 참고만 있지 않고, 반드시 말씀드릴게요.”
고청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비록 고경의 표정을 보면 그녀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그녀 입으로 확답을 들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우리 가족들이 보고 싶었어요.”
이어서 고경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습관이 되지는 않더라고요.”
다행히 시중드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고경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낙담했는데, 이번에 성혼 후 기일이 되어 친정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진정으로 자신이 시집을 갔다는 것이 실감이 났던 것이었다. 나중에 다시 방문하게 되면 그때는 손님으로 오는 것이었다.
“천천히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사람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법이다. 겁먹을 것 없어. 무슨 일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다 말하거라, 내가 너의 편이 되어 줄 테니. 난 네가 화리(*和离: 동의하에 이혼 도장을 찍는 옛 법률)를 하겠다고 해도 그것을 도울 것이다.”
고청운은 낯선 곳에 가서 살게 된 딸을 위로하며 말했다.
사실 이런 일에는 그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고경을 생각하고, 또다시 십여 년 후의 시집을 가게 될 미래의 어린 손녀를 생각하면…….
‘아아, 고생스럽게 키운 여식들이 자라면 시집을 가서 남의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니, 방정심이 몇 년째 경성을 떠나지 않는 것이나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이마저도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안쓰러울 정도로 더 적어졌을 거다.’
“또 함부로 말씀하시는군요!”
‘화리’라는 두 글자를 들은 간미는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고청운을 때렸다.
“딸아이가 갓 시집가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참인데, 그런 소리를 하시다니요.”
“맞다, 그랬지. 그래, 이번은 내 잘못했소.”
고청운이 바삐 사과하며 잘못을 시인했다. 자신의 생각에도 너무 불길한 언사였기에, 그는 자신의 입을 때리려다가 간미에게 제지를 당했다.
고경은 이 광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고, 금방의 슬픔이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매번 시집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부모님 두 분 사이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도 했다.
곧이어 고청운은 간미에 의해 방에서 쫓겨났다. 그가 있어 말을 꺼내기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쫓겨난 그는 자못 답답해졌다.
* * *
점심과 저녁을 모두 집에서 먹고,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틈을 타서 고경과 방정심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대월(*对月: 성혼하여 1개월이 된 후에 신부가 친정에 돌아가서 수일 머물고 오는 풍습) 일정은 아직 급할 것 없었다. 대체로 방희림 가족들이 아직 경성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의 휴가 기간이 끝나서 다시 남경으로 돌아가게 되면 그때 다시 본가로 넘어와서 마저 머물다 가라고 해도 되었다.
이 일정은 고씨네와 방씨네에서 함께 상의한 일이었다.
고전각은 고경과 작별을 고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고청운의 손을 잡고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앞으로 아들만 낳을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가족들을 다른 곳에서 살라고 보내지 않아도 되잖아요. 음, 그리고 저는 앞으로 여동생에게 더욱 잘해 줄 거예요.”
그 말에 고청운은 고개를 숙여 이미 자신의 허리 높이까지 자란 토실토실한 꼬맹이를 내려다보았고, 입가에 실룩실룩 경련이 일었다.
“짱짱아, 너무 이른 생각이 아니냐. 너는 아직 네 색시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느냐.”
* * *
이날 밤, 고청운은 간미의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
간미가 거울에 비친 고청운을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밤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시는 겁니까? 짱짱이까지 서둘러 돌려보내시고 말이에요.”
“날씨가 더워서 조금만 더 움직였다가는 땀이 날 테니, 그래서 그랬소.”
고청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장인, 장모님도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구려. 두 분은 잘 계시오?”
그는 간미가 자신을 따라 경성에 올라와 지낸 것이 벌써 이십여 년이 넘었는데, 그간 부모님을 뵐 기회는 극히 적었던 것이 생각나 그녀에게 좀 미안함이 느껴져 이 말을 꺼낸 것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지금 남동생에게 내년 회시를 보라고 종용하며 빨리 상경하라고 난리를 치고 계실 거예요. 어머니께서는 올케에게 아들 하나 더 낳으라고 큰오라버니네보다는 많이 낳아야 한다고 하고 계시겠지요.”
간미는 다시 깊이 생각지 않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말씀드리자면, 제 부모님은 아직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를 임산현에 모시고 와서 살고 싶어 하세요. 임양부 쪽도 괜찮다 하시고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 이야기가 옳지 않은 것 같아요. 다른 건 몰라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저희가 잘 모시고 있고, 또 이곳 경성이야말로 두 분의 지인분들께서도 많이 계시니, 경성에 계시는 것이 임산현보다 훨씬 친숙하지 않을까요? 임양부로 돌아가서 무엇을 하시겠어요. 저희 부모님 싸우는 거나 맨날 보셔야 할 텐데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다투는 간지원과 방 씨를 생각하면, 고청운도 방인소 부부가 아무래도 경성에 남아 있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고경이 방정심과 함께 고택으로 다시 돌아와 지내고 있을 때, 올해 8월의 향시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들 고씨 가문에서 그 삼엄한 겹겹의 경쟁을 뚫고 합격에 성공한 사람이 나타났는데, 바로 고청명의 큰아들 고영동(顾永东)으로, 드디어 시험에 합격하여 거인의 신분이 된 것이었다. 그는 지금 경성으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는 참이었다.
방자명의 아들 방서 역시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고청운은 소식을 접한 후 흐뭇해했다. 그들 고씨 문중에서 드디어 또 하나의 인재가 탄생한 것이었다.
“아버지, 좀 이상해요. 저희 집은 우선 빼놓고, 아버지 세대 형제분들을 보면요, 고청량 당백부님 빼고 고청명 당백부님 등 다른 분들은 모두 다 수재이시고, 저희 형제 세대에서는 큰형님 딱 한 분만 배출되었잖아요.”
고영진이 말하는 큰형은 고영동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상할 것 없지. 나와 네 당백부들은 모두 힘든 시절을 겪었단다.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는 별로 없었지. 하지만 너희들 세대는 다르다. 너희들이 태어났을 때는 집안 사정이 이미 훨씬 나아졌을 때니까 말이다. 만약에 어르신들께서 엄히 단속하지 않으셨다면 인재로 성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게다.
게다가 모든 사람이 다 공부에 적합한 성향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니란다. 천재로 타고난 것이 아니고는 학업에 대한 성취 역시 뚜렷하기 힘들지. 자고로 학문이란 세월을 쌓아가며 학업을 계속해 나가야 하는 것 말고는 의지할 것이 없어, 스스로 노력하고 고난을 극복해야만 그 성과를 쟁취할 수 있는 거란다.”
고청운은 활을 한 번 더 쏘았는데, 온몸에 열이 도는 것이 느껴졌다.
고영진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몇 마디 더 덧붙였다.
“하지만 저와 형은 좀 다릅니다.”
말을 마친 고영진은 활시위를 잡아당겼고, 이내 자신의 화살이 과녁 중심을 정확히 맞춘 것을 보고, 자못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너는 네가 어릴 적 나와 너의 외증조할아버지에게 얼마나 혼나며 관리를 받았는지 잊은 게냐?”
고청운이 그를 한 번 노려보았다. 그의 숙부 댁의 경우, 숙모님의 손자 세대에 대한 지나친 총애로 인해 지금의 몇몇 조카는 아직 수재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조카들은 어릴 때부터 엄한 족규를 잘 배워 알고 있었고, 또 문중 어른들의 관리를 통해 임산현 안에서 무슨 소란을 피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고영진은 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자 겸연쩍어하며 다급히 대답했다.
“그럼 저는 나중에 제 아이가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반드시 엄하게 가르쳐야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또 고청운을 돌아보며 기대에 부풀어 말했다.
“하지만, 저한텐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저 대신 혼쭐 좀 내주세요.”
고청운은 자세를 바꿔 왼손으로 활을 당기며 조준을 했고, 시위를 당기던 손을 튕기며 다시 자세를 고쳐 바로 섰다. 이번에도 활이 과녁의 중심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