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9화. 출가(出嫁)
“장 형은 왜 제 얘기만 하십니까? 지금 장 형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고청운이 되물었다. 장수원은 지금 정5품의 예부낭중(礼部郎中)직에 있었는데, 평소에 마치 온 천하가 다 자신의 벗인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했다. 만약 그가 좀 더 진취적인 성향이었다면, 벌써 또 다른 실세로 활동을 하고 다녔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장수원은 순간 숨이 막혀 그에게 뭐라 권하기가 석연찮아서 결국 이렇게 중얼댔다.
“난 그저 자네가 너무 아까워서 그랬네. 한 번만 더 노력해 보게, 어쩌면 2품이나 3품 정도는 자네에게 문제가 없을 걸세.”
“저는 당분간 경성을 떠나 지방관으로 갈 생각도 없는걸요.”
고청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가 다시 한 단계 승진하기 위해서는 큰 공을 세우거나, 혹은 경성을 벗어나 지방관으로 근무를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지방관으로 재직해 본 적이 없어 이쪽 경험이 부족했다. 이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이런 단점을 안고 있다가는 다른 사람과의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에게 공격상의 유리한 점을 내어주는 꼴이 될 것이고, 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운 조건으로 작용할 것이었다.
그리고 아까 그 말, 각자가 지향하는 것이 다른 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관직 생활에서의 성공을 도모하고자 어디 빌붙을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산술 서적을 몇 권이라도 더 읽고, 하루빨리 미적분을 깨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결국 이 대화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9월, 가을이 다가왔는데, 이때 고영량으로부터 중양절 선물과 고경에게 보내는 성혼 축하 선물이 도착했다. 그와 더불어 고청운을 비롯한 가족들은 고영량이 복주(福州) 현지에서 점점 더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에 덩달아 기뻐했다.
그렇게 9월 18일, 고경이 출가하는 날이 밝았다.
이번 혼례식은 경성에서 거행되었기에, 경성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고영량과 영요는 참석하지 못했다. 방희림의 경우, 아들의 성혼식이 있는 날이어서 휴가 신청이 가능했는데, 그가 부임 중인 남경이 경성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이기에 휴가 승낙이 수월했다. 이 거리적인 이점은 고청운도 만족하는 것이었다.
필경 고청운은 고경이 시집가는 것에 대해 진작부터 마음의 준비는 해오고 있었는데, 이 준비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오래된 준비에 더해, 고씨 집안에서는 지난 1년간 고경의 혼수를 더 늘려주기 위한 작업을 해 왔다. 고청운은 심리적으로 그녀를 시집보낼 준비를 단단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혼례식에서 자신들 부부에게 작별을 고하는 맞절을 올리자, 마음이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고 두 눈도 시큼하게 아려왔다.
고청운의 곁에 있던 간미는 일찍이 고경과 울다가 목이 다 메어 있었다. 이에 주위 사람들이 급히 이들을 둘러싸고 위로하고 설득해, 어렵사리 식이 마저 진행되었다.
고영진이 고경이 탄 꽃가마를 등에 지고 출발하려는 때, 고청운은 귀청을 찢는 폭죽소리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간미의 팔을 부축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손수건을 꺼내어 눈을 연신 찍어 눌렀다.
* * *
고경이 다시 친정으로 돌아오는 의식을 치르는 그 날에, 고청운은 특별히 휴가까지 쓰고 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가 다시 만난 순간, 고청운과 간미는 먼저 고경의 몸을 살펴보았는데, 딸은 얼굴에 혈색이 좋고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방정심과 깊은 눈빛을 주고받을 때 그녀가 모처럼만에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보이자, 고청운은 그 모습에 또 가슴이 시큰시큰해졌다.
모두가 서로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나눈 후, 고경은 간미, 노묘운과 함께 여인들만의 비밀 이야기를 나누러 방으로 들어갔다.
안채 응접실에서 고청운은 아주 공손한 태도의 방정심을 대하기가 조금 마땅찮아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답답해라, 예전에는 내가 심심이에게 좀 더 편한 태도를 취할 수 있어서 괜찮았는데, 딸이 이 녀석에게 시집갔으니 이제는 내 딸의 안녕을 위하여 내가 이 녀석에게 잘 보여야 하는 건가?’
고청운은 내심 생각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도 얼굴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침착하게 방정심과 부담이 없는 안전한 주제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니다, 아무래도 체면상 그의 비위를 맞추겠다고 노력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는 평소 자신의 체면이 훼손되는 것은 고사하고, 혹시 자신이 비위를 맞춘 일 때문에 방정심이 이후에 교만하게 굴 수도 있을 테니, 이런 태도는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분명 방정심이 그런 사람은 아닐 터였지만 말이다.
고대하와 방인소는 이곳에 얼마 머무르지 않았고, 그저 방정심과 잠시 말을 나누다가 곧 자신들의 거처로 되돌아가 버렸다.
“소가아(潇哥儿)는 왜 이번 향시를 치르지 않았는가?”
세 사람이 같이 두 어르신들을 배웅하고 나서, 고청운이 다시 방정심에게 말을 걸었다.
방정심의 남동생 이름은 방정소(庞庭潇)로, 올해 20살이 되었는데, 방자명의 아들 방서와 마찬가지로 작년에 막 수재에 합격했으나 올해 8월의 향시 시험은 보지 않았다.
고삼원의 아들 고전양은 작년 원시라는 관문을 넘지 못해 아직 동생이라는 신분에 머물러 있었다. 그는 지금 여전히 고향인 임계촌에 남아서 각고의 노력을 들여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야 다시 경성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방정심은 고청운보다 아랫자리에 앉아 고개를 흔들어 보이고는 웃으며 답했다.
“남동생의 원시 합격 석차가 거의 맨 뒤쪽이라, 아버지께서는 지금 그 아이가 시험을 치러 가더라도 아마 합격은 어려울 것이라고 다음 시험을 보라고 하셨습니다. 몇 년 더 곁에 잡아 두고 공부를 시키실 예정인데, 한동안은 그리 조급하게 시험 참가에 연연하지 않을 겁니다.”
그 때문에 그는 형의 혼례식에도 참석할 수 있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정소의 자질은 그의 형과 비교할 수 없었다. 고청운은 상대를 한 번 시험해 본 적이 있었는데,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없는 재간도 메꾸어 낼 수 있으니 수재가 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으나, 거인이 되는 일은 운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다. 국가가 오랫동안 태평성대해지면서 과거 시험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으니 말이다.
이어서 고청운 부자와 방정심은 또 최근 관보에 실린 소식들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진지한 이야기들이 끝나자, 방정심은 갑자기 그간 조정과 재야를 둘러싼 이런저런 뜨거운 시빗거리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 폐하께서는 선단을 꾸리시어 서양으로 보내려고 하시는 걸까요?”
방정심이 고청운을 향해 질문했다. 그는 한림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순번에 맞춰 입궁해 근무해야 했기에 황제를 알현할 수 있는 기회가 비교적 많았고, 소식도 비교적 빨리 접할 수 있었다.
고영진은 아직 서길사의 신분이기에 실습 과정 중이었다.
“네 아버지는 그리 보시더냐?”
고청운이 반문했다.
방정심은 두 볼에 얕은 보조개가 드러나게 웃고 나지막이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폐하께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다.”
고청운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이 출항 여부의 문제가 대체 방가(庞家)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하지만 그는 더 묻지 않았다. 이는 어차피 모든 사람이 화제로 삼는 매우 뜨거운 이야깃거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고청운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
“네 아버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다. 우리 왕조에서는 서양국가와의 해전을 겪은 이후, 조정의 많은 인물들이 비로소 이 세계가 매우 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지. 더군다나 해양 무역으로 인한 수입은 그간의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민간에 돌고 있는 풍문에 의존하는 정도일 뿐인데,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요즘에 서양을 한번 돌아보고 와야 한다는 의견들이 요란하게 제기되고 있지.”
“아버지, 만약 전 왕조에서 서양을 다녀왔었던 사료가 계속 잘 보존되어 내려왔다면, 정말 좋았을 뻔했습니다. 우매한 군신들 때문에 이리 고생하여 쌓아온 역사적 사료가 아깝게 전소해 버렸다니, 정말이지 너무나도 아깝습니다!”
고영진이 성이 나서 손목을 불끈 쥐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직접 가서 또다시 기록을 남기게 생겼으니, 여기에 또 얼마나 많은 은자가 들어가게 될까요?”
“지금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문제는 과연 폐하께서 누구를 바다 너머로 파견 보내실까 하는 겁니다.”
방정심이 그 말을 이어받아 말했다.
“이치대로라면 폐하께서 신뢰하는 내시(內侍)가 가는 것이 맞지만, 아직 이와 관련해 확실하게 전해지는 것이 없습니다. 분명 관원들도 함께 보내셔야 할 텐데, 제가 보기에는 서로가 바다에 나가려 하지 않아서, 연줄들을 찾아 관련 소식을 수소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방정심은 바로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바르게 말하고 있었다. 상인들이야 출항 한 번으로 남길 수 있는 이윤이 아주 거대하니 출항을 그다지 꺼리지 않았다. 운이 매우 좋을 경우,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출항 후 맞닥뜨리게 될 태풍, 해일, 해적, 질병 등으로 인해 머나먼 이국에서 눈을 감게 될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 세상에는 왕가(王家)의 왕가준이나 왕박같이 모험을 즐기고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실력과 운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상인들도 있었는데, 비록 그런 그들이라고 해도, 몇 번 항해를 강행하여 생활적인 안정을 쟁취한 뒤에는 더 이상 모험을 계속하지 않고 출항을 관두었다.
관리들의 사회적 지위는 이 시대에서 가장 높은 축에 속했다. 이 관리들은 큰 노력을 기울여 겨우 이 자리까지 도달할 수 있었는데, 이대로 바다로 나가는 모험을 강행해야 한다는 건 그 많은 업적을 이룩하고도 자신의 파리 같은 목숨을 운에 맡겨야 하는 행위가 아닌가. 이것은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것이었기에, 경성의 관리들은 황제가 선단을 조직해 출항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돌자 내심 조바심이 난 것이었다.
“한 번 출항하는 데에는 여러 방면의 준비를 두루 갖추어야 할 것이네. 최소한의 군 인력, 관원 인력과 함께 번역, 지도 제작, 항해에 대해 아는 자가 수행을 해야 할 걸세. 이런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항해에 도움이 되겠지. 폐하께서 가지고 계실 또 다른 의도에 대해서는 나도 아직 아는 바가 없네.”
고청운은 이 부분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어리둥절해졌다. 작년에 고영진의 성혼식에서 황제가 자신의 집안에 상을 하사한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황제 폐하께서 상을 주신 게, 혹시 이번 출항을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두신 것이란 말인가?’
필경 그는 해외에 관한 두 권의 화본을 썼었는데, 그 책은 광범위하게 유행을 일으키면서 은광을 발견한 데에 확실한 영향력을 끼친 전적도 있었다. 만약 이 일이 별것이 아니라고 쳐도, 그에겐 다른 요소도 있었는데 그는 항상 외국의 서적들을 번역해 오고 있었고, 평소의 언행 역시 적나라하게 해외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 비추어졌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영어, 라틴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공부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정말로 황제 폐하께서 나를 출항단에 보내려고 하셨을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기꺼이 가려고 했을까?’
고청운은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물어보았는데, 자신의 마음이 꿈틀대며 약동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