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55)화 (455/504)

455화. 지방관

10월이 되자, 고청운은 방자명이 보내온 서신을 받고 그의 아들 방서가 단번에 수재 시험에 합격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의 원시 시험의 석차는 2등으로, 잘하면 소삼원(*小三元: 향시 시험 전인 3번의 작은 시험인 원시, 부시. 현시의 1등을 안수라고 지칭하는데, 이 3차례 시험에서 안수를 모두 차지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또한, 고청운은 그 아이가 지금도 임산현에 머물며 고향에서 내년 8월에 열릴 향시를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매우 기뻐하던 고청운은 고향의 몇몇 시험을 기다리는 다른 수재들이 생각나서 참지 못하고 경성에서 향시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주도록 했다. 

* * *

고전각은 3월 중순 황립 서원 입학시험에 합격해 정식으로 입학할 수 있었다. 그와 육견은 아직 8살이 안 돼 서원에서 기숙을 할 수 없어서 매일 통학을 해야했다.

한편, 방희림은 복상 기간이 끝나자마자 경성으로 올라와 방정심과 고경의 혼인을 준비하며 기복(*起复: 관리가 복상 후 기용되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기복은 잠시 미루고, 휴무일에 맞추어 방희림이 자신의 일가족을 다 데리고 고청운의 집을 방문했다.

일찌감치 모든 약속을 다 거절하고 집에서 이들을 기다리던 고청운은 방희림과 만나자 울음을 터뜨렸는데 방희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십몇 년이나 만나지 못했군 그래, 많이도 변했네.”

그를 주시하던 고청운은 방희림의 몸매가 수척해지고, 피부색도 검고 거칠어져서 마치 늙은 농부처럼 보이는 것을 보고 한탄을 금치 못했다.

그 당시 의기양양했던 탐화랑이 지금은 얼굴이 온통 상전벽해를 거친 중년 사내의 얼굴로 변모해 있었으니, 예전과는 실로 큰 차이가 있었다.

방희림은 매우 온화하게 웃었는데, 미간의 주름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가 느리게 말을 꺼냈다.

“신지, 자네는 별로 변하지를 않았군. 내가 자네와 함께 서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틀림없이 우리가 동갑내기라는 것을 믿지 않을 걸세.”

고청운은 그를 문 안으로 끌고 들어오더니 안채로 옮겨 가면서 말했다.

“나는 줄곧 경성에 머물면서 지방에서 고생하지 않아 호강하고 있던 셈이지. 자네야말로 각지를 돌아다니며 정말 애 많이 썼네, 자네가 행한 일이야말로 진정 백성을 이롭게 하는 큰일이었어.”

뒤따르던 방정심은 당연히 고영량 형제가 맞이하여 대접했고, 안식구들은 후원으로 안내되었다.

고청운이 방희림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 중 첫 번째는 처음 알았을 때부터 그들 두 사람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청운은 방희림의 빼어난 솜씨와 수완 등을 매우 흠모하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방희림이 그간 말단에서 해 오던 일들 때문이었다. 

방희림은 아마도 출신의 영향 탓인지 하층민들의 고초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지방관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백성을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으며, 매번 부임하는 지역마다 어떻게든 해당 지역의 백성을 위해 활로를 모색하고 수도 공사를 이행했다. 또한, 생산량이 많거나 고부가 가치 농작물을 보급하고 재배 시술을 전수하는 일들도 행했다. 

그가 행한 일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업적은 아니었으나 눈앞에 주어진 업무만 하는 것보다는 매우 뛰어난 업적이라 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는 현지의 유력 향신들을 굴복시킬 줄 알았고, 일 처리가 능숙했으며, 정치적으로도 매우 기민하게 잘 처신했다. 

고청운과 방자명은 방희림의 아버지가 욕심을 부려 그에게 고배만 마시게 하지 않았어도, 지금쯤 방희림이 못해도 2~3품의 고관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고청운이 방희림의 손을 잡고 있다가 그의 손에 엷게 박힌 굳은살을 느끼곤 물었다.

“3년 동안 무엇을 하고 있던 겐가? 손에 굳은살이 다 박혀 있네.”

‘아니, 부학과 현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방희림은 정원의 경치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말고 웃으며 답했다.

“본가에서 밭 한 묘를 개간해서 물을 대고 물고기를 풀어 농사를 지어봤지. 아, 저쪽의 석류나무 두 그루가 정말 잘 자랐군.”

고청운이 그의 대답을 듣고는 흥미가 동해 물었다.

“그럼 벼 생산량은 어떠한가? 정말 1할 정도씩이나 생산량이 증가하던가? 내 기억으로는 일전에 자네가 민성에서 실험을 했었다고 했는데 말이야. 대부분 1할 정도는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논에 물을 대고 물고기를 풀어 놓는 일은 새로운 농법이 아니었다. 고청운은 일전에 읽었던 서적을 통해 삼국시대에도 이 같은 농법을 행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중국은 토지가 넓어 소식이 불통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어떤 지방에서는 이러한 농법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는 현대에서 이러한 농법에 대해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었을 뿐, 그 효과를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었는데, 핵심적인 기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몇 년 동안 노력해 보아도 줄곧 그때의 기억이 다시 생각나지는 않았다가 본의 아니게 다른 서적을 통해 이 농법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제야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다니며 방희림에게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보냈었다.

그가 생각지도 못한 것은 방희림이 실제로 이 실험을 진행했고, 심지어 그 효과도 괜찮게 실현해냈다는 것이었다. 

“대체로 어떤 어종이 현지에 더 적합한지 알아보고 싶어서 실험을 해보았지.”

방희림이 미소를 지었다.

“자네 말대로 각지의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적절한 대책이 별도로 필요하더군.”

* * *

안채 응접실에 그를 데려가 주빈 자리에 나눠 앉은 고청운은 두 사람이 특별한 관계였기에, 고대하와 소진씨, 그리고 방인소와 연 씨,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만나게 하여 서로 인사를 시켰다.

어른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으니 고경과 방정심도 만날 수 있었다. 고청운은 방정심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못 당황스럽고 속이 갑갑해지기에 시선을 돌려버렸다. 다행히 자신의 집 딸은, 도량이 넓고 대범한 모습을 띠고 있어 집안을 망신시키지는 않았다. 

아이들을 내보낸 뒤 방희림이 고전각을 칭찬하며 말했다.

“아이를 잘 가르쳤어, 어린 나이에 천자문도 이해하고 내용도 실생활에서 잘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보니 나중에는 아주 진중한 아이가 되겠네. 자네를 닮은 것 같아.”

고청운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앞으로 어찌 자랄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 아직 어리니 알 수 없는 일이네.”

“내 솔직히 말해서, 자네 집안에는 전각이가 있으니, 새롭게 출세를 위해 앞날을 개척해야 할 일은 없지 않겠나.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잘 지켜나가면 될 게야. 때로는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보다 힘들 때가 있다네.”

방희림은 그간 느낀 바가 많았던 것 같았다.

“나는 그간 여러 지방에서 전전긍긍하면서 자손들이 품행이 나쁘거나 불초하여 그간 선조들이 쌓아올린 것을 무너뜨리는 광경을 너무 많이 보아왔네. 때로 우리는 관직 생활에서 가까스로 출셋길을 걷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정신 못 차린 가족들로 인해 발목이 잡히기도 하지 않던가.”

고청운은 그 말에 어찌 대답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아무리 방희림의 아버지가 안 좋은 일을 행했다고는 하나 방희림의 친아버지인지라 감히 언급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다행히 방희림은 한탄만 늘어놓고 바로 말을 돌렸다. 

이어 두 사람은 그가 현령으로 부임했을 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말솜씨가 아주 좋았던 방희림은 조그만 사건임에도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재미있고 생동감이 넘치게 말을 했기에, 고청운은 시도 때도 없이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비록 고청운과 그가 자주 교신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각자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서신만으로 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니, 지금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당사자에게 직접 일화를 전해 듣느니만 못했다. 

고청운은 지방관으로서의 경험이 없었지만, 금년 5월에 진교를 도와 지방의 관직 중 공석으로 있는 괜찮은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바로 낙양부 아래의 어느 현에서 현승(县丞)직을 찾아낼 수 있었는데, 방자명이 이곳을 거쳐 지부의 자리까지 올랐었기에 고청운은 누구도 쉽게 진교를 힘들게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고영량이 곧 지방직을 수임해 외부로 나갈 것이 생각난 고청운은 그쪽의 상황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자 했다. 

다른 관원들은 보통 지방으로 파견 나갈 때 사부(*师爷: 옛 지방 관서 장관의 개인적인 고문)를 모시고 부임하고는 했는데, 그에게는 기댈 만한 사부조차 없었고, 주변에서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아들에게 적합한 지방관 자리를 찾아주려니 정말 찾기가 힘들었다.

필경 이러한 사부가 있고 없고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만일 기댈 곳 없이 반항적인 현지의 반발세력을 만나게 된다면,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으니 말이다.

이야기 마지막에 고청운은 그가 기복을 위해 대기하던 중임이 떠올라 직설적으로 물었다.

“이부에 기복 신청은 했는가?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 어디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가?”

방희림은 담담하게 웃으며 답했다.

“지금은 괜찮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면 내 반드시 얘기하겠네.”

고청운은 그가 계획이 있어 보여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사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방희림은 인맥이 부족하지 않았다. 장인인 백엽 대인과 그의 문하에 있던 몇 명의 선후배들만으로도 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두 가족은 함께 점심을 먹은 후, 고경과 방정심의 혼례식 날짜를 내년 가을로 정했다.

고청운은 방정심이 고경보다 3살이 많고, 내년 5월이 지나야 고경이 18세가 될 것을 감안하여 간미와 상의한 후에야 이 날짜에 동의했다.

* * *

방희림네 식구들을 배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방씨 집안에서 정식 중매쟁이를 불러들였고, 두 집안은 이렇게 정식으로 정혼을 결정지었다. 

이 일은 그간 어느 정도 소문이 나 있던 터라 그저 그렇게 진행이 되는구나 하는 정도라서, 고청운은 사람들에게 간간이 축하 인사를 받을 뿐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그는 남몰래 속으로만 경사에 즐거워하고, 남들이 떠들어대는 풍문에 대해서는 귀를 막았다.

* * *

사장정을 만났을 때, 고청운은 그가 남들과 동일한 의문을 제기하는 걸 인내심을 가지고 부연 설명을 했다. 

“내가 그 아이의 성정을 알고 있는데, 참 좋은 아이일세. 게다가 집안도 그렇네. 우리 고씨 집안도 농가 집안 출신이 아니던가. 집안끼리 서로 잘 맞네. 안 어울릴 만한 조건이 없었지.”

“내 방 씨 녀석이 젊은 나이로 진사에 합격한 것은 인정한다만, 그 집안의 벼슬 품계가 좀 낮지 않은가. 자네는 4품 관리이고, 산술 학계에서 그렇게나 자자한 명성을 지니고 있는데, 아이고, 진작 이 혼담을 알았더라면, 우리 구진(欧缜)이를 좀 더 일찍 경성에 오게 하는 건데. 자네 집이랑 사돈을 맺을 기회였는데 말일세.”

사장정은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외숙부 아들은 비록 진사 합격 때의 나이가 방정심보다 네다섯 살 위라고 하지만, 방정심과 똑같이 탐화 자리를 차지하며 진사 시험에 합격한데다 인물이 얼마나 보기 좋은가. 

고청운은 깨끗하고 잘 관리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했다.

“구진이를 일찍 상경시켰다고 한들, 아마 잘되지 않았을 걸세. 구 선생님께서 그 아이를 어찌 할지 계획하신 바가 있으실 테니 말이야.”

사장정은 의외로 그의 외모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어릴 적 겪은 경험 때문이겠지만, 구진의 미간에는 늘 근심이 서려 있었고 전체적인 기질이 음울한 편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비교하면, 방정심은 밝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소년의 성정으로 비추어졌는데, 아무래도 말이 많은 사내가 우울한 사내보다는 더 어울리기 좋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청운이 늘 구 선생님의 감춰둔 신분을 마음에 걸려했다는 점이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엿보거나 정탐하는 게 싫었던 그는 이러한 번거로움은 없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의 말을 들은 사장정은 눈살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네 말이 맞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우리 외숙부에게도 물어봐야 되겠지.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 때와는 달리 장본인들이 혼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부모 마음대로 혼담을 진행할 수가 없더군.”

혼담의 진행에 있어 아직 ‘(혼인이란) 부모의 명이요, 중매쟁이의 말이라.’ 라는 말이 고려되고는 있었지만, 지금은 세시풍속이 많이 개방되어 대다수의 부모들은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때를 생각하여 정혼 절차를 밟기 전에 항상 아이에게 상대에 대한 의견이 어떠한지 물어보았다. 부모가 아이의 의견을 반영할지 말지는 또 별개의 일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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