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54)화 (454/504)

454화. 동료

“부군, 세자께서 어찌 그리 대범한지요. 아들 둘을 경성에 떼어 놓고, 그들 부부는 부임지에서 지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육 후작 나리께서도 아직 요주에서 경성으로 돌아오지 않고 계시던데, 후부에는 이제 담 씨만 남아 있겠군요.”

간미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뒤이어 고청운이 아이들을 보러 가려고 하자, 그녀는 덩달아 흥이 나 뒤를 따랐다. 

고청운은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다 그녀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하며 부연 설명을 했다.

“어찌 해도 담 씨는 그저 소보(*육훤의 아명)의 명목상의 어머니일 뿐이오. 소보에게는 할머니가 있으니 그리 해 볼만도 하지요. 게다가 이 몇 년 동안 담 씨는 어떤 간교한 계략을 펴지도 않았고, 대외적으로 시집가기 전과 동일한 평판을 얻고 있지 않소? 소보 형제는 이미 확실하게 하나는 문인, 또 하나는 무인 쪽에 종사하고 있으니, 담 씨가 꽤 총명하다고 할 수 있겠소. 게다가 후부와 국공부의 사람들이 이렇게나 지켜보고 있는데, 무슨 큰일을 벌일 수는 없겠지요.”

두 아이의 외할아버지는 국공부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들의 일이 걱정되지 않았는데, 육훤과 육택이 아이들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는 건 아이들의 안전이 보장되어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담 씨는 자신의 이름만 앞세울 뿐, 아이들을 실질적으로 돌보는 것은 아랫사람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내년이면 육택의 임기가 끝나는 반면, 육훤은 부임지에서 더 머물러야 하니 육택이 경성으로 돌아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다. 

간미는 아이들을 서원에 보내기 위해 매일 오전에 마주치는 호위대를 생각하며 문득 크게 깨달았다. 하긴 어린 육견은 어딜 가나 호위대와 몸종을 대동하고 다니니 무슨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진즉에 황립 서원에 입학해 있는 육기도 올해 11살이지 않은가. 사람들 눈에는 이미 어린 소년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철도 들었을 것이었다. 

“그럼 부군, 세자께서 견가아한테 당신을 따라 공부를 하라고 부탁한 건, 나중에 견가아를 문인으로 키우려는 계획일까요?”

간미가 다시 물었다.

“아니오, 소보와는 달리 육기와 육견은 모두 같은 어머니가 낳은 적자들이지 않소. 아무래도 군에서 중히 여기는 덕목을 배울 테니, 아버지를 따라 둘 다 군인이 될 테지. 옛 왕조와는 다르게 요즘 군에서는 말을 타며 육지만 횡단하지는 않는다오.”

고청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답했다. 서양 세력과 한 번 격돌한 뒤 조정과 하부 조직 간에는 어느 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앞으로도 전쟁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앞으로의 전쟁은 육지뿐만 아니라 바다에서도 발생할 테니, 아직 무관의 위상은 드높았다. 

“하지만 소보의 동생의 경우, 거인의 신분이 된 이래로 그 이후의 시험에서는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있다오. 이에 지금도 고되게 학문 정진에 힘쓰고 있는데, 소주에 있는 담씨네 본가의 도움에 힘입어 문인으로서는 오히려 경성에서 좋은 명성을 얻고 있소. 

이번에 소보가 육견을 보내온 건 황립 서원에 가서 진도를 못 따라가지 않도록 글자를 좀 더 익히라는 단순한 이유에서라오. 허허, 꼬맹이가 글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이전부터 글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는데, 1년을 공부했다고 하는데도 아직 몇 자 알아볼 수 있는 글자가 없더군. 그러니 소보 혼자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이오.”

고청운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입가에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물론 명분상으로야 그가 가르친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은 방인소였고, 고청운은 오직 휴무일에만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었다. 

* * *

그들이 아직 앞마당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갑자기 앞쪽에서 한바탕 놀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도련님 빨리 내려오세요. 어서요!”

“짱짱아, 너 지금 무엇을 하는 게냐? 어서 내려오너라!”

연 씨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이 소리를 들은 고청운은 급히 발걸음을 재촉하여 곧바로 앞마당에 도착했는데, 정원의 석류나무 아래 육견의 사내종과 연 씨, 그리고 하인들 몇 명이 쩔쩔매며 나무 아래를 둘러싸고 있었다.

“할머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고청운이 다가가 상황을 살폈다. 그는 석류나무 두 그루에 아이들이 각각 하나씩 서 있는 걸 보았는데, 사람들의 외침에 저들도 놀랐는지 나무 기둥을 꼭 끌어안고 눈은 아래쪽을 향한 채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 씨가 한 유모의 품에 기대어 가슴을 움켜쥔 채 말했다. 

“청운아, 마침 잘 왔다. 저 녀석들이 너무 사람을 놀라게 하는구나. 내가 방금 옆집에서 넘어왔는데, 눈을 들어보니 두 아이가 나무에 매달려 있지 뭐냐. 아이들이 놀랄까 큰 소리를 칠 수도 없어서 아이들에게 나무를 꼭 끌어안으라 하고 나서야 겨우 소리를 낼 수 있었다. 휴, 나이가 드니 놀라는 것도 힘에 부치는구나. 빨리, 어서 빨리, 너는 견가아와 짱짱이를 내려오게 하거라! 저곳은 너무 위험해! 이 두 녀석이 장난이 너무 심하구나!”

이때까지도 잰걸음으로 따라오던 간미는 연 씨의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모습에 깜짝 놀라 급히 다가오더니, 따라온 여종을 시켜 연 씨를 옆의 긴 의자에 앉도록 부축하게 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외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내려올 거예요.”

한편, 고청운은 고전각과 육견을 쳐다보다가 아이들이 아직 힘이 빠지지 않은 것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무엇을 하려던 게냐?”

그의 눈이 빠르게 석류나무를 한 번 훑어보았다. 지금은 과일이 무르익었을 때라 나무에는 온통 붉은 석류 열매가 매달려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이 두 그루의 석류나무는 그가 처음에 이 정원을 매입하면서 손수 심은 것으로, 20년이 지나니 키가 아주 커지고 또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나무 기둥이 좀 얇다는 것이었는데, 두 아이가 꽤 높은 곳까지 기어 올라가 있는 걸 보니 어른을 시켜 올라가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오게 하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것 같았다.

고청운의 웃음에 용기를 얻었는지, 고전각이 건너편 나무의 육견과 눈을 마주치며 고했다.

“할아버지, 저는 견 형과 누가 열매를 많이 따는지 겨루고 있었어요. 음, 음, 저희는 그저 석류가 먹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 아이는 말미에 이르러서는 말을 많이 흐렸는데, 연 씨의 반응을 보고 자신이 잘못한 것 같다는 것을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견가아, 그 말이 맞느냐?”

고청운이 육견을 바라보았다.

뽀얀 고전각에 비해 피부색이 검고 약간 수척한 육견이 작은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선생님, 동생 말이 맞습니다. 저희는 석류가 먹고 싶었어요. 빨갛고 어여쁜 석류가 맛있어 보였거든요. 아주 달아 보였습니다.”

그는 외려 싱글벙글해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기까지 했다.

그 말을 들은 고청운은 입가에 경련이 일었는데, 이 꼬맹이가 경성에 올라온 지 이제 겨우 열흘 만에 고전각과 익숙하게 어울리더니 심지어 '근묵자흑(*近墨者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의 양상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녀석은 당최 나무를 타본 적도 없으면서 이리 과감하게 나무를 타다니.’

결국 고청운은 하인들을 나무 밑으로 불러들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솜이불을 몇 겹 깔게 했고, 열매 몇 개를 마저 따게 한 뒤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오도록 지도했다. 

곧이어 고청운은 육견이 꽤 능숙한 동작으로 원숭이처럼 날렵하게 나무 아래로 내려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는 바닥으로 내려와서는 고개를 떨구고 고청운 옆에 서 있었다.

한편, 고전각은 이렇게 높은 나무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 내려올 힘이 다 빠지고 없어 나무줄기를 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할아버지, 빨리 저 좀 안아주세요, 엉엉, 짱짱이 이제 힘이 없어요. 너무 높아요! 무서워요, 으아앙.”

고전각은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려다가, 두 손으로는 나무 기둥을 끌어안고 있어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는 더 슬피 울었다.

고청운이 나무 밑에 서서 웃으며 말했다.

“괜찮다, 방금도 스스로 올라갈 수 있었으니까 이제 내려올 수도 있을 게다. 자, 천천히 해 보자. 밑에 보이는 나뭇가지를 먼저 밟아보거라…….”

“그렇지, 그래! 동생아! 아주 쉬워. 아이, 너는 너무 뚱뚱해, 몸이 나 같지 않구나.”

다급해진 나머지 작은 얼굴이 빨갛게 되어 나무 아래에서 빙빙 돌면서 외치던 육견은 마치 대신 내려와 주기라도 하는 듯 폼을 잡고 서 있다가, 결국 고청운이 자신을 힐끗 보는 것을 보고는 작은 입을 손으로 가린 채 다시는 말을 하지 못했다.

‘얌전히 말을 잘 들어야만 했어. 그렇지 않고 선생님을 화나게 했다가는 이 일이 아버지에게 알려져 틀림없이 매를 맞게 될 거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육견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손을 뻗어 엉덩이를 매만졌다.

후부에서 따라온 호위대는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는데, 고청운이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육견이 그들을 곤란하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고전각은 몇 번이나 울다가 고청운과 간미가 같은 말만 하는 것을 보고 연 씨를 찾았는데,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자 또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고청운은 마음이 아팠지만 계획한 바에 따라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고청운의 손이 닿을 수 있는 지점까지 기어 내려와 품에 안긴 꼬마는 두 눈이 이미 퉁퉁 부어 있었고, 통통하던 손은 껍질에 긁혀 핏발이 서 있었으며 희고 보드랍던 손바닥은 다쳐서, 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이에 비해 육견은 아무 일도 없었다.

소식을 들은 방인소와 고대하 부부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왔지만, 이때는 사건이 일단락되어 이미 고청운이 큰아들 부부를 데리고 꽃구경을 나간 상태였고, 작은아들 부부도 시장으로 물건을 사러 나가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집안이 더욱 시끌벅적해졌을 것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앞에서 고청운을 꾸짖지 않았고, 외려 육견이 괜찮다고 하는데도 아이들이 다치거나 놀라지는 않았는지 살뜰히 보살펴 주었다.

고전각과 육견은 이 일이 있은 후, 나무를 타고 싶을 때는 어른들에게 미리 말을 하고 나서 어른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만 해야 한다는 모진 교육을 한차례 받았다. 

고청운은 고전각에게 피를 흘리게 한 장본인으로서 방인소로부터 책 몇 권을 외어야 하는 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이 벌을 받은 고청운은 매우 담담했다. 요 몇 년 동안 그는 다른 사람들이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시험에 나오는 책을 거의 다시 읽지 않는 것에 반해 틈만 나면 복습하고 있었기에, 일찍이 그 책들을 거꾸로 외우라고 해도 할 수 있을 정도였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벌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었고, 뒤에서 조용히 몰래 웃기만 하면 되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라, 그는 적어도 스승님이 자신의 체면을 세워줄 거라는 걸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집안에 육견이 오고난 후, 고전각은 점점 더 밝고 활달한 성정이 되었다. 그가 육견과 뛰어다니고 여기저기 휘저어 가면서 체력적으로도 더 강해지고 있자, 고청운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사실 이 집에는 노인 비율이 너무 높았고, 아이라고는 고전각 하나였다. 게다가 그의 주변에는 함께 뛰어 놀 친구가 많지 않았고, 보통 친척 집 정도는 가야 또래 아이들과 놀 수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를 자꾸 총애하게 되었는데, 고청운은 이 때문에 손자가 심약한 성미를 가지게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지금 육견이 그와 함께 놀아주니, 아이는 성격 발달 면에서 훨씬 더 나아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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