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52)화 (452/504)

452화. 아명

고대하와 소진씨는 고영진이 신임 진사가 되어 말을 타고 거리를 유세하며 경성을 거니는 광경을 보고 크게 동요했다.

큰길 양옆에 늘어선 백성의 열정적인 환호뿐만 아니라 신임 진사들의 과거에 급제하여 득의만면한 모습들까지, 이 모든 열광적인 분위기는 그들을 도취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특히 그 일이 있은 후, 집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방문하고 배첩을 보내왔는데, 이러한 정경은 그들에게 고씨 가문이 현재 누리고 있는 위상을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고대하가 고청운을 향해 감탄하며 말했다.

“네 어렸을 적을 기억하는데, 이렇게 변모한 지금의 모습을 보니 내가 마치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구나. 나는 우리 집안에 이런 날이 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이건 잠깐 지나가는 일이에요. 일련의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이런 분위기는 가라앉아 버릴 겁니다.”

그는 사람의 매일이 오늘 하루 같이 좋을 수 없고, 꽃도 백날을 붉게 피어  있는 법이 없다거나 달도 차면 기운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 는 30~40년간 자신의 집안에서 스스로 화를 자초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끼어들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그 또한 경쟁이 심하지 않은 한가로운 부서에서 좀 지내다보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전자가 어렸을 때 어느 떠돌이 도사가 마을에 와서 우리 조상이 계신 선산에서 푸른 연기가 나는 것이 아주 좋은 일이 있겠다고 한 적이 있었지. 거기에 관모의 형상이 보인다고 했었는데, 이 어미가 보기에는 그때 그 도사의 말이 아주 용한 것 같구나!”

소진씨는 고청운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만약 그 도사님을 다시 뵙게 되면 정말 감사를 드려야겠어.”

그녀의 온 얼굴에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이 말이 나오자 고청운은 얼굴에 웃음기가 누그러지며, 약간 어색한 듯 기침을 했다.

말을 좀 해 보자면, 그때 그 떠돌이 도사는 부모님의 요청으로 왔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는 당시 자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 상황을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고대하는 그때의 일이 생각나자, 소진씨에게 눈짓을 하며 격노한 듯 말했다.

“뭐가 용하고 자시고요? 남이 뭐라도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오늘 우리가 누리게 된 이 좋은 나날은 우리 집 전자와 손자들이 싸워서 쟁취한 것인데. 당신은 그저 몇 번 뱉어내는 말 따위로 우리 집안이 이렇게까지 변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오? 그럼 다들 일할 필요도 없고 노력할 필요도 없이, 그저 점쟁이를 찾아가 빌고 또 빌기만 하면 되게? 그건 아이들의 노력을 너무 쉽게 보는 처사가 아니오?”

그들은 처음 자기 아들을 공부를 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후, 노진씨를 설득하기 위해 매우 유명하다는 점을 볼 줄 아는 떠돌이 도사를 모셨었는데, 마을사람들 말로는 그가 아주 현묘하다고 했다. 

지금 소진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녀는 그때의 일을 진담으로 여기고 있는 듯했다. 그때 그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고대하는 아이 엄마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녀가 그 일을 잊고 있을 줄이야!

‘무슨 떠돌이 도사? 그는 우리가 은자 한 냥 조금 넘게 쥐어주고 불러온 사기꾼이었는데.’ 

그러자 소진씨는 문득 사건의 전말이 떠오른 듯 민망해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래 맞아, 그랬었지. 네 아버지 말이 맞다. 도사는 무슨 도사, 도사 말 덕분이라니 어디 가당키나 하더냐? 네가 분발하지 않았으면 아무리 좋은 말을 들었어도 소용없었을 게다.”

“이제야 맞는 말을 하는구려. 그것도 40년 전 일인데, 무슨 떠돌이 도사란 말이오. 벌써 고인이 되어 있을 거요.”

고대하가 부연 설명을 했다. 

고청운은 그들이 눈짓으로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말했다.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 가족이 정신을 잘 차리고 문중의 친족들을 잘 단속한다면, 앞으로는 저희 집 환경은 더 나아질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건강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저녁 식사 후에 많이 걸으시고 계속 앉아만 계시면 안 돼요.”

“내가 어디 계속 앉아만 있던?”

소진씨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짱짱이가 얼마나 장난꾸러기인데, 내가 아가를 따라 얼마나 돌아다니는지 아느냐.”

고청운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릴 뿐,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지금 그녀는 낮 동안의 일만 말한 것이었다. 밤이 되면 고전각은 보통 서재에서 고청운이나 고영량과 학업과 관련된 작은 시험을 치러야 했고, 시험이 끝난 후에야 놀러 갈 수 있었다. 놀고 나면 이제 씻고 자는 시간이었으니, 소진씨와 아이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점심 먹을 때가 되었구나, 앞쪽으로 넘어가 식사할 게냐? 아니면 여기서 먹을 테냐?”

고대하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고대하와 소진씨만 아직 복상 기간이 끝나지 않았기에, 아침과 점심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먹었고, 저녁 식사만 함께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기서 먹겠습니다.”

고청운이 소진씨의 손을 잡고 자세히 살펴보니, 20여 년간 호강하며 지냈다고는 하나, 여전히 왕년의 노고를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이미 굵어져 있었는데, 이는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사람을 불러 식사는 이쪽에서 해결하겠다고 간미에게 말을 전하라고 한 뒤, 후원으로 가 고대하와 소진씨와 함께 점심 식사 자리에 착석했다. 

* * *

고청운이 식탁 위에서 코를 찌르는 향기를 맡으며 흐뭇하게 웃었다.

“아버지, 고기를 그렇게 많이 드시면 안 돼요. 특히 비계는요.”

고청운은 고대하가 고기볶음을 계속해서 집어 먹자, 결국 한마디 권했다.

옛날에 너무 고생스러운 시절을 보내서인지, 나중에 생활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고대하를 비롯한 가족들의 생활은 그다지 사치스럽지 않았는데, 기껏해야 먹는 음식 종류가 예전보다 개선된 정도였다. 그들은 육식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었으므로, 특히 고대하는 고계산은 고기볶음과 기름진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 고대하는 고기 없이는 더 이상 식사 시간이 즐겁지 않았다.

이것은 고영진이 서신으로 고청운에게 알렸던 아버지의 식습관이었다.

‘예전에는 멀리 살았기에 손을 놓고 있었지만, 지금은 나와 함께 살고 있지 않은가.’ 

고청운은 의원을 불러서 아버지를 진찰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의원은 노인분들은 음식을 담백하게 먹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해 주었었다. 그래서 그는 이를 빌미로 아버지의 식습관을 좀 단속하고자 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니까.”

고대하는 귀찮은 듯 짜증 섞인 손을 흔들었다.

“나는 아직 복상 기간 중이라 이미 1년간 고기는 별로 먹지도 않았지 않느냐. 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게야?”

고청운이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맞았기에 순간 민망해졌다. 그의 부모는 일반 백성의 신분이니, 그가 벼슬만 하지 않았더라면 복상 기간 동안 고기를 먹네 마네 하는 문제를 상관하며 걸고넘어지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이 요리는 채소를 고기처럼 만들어 낸 게냐? 정말 고기 같이 보이는데?”

고청운이 하하 웃었다. 그는 고대하와 소진씨가 조금 더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돈을 좀 들여서 요리사에게 자은사(慈恩寺)에 가서 어떻게 채소 요리를 만드는지 좀 배워오게 했다. 비록 정통 사찰음식의 정수를 다 배워 올 수는 없었지만, 그런대로 흉내를 내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또한, 조정에서는 60세 이상의 노인을 우대하여 60세가 넘어 복상 기간을 치를 때는 소량의 고기를 섭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 * *

고영진의 혼례식 일자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 혼사를 위해 고택은 발 디딜 틈 없이 바빴고, 고전각까지 동원될 정도였다. 그는 오늘 혼례식의 곤창동자(*滚床童子: 농촌 지역에서 남아로 하여금 신혼침대에서 뒹굴고 놀며 후대에까지 복을 번성해주길 바라는 세시풍속) 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혼례식 날, 고청운은 끊이지 않는 손님들을 받으면서 문득 자신의 가족들이 이미 경성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의 진사 동기들, 동료, 상사, 그리고 아들들의 지인, 그리고 사돈댁 식구들까지…….

진사 합격으로부터 불과 22년밖에 안 지났는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많은 인맥을 쌓았는데, 몇백 년간 인맥을 쌓아온 명문세가들은 어떻겠는가? 

고청운은 이를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어쩐지 대부분의 황제들이 일언구정(*一言九鼎: 한 마디의 말이 구정(九鼎)만큼 무게가 있고 값지다. 일언천금)의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했다. 실제 조정 대신들 간의 관계는 얽히고설켜 있어 머리털 한 오라기를 당기려고 해도 온몸이 움직이는, 바야흐로 사소한 일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태였으니, 소위 말하는 개혁이니 하는 것들은 말할 것도 없고 사상을 바꾸게 하는 데에도 아주 힘이 들 것이었다.

“청운이, 자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하겸죽은 고청운이 갑자기 생각에 잠겨 보이자, 어깨를 토닥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지(*阿智: 하지(何智)의 애칭으로, 하 수재의 아들)가 부임지를 떠나지 못해, 나에게 진가아에게 전해 줄 축하 선물을 부탁하고 축하의 말도 함께 전했네. 축하하네, 진가아가 지금 이리 성혼하게 되었으니. 하하, 이제 또 손주를 보겠어.”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손자가 막 세상에 태어났기에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였다.

고청운은 이따금씩 정신을 놓는 이 버릇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기에 금방 정신을 차렸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하 사형 집에 철이가 한 달을 꽉 채우면 내 축하주를 마시러 가겠습니다.”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 당연히 와야지.”

하겸죽이 함박웃음을 지었고, 이마의 잔주름이 선명하게 보이며 매우 자애로운 모습이 되었다.

“자네 아명이 전자만 아니었어도, 내가 철이라는 아명 대신 전자라는 이름을 썼을 텐데.”

하긴 고청운의 머리가 아직도 온통 검은 머리카락 일색이었으니 부러울 만했다.(*栓子(전자)의 栓(전)자는 ‘막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 하겸죽은 이와 같은 아명 덕분에 노화가 덜한 듯 하다고 생각함) 이 민간의 풍속은 정말 뿌리 깊은 것으로, 모두의 아명은 하나하나 다 진기했다. 어떤 사람의 아명은 그 아명을 지은 숨은 의도나 아이 장래에 대한 희망을 드러나지 않게 잘 내포하고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의 아명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기도 했다. 

하겸죽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의 아명을 잘 몰랐기에 고청운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예전에 고청운이 그의 집에 갔을 때, 하겸죽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아명을 감추기 위해 가족들의 입을 봉하기도 했었다.

고청운의 아명은 고대하나 소진씨가 워낙에 불러 대서 일찍부터 누구든 다 익히 알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의 아명이 아기돼지나 개불알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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