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화. 교육
고청운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쪼그려 앉아 물었다.
“오늘 네 숙부가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이 아주 위풍당당해 보이지 않더냐?”
“위풍당당했어요, 나도 나중에 진사에 합격해서 꽃도 달고 말도 탈 거예요.”
고전각은 눈을 크게 뜨고 볼이 불룩거리면서 진지한 얼굴을 한 채, 작은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는데 그 표정이 아주 결연했다.
“좋구나, 아주 패기가 있어.”
영요의 손을 붙잡고 막 정원 어귀에 들어서던 고영량이 고영진을 힐끗 보고는 아쉬운 듯 말했다.
“네 숙부는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이 아버지가 장원 급제했을 때 정도는 되어야 위풍당당했다고 말할 수 있지. 오늘 장원 급제한 신임 진사가 누렸어야 할 위세는 구진이 다 가져가 버린 것 같더구나.”
그가 장원 급제했을 적에는 아쉽게도 그의 처와 아들이 모두 고향에 머무르고 있어, 자신이 얼마나 늠름했는지 보여주지를 못했었다. 아, 이 얼마나 유감스러운 일인가.
영요는 힘껏 입을 오므려 웃음을 참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역력했다.
고영진이 이 말을 듣자, 이건 너무 비교하기 나쁜 사례라고, 실제 사정이라는 게 있지 않냐며 유감스럽다는 듯 말했다.
“만약 이번 시험에 구진만 참가하지 않았다면, 내가 탐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을 수도 있어. 분명 이번 시험의 10위까지 석차에 든 사람 중에는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나보다 더 어린 사람은 없었거든.”
때론 회시의 최연소 합격자를 탐화 자리에 일부러 넣기도 했던 것이다.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 옹색한 변명의 말이거든 하지 말거라. 아니면 네가 못생긴 것을 탓할 게냐? 이 아버지를 탓하거나 네 어머니가 너를 잘생기게 낳아주지 않았다고 탓하기라도 할 테냐?”
고청운은 고영진의 머리를 주물러 주다가 진교가 이미 자리를 떠난 것을 보고는 고영진을 재촉하며 이어 말했다.
“온몸에 땀이 나지 않았더냐. 어서 가서 빨리 옷 갈아입고 오너라.”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더 주의해야 했다.
“아버지, 제게 누명을 씌우시다니……. 저는 단 한 번도 제 얼굴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은 적이 없어요.”
고영진이 투덜댔다.
“됐어요. 저는 방으로 돌아가 체력이나 비축하렵니다. 내일 아침에 축국 경기가 있는데, 저희 조가 반드시 이겨야만 하거든요.”
* * *
하 왕조가 건립된 지 50여 년, 고청운이 진사에 합격했던 20여 년 전에 비해 오늘날 신임 진사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하기 위한 축하 행사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졌는데, 그중에서도 축국 시합은 몇 차례씩 거행되어오며 사람들의 이목을 굉장히 많이 끄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대체로 축국이 위로는 황제와 대신들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운동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성원을 받는 행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경기를 진행하는 선수들의 태도를 통해 사람의 인품이 어떠한 지에 대해 미리 가늠해 볼 수도 있었기에, 많은 대신들이 축국 경기 현장을 찾았다. 고청운 역시 홍려사에서 제일 높은 관직에 있는 통솔자여서 같은 이유로 축국 경기장을 찾아 경기를 관람했다.
비록 관직 자리를 배분하는 것은 이부의 일이었지만, 직급이 높은 관리들은 신임 진사보다 하루 이틀정도 먼저 누가 자기네 부서에 올지를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사전에 약간의 의사소통을 하며 신입에 대해 미리 계획을 세우는 정도는 가능했던 것이다. 물론 신임 진사가 못마땅할 경우 정해진 수속에 따라서 방출하는 방법도 있었다.
고청운이 일전에 한림원을 나와 호부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또한 당시의 호부상서가 좋은 말을 해줘서 가능했던 것도 있었다. 물론 방인소의 노력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었다.
고영진도 이런 점을 알고 있었기에 당연히 이번 시합을 중시할 수밖에 없었다.
* * *
축국 경기 후, 관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노력을 기울였던 고영진은 시험이 끝나자 예상대로 순조롭게 한림원에 들어가 신입 서길사로 거듭났다. 이번에는 형제가 모두 한림원에서 일하게 된 것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부자 두 세대가 이곳을 거쳤었고 공번충까지 아직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한림원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 고씨 집안사람들을 충분히 잘 알고 있을 테니 고청운은 작은아들의 걱정을 별로 하지 않았다.
외려 고씨 집안은 ‘일문삼진사(一门三进士), 부자 전체가 한림원 출신’ 이라는 간판을 달게 되면서, 높은 인재 양성 비율을 보인다며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몰래몰래 고씨 가문의 내력에 대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파헤쳐보았으나, 여전히 무엇이 이 모든 성과를 이룩해낸 중요 요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내지 못했다.
타고난 총명한 자질?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것 자체로도 천부적인 자질이 이미 부족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바였다.
각고의 근면함? 그 한미한 학생들이 성공을 위해 쏟는 각고의 노력이 오히려 더 감동적인 수준이지 않은가. 그들의 노력이야말로 가히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는, 정말이지 대단한 노력을 기울여 공부한다고 칭할 수 있었다. 물론 고씨네 사람들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으나, 그들이 놀거나 여가를 즐기는데 들이는 시간도 적지 않은 편이었다. 그들이 노는 시간은 정말이지 꽤 적지 않았는데, 이 점은 고영량 형제 두 사람의 동기동창들이 증명해 줄 수 있었다.
혹시 방인소 혹은 고청운에게 특수한 교육 수단이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고청운과 방자명을 생각해 보고, 또다시 고영량과 고영진, 마지막으로 고향에서 과거 시험을 치르고 있는 방서까지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여기서 무엇인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을 거야.’
그리하여 순식간에 방인소에게 제자를 육성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는데, 야권의 서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황립 서원마저 그에게 초청장을 보낼 정도였다.
* * *
방인소 역시 종국에는 얼마 전까지 고청운이 겪었던 그 ‘시달림’이란 것이 무엇인지 체감하게 되었다. 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나같이 집으로 찾아오니, 노부가 기원으로 발걸음조차 떼지를 못하겠구나. 기원으로 도망가더라도 이 사람들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이 많은 사람들이 떼거지로 노부에게 무슨 비결이 있는지 캐묻던데, 비결? 도대체 그런 게 있겠느냐?”
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노부는 제자라고는 평생 단 둘만 뒀다. 그게 바로 너와 간미의 아버지이지. 아명이(*방자명)는 반쪽짜리 제자이니 말이다. 노부는 너희들이 이만큼 출세하게 된 것만으로도 기쁨의 극치를 누리고 있는데, 지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여기에 무슨 비결이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그저 꼬박꼬박 수준에 따라 가르쳤고, 질의응답을 거듭해 의문을 해결해 준 것뿐인데, 노부가 할 줄 아는 건 다른 사람들도 다 할 줄 하는 것일 게다.”
허나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방인소는 머리가 아파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낚시에도 잠시 손을 놓고 있었는데, 그가 낚시를 하는 곳까지 자신의 손자 혹은 증손자들을 대동하고 찾아오는 노인들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귀찮음을 피하려다 더 귀찮은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일시적인 소동일 뿐입니다. 스승님께서는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열심히 공부할 줄 알도록 어릴 때부터 좋은 학습 습관과 자기 주도 학습 습관을 길러준 것만 신경 썼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고청운은 의외로 덤덤했는데, 그 역시 이런 상황을 고영진의 진사 시험 직전에 겪어본 경험이 있었던 것이었다.
“실제로 스승님께서는 아이들에게 능동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의식을 심어 주셨지 않습니까.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 훌륭한 성과를 낸 겁니다. 아이들을 무작정 잡아서 대들보에 머리를 묶어놓고 딴 짓을 못하게 송곳으로 찔러가며 공부시킨다 한들, 이런 공부 방식은 오래 지속되지 못합니다. 외려 아이들이 공부를 더 싫어하게 될 뿐이지요.”
방인소도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 손가락으로 이화목 책상을 두드렸다.
고청운은 그에게 차를 따라주다가 스승님이 모처럼 진지하게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을 보고는 말하는 흥취가 크게 일기에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주동적으로 공부하면, 아이는 스승의 가르침만 기다리지 않아도 되게 됩니다. 그들은 주동적으로 생각하고, 학습을 일종의 즐거움으로 여길 거예요. 그들의 학식은 세계를 인식하는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고, 인품 자체도 수동적에서 능동적으로 변화하게 될 겁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도된 결과이지요. 무술을 익히는 것 또한 그 과정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지 않습니까, 진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 또한 말할 것도 없지요.”
“잠깐만, 넌 량가아와 진가아가 어렸을 때도 그런 것을 유도하여 가르쳤다는 게냐?”
방인소가 갑자기 그의 거침없는 말을 끊었다.
고청운은 하하 웃었고, 잠시 뜸을 들이고 눈썹을 찡그려가며 생각하다가 한참만에야 대답을 이었다.
“대략적으로는요. 저는 그때 의도적으로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공부에 대한 흥미를 키우기 시작할 수 있도록 유의해서 교육을 진행했습니다. 그들 둘이 잘못을 저질러도 저는 꾸중을 적게 하려고 노력했고, 결코 그들이 총명하다거나 하는 언급 또한 하지 않았습니다. 되레 그들이 총명해서가 아니라 근면해서 그들의 학업이 향상되었다고 칭찬해왔죠.
게다가 아이들은 서당과 황립 서원을 다니게 되면서 그곳에서 마주친 많은 또래 친구들과 서로 뒤쳐질세라 앞다투며 경쟁하게 되었는데, 이는 아이들에게 일종의 촉진제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면학 분위기가 아주 중요하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최고의 서원과 스승의 문하에 자기 아이를 보내려고 하는 것이겠지요.”
“너무 너를 자화자찬하려는 건 아니고? 우리 량가아와 진가아가 진사에 합격하지 못했었더라도, 다른 방면으로 일궈낼 수 있는 일이 있었을 게다. 얘들이 무슨 세속을 초탈해 공부만 했던 책벌레들도 아니고.”
이런 말이 듣기 싫었던 방인소는 고청운을 한 번 노려보았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얼마나 우수한데, 어찌 저런 말을.’
고청운이 듣기에도 그 말이 맞기는 했다. 첫째 아들은 서예 쪽으로 기량이 뛰어났고, 둘째 아들은 축국 쪽으로 기량이 뛰어났던 것이다. 그들은 진사가 되기 전부터 이쪽으로도 장안에서 또 다른 명성을 떨치고 있었기에, 그 기술들만으로도 자신과 가족들을 먹여 살릴 만한 충분한 능력이 되었다.
“아마도 실제적인 요소는…….”
방인소는 뒤에 따라오는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않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자가 보인 솔선수범의 생활방식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는 항상 보고 들어서 익숙하고 습관이 되는 것, 그리고 말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 그들을 가르친 것 등이 그들에게 유효한 학습으로 작용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도 더 관건이 되는 요소가 있을 터인데.”
방인소는 여전히 이 말들이 모두 다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고청운이 손을 벌려 보이며 말했다.
“량가아와 진가아가 진사에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저도 이렇게 자화자찬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성공이 무적이라고, 누군가가 성공하게 되면 그 누군가의 경력과 경험은 일종의 성공학적인 일화가 되었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이 성공한 사람에 대해 갖는 일종의 미신과도 같았다. 그러나 고청운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성공이란 것에는 일종의 필연이라든지 혹은 우연이 작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시험이 오늘날처럼 최대한 공정함을 지키며 치러지지 않았다면, 고영량 형제가 진사에 합격할 수나 있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방인소는 고청운이 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기에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을 눈에 익게 보며 자라면서 이러한 아버지의 면모를 모방하게 된 것 같았다. 또한, 그는 고청운이 아이들의 인격 형성에 있어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아이들이 이상한 기질의 싹수를 보이면 마치 강적을 대하듯 전력으로 어떻게든 바로잡아 보려 애썼고, 이쪽으로는 마음도 아주 독하게 먹는 모습을 보였었기 때문이었다.
‘휴, 다시 생각하기도 싫구나. 내 증손자들이 어렸을 때부터 매에 맞아 빨갛게 부어올라 있던 엉덩이를 떠올리면…….’
이렇게 대화는 흐지부지 되었다. 뒤이어 방인소가 농담처럼 교육 관련 책 한 권을 펴내 보라며 제안을 하자, 고청운이 아연실색했다.
“그건 안 됩니다. 만약에 후일 우리의 후손이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면, 그때는 제가 쓴 책이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테지요.”
그는 바쁘게 고개를 저었다.
방인소가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자손이 불초(*不肖: 못나고 어리석음)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자식을 교육하는 방법을 써 놓은 서적들은 아주 옛날부터 있어 오지 않았느냐. 이쪽 방면의 책을 쓰는 것이 네가 처음도 아닌데 무엇이 두려운 게야?”
‘청운이 이 녀석은 늘 뭔가를 써서 남기고는 하지. 심지어 금년의 쌀값이 얼마인지조차 써서 기록했어. 미아의 말을 들어보니 그가 써 놓은 기록이 몇 상자나 된다는데, 여기서 조금 더 쓰는 게 뭐가 나쁘다는 말일까?’
“더 두고 보겠습니다.”
고청운은 육아법 집필에 설렘을 느꼈지만, 고전각을 생각하고는 그 마음을 다시 억눌렀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일단락됐고, 이제 가족들은 고영진의 혼례식 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 * *
가난한 농가에서 하 왕조의 이름난 학자 가문이 되기까지, 고청운이 얼마나 오랜 기간 노력을 해왔던가? 장장 45년이 걸렸다.
막 시공 세계를 처음 넘어왔을 때 마주한 집안의 궁핍했던 시절을 떠올리고 또다시 오늘날 그들 앞에 펼쳐진 꽃길을 생각하던 고청운은 이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지고는 했는데, 고대하와 소진씨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