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50)화 (450/504)

450화. 큰 기쁨 (2)

둘이 함께 안마당으로 걸어가던 중, 고청운이 말했다.

“네 형 말이 맞다. 남은 시간 동안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 돼. 아직 전시라는 시험이 남았잖느냐. 이미 99보를 달성했으니, 이제 마지막 한 걸음만 남은 셈이다. 석차를 앞으로 더 당기라고 하지는 않겠다. 다만 최소한 지금 정도의 석차는 유지해서 최종 합격을 했으면 하는구나. 전시가 끝나고 나서 한림원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아직 있느냐?”

“아버지, 안심하세요. 저한테 계획해 둔 바가 있습니다.”

고영진이 고청운의 팔을 잡아끌며 기대에 차서 말했다.

“저는 반드시 한림원에 들어가고 말 거예요. 아들은 어버지의 업적을 따른다고, 때가 되면 전 형과 함께 더 높은 곳에 올라 일하고 싶습니다.”

“네 형은 지방직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내 예상에 너는 같은 행보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고청운이 정보를 누설해 주었다.

“형이 지방직으로 나가겠대요?”

그는 적잖이 놀란 듯했다.

“저는 형이 2년 정도는 더 기다릴 줄 알았어요.”

일전에 고계산과 노진씨의 일로, 작년에 고영량에게 왔던 기회는 이미 지나가 버린 후였다.

관원은 보통 3년에 한 번씩 근무지를 이동하게 되는데, 정해진 시기에 옮기고 싶을 때는 공석이 있어야만 전근이 가능했다.

“조금 일찍 지방으로 진출해 보는 것도 좋지.”

고청운은 이 의견에 찬성이었는데, 외부 지방으로 파견된 관원은 승진에 있어 언제나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고영량이 아직 젊으니 경성에만 틀어박히지 않았으면 했고, 외부로 나가 일을 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경성은 매우 좋은 곳이고 번화했으며, 생활수준이 높고 편리했지만, 관리로서 공을 세우기에는 쉽지 않았는데, 그저 배치 받은 부서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을 수밖에 없었기에 이런 점은 사람의 재능이나 뛰어난 면모를 깎아 먹기도 했다.

더구나 이번에 고영진이 진사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세 부자가 한 지역에 매여 일하게 되었으니, 이는 좋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계란은 자고로 한 바구니에 담아서는 아니 될 일이니 말이다.

“아,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고영진은 좀 실망스러웠다.

* * *

또 다른 쪽에서는 고영량이 이미 자신이 기거하는 거처의 정원에 도착해 있었다. 그가 막 문을 들어서자 영요가 웃으며 맞이해 주었다.

“도련님이 참으로 대견하십니다. 오늘 어르신들이 정말이지 너무 기뻐하셨어요. 외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점심때 술을 마시기도 하셨고요. 합격 결과가 나오자마자 저희 친정의 큰올케도 사람을 보내 후한 선물을 전했는데, 저희 집 쪽에서도 지금 아마 굉장히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그녀 역시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고영량이 관복을 벗는 것을 도와주었다. 

“저희 집 큰오라버니는 합격 석차가 도련님보다 좋지 않지만 정말 기뻐하셨어요. 시종일관 아버님의 지도 덕분에 시험에 합격했다면서 어찌나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씀하시던지요.”

“형님께서 열심히 노력하신 덕분이지, 우리 아버지는 그저 조언만 하셨을 따름이라오.”

고영량이 고개를 저었다.

“참, 외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는 무슨 술을 드셨소?” 

“집에서 담근 포도주요.”

영요가 이상하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저희가 어찌 이런 과실주 말고 백주나 황주 같은 것을 어르신들께 올리겠습니까?”

그녀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마음만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부모님이 자신을 고씨 가문에 시집보낸 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되었는데, 고씨 가문의 가풍이 정말이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부군의 부친인 고청운은 자애로운데다 효자였으니, 가풍이 맑고 올바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또한, 부군 역시 어린 나이임에도 어른들에 대한 배려가 철저했고, 늘 어른들의 건강을 살피고는 했다.

그녀는 때때로 그들 영씨 가문의 윗사람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겉치레에 치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침저녁 문안 인사를 하는 걸 불참했다가는 가족들에게 비방을 당했기에 매번 인사를 드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던 것이다. 영씨 가문에선 감히 단 한 마디의 실언도 용납되지 않았다.

허나 고씨 가문에서의 규율은 그렇게까지 엄격하지 않았고, 분위기도 아주 좋아 그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 문인의 집안이어서인지, 진사 시험 합격에 있어서도 그들 영씨 집안보다 더 수월해 보였다. 그녀가 시집와서 보니 그들은 마치 밥 먹고 물 마시는 것처럼 당연히 진사 시험에 합격하는 것처럼 보였다.

집안의 사내들이 다 20대 초반에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니, 서른이 넘은 큰오라버니의 마음은 오죽했겠는가.

고영량의 생각에도 그러한 듯했다. 

그가 앞마당이 조용한 것을 보고 물었다.

“아들은?”

평소 이맘때면 아들은 옆집 방택에서 놀거나 혹은 앞마당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고는 했다.

영요는 그에게 옥패를 매어주던 손을 멈추고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오늘 하루 종일 놀다가 공부를 빼먹는 바람에, 외증조할아버님께서 아이를 불러다 보충 수업을 해 주고 계십니다.”

말을 하는 그녀의 마음은 솔직히 좋지만은 않았는데, 아이는 아직 6살도 채 안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큰 경사가 있는 날인데, 이런 날 한 번 정도는 평소에 행하던 수업 일정을 소화하지 않아도 무방한 것이 아니었을까.

“잘하셨군. 매일 자신이 해야 할 공부를 다 해야 나가 놀 수 있을 것이오. 그래야만 나가 놀아도 맘 편히 놀 수 있소. 나와 내 동생도 어렸을 때 그렇게 해왔는데, 한 번만 버릇을 잘 들이면 되오.”

고영량은 이런 모습에 별 이견이 없는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내년이면 6살이오. 아버지는 아이를 바로 황립 서원에 입학을 시키고자 하시는데, 아들이 무슨 천재 같은 재능을 타고 난 것이 아니니 성공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노력을 들여야만 할 것이오.”

영요는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만일 부군께서 지방으로 외근을 나가시게 된다면, 아들만 경성에 남겨두시려는 건가요? 그럼 나는 어찌하라는 거죠?’

* * *

이어지는 기간 동안, 고택은 그야말로 찾아오는 손님들로 인해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집으로 전달된 배첩들이 서신을 담는 광주리에 다 담기지 않아 넘쳐 날 정도였다. 

고청운은 가르침을 청하는 어린아이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노라면 골치가 아파서, 고영진의 전시를 준비한다는 핑계로 잠시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 * *

전시가 치러지는 바로 그날, 아침 조례가 끝나고 고청운을 비롯한 문무 대신들은 황제의 인솔 하에 영화전(永和殿)으로 건너가 공사(*贡士: 회시 합격자를 지칭하는 말)들의 전시 시험을 참관하게 되었다. 

새 황제가 즉위한 후 치러지는 첫 전시였기에 지난해의 회시 및 전시는 포함이 안 되고 올해야말로 첫 천자의 문생(*합격자가 자기를 ‘문생(门生)’이라 칭하고, 시험관을 ‘좌사/좌주(座师/座主)’라고 칭했음)들이 배출되는 것이니, 고청운은 이상하게 자신의 마음이 다 두근거렸다.

고청운은 제일 먼저 아들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았는데, 그가 문제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의 답안지를 작성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전시의 기출문제가 그를 곤란하게 할 만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 * *

최종 시험 결과 역시 모두 회시 시험 결과와 비슷한 석차를 유지해 낼 수 있었다. 

고영진은 9위로, 이갑의 6위를 차지했고, 이는 고씨 가문의 큰 경사였다.

고영진이 진사에 합격한 것은 큰 경사였지만, 고씨 가문에서는 잔치를 크게 벌이지 않았는데, 아직 관선(*館選: 관선이라는 시험까지 치르고 나야 3년 뒤에 한림관이 된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험은 그가 한림원에 들어갈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짓는 시험이었다. 

그리고 다음 달에는 작은아들과 노씨네 둘째 여식의 성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성혼식을 치르는 날에는 아이들이 어느 관직에 오르게 될 지도 정해져 있을 테니 겹경사인 것은 마찬가지라, 그때 가서 더 성대하게 잔치를 치르고자 했다.

* * *

고영진이 진사에 최종 합격하여 말을 타고 거리를 유세할 때 일어난 일화가 있었다. 

당초 전시 결과가 나왔을 때 봉씨 가문의 장남이 회시에서 3등으로 합격했으나, 전시에서는 방안(*榜眼: 전시의 2등 합격자)으로 한 단계 올라갔고, 탐화(*探花: 전시의 3등 급제자) 자리는 회시 합격 석차 10위인 구진에게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답안이 큰 역습을 이루어 낸 것일까 아니면, 그의 외모가 이 승리를 거두게 된 것일까. 어느 쪽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때 고청운도 현장에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10위까지의 신임 진사 석차 결정을 위해 한 자리에 그들을 불러들였을 때, 구진은 그들 사이에 서서 그야말로 자체발광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그의 뛰어난 외모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정말이지 눈부심의 극치였다. 

고청운은 평소 자신의 작은아들도 잘생겼다고 생각해오고 있었지만, 아들이 구진과 함께 서 있으니 좀 평범해 보일 정도였다. 다행히 그는 사장정을 통해 비슷한 충격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이 뛰어난 외모의 구진조차 한창이었던 그의 절친 외모를 떠올려 비교하면 약간은 못 미쳤다.

새 황제는 구진이 매우 마음에 든 모양인지, 과감하게 그를 탐화 자리로 점찍었다.

이 새 황제의 결단이 옳았다는 사실은 뒤늦게 밝혀졌는데, 이번 신임 진사들의 말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행진하는 거리 유세 행사에서 군중의 뜨거운 환호가 쏟아졌고, 특히 구진을 향한 소녀들의 비명이 유독 하늘을 찌를 듯했던 것이었다. 

물론 이에 맞서 구경 인파를 제어해야 하는 어림군은 큰 고통을 받았다. 의복이 흐트러지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이들의 제지에 불만을 가진 일부 관중들은 행진 및 관중 통솔을 방해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수작을 부리는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 * *

“아버지, 그 사람들은 정말 너무 광분해 있었어요. 구진의 옷을 다 벗겨버리기라도 할 듯이 달려들더라고요.”

고영진은 머리에 수북하게 꽃을 꽂은 채 선물 받은 염낭 등을 한 무더기 안고 돌아와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추스르며 아직도 그때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듯 말했다. 

“저는 제가 아주 특별히 잘생기지 않고, 그냥 적당히 보기 좋게 생긴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니까요.”

중년의 아저씨인 진교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편이고 나이도 있으니 옷매무새가 여기저기 뜯기지 않고 비교적 단정한 모습으로 귀가했는데, 머리에 꽂고 있는 꽃도 많지 않았다.

행진 때 꽤 평정심을 유지하는 듯 보였던 진교가 지금 기쁨과 흥분이 채 다 가시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아마도 내 인생에서의 최고의 날일 게야. 이 한 번으로 족하네.”

진사 합격 후 말을 타고 거리를 유세하는 것은 이 하늘 아래 과거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꿈이었다. 자신에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그는 이미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고청운이 그를 보고 웃음을 짓고 있다가, 그의 등이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말했다.

“사촌 형님, 아침 일찍부터 지금껏 계속 일정이 이어져 배가 고프시지요, 어서 옷부터 갈아입고 배를 좀 채우고 다시 대화합시다.”

“배가 고프기는 하네. 사실 점심때는 궁에서 우리에게 찐빵과 양고기탕을 준비해줬는데, 내가 너무 긴장해 있어서 도대체 점심이 배 속에 들어간 것인지 안 들어갔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네.”

진교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조하듯 웃었다.

자리해 있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리자 고청운의 다리에 매달려 있던 고전각도 입을 벌리고 작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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