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49)화 (449/504)

449화. 큰 기쁨 (1)

이들이 진교가 묵고 있는 객실로 걸어갔을 때, 그는 이미 답을 다 작성해 두고 있었다.

고청운은 피곤에 절어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진교를 보고, 두말없이 얼른 그의 답안을 보기 시작했다.

진교의 기대 섞인 눈빛을 받으며 답안을 끝까지 다 읽어본 고청운은 잠시 글들을 좀 더 헤아려 보고는 천천히 말했다. 

“사촌 형님, 제가 보기엔 답안이 좋습니다. 반드시 답을 맞춰야 할 내용은 다 구색을 맞춰 답을 작성하셨으니, 답안을 쓴 모양에만 문제가 없다면 이번에는 합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는 제 개인적인 의견일 뿐입니다.”

이번 시험의 주임 시험관은 실무적인 걸 중요시해서 문장을 화려하게 구성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점이 아니었더라면 진교는 이번에도 합격이 어려웠을 것이었다. 그의 답안은 질문에 대해서만 사리에 알맞게 반듯하게 대답하고, 중요 관점에 대해 강조하는 부분은 적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교가 고청운보다 5살 위로, 올해로 50살이 된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문장 구성의 답변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관계없네. 내가 생각했던 결과보다는 좀 낫군.”

진교는 매우 기뻐하는 모양새였다.

“삼갑에만 합격해도 만족할 걸세. 하지만 만약 이번 과거 시험에 붙지 못한다면, 나는 다시는 시험을 더 준비하지 않을 생각이네. 아, 난 이런 지긋한 나이가 되어서까지 시험 때문에 더는 들볶이고 싶지 않다네. 내 뒤에 아들, 손자가 있는데, 아들은 둘째 치고, 자질이 뛰어난 손자가 한두 명이라도 나오면 좋겠군 그래.”

여기까지 말을 마친 진교는 정말 부럽다는 듯이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진가아는 틀림없이 이번 시험에 붙을 걸세. 그리되면 자네 집안은 한 집안에 부자 관계로만 진사가 셋이나 있는 ‘일문삼진사(一门三进士)’ 집안이 되겠군. 이는 이번 왕조에서는 전례가 없던 일일 게야.”

특히 부자(父子)가 모두 젊은 나이에 진사에 합격한 것이라, 이에 대한 반응은 더 엄청날 것이었다.

* * *

진교의 말은 상당히 예지력 있는 발언이었는데, 막 회시의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실제로 고영진의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올라 있었던 것이었다. 그의 석차는 12위였고, 진교의 이름은 저 아래 제일 말미에 위치하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지만, 비록 고영진의 합격 석차가 높은 순위가 아니었음에도 이번 사건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삽시간에 사람들은 고청운의 가정교육법에 대해 매우 궁금해 했다.

이와 동시에 고청운의 문하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도 가히 증폭적으로 상승하였다.

* * *

고청운은 홍려사에서 근무하던 중에 회시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합격자 발표가 나자 언제나 그렇듯 눈치 빠른 사람이 그에게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이었다. 오늘은 휴무일이 아니었기에, 그는 아들의 성적을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휴가를 낼 수가 없어 정상 출근해 있던 상황이었다. 

물론 고영진이 낙방했더라면 이는 또 다른 전개로 이어졌을 것이었다.

“대인,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차남께서 워낙 자질이 뛰어나신 데다 좋은 가정교육까지 받고 자라셨으니 합격한 건 당연하지요.”

“대인, 축하드립니다!”

…….

그는 비록 고영량이 진사 시험에 합격했을 때 이미 한 차례 이런 상황을 겪어봤었지만, 뭇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니 또 다시 가슴속에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가득 차올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는 고영진이 이번 시험에 합격할 줄 알고 있었지만, 석차가 이렇게 앞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원래 아들의 성적이 기껏해야 몇십 명 안에 들 것으로 예상했고, 몇십 등 안쪽으로만 석차가 나와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2등이라니!’ 

비록 고영진은 3명의 수석 등수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상위권의 성적을 받았으니 한림원에 들어갈 정도는 되었다.

홍려사에서는 고청운 외에 봉 소경도 그와 마찬가지로 뭇사람의 축하를 받고 있었는데, 그의 큰아들 역시 합격이었던 것이다. 합격 석차도 고영진보다 높아서 석차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봉 대인, 보아하니 이번엔 한 턱 내야겠소.”

고청운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속으로 그의 아들이 낸 석차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봉 소경은 젊었을 적부터 문학적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는데, 고청운이 그를 접해보니 확실히 명실상부한 그의 능력을 가늠해 볼만 했다. 

이때 그의 말을 들은 봉 소경이 너무나도 기뻐하며 고개를 급히 끄덕이곤 말했다.

“그리해야겠습니다. 나중에 대인께서 말씀을 주시면 제가 기꺼이 대접하겠습니다.”

* * *

한바탕 시끌벅적한 소란이 지나간 후, 고청운은 집무실로 돌아왔지만 업무를 볼 마음이 들지 않아 단지 시간만 계속 확인할 뿐이었다. 지금은 겨우 오전 시간이라 아직 퇴근을 하려면 시간이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고삼원이 자신이 받아온 명단을 건네며 말했다.

“숙부, 다른 분들도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셨습니다.”

고청운이 자세히 명단을 살펴보니, 과연 진교의 이름도 명단에 있었다. 고청운은 단지 그의 석차만 봤을 뿐인데도, 전시를 마치고서도 그의 석차가 앞쪽으로 이동될 여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여 그가 동진사(同進士)를 벗어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50살의 동진사라.’ 

고청운은 코를 매만지며 이부에 가서 진교에게 적합한 자리가 나와 있는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십몇 년 만에 외가 쪽 친척 중에서도 마침내 진사를 배출해 낼 수 있게 되었구나.’

고청운은 임양부에서 과거 준비의 본분을 잊은 채 상경조차 꺼리고 있는 간유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에는 그와 진교처럼 끊임없이 벼슬길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사내가 있었지만, 간유처럼 거인의 공명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은 각자의 포부가 있기 때문에 강요해서는 안 되었다.

고청운은 진교 외에도 두 명의 친숙한 이름을 찾아냈는데, 하나는 10위에 이름을 올린 구 선생님의 아들 구진이었고, 다른 하나는 맏며느리 영요의 친형제인 영씨 가문의 장남이었다. 그는 이번에 134등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조금 더 노력하면 이갑으로 진사에 최종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공부의 노 시랑 아들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지금쯤이면 집안이 시끌벅적하겠지?’ 

고청운은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숙부, 저희 집 진가아는 정말 대단합니다. 하하, 아까도 어떤 사람이 공부 비결을 물어보던데…….”

고삼원이 고청운에게 눈에 좋은 구기자 차 한잔을 내려주며 웃으면서 말했다.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우리 총명한 진가아가 공부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그 아이의 스승들과 숙부님께서 잘 가르친 덕이지요.”

고삼원의 큰아들 고전양은 지난해 임계촌으로 따라 내려갔는데, 오랜 기간 동안 공부해 온 끝에 결국 과거 시험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2월에 현시가 시작되고, 4월에 부시가 치러지니 아마도 6월은 되어야 그가 동생 신분이 될 수 있을지 여부라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수재의 경우, 올 8월 성적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그래, 아무리 잘 가르쳐도 아이가 알아서 노력해야 하는 법이지. 전양이는 언제나 침착하게 굴 줄 알지 않더냐. 량가아와 진가아는 열두세 살에 과거 시험을 시작했는데, 전양이는 올해 19살이 되어 시험을 준비했지. 이는 분명 속으로 확신이 섰다는 것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고청운은 사실 고전양이 수재에 합격한다는 것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고영진이 고전양보다 2살 많았지만 감정의 기복이 워낙 들쭉날쭉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고전양이 더 듬직해 보였던 것이다. 

고삼원이 경성에 집을 산 후부터 그의 처자는 일찍 따로 이사를 나가 살았음에도 고전양은 시도 때도 없이 고택을 찾아 일을 도와주었다. 이에 그는 고영진과 함께 커 왔기에 서로간의 정도 깊은 편이었다.

고청운은 고씨 가문에서의 고삼원의 입지가 어떤지 잘 알고 있었는데, 고전양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면서 늘 고삼원의 곁에서 공부했고, 심지어 우스갯소리로 만약 나중에 진사 시험에 합격을 못하게 되면 고영진의 곁에서 잡무를 보겠다고 하기도 했다.

고삼원은 의중을 들키자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저는 그저 그 녀석이 걱정되어서요, 한 번에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찻물 속을 오르내리는 붉은 구기자를 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래, 지금은 어차피 집으로 갈 수 없으니 할 일을 끝내놓자.’

그는 처리해야 할 공문을 신속하게 한 번 훑어보았고, 중간에 외국 상인과 관련된 조례를 처리하는 일이 역시 좀 오래 걸렸다.

몇 개월 동안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 외국 상인을 관리하는 관련 법 조례가 제정되자, 상관 부서들을 돌아다니며 그들에게 의견을 묻고 있었다.

보내온 조례 내용들을 다 보고 난 고청운은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관련 내용은 대부분 조목별로 설명이 제시된 의견들로, 대리사, 예부 등을 거쳐 수정되면서 이러한 모양을 갖추었을 것이고, 자신이 예전에 고려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더욱 완벽하게 보강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근거가 마련되면 시박사의 관리 개입이 조금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조정에서 시박사에 근무하는 정원을 더 늘려, 이제 이쪽 관리는 더 잘 될 게야.’ 

바다에 나가 얻는 이익이 이렇게나 막대하니 후세의 사람들이 쇄국 정치를 펼치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었다.

* * *

하루 종일 고생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고청운에게 시도 때도 없이 축하의 말을 전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더니, 어느샌가 은근슬쩍 자신에게 아이와 친지들의 공부를 가르치는데 필요한 비법을 지도해 달라고,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를 모두 완곡히 거절했는데, 이런 일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두 아들이 그렇게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르침뿐 아니라 황립 서원 및 방인소에게서 받은 교육 모두가 일조한 결과였다. 고청운의 문하에 들었다고 바로 진사에 합격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였는데, 그가 무슨 신선의 능력이라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이 모든 것은 개개인의 다각적인 노력의 결과이며, 무엇보다 아이 스스로의 능동성이 결과를 판가름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했다.

* * *

고청운이 집에 돌아왔을 때, 고택에서는 한바탕 시끌벅적한 광경이 연출되었는지, 문 앞이 온통 폭죽 터진 잔해와 그 흔적들로 가득했다.

하인들은 그를 보고 모두 기쁨에 겨운 모습으로 앞다투어 축하를 하러 왔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고영진은 하인이 고청운이 귀가했다고 알려주자 잰걸음으로 뛰쳐나왔고, 고청운을 보자마자 그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고청운은 그런 모습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아들에게 등을 보였는데, 이내 누군가 등에 업힌 무게와 팔로 자신의 목을 끌어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하, 아버지, 드디어 제가 합격했어요!”

두 발로 뛰어올라 고청운의 등에 올라탄 고영진이 고청운의 목덜미를 힘껏 껴안으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하지 않았냐고요.”

지금 이 모습은 어린 시절 부자가 했던 놀이였다.

하지만 지금 고청운은 갑자기 늘어난 아들의 무게에 다리가 휘청거려, 고영진의 탄탄한 엉덩이를 힘껏 툭툭 치며 말했다.

“이제 어서 내려가거라. 이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는데도 어찌 아직 이 모양이냐.”

고청운과 함께 귀가한 고영량이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네가 얼마나 무거운데, 아버지께서 깔리시면 어찌하려고 그래?”

“하하, 형이 나를 시기할 줄 알았어. 내가 설마 아버지를 그리 못살게 하겠어?”

오늘 고영진은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지 온몸에서 행복의 기운을 뿜어냈다.

“너무 즐거워서 그랬어.”

그는 고청운의 목에 머리를 묻고 힘껏 뭉그적거렸다.

“12등으로 합격해 놓고 그렇게나 즐거워? 아직 전시도 치르기 전인데.”

고영량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그를 한 번 보고는 두 손을 등 뒤로 가져가 뒷짐을 진 채 안쪽에 있는 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버지, 저는 먼저 씻으러 가보겠습니다.”

‘동생이 응석 부리는 꼴을 차마 못 보아 주겠구나, 끔찍해. 녀석은 아직도 자기가 어린애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짱짱이도 저 정도 응석은 안 부릴 텐데.’

고영진이 하하 웃으며 외쳤다.

“아버지, 저 합격했어요. 기쁘시죠? 안 기쁘세요?”

“그래, 그래. 너무 기뻐서 어떻게 되어 버리겠구나. 어서 내려오너라.”

고청운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떠올랐다.

그 말을 들은 고영진은 착하게 아버지의 등에서 미끄러져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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