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귀향길
“둘째야, 너 정말 마을로 이사 가서 노후를 보낼 생각인 게냐?”
고대하는 물건 배분이 다 끝나고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저도 이젠 60살이나 되었는데, 잎은 결국 뿌리로 돌아간다고, 제 아무리 군성이 좋아도 얼마 더 못 지낼 것 같습니다. 임계촌이야말로 우리의 뿌리인데, 이곳으로 돌아와 노후를 보내는 게 제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고이하가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평평이는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고, 형님 가족들은 다시 경성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누군가는 본가에 남아 지켜야죠. 형님, 시간이 나시면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고대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안심하거라, 우리는 반드시 함께 돌아올 게야.”
“그래요, 저희가 기다리겠습니다. 마음 놓으세요, 저택은 저희가 잘 돌보겠습니다.”
고이하가 약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별이란 늘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었다.
남은 며칠 동안 소진씨와 간미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너무 바빴고, 고청운도 바삐 지인과 친인척들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는데, 그가 병중에 있을 때 그들이 약재까지 직접 챙겨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 * *
이 바쁜 와중에 시간은 금세 흐르고 흘러, 날짜는 이미 5월 1일이 되었다. 이날은 바로 그들이 경성을 향해 출발하는 날이었다.
고청운은 그의 사형 조옥당(赵玉堂), 부학의 동창 황언성(黄言成) 등과 작별을 고하고, 맏누이인 고연과 둘째 누이 고하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 귀향길에서 그는 도착하자마자 장례일로 너무 바빴다가 그 후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는데, 외출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이 모두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고대하 부부는 임산현을 떠나야 했고, 언제 돌아올 지는 기약할 수 없었기에 누이들이 자주 찾아오게 될 것이었다.
“큰누이, 둘째 누이, 기회가 되면 우리 만나러 오는 거 잊지 말아요. 또 조카들이 거인 시험에 합격하면 경성에 와서 바로 나를 찾도록 하고요. 평소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바로 알려 주세요.”
고청운은 다시 한번 당부하고는 잠시 생각한 뒤 말을 이었다.
“만약 누이들만 괜찮다면 조카들을 내가 있는 경성으로 보내도 좋습니다. 그곳은 임산현보다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나을 테고, 저도 틈틈이 아이들에게 수업을 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가 앞서 이런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은 공무로 너무 바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의 두 아들을 교육해야 해서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은 다들 성인이 되어 아이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었고, 옮겨간 홍려사의 한적한 근무 환경 덕분에 다른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는 같은 말을 고청명에게도 한 적이 있었다. 과거 시험은 아주 좁디좁은 문을 지나야 하는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고씨 가문에서 다른 공명을 얻은 아이들이라고는 다 수재에서만 그치고 있으니, 아이들에게 동력을 주어 과거 시험의 합격 확률을 조금이나마 높여주고 싶었다.
친척들은 아직 망설이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런 그들이 이해가 갔는데, 아이들만 천리 밖의 멀고 먼 경성에까지 보내는 걸 부모인 그들이 안심할 리 없었던 것이었다. 이는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 안심해. 너는 이미 여러 번 말해 주었어.”
고연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선 아무도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거야. 너는 그저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리렴.”
“반드시 제가 곁에서 잘 챙겨드릴게요.”
그는 확실하게 대답했는데, 자식이 부모에게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교훈을 이미 뼈저리게 겪지 않았는가. 그는 이번 기회를 통해 반드시 지금의 나날과 곁의 가족들을 소중히 여길 거라 다짐했다.
* * *
경성으로 돌아가는 여정에서는 당초 서둘러 고향으로 내려갔을 때의 초조함이나 긴박함은 없었다. 고청운은 이번에 한차례 크게 앓으며 고계산과 노진씨의 죽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는데, 거기에 더해 매일매일 드넓고 큰 바다를 보고 있노라니 마음도 점점 밝아지기 시작하여 이제는 시간이 나면 갑판 위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그는 복상 기간이라 이번에 귀경할 때 역시 선박 한 채를 대절했다. 이렇게 대절 선박을 이용하게 되니 선상에서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꽤 넓었다.
고청운은 문득 이번 여정이야말로 일가의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온 가족이 다 총출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치대로라면, 고대하와 소진씨는 3년 동안 복상 기간을 지켜야 했기에 이 3년간 최대한 외출을 삼가야 했다. 그래서 이번 출항이 문제가 될 것 같았으나, 그들 두 사람이 무슨 관직을 맡고 있는 상태도 아닌 데다 아들이라고는 고청운 하나뿐이어서 당연히 함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들이 출항을 하는 건 여러모로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고청운이 살펴본 바로는, 부모상의 규율에 관해 민간에서는 그리 엄격하게 지키고 있지는 않았는데, 필경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입에 풀칠하고 사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들을 다 일일이 생각해 보고 지켜내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이들을 따라다니면서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며 추궁하는 사람 또한 없을 터였다.
이번에 고계산과 노진씨가 별세했기 때문에 고청운은 1년, 고영량 남매는 5개월, 고전각 세대의 경우엔 3개월 동안 상중 기간을 가지면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은 몸이 좀 어떠세요? 뱃멀미는 없으십니까?”
이른 아침부터 고청운은 고대하가 있는 곳으로 넘어와 있었는데, 혹여 부모님이 선박 내에서 지내기 불편할까 봐 살피러 온 것이었다. 아무래도 바닷길을 항해하고 있어 때때로 배가 출렁거리고는 했다.
“아무 일 없다, 괜찮아.”
일찍이 일어나 있었던 소진씨가 고청운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역시 너무 말랐어. 경성으로 돌아가 복상 기간이 끝나고 나면 내가 탕을 끓여서 영양 보충을 좀 시켜주마.”
고청운은 소진씨의 활기차 보이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한시름을 놓았다.
사실 소진씨는 노진씨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 견디기 힘들었지만, 그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고청운만큼 뜨겁게 슬픔의 감정을 표출하지는 않았었다. 고청운은 어머니를 보면서 그녀들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었으니, 둘 사이의 감정이 분명 매우 깊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고청운이 입을 오므리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저만 마른 것이 아니고, 저희 집 식구들 모두 살이 빠졌어요.”
바쁜 와중에도 부군을 챙겨야 했던 간미는 마치 젊은 시절만큼이나 살이 빠져 있었는데, 심지어 그 어린 고전각마저 덩달아 살이 빠질 정도였다. 이 한 달여간 집안에 벌어진 일들이 너무 많다 보니, 이렇게 작은 아기까지도 그 영향을 받고야 말았다.
고대하가 또 한숨을 쉬었다.
“짱짱이도 복상 기간을 3개월로 가져야 하던데, 3개월만 지나면 괜찮을 게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는 아이의 살이 쑥 빠져버린 두 볼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려왔다.
‘이곳이 망망대해 위의 선상 위만 아니었더라도, 밖의 사람들이 어찌 본다 한들 신경 쓰지 않고 고기를 좀 더 먹였을 텐데.’
어른들이야 잠시 고기를 안 먹으며 복상 기간을 보낸다 해도 별 상관이 없었지만, 아이들은 견딜 수가 없을 것이었다.
배 위에서는 육식이 어려우니 그저 시도 때도 없이 육지를 거칠 때마다 신선한 닭을 사서 영양을 보충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는 닭이 질리는지 이제는 계란 냄새만 맡아도 눈살을 찌푸렸다.
고청운이 보기에는 가족이 떠난 것에 대한 그리움을 잘 기리면 되지, 이렇게까지 형식적인 것에 연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세시풍속이 이러하니 안 지킬 수도 없었다.
“참, 소어와 소아의 혼사 문제는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이번 복상 문제가 혼사에 영향을 미치진 않겠느냐? 노가(卢家)의 아가씨가 기다려 줄 수 있겠다고 하던?”
소진씨는 몇 달째 자신들의 곁을 지키고 있는 고영진과 고경이 생각나, 서둘러 자신이 궁금했던 바를 캐물었다.
“이런 일은 본디 인간의 힘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소어는 내년 5월쯤 돼야 성혼식을 치를 수 있을 테니,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가 노가에 서신을 전하여 저희가 노가의 둘째 여식에게 정말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죄드리려 합니다.”
고청운은 이 일을 생각하면 좀 답답해졌는데, 하필 일이 일어난 시점이 너무 공교로웠던 것이다.
내년이면 고영진은 21살이 되었다. 노가의 둘째 여식 노묘운(卢妙云)은 20살이 되는데,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 그녀의 나이는 성혼하기에 이미 많은 편이었다. 보통 관리 집안 여식의 성혼은 20살을 넘기지 않는데, 아무리 늦어도 19살까지는 다들 성혼을 하곤 했다.
“네가 하는 말을 들어보니, 노가 사람들이 그래도 사리에 밝은 사람들인 것 같던데. 나중에 노가의 아이가 시집오면 잘 대해줘야 할 게야.”
지금의 소진씨는 아무 걱정이 없었다. 자손들이 다 재주가 뛰어나 전도가 유망했고, 자신도 이제 앞으로 아들과 계속해서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벌써 증손자를 보아 그 아이가 자신의 무릎을 차지하고 있으니, 지금 처한 상황을 상상만 해도 그녀의 기분은 매우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를 걱정할 만한 문제는 바로 작은 손자와 손녀의 혼사 문제가 유일했다.
“그럼 소아는? 너희가 부모 된 입장에서 좀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돼. 소아의 저 느긋한 성정에 맞춰 진행해선 아니 된다.”
소진씨의 눈에는 자신의 손녀가 어찌 보아도 그저 어여쁘기만 했는데, 그 외모, 몸놀림, 그리고 몸가짐이 임산현의 처녀들 모두와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다만 손녀는 너무 지나칠 정도로 얌전했는데, 하루 종일 책 보는 것 아니면 가끔 칠현금 같은 것을 탈 뿐, 바느질을 하는 경우조차 극히 드물었다.
소진씨는 손녀가 책을 보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글을 아는 사람들에 대해 경외심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녀의 아들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면서부터 집안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그러니 손녀가 책을 보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손녀의 나이를 생각하지 않고 혼사 문제에 너무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고 자신만 조급하기 그지없어 불만이었다.
“어머니, 마음 편히 계세요. 딸아이의 혼담은 복상 기간만 끝나면 바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고청운은 매우 긍정적으로 대답한 후, 곧바로 화제를 돌려 물었다.
“이번에 고향에 돌아가 둘러보니 우리 마을에 사탕수수를 많이 심어놨던데, 둘째 형이 운영하는 설탕 공장이 잘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번 귀향길에는 안 그래도 시간적인 제약이 있었던 데다가 한바탕 병치레까지 하느라 외출할 기회가 극히 드물어, 고청운은 어쩔 수 없이 임계촌 주변만 좀 어슬렁거려 보았는데, 그때 마을의 농작물 재배 상황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의 말을 듣고 고대하가 말했다.
“잘되고 있지. 네가 인편에 전해 준 설탕 가공 비법을 아량(*阿亮: 고청량의 애칭)이가 적용해 만들었는데, 순도와 품질이 좋아서 출하만 하면 군성 안에서 물량이 다 소진되더구나. 다만 사탕수수라는 것이 생산량이 좀 적은 작물이라……. 하지만 우리 아량이 머리가 좀 좋더냐. 작년에 마을 사람들에게 최저 매매 가격을 정해 놓고 최소한 그 정도 가격을 쳐준다고 하니, 다들 걱정하지 않고 벌떼처럼 나서서 사탕수수를 심더구나.”
고대하가 빙그레 웃으며 마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납품한 사탕수수 덕에 작년에 우리 집이 받은 돈만 해도 은자 80냥이 되었단다. 많이 받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아주 훌륭한 실적이 아니더냐. 아량이 말로는 나중에 더 사정이 좋아질 거라고 하더구나.”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촌 형 고청량은 늘 머리가 좋았기에, 최저가로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하 왕조가 계속 발전해 나감에 따라 앞으로 마을 사람들의 생활 역시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은 집이나 식사에 올리는 음식만 들여다보아도 그 지역의 생활수준을 알 수 있었는데, 그들의 어린 시절보다는 지금의 사정이 훨씬 좋아졌다.
세 사람이 방금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 간미를 비롯한 가족들이 고전각을 데리고 문으로 들어왔다. 비록 집이 아닌 배 안에서 지내고 있다고는 하나, 집안의 규율은 지켜져야 하는 법이라 매일 아침 문안을 생략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또한, 고청운은 고대하가 적막할까 걱정도 되었기에, 자연히 간미가 아침 문안을 드리는 걸 막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