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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40)화 (440/504)

440화. 되돌아가다 (2)

한참 후 그들이 위층으로 올라가자 고영신은 선실 안을 뱅뱅 돌며 중얼거렸다.

“정말 넷째 숙부였어. 정말 그들이야, 경성에서 내려오시다니!”

“무슨 말을 중얼거리고 계십니까?”

아내의 호기심 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니, 아니오. 당신은 우선 움직이지 마시오. 나 좀 잠시 나갔다 오리다.”

고영신은 더는 지체 않고 곧장 알고 지내던 뱃사람을 찾아가 물었다. 

“방금 올라간 사람들의 성씨가 ‘고씨’가 맞는가?”

그 사공은 어깨에 걸쳐둔 수건으로 땀을 닦고, 씩 웃으며 답했다.

“누가 아니라던가. 경성에서 돌아온 고관대작이라시는데, 말을 꺼내고 보니 자네와 동향이잖은가. 맞네, 바로 임산현의 그 고씨일세.”

고영신은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그는 어릴 때 넷째 숙부를 뵌 적이 있었고, 몇 년 전 그분의 두 아들이 고향으로 내려와 거주할 때 따로 고향으로 내려가 한 번 찾아 뵌 적도 있었는데, 그때의 일이 기억에 깊게 남아 있었다. 지금 뱃사람에게는 다만 확인 차 물어본 것뿐이었다.

* * *

선실로 돌아간 후 그는 아내에게 이 일을 이야기해 주었고, 두 사람은 모두 매우 흥분했다. 다만, 이번 넷째 숙부의 귀향 목적이 생각나서 그는 또 주저하게 되었다. 가서 폐를 끼치는 것 아닌지 말이다. 또 그들 사이의 관계가 좀 먼 편이라서 몇 번 만나보지도 못한 사이가 아닌가, 상대방은 자신을 알지 못할 수도 있었다. 

‘넷째 숙부께서 내가 뵙고 인사드리는 걸 반겨 주시려나? 귀찮아하지는 않으실까?’

“어떻게 해서든 찾아가 인사를 드려야지요, 당신 집안의 어른이 아니십니까.”

아내는 생각한 바가 있어 그를 설득하며 말했다.

“이미 이렇게 마주쳤는데, 먼저 가서 찾아뵙지 않았다가 나중에 알려지면 후회하실 거예요.”

평소 상공은 이런 분이 아니었는데, 아마 너무 설렌 모양인지 평소의 평상심을 잃은 것 같았다.

고영신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내게 지금의 이런 나날이 찾아온 건 모두가 다 넷째 숙부의 덕이다. 그가 닦아놓은 길과 그 비호를 받고 이렇게 살아왔으니, 난 그를 마땅히 찾아뵈어야 해.’ 

이에 그는 배가 출발한 뒤 집에서 만든 간식을 들고, 아내와 함께 조심스럽게 3층으로 올라갔다.

* * *

고영신은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내종에게 통보했는데, 상대방 쪽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사내종은 그에게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한 후, 곧장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들어갔던 사내종이 바로 나와서 그를 들여보내 주었다. 

아내와 눈을 마주친 고영신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고쳤다. 간식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에서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는 기분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두 발이 나른해지며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아 휘청거렸다. 

아내를 보니 걸음걸이가 자신과 매한가지였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그는 자연스레 아내와 떨어지게 되었다. 보아하니 아내는 여종에게 이끌려 옆방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아마 그곳에는 안채 식구들만 모여 있을 것이었다. 

고영신은 방문에 들어서자마자 문 쪽을 향해 마주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두 명의 비범한 기품을 내뿜는 사내 둘을 보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것이 두 사내의 모습이 서로 매우 닮아 있었다. 

그는 속으로 깜짝 놀랐는데, 자신이 그들의 관계를 알지 못했더라면 이 둘을 형제지간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몰랐다. 

“자네는 몇 째 집안의 아들인가?”

그는 넷째 숙부가 자신에게 하문하는 소리를 들었다. 

고영신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집안이 어디인지 황급히 대답했다.

“아버지, 저보다 석 달 먼저 태어나신 영신 형님입니다. 지난번에 고향에 가서 만났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하가(何家)의 서점에서 회계를 보시는데, 듣기로는 일을 아주 잘하셔서 주인장께서 좋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고영량이 부연했다. 

고영신은 또 한 번 놀랐는데, 고영량이 4년이 지나도록 자신을 기억할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는 어쩐지 이 정도는 되어야 사람이 장원으로 과거에 합격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말에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고청운의 지금 심경은 아직 그리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자기 문중의 자제이기에 참을성 있게 몇 마디 더 물었고, 상대방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잘하고 있었구나, 계속 노력해야 한다.”

큰 기쁨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고영신의 모습에 고청운은 마음이 한결 나아져 다시 물었다.

“자네는 이번에 임계촌으로 아예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겐가?”

보통은 연말이나 명절을 쇠는 때가 아니면 고향으로 잘 돌아가지 않았다. 

고영신의 얼굴이 일시에 굳어지더니 답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숙부님네 큰어르신께서 위독하시니 휴가를 내서 꼭 가서 뵙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전에 어르신께서 저희 집안을 많이 도와주셨는데, 저희들 모두 너무 감사드릴 것이 많아 꼭 한 번 가서 뵈어야겠기에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자 고청운이 다급하게 재차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는 말이냐. 자네는 그 서신을 언제 받았지? 우리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어떤 상태라고 하시던가?”

고영신은 다급해진 고청운을 보고 멍해졌지만 이내 대답했다.

“이것이 제가 방금 받은 서신인데 날짜가 이틀 전으로, 어르신께서는 살아 계시지만 의식이 없으시다고 하셨습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꽉 막혀 있던 숨통이 드디어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살아계시면 되었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의식이 없으시다니?’ 

고청운은 마음이 또 괴로워졌다.

고영량이 상황을 지켜보다 다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 몇 마디 말을 더 이어나갔다. 

고영신은 눈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지금 집안 큰어르신의 일로 넷째 숙부가 자신을 환대해 줄 여력이 없을 걸 알았기에, 그는 바로 이유를 둘러댄 후 인사를 드리고 선실을 빠져나왔다. 

* * *

할아버지의 최근 소식을 접하고부터 마음이 조금은 홀가분해졌던 고청운은 지금 자신이 타고 있는 여객선이 아직도 임산현에 도착하지 않아 바로 할아버지를 만나 뵐 수 없는 것이 아쉬웠는데, 도중에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놓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었다. 

이때의 고청운은 고향에 다가갈수록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르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더 빨리 도착하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 * *

드디어 이틀이 지난 오후, 그들은 마침내 오랫동안 떠나 있던 임계촌으로 돌아왔다.

고영진은 일찌감치 사람을 보내 마차를 부두에 대기하도록 했는데, 그 덕에 고청운 일행이 마을에 다다랐을 때는 아직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그들이 탄 마차가 마을 어귀에 나타났을 때, 가족들은 벌써 그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었다. 

마차가 채 멈추기도 전에 고청운은 마차에서 뛰어내려 문어귀를 내다보았고 군중들 속에서 이쪽을 조급하게 바라보고 있는 고대하와 소진씨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이내 두 눈이 시큰시큰해지며 한 달음에 달려가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고 소진씨의 두 다리를 끌어안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님, 어머님, 다녀왔습니다! 제가 돌아왔습니다! 제가 불효자입니다!”

자신은 정말이지 불효자였다! 이리 노쇠해진 부모님을 어떻게 차마 떳떳하게 뵐 수가 있다는 말인가? 자신이 어찌 몇 년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소진씨는 고개를 숙여 고청운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았고, 허리를 숙여 손을 부들부들 떨며 고청운의 머리를 끌어안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전자야, 우리 전자.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엉엉……. 드디어 우리 아들이 돌아왔어…….” 

옆에 있던 고대하의 부리부리한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는 사내였기에 아직 이성을 붙잡고 다급히 말했다.

“전자야, 어서 가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뵈어야지, 아주 오래 기다리고 계셨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다들 이러쿵저러쿵 그를 설득했다.

고청운이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아, 할머니, 할아버지를 뵈러 가겠습니다!”

그는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쏜살같이 문을 향해 달려 들어갔다.

* * *

고청운이 뛰어 들어오는 것을 본 하인이 앞에서 허둥지둥 길을 안내했다. 고청운이 자리를 떠난 후 집 앞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빠르게 흩어졌고, 고씨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만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고청운은 다른 일을 아랑곳하지 않고, 가능한 한 빨리 고계산과 노진씨를 만나보려고 전심전력으로 뛰어나갔는데, 달리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재빨리 후원에 당도할 수 있었고, 안에서 그를 맞이하는 고이하와 마주치게 되었다. 

“숙부,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찌 되셨습니까?”

고청운은 인사할 겨를도 없이 대뜸 물었다.

“전자야, 네가 드디어 돌아왔구나.”

고이하는 그를 보고 매우 기뻐하며 그의 소매를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 

“빨리 들어가 보거라, 두 분 다 너를 기다리고 계신단다.”

고청운은 이어진 말을 듣고 나자 불길한 예감이 들어 급히 채근하며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어찌 되신 것입니까?”

“너희 할아버지의 일 때문이다, 너희 할머니께서는 요 몇 달 동안 줄곧 할아버지 곁을 지키고 계셨거든. 우리가 곁에서 돌봐드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먹고 마시는 것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할아버지 곁만 지키고 계셨을 게다.”

고이하의 목소리에는 한탄이 서려 있었다.

“너희 할아버지는 너를 계속 기다리셨다. 매일같이 혼수상태셨지만 가끔 깨어나면 네 일을 물어보곤 하셨지. 네가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구나!”

하 의원조차도 이미 생명을 다한 분이 뜻밖에도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다는 걸 의아하게 여겼다.

마음이 다시 급해진 고청운은 곧장 방 안으로 들어섰다. 

* * *

그가 방 안에 막 들어가자마자 방 안에는 짙은 약 냄새와 함께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어떤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고청운은 문설주를 짚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방 안을 바라보았다.

널찍한 방 안의 조금 열린 창문 사이로 쏟아지는 빛은 아직 밝았기에, 집안이 환해 보였다. 침상은 방의 가운데 놓여 있었고, 그 좌우에는 걸상이 놓여 있었으며, 침상에는 모기장이 쳐져 있지 않았다. 침상 위에는 고계산과 노진씨가 나란히 누워 잠들어 있었는데, 그들의 몸에는 솜이불이 덮여 있었다.

방구석에서 유모가 물건을 정리하다 말고 고청운을 보고는 예를 표했다. 

고청운의 목소리에 잠을 깬 듯 잠에 취해 있던 노진씨가 먼저 일어났다.

눈을 뜨고 문밖을 흐릿하게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대하가 왔구나…….”

나지막하게 얼버무린 목소리는 자세히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윈 얼굴을 보고 있던 고청운은 수척해진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 익숙하지 않았는데, 한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할머니, 저예요. 전자예요.”

고청운이 호흡을 가다듬고 경직된 다리를 끌어 침상 옆의 작은 걸상에 앉아 그녀의 손을 잡고 아까보다 더 흐느끼며 말했다.

“저예요, 제가 경성에서 돌아왔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붙잡은 손의 움직임을 느꼈다.

그러자 노진씨는 눈을 크게 뜨고 고청운에게 다가가 탁해진 두 눈을 부릅떴고, 왼손을 고청운의 손에서 빼내서 빼빼 마른 앙상한 손가락으로 그의 이목구비를 일일이 쓰다듬으며 입술을 떨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래, 전자가 맞구나, 전자가 돌아온 게야?”

“네, 저예요, 할머니. 제가 돌아왔습니다!”

고청운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노진씨 옆에서 아직도 잠들어 있는 고계산을 바라보았다. 고계산의 아래턱에 나 있는 희끗희끗한 수염의 떨림이 없었더라면, 그는 고계산이 이미 별세한 줄 알았을 것이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떠나서 두 분을 뵈러 오지 못했습니다.”

노진씨는 마침내 눈앞에 있는 사내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큰손자임을 확인하고는 눈이 반짝 뜨이며 감정이 폭발해 버렸다. 

“전자야, 네가 돌아왔구나! 네가 다시 안 돌아왔다면 이 할미를 영영 보지 못했을 게야, 엉엉……. 그리고 네 할아버지도!”

그녀는 말을 하면서 고청운을 끌어안은 채 통곡했다.

“할머니,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 제 탓이에요. 제가 계속 돌아오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고청운은 여윈 노진씨를 품에 안은 채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선택이 대중들의 눈에는 옳은 선택일지 몰랐으나, 눈앞의 이 광경을 마주하니 마음 한구석으로 이런 선택을 한 자기 자신이 미워졌고, 마음이 괴로웠으며, 후회가 막심했다…….

양쪽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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