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되돌아가다 (1)
고청운이 관 소경과 봉 소경을 따로 남겨서 최근 손에 들고 있던 미결된 업무를 인계하며 말했다.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는 본관이 방금 설명했지만, 내가 열거해 놓은 일들 중에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두 분이 상의하여 처리하시되, 관 대인께서 최종 결정을 내려주시구려.”
그는 말을 마치면서 오늘 아주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서 작성한 조서 목록을 관 소경에게 건네주었는데, 혹여 빠뜨린 사항이 있지는 않은지 걱정도 되었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제대로 일을 인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아무리 조급해도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일은 확실히 인계해야 했다.
두 사람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노라 답했다.
일이 모두 정리되었을 때는 시간이 이미 정오가 다 될 무렵이었다. 고청운은 식사를 할 겨를도 없이 문 앞에 기다리던 고영량과 함께 집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부두로 넘어갔다.
고영량이 휴가 신청을 제출하는 과정은 보다 수월했는데, 한림원은 인력이 많은 곳이라 일을 인계하지 못할 걱정이 없었던 것이다. 원래 고청운은 그를 경성에 남겨둘까 생각했지만, 이번이 고계산을 만나볼 수 있는 마지막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감정을 억누르며 함께 가기로 했다.
* * *
고씨 집안사람들만 태워가기로 대절한 선박을 이용했기 때문에, 필수 물자를 보충해야 할 때가 아니면 따로 부두에 머무는 시간은 없었다. 또한 고청운이 일전에 공부에서 근무했던 덕분에 그들은 시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박을 빌릴 수 있었는데, 심지어 관선이었기에 속도가 일반 배들보다도 매우 빨라 21일 만에 월성 월양군 선착장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청운은 물살을 가르며 고향으로 향하는 내내 고계산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을까 봐, 또 노진씨와 고대하 부부의 심경과 건강 상태도 우려되어 계속해서 마음이 조급해져가면서 이 선박에 날개라도 달지 못해 안달이었다.
이것은 그가 인생에서 겪어본 가장 갑갑한 여행길이었다.
가는 길 내내 모두들 말수가 많이 줄었다. 고영량은 아버지의 심경이 염려되어 고전각을 고청운에게 보내 주었다.
손주의 옹알거림을 들은 고청운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월성 땅을 밟았을 때 혹시라도 좋지 않은 소식이라도 들릴까 봐 고향집으로 가까워질수록 심정이 조마조마하고 착잡했다.
이번에는 내륙의 하천을 이용할 예정이었기에, 고삼원은 최대한 빨리 배 한 척을 다시 빌렸는데, 원래 바닷길로 타고 온 선박은 부두에 들어서기 조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군내에서 하루 머물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바람만 순조롭게 불어준다면 이제 이틀만 더 가면 임계촌 고향집에 당도할 수 있을 테니, 고청운의 마음은 설렘과 두려움이 한데 얽혀 비할 바 없이 격동에 휩싸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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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신(顾永信)은 아내를 데리고 여객선에 올라 증빙서류에 적힌 자신의 집으로 가는 배를 찾아냈고, 챙겨온 짐을 정리한 후 아직도 배가 출발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봇짐에서 이미 다 읽어본 것이지만 그래도 서신 한통을 꺼내 다시 한번 읽어보며 시간을 때웠다.
어렸을 적 그의 집은 마을에서 20묘의 땅을 소유할 정도로 제법 괜찮게 지냈다. 부모님은 성실하고 유능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아직 일을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농한기에는 아버지가 임산현으로 건너가서 잡일을 했기에, 그들은 더 절약하고 아껴 쓰면서 또다시 보유하고 있는 농지를 5묘나 더 늘릴 수 있었다.
문중의 비호가 있어 누구도 그들 집안을 업신여기지 않았기에 그들 일가족은 화목하게 생활할 수 있었다. 다만 길흉화복은 예측하기가 어려운 법이라, 그가 3살 되던 해 어머니가 동생을 출산하면서 난산에 시달리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몸이 안 좋아져서 이제 힘든 일은 하실 수 없게 되었다. 또 늘 약을 사서 복용해야 해서 아버지는 논 5묘를 팔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세는 계속 위중해져만 갔다. 그녀는 한사코 남은 밭을 팔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 살림이 빠듯해져서 일 년 내내 육식이라고는 구경도 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었다.
6살 때 그는 문중에서 운영하는 족학에 입학했는데, 그의 성이 ‘고씨’였기 때문에 입학비나 수업비는 들지 않았지만 먹이나 종이, 혹은 벼루 등에 드는 비용만으로도 그의 부모님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들을 마련하는데 드는 비용이 그들에겐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같은 문중 소속이자 족학의 선생님인 청명 대백부가 아버지에게 계속 그의 학업을 독려해 주었고, 과거 준비까지는 아니더라도 글을 배워둬야 나중에 점원을 하거나 일거리를 찾을 수 있다며 아예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궁리 끝에 큰 결심을 하시고, 이를 악물고 동의해 주었다.
이에 그는 이미 닳아 평평해진 벼루와 자신이 직접 만든 붓, 맑은 물 한 그릇, 책을 가지고 6살 때부터 12살까지 글을 배울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것 중 가장 값진 것은 서책이었는데, 이는 아버지가 고생하여 겨우 사 준 것으로, 문중의 사람들이 베낀 것이지만 책방에서 구입하는 것보다는 저렴했다.
그는 줄곧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 기회를 매우 소중히 여겼고, 공부를 시작한 처음 2년 동안은 선생님의 칭찬을 자주 받았으며, 이번 연말에는 500문의 상금까지 수여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호황은 길게 오지 않는다고, 좀 더 자라자, 그는 부모님을 도와 가벼운 일을 하기 시작했고, 또 때마침 배우는 내용들도 갈수록 어려워져서 점점 따라가지 못하고 중위권 수준만 겨우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12살 되던 해에 그는 과거 시험이라는 관문을 넘기 위해 치르는 가장 간단한 시험인 현시에 참가하러 가 보았지만, 2년 동안 급제하지 못했다. 자신이 경의라는 항목에서 아직 제대로 배움을 깨치지 못했다는 것을 안 그는 죽자고 과거 시험에만 매진하려고 했으나, 매번 시험을 볼 때마다 적지 않은 은전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의 남동생은 몸이 좋지 않아 앞으로 식구들은 자신에게 의지해야 할 텐데, 이런 상황에서 식구들이 한 해 한 해 언제 붙을지도 모르는 시험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런 천부적인 자질도 없었고, 문중에서도 그가 계속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원해 주지도 못할 것이었다. 그와 비슷한 자질을 가진 문중의 친인척들은 너무나 많았으니, 이들을 다 도와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족규에서 명시해 둔 바와 같이, 모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었다. 지식은 배우면 자기 것이 되고, 일하지 않고 얻기만을 기대할 수도 없었으며, 하늘에서 떡이라도 떨어질 것을 기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확실한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비로소 수확이 있다는 점이었다.
선생님과 상의한 후에 그는 전문적으로 회계 공부를 해 보기로 결정했다. 그간 배워왔던 많은 학습 내용들 중에서 그가 가장 좋아했던 것이 바로 산술 분야였는데, 이는 비단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문중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배운 <산학초해>는 문중의 네 번째 항렬인 넷째 숙부 고청운 사백(四伯)이 쓴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산술을 공부할 때는 모두들 유난히 더욱 열심히 몰입하여 공부하고는 했다.
넷째 숙부는 그들 문중의 자랑으로, 그분들이 임산현에 자리를 잡은 덕에 다들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그분이 어렸을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의 모든 일들에 대해, 문중 사람들은 빠삭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들 문중에서는 넷째 숙부가 집필한 전문적인 회계 교재도 보유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좋은 회계학적 기초를 닦아 줄 수 있어 이 양성 과정 학습을 끝내고 나면 실제로 쉽게 근무에 착수할 수 있었다. 산술 실력이 줄곧 뛰어났던 그는 워낙 배우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과거 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회계 공부를 시작한 이래로 그는 바로 일거리를 찾아 나섰는데, 부모님은 걱정을 좀 했다. 필경 그가 몇 년 동안 공부만 했기 때문에 농사 일 쪽으로는 어릴 적부터 농사일을 배워 온 다른 또래들보다 못해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할까 걱정을 했던 모양이었다.
본인은 되레 그런 걱정이 없었는데, 글을 읽을 줄 아는데 뭔들 일거리를 찾지 못하겠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과연 문중의 청량 숙부의 도움으로, 그는 하가(何家)의 서점에 가서 점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점원으로 시작해 올해로 10년째 일을 하게 된 그는 올해 초 군성의 한 분점의 장부 담당 직원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그는, 이 일을 하며 벌어들인 월급으로 군성이라는 번화한 곳에 안정적으로 정착해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임계촌에 계신 부모님에게 은자를 보내어 족학에서 공부하는 자기 아들에게 종이와 붓을 사 줄 수도 있게 되었다.
그는 속으로 만족하고 있었다. 장래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할수록 보이는 것도 많았는데, 그중 부자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는 자신이 출세하면 자신을 도와준 문중에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이 길까지 걸어오면서 정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가한 시간이 생기면 그는 화본과 산술 서적을 즐겨 읽었는데, 물론 넷째 숙부 고청운이 쓴 책이 바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었다. 비록 마지막에 낸 몇 권의 산술 서적은 보다가 이해할 수 없어 너무 힘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 열심히 서신을 읽고 있던 고영신은 문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지만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순간 한 사람의 외침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어느 집 나으리야? 대단한 관록이구만.”
“일반적인 관록이라고 할 수 없지, 이 정도면 군내 왕가의 기품 정도는 되겠는 걸? 사람도 많이 거느리고, 어르신 한 분 행차하시는데 하인과 짐들이 참 많기도 하네.”
어떤 사람들은 못마땅해 하기도 했다.
“내 감히 단언해 보건데, 상인 집안은 아닐 걸세. 의심할 여지없이 벼슬아치일 게야. 이제 귀향을 준비하는 건가보군.”
누군가는 이 광경을 분석해 보기도 했다.
“경성에서 돌아왔다던데? 저 집 하인까지도 경성 말투를 쓰고 있는 것을 들었네.”
“벼슬아치 집안이라고? 어느 집이지?”
누군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질문했고, 순간 소리가 잦아들었다.
…….
여기까지 들은 고영신은 마음이 흔들렸다.
그의 아내가 막 침상에 이불을 깔고 있다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는 짐작해 보며 말했다.
“상공, 넷째 숙부님이 아니실까요?”
망언할 수 없었던 고영신은 서신을 보며 잠시 있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 * *
갑판 쪽에 마침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향하는 곳을 보니, 3층 귀빈실이 있는 객실이었다.
그가 자세히 살펴본 결과, 남녀가 섞인 무리 중에 있는 여인들은 얼굴을 가리는 너울을 뒤집어쓰고 있었고, 그 뒤에 있는 유모는 서너 살짜리 아이를 안고 있었는데, 무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내들은 옅은 색의 피풍의를 걸치고 있었다. 이때 한 젊은 사내가 또 다른 침착해 보이는 사내의 귓가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전하고 있었다.
고영신은 한눈을 팔지 않고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그들이 있는 모퉁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이르자 마침내 그 준수한 두 명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는 순간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펄쩍 뛸 뻔했고, 입을 크게 벌리며 아연실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