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37)화 (437/504)

437화. 위독하다

고청운은 빙긋 웃으며 가던 길을 계속 가려다가 문득 고전각이 멈칫하는 것을 알아채고 아이를 내려다보니, 꼬맹이가 큰 눈을 부릅뜨고 탕후루에 계속해서 눈과 발을 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고청운은 헛기침을 하며 눈썹을 찡그린 채 아이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게 뭐예요?”

고전각의 옹알대는 소리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는데, 고청운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하마터면 탕후루를 냉큼 사줄 뻔했다.

“그건 시큼한 거라서 맛이 없단다.”

고청운이 아이를 번쩍 품에 안고 웃으며 말했다. 

“넌 걷지 못하는 것 같으니, 이 할아버지가 안고 가 주마.”

“우-.” 

고전각은 실망한 듯 소리를 길게 늘어뜨리면서도 눈은 다른 사람들이 들고 있는 탕후루로 향해 있었다. 탕후루를 파는 노점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는 참지 못하겠던지 종국에 한마디 했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사주신 적 있어요. 제가 먹어보니 하나도 시지 않던데요, 단 것이 아주 맛있었어요. 할아버지, 저는 저게 먹고 싶어요.”

아이의 말솜씨는 매우 유창했다.

‘드디어 하고 싶은 말을 해내다니!’ 

고청운이 빙긋 웃으며 지금이라도 막 사러 달려가려고 꿈틀거리는 소만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눈짓을 하여 제지한 후 말을 이었다.

“우리, 사 할아버지네 가서 먹자꾸나. 그곳에 가면 맛있는 간식이 있을 게야.”

고전각은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진정이 되었고, 고청운의 목을 끌어안고 가는 길 내내 쫑알거리는 것이 정말 귀여웠다.

고청운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큰손자가 어쩜 이리 귀여울꼬?’

* * *

이들은 곧 송죽서재에 도착했다. 고청운은 20년 동안 외양이 거의 변하지 않은 서점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생각해 보니, 어느덧 그는 인생의 절반이 넘는 25년 동안이나 경성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계산대 뒤편의 주인이 그를 보고는 눈을 번쩍 뜨고 급히 달려 나와 나지막이 말했다.

“대인, 즐거운 오후 시간 되셨습니까? 저희 집 어르신께서 이미 위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는 말하면서 고청운에게 길을 안내해 주었다. 

“작은 사 사장, 가서 일 보시게. 내가 올라가도 되네.”

고청운은 손을 내밀어 그를 제지했다. 이전의 원래 주인은 이미 사장정이 부모님을 모실 수 있도록 고향으로 돌려보냈고, 이번 사장은 그때 사 사장의 아들로 젊고 기력이 왕성한 이제 막 서른을 넘긴 나이였다.

고청운은 2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서점의 서가들을 둘러보았는데, 그의 화본이 여전히 앞쪽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게 보였다. 게다가 아직도 그것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산술 서적이 꽂혀 있는 서가에도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젊은이가 책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사장정의 자신에 대한 지지가 정말이지 감동적이었다. 고청운은 아직도 자신의 책을 제일 선전이 잘 되는 위치에 놓아준 사장정에게 감탄을 금치 못했다. 

* * *

고청운이 2층 계단 입구에 도착했을 때, 사장정은 이미 먼저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신지, 자네 너무 느린 게 아닌가, 내 진작부터 여기서 자네를 지켜보고 있었건만, 이렇게나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올라오다니.”

사장정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지만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채 다가와 고청운의 어깨를 감싸며 웃는 얼굴로 다시 말했다.

“한참을 밖에 못 나왔다가 이리 오랜만에 나오게 되다니, 그간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그는 말을 하면서도 고개를 숙여 고청운이 끌어안고 있던 고전각을 얼러주었다. 

“우리 짱짱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컸구나. 막 돌이었을 때 희고 통통한 모습으로 붉은 배두렁이를 입은 채 책 한 권을 꼭 쥐고 있던 모습이 기억나네. 침이 나올 정도로 잘 웃어 주었었지. 시간이 얼마 안 흐른 것 같은데 이렇게 커서 소석이를 쏙 빼닮게 되었구나.”

고전각은 고청운의 손을 놓으며 공수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허리를 살짝 숙여 읍례를 하며 말했다.

“사 할아버지를 뵙습니다!”

그러자 사장정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아가의 몸을 어루만지더니, 자신의 소맷부리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조롱박 모양의 옥 장식을 하나 꺼내어 고전각의 작은 손에 쥐여 주었다.

“이건 사 할아버지가 너 가지고 놀라고 주는 게다, 착하지.”

고청운이 황급히 그의 손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아이에게 또 이런 걸 주다니, 오래간만에 만나는 것도 아니잖은가.”

“내 마침 몸에 이런 것을 지니고 있었지 뭔가. 내가 주고 싶으면 주는 거지, 그저 작은 장난감일 뿐인 것에 뭐 이렇게까지 하나?”

사장정은 고청운을 아랑곳하지 않고 고전각에게 다시 장난을 건 뒤, 다른 사람을 불러 옆집에서 놀 수 있도록 안고 가게 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사람을 시켜 간식을 딸려 보냈다. 

“식사하러 간다고 하지 않았나? 어째 서재에서 만나자고 했는가.”

고청운은 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

두 사람은 석 달 동안 만나지 못했는데, 첫 번째 이유로는 명절이라 모두들 바빴기 때문인 것도 있었고, 명절 전에는 고청운이 복상 기간을 보내고 있던 터라 사장정이 고청운의 집을 방문하기 어려웠다. 아마 두 번째는 안락공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장정을 아주 엄하게 단속하고 있었는데, 태자의 즉위가 확정되고 나서야 사장정은 겨우 바람을 쐬러 나올 수 있었다.

“식당 쪽은 너무 시끄럽지 않은가. 여기서 이야기를 좀 나누다 가세.”

사장정이 떳떳하게 이유를 늘어놓았는데, 당연히 이곳이 제일 익숙한 곳이라 만나자고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밖으로 나온 김에 서재도 한 번 시찰해 보고 싶기는 했다. 

자연히 그의 속내를 알고 있었던 고청운은 고개를 한 번 젓고 웃으며 말했다.

“자네 집 천보는?”

사장정의 독자(獨子)인 사천보는 올해로 12살이었다. 고청운이 천보를 만나 본 것은 몇 번 되지 않았는데, 공주가 아이를 매우 빈틈없이 돌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마궁술을 연습하고 있네.”

사장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였지만, 말투는 어딘가 매우 싫다는 느낌이었다. 

“공주께서는 내가 그 아이를 물들일까 봐 하루 종일 집에서 구속한 채 책을 읽히고 무예를 연마하게 하고 있다네. 아이는 매일 아침 기상 시간이 닭보다도 빠르고, 잠이 드는 시간이 강아지들보다도 늦네. 아이가 매일같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내가 오늘 데리고 나와 긴장 좀 풀어주려 했더니, 안 따라 나오겠다고 하지 뭔가! 내 답답해서 원, 배움이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건가?”

고청운은 오히려 그 결정이 안락공주의 안배였으리라 짐작해 보았다. 사장정이 무심코 흘린 이야기들과 결합해 보니, 태자가 즉위한 후 사천보는 최소한 후작이라는 작위에 봉해질 것 같았다. 아직 황후가 건재했으니, 하나뿐인 딸을 서운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안락공주는 어릴 적부터 마궁술을 배우며 자라서 자기 자식에게도 똑같은 교육을 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장정의 큰딸 혜명군주(慧明郡主)는 시집간 지 오래였는데, 외유내강하고 성정이 꽤 강직하여 시댁에서도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애들 교육문제는 공주의 말씀을 들으시게나.”

고청운이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그래도 내 생각에는 아이란 모름지기 긴장도 좀 풀고 그래야한다고 보네.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 나쁜 곳을 가는 것도 아니잖은가. 나는 그저 밖을 좀 돌아다니려고 했을 뿐인데.”

사장정이 구시렁거렸다. 

“요 며칠간 공주부를 방문하는 사람이 넘쳐나니 공주께서 코빼기도 안보이셔서, 나는 정말 답답해서 어찌 되어버릴 지경이라네.”

이어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이러쿵저러쿵 또 다른 떠도는 소문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날 제일 말들이 많은 인기 소식들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예를 들면 영안제와 태자의 일 같은 것이었다. 

그나저나 지금 영안제가 정식으로 퇴위하기도 전임에도 태자는 벌써 감국( 监国: 중국 고대부터 내려오는 정치제도의 일환으로, 황제가 수도를 떠나있는 상황 등에서 태자 같은 주요인물이 궁내에서 대신 정사를 맡아보는 것)을 시작했다. 

황제는 사사건건 태자에게 먼저 의견을 묻고, 그 의견에 대하여 때론 기각하거나, 때론 동의하는 등 태자와 사적으로 지내는 시간이 매우 길어졌는데, 태자를 황제로 키우려는 의도가 분명하게 엿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에 품었던 한 가닥 희망의 불씨가 삽시간에 깨지고 말았다.

고청운은 지금 기분이 매우 좋았는데, 사장정과 함께 있으면 늘 마음이 편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아래층에서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고청운이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사장정이 갑자기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며 아래쪽을 살피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 집 둘째 아가씨가 보이는군.”

고청운은 그의 행동이 어이가 없어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문안군주(文安郡主)가 왔다는 말에 일어나 보았다. 남녀가 함께 있던 무리 중에서 역시 조정 권력자의 아이였던 그녀는 풍모가 남달라 보였다. 그녀는 국상 기간이라 옅은 색의 소박한 옷차림을 하고 머리 장식 역시 은장식만 하고 있었다. 

“저들은 어디를 들렸다가 오는 겐가?”

고청운이 일행 중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 몇몇이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고 물었다. 그들 중 육훤의 동생과 태부 양불언(*梁不言: 산술 학계의 대가)의 작은조카인 양쟁(梁筝)이 눈에 띄었다. 양쟁은 올해 18살로 작년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거인 신분이 되어 있었는데, 성남의 사합원에서 자주 만나서 자신과 매우 친숙한 사이였다.

“자은사(慈恩寺)에 가서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왔다는군.”

사장정이 대답한 후, 고청운이 양쟁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웃으며 말했다.

“그가 마음에 든 겐가?”

고청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러면 뭐하나, 남들이 나를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을. 양씨 집안은 혈통이 얼마나 대단한 집안인지 가족들 중에 3품 이상이나 되는 관리가 셋이나 있지. 비록 양쟁의 양친이 모두 돌아가셨다고는 하나 태부께서 그를 돌보고 계시고 있고, 이미 그도 거인까지 합격한 상태이니 제일 인기 많은 사위 후보가 아니겠는가.”

그는 방정심이 자신의 딸을 끔찍이 좋아하게 된 이후로 이 소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으나, 소년이 자신의 집안과 관계된 일에는 일말의 관심사가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내 체념했다.

사장정이 “흐음.” 하는 소리와 함께 대답했다.

“괜찮네, 우리 소아는 용모와 지력을 두루 다 갖추었는데 어디 좋은 사윗감을 구하지 못할까 미리 걱정하는가.”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자식들 중에 혼자 혼처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고청운은 요즘 그 어디로 시선을 돌려도 다 아이의 혼처와 연계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잠시 더 이어졌고, 점심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 * *

다시 십여 일이 지난 후 은식 소식이 마침내 확정되었는데, 바로 내년 3월에 진행될 예정이고, 올해 예정되어 있던 시험은 또 그대로 진행되기로 했다. 이 시점에서 고영진 쪽에서는 아직 지난번 서신조차 전달받지 못했는데, 고청운 쪽에서는 그가 보내온 다른 서신을 먼저 전달받았다.

서신엔 고계산의 병세가 매우 위독하다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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