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36)화 (436/504)

436화. 퇴위

고청운은 일어나 아이를 품에 안으며 물었다.

“정자에 앉아 있으면 춥지 않으냐?”

“춥지 않아요. 옷이 두껍거든요.”

고전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기분이 매우 좋은 듯 두 다리를 흔들어대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의 귀와 작은 손을 만져 보았는데, 아직 뜨끈뜨끈하기에 속으로 매우 만족스러워져서 아이 곁에 있던 유모와 여자 하인을 한 번 바라보았다.

3살 반 된 이 아이는 곧 공부를 시작할 것이었다. 그가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고전각의 자질이 고영량이나 고영진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는데, 이 점은 방인소도 잘 알고 있었다. 3살 남짓했을 때 고영량은 기억력이 매우 우수한 편이라서 당시(唐诗)도 몇 번만 외우면 바로 기억할 수 있었던 반면, 고전각은 같은 시를 외우는 데 제 아버지의 세 배 혹은 네 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고청운은 처음에 이 사실을 알고 조금 실망했지만,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생각하고 다시 무덤덤해졌다. 그 자신 역시 무슨 영특한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 난 것도 아닌데,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고전각은 자신이 막 글공부를 시작한 그때보다 교육 여건이 더 좋으니, 공부만 열심히 한다면 아무리 자질이 중간 정도에 밖에 미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장래에 발전할 여지가 있을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는 고전각이 진사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는데, 혹시 다른 방면으로 특기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에는 단지 과거 시험 합격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니 말이다. 고청운은 이 사실을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다.

또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 그에게 손자가 고전각 단 하나밖에 없겠는가. 고전각이 과거 시험쪽으로 재능을 발휘하지 않는다고 해도, 다른 손주들이 더 있을 텐데, 만약 상황이 아주 여의치 않는다 하더라도 증손자 세대에서라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상황이 생기지는 않을까? 

어찌되었건 고청운은 앞으로 자신의 집안 아이들이 아버지를 거역하지 않고 자신들의 분수를 잘 지키면서 행동하고 살길 바랄 뿐이었다. 물론 제일 이상적인 상황은 모든 세대에서 벼슬에 오르는 인물이 있어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손자의 웃음에 마음이 치유된 고청운은 어린 손자와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누고 있었는데, 바로 그때 고영량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 여기, 여기 있어요!”

고청운은 품속에 안겨 있던 손자가 기뻐서 깡충거리는 몸짓에 역시 할아버지보다는 제 아버지가 더 좋구나 싶어서 서운했다. 

‘녀석 봐라,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몇 배나 더 커졌네.’

* * *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있으니, 자연히 영안제의 퇴위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제각기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던 모두는 이 상황이 의아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핍박을 받아 물러나지 않는 이상,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난 황제는 그야말로 너무나 극소수의 경우가 아니었던가? 어느 황제가 죽어서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에 먼저 그만두었단 말인가?

그의 집안에는 새 황제를 황위에 등극시키는데 공을 세운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미움을 살 만한 것이 또 없는가 살펴보니 미움을 받을 만한 짓을 하기는 했는데, 뭐니 뭐니 해도 그쪽의 포섭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죄를 지은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죽임을 당할 원수 같은 죄는 짓지 않았다. 고청운 같은 행보를 보인 관리들은 많을 것이었고, 새 황제는 그들을 어찌 할 수 없을 테니 기껏해야 승진이 좀 늦는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

“새 황제가 즉위했으니 올해 은식(*恩式: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실시하던 과거 시험)이 열릴 것 같은데, 아버지, 기왕 이렇게 된 거 동생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고영량이 곧바로 의견을 밝혔다.

“진씨네 숙부들도요.”

그는 올해 고향 가족들이 향시에서 소득을 내지 못해 정말 유감이었다.

“시기를 맞출 수 있을까? 오늘이 벌써 2월 초하루잖니.”

간미가 상당히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고청운은 생각에 잠겼다가 방인소에게 물었다.

“스승님, 올해 거행되려던 회시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내년에 다시 회시가 열릴까요?”

그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예부 쪽에서 퇴위식 방안을 결정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번 사건은 전례에 없던 일이라 알맞은 예의를 갖춰 의식을 거행하려면 준비 기간 때문이라도 아마 몇 달이 더 지체될 수도 있었다. 

“이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테지. 아마 내년이나 돼야 은식이 열릴 것 같구나.”

방인소가 잠시 읊조리다가 말했다.

고청운은 그 말도 일리가 있어 고개를 끄덕였다. 필경 전황제가 아직 살아 있으니, 새 황제가 즉위하더라도 급하게 은식을 열지 않고 최소한 약간의 시간차를 둘 것이었다.

이와 함께 모두들 걱정하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신황제와 구황제의 교체 문제였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결정권자가 둘이나 있게 되는 것이었는데, 때가 되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좋을 것인가? 그러나 영안제가 그간 보인 예지로움을 생각하면 고청운은 이런 걱정이 좀 누그러졌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걱정할 차례나 오겠는가. 고청운을 비롯한 가족들은 멀리 떨어진 일로 조급해할 바에는 차라리 고영진과 고경을 어서 경성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황제의 즉위와 함께 보통 후궁에 인원을 채우는 것이 관례였는데, 하 황조의 앞선 두 황제의 관례에 따르면 신하의 딸은 강제적으로 입궁시키지는 않았고, 황제도 중매를 선호하지 않아 중신들의 체면을 세워줘야 할 때나 사혼(*赐婚: 황제가 명하는 혼인)을 내리는 정도였다. 물론 이 역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는데, 만약 황제가 정말 마음에 들어 했거나 혹은 상대방이 이 혼사가 필요하다고 여겼을 때는 이런 사혼을 거절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방자명의 딸 주아의 경우 경성에 올라와 연회에 몇 번 참석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미모가 온 경성에 그 명성이 자자해져 버렸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육황자의 눈에까지 띄어버렸다. 주아에게 아직 혼담이 오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황제가 내심 의중을 담아 방자명의 의견을 묻고 오도록 사람을 보내서, 이 혼사가 성사된 것이었다. 방씨네는 베풀어준 은혜에 감지덕지하며 총애의 표현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새로운 황제의 품성은 어떠할까……. 고청운은 그간 다른 사람들이 내린 태자에 대한 평가를 떠올려 보았고, 또 자신이 직접 겪어보며 느낀 바를 한데 버무려 보았다. 태자는 올해 27살로 영안제보다 외모가 더 보기 좋은 편이었는데, 침착하고 이지적이며,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가졌고 실수가 드물었다. 젊은 소년 시절에야 거만한 느낌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군가가 꼭 자기 바람대로 되라는 법은 없었기에, 고청운은 생각을 여기까지만 하고 말했다.

“국상 기간이 끝나면, 진가아도 곧 성혼을 해야 하니 노가(卢家) 집안과 상의해 혼례하기 좋은 길일을 보러 갑시다. 소아의 혼사도 일단 결정해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그는 조금 있다가 바로 서신을 써서 아이들을 돌아오게 하려고 했다.

그곳에 있던 가족들은 고청운의 의견에 모두 동의했다.

* * *

영안제가 던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정말 그들의 생활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는데, 이번 사태로 인해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사람은 고청운뿐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경성의 백성들이 황제의 퇴위를 운운하기 시작했을 때, 역참에는 유독 많은 서신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쨌든 영안제가 갓 별세한 황태후에게 애정이 없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겉으로는 효를 보여야 했기에 적어도 국상이 끝나야 태자가 황위에 즉위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석 달 안에 태자가 황제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는 하나 태자를 대하는 조정 대신들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이것은 꽤나 견디기 힘든 시간이기도 했는데, 영안제가 불편해 할 것을 고려하여 태자에게만 너무 잘 보여서도 안 되었고, 또 그렇다고 태자에게 너무 냉담하게 보여서도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간 태자가 황위에 즉위하고 나서 난처해질 것이었다. 

그리하여 영안제가 퇴위를 선포한 며칠 동안, 모두들 상당히 이도 저도 못하고 괴로워했고, 특히 예부의 경우, 의식을 거행하는 문제 때문에 완전히 넋을 잃고 있는 상태였다. 

* * *

며칠 전 길에서 장수원을 마주친 고청운은 눈시울이 너무 검고 피곤해 보이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

“장 형, 좀 쉬면서 일을 하셔야겠습니다.”

고청운이 장수원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자기도 연장 근무를 하고 있었으나 그들만큼 목숨 걸고 업무를 보고 있지는 않았다. 

장수원은 쓴웃음을 지으며 관자놀이를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일전에 생전 겪어보지 못한 문제들이 한 가득일세. 종인부나 내무부와도 의견을 교환하며 처리해야 하는데, 아주 작은 착오도 범해서는 아니 되니 머리가 아프네.”

내무부는 황족, 특히 황제의 직계를 관리하는 기구라 상대적으로 매우 독립된 조직이었다. 호부와 연결되지 않았던 그들은 황제가 운용해야 하는 비용이 생기면 직접 인장을 찍어 비용을 조달할 수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도 국고에까지 손을 뻗치기는 어려웠던 것이 호부의 사람들이 죽을힘을 다해 국고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도 이해되는 바가 있었기에 장수원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인삼차라도 마시면 정신이 한결 나아질 겁니다.”

“그 효용은 당연히 알고 있지. 우리 예부에서도 지금 상, 하관을 막론하고 인삼차를 거의 물처럼 마시고 있네.”

장수원이 눈을 치켜뜨며 부럽다는 듯 말했다. 

“홍려사가 우리보다 좀 더 편할 테지. 어떻게 해야 할지는 우리가 사전에 다 논의하고 정해 주니, 자네들은 미리 예행연습만 해 보면 끝이 아닌가.”

고청운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누가 그들에게 우리 부서에 규칙을 제정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었나 하고 생각했다. 예부는 누리는 혜택이 있었으니, 이는 그들이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었던 것이다.

* * *

2월 10일 이 하루는 휴무일이어서, 고청운은 사장정과 함께 식사하기로 약속을 해둔 날이었다. 

“요주 섬 쪽은 가자마자 이주하는 사람당 10묘의 땅을 가꿀 수 있게 한다면서? 토지가 비옥해 벼를 1년에 두 번이나 수확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게 참말인가?”

고청운이 고전각의 작은 손을 잡고 거리를 걷고 있을 때 길가에서 행인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이 입술을 오므렸다. 그 소식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패전국 쪽에서 배상금을 보내왔는데, 부족한 부분은 물자로 메꾸기로 했다. 돈이 도착하자 조정에서는 그제야 포로들을 풀어 주었다. 포로들이 떠나기 전에 고청운은 외국 총독이 가게 된 것을 아쉬워했는데, 그는 아는 바가 워낙 방대하여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히 외국어를 연습할 수 있었기에 정말이지 일거양득이었던 것이다. 

배상금의 일부는 병부에 넘겨주었고, 나머지는 곧바로 요주 섬 건설에 직접 사용되었다. 다만 이주 희망자 모집이 쉽지 않았는데, 대부분의 주민들이 어쩔 수 없이 가는 것이고, 거기에 더해 바다로 둘러싸인 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지역의 대부분의 농토는 미개발 상태라 그 위험성이 더욱 컸다. 

하지만 필히 어딘가에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이주민에 대한 대우와 복지가 있으니 자연히 모험을 감행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토지는 국민들의 생명선과도 같았으니 말이다. 

이러한 일정 적응 기간을 거치고 난 후, 육택은 요주에서 생활한 일부 사람들을 다시 도시로 돌아오게 하여 현지에서 그들이 겪은 바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의 이주를 독려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의 요주는 본체 아리따운 곳이었지만, 죄인의 유배지로도 사용되고 있었고, 지난해 과거 부정행위 사전에 연루된 일부가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과연 요주에서의 생활상을 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곳의 현지 실정에 대해 캐묻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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