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35)화 (435/504)

435화. 사건 (2)

방자명과 송별한 후, 고청운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주아의 일이 생각나서 간미에게 물었다.

“뻔하죠, 무슨 일이 더 있겠어요? 주아가 회임을 한 건 큰 기쁨인데, 황가에 규칙이 꽤 많은 탓에 이번에 그녀가 회임을 하자 다른 여인들을 황자에게 들여보냈다지 뭐예요. 하지만 부군도 아시다시피 외종숙부 내외는 금슬이 좋잖아요? 주아는 어릴 때부터 그런 것을 보고 자랐으니, 당연히 이런 상황을 납득할 수 없었겠지요. 그래서 어린 부부의 사이가 틀어졌고, 외종숙부는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왕부(王府)로 넘어가 그녀를 위로해 준 거지요. 지금은 배 속의 아이가 제일 중요하니 말이에요.”

‘이전에 이 황자 부부는 꿀이 꽤 떨어지는 편이었는데.’

고청운은 설명을 들으며 코를 매만졌다. 한 나라의 관원이 되면 자주 밖에 나가 접대에 응하거나 교류할 일이 많아졌는데, 순결함을 고수하는 사내들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극소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은 유희의 기회를 거절하지 않았다.

방자명도 일찍이 밖에서 이러한 풍조에 젖어 들어 있었지만, 그래도 집안에까지 여인을 새로 들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 씨는 이 정도에 만족하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밖에서 접대를 받을 때 이전에도 사람들에게 ‘공처가’라며 놀림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는데, 자신의 관직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그의 명성 또한 자꾸만 더 유명해져 가다 보니 최근 들어서는 자신을 향해 공처가니 하며 비꼬는 사람이 거의 없어졌다.

다시 한번 그는 이번 생애에 자신이 사내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행실이 있으니 미래의 고경의 남편감에게 트집을 잡아도 떳떳했다. 

고청운이 방정심에게 그나마 호감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방정심이 정말로 순결을 지키고 다른 여인들에게 사정없이 냉정했으며, 고청운에게 자신은 첩을 들이거나 정을 통하는 여종을 두지 않겠다고 약조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황가의 며느리가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합니다.”

간미가 한마디로 정리하더니 이어 말했다.

“누가 하늘 아래서 황가가 제일 크다고 했었지요.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니, 우리는 그저 그 세력 앞에서 참고 인내하는 수밖에 없네요.”

하지만 그 세력이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확실치 않았다. 고청운은 속으로 문득 몇백 년 뒤의 세상을 떠올려 봤다. 

‘그땐 하 왕조가 계속 존속하고 있을까? 하 왕조가 망하지 않고 계속 존재하든, 아니든 그때 사람들은 지금보다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후세에는 무슨 입헌군주제니, 황권이니 하는 것이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랐다. 

* * *

바쁜 나날이 지속되는 와중에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해가 되어 정월 대보름 원소절이 되었는데, 이때는 방자명 일가의 가족들은 일찌감치 낙양으로 떠난 후였다. 

올 한 해 동안 집에서 복상 기간을 보내는 고청운은 집에 두 아이까지 부재였던 통에 꽤나 홀가분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그의 공무는 여전히 너무 바빴는데, 주로 황궁에서 벌어지는 잔치가 너무 많아서 홍려사의 사람들도 예부를 도와 다 함께 일을 해야 했던 것이었다.

바쁜 신년 행사들 속에서 드디어 정월 대보름이 되었고, 사람들이 이제 숨 좀 돌리려 할 때, 황궁으로부터 소식 하나가 전해져 왔다. 줄곧 앓아누워 있던 황태후(皇太后)의 승하 소식이었다! 그녀의 나이는 향년 79세였다.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필경 십몇 년 간 황태후는 병중이라 중추절(*중국의 추석)에나, 춘절(*중국의 구정 설)에 잠깐씩 모습을 보이고 곧바로 다른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돌아가 안정을 취하고는 했기에 그 존재감이 매우 낮았지만, 정말로 지금 갑자기 돌아가셨을 줄이야. 

고청운은 현재 온몸에 살이 뒤룩뒤룩 오르고 이룬 일도 없이 한 평생을 흐리멍덩하게 보내고 있는 진왕(晋王)이 생각났다가, 그보다 십여 년을 더 고생스럽게 살다 간 황태후가 머릿속에 그려져 입 밖으로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어쨌든 고청운은 황태후에게 그 어떠한 호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예법에 따라 간미와 함께 다음날 이른 아침에 소복을 입고 궁에 들어가 떠난 황가의 어르신을 애도하는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이 받을 영향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관리의 집안은 100일, 민가에서는 한 달 동안 혼사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 * *

모두가 바삐 황태후의 장례를 다 치르고 국상 기간에 접어들었다가 이제 막 다시 공무에 돌입했을 때, 영안제는 사람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말을 내던졌다. 바로 황제의 자리를 태자에게 넘겨줄 예정이니 예부의 사람들이 황위를 물려주는 준비를 차질 없이 진행하라는 어명이었다.

이 소식은 마른하늘에 떨어진 날벼락과 같은 소식으로, 사전에 일말의 아무런 예고도 없이 진행된 일이었기에, 고청운 같은 사람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당시 예부에 태자에게 황위를 넘기는 작업을 잘 진행하라는 발언을 하는 황제의 말투는 매우 가볍고도 담담했기에, 어좌(御座) 아래에 있던 고청운은 넋을 잃고 잠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보인 첫 번째 반응은 황제를 한 번 힐끗 쳐다보는 것이었다. 황제는 흥미롭게 혼란에 빠진 문무백관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청운이 또 다른 관원들의 얼굴을 둘러보니, 그들의 얼굴 표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했다.

“안 됩니다! 폐하!”

덕망 높은 몇 명의 노신들이 입을 여는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은 서로 쳐다만 볼 뿐 입을 다물었다.

이때 대전 한 쪽에 서 있던 태자가 마침내 정신이 돌아왔는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착실히 무릎을 꿇고 소리를 높여 말했다.

“부황께서는 춘추가 아직 한창이십니다, 다시금 심사숙고하시어 명령을 거둬들여 주십시오!”

이어서 태자는 계속해서 내리 말했다. 내용들은 대체로 황제가 아직 건강하니 국정에서 제발 퇴위하지 말아 달라 하는 종류의 말이었다.

태자가 이렇게 무릎을 꿇으니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일제히 무릎을 꿇었는데, 다만 대황자와 기타 몇 황자만이 반 박자 늦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여러 말할 필요 없다, 짐은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흠천감은 황위를 전하는 길일을 택하고, 예부에서는 예식을 잘 준비하도록.”

영안제는 손을 흔들며 말했고, 평소 듣기에 이미 나이 들어 보였던 목소리에는 오늘따라 유독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사실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이미 영안제가 발표를 한 이상 이 일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었다. 야망을 품고 있던 황자 몇몇은 넋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제의 명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고, 일부는 이 결정에 걱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아침 조례는 혼란과 경악의 도가니 속이었다. 일부 대신들은 대전에서 통곡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결국 모두가 함께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하는 상황으로 발전해 버렸다. 눈물을 흘리는 정성이 못내 지극하여 가슴속에 감동을 주었다.

이 상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그는 모두들 저마다 손수건을 꺼내들고 몇 마디 울부짖고 있는 이 광경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필경 신하들이 서로를 간간히 밀치며 엎치락뒤치락 몸싸움을 할 뻔한 광경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도 영안제가 이렇게 황위에서 내려가는 것이 아쉬웠다. 영안제는 규율을 지키는 황제로서, 대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모두 규칙대로 일을 처리해 나갔는데, 비록 아첨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꽤 안정감이 있어 아무 이유 없이 처벌을 받거나 신변에 문제가 생기는 일에, 특히 고청운 같은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영안제가 감정에 치우치는 황제였다면, 정말 모시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이런 생각에 미치자 고청운은 정말 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영안제는 올해 67세로, 39세에 즉위했으니 2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국정을 돌본 셈이었다. 

‘폐하의 건강이 아직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퇴위하려고 하시는 걸까?’

그의 결정이 너무 갑작스러웠던 고청운은 모두의 얼굴을 둘러보고 다들 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팔은 허벅지를 비틀지 못한다고, 자신의 힘이 모자라 이 일을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라, 영안제의 명을 믿기는 어려웠지만 결국 다들 대전에서 물러났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황제와 태자가 손을 맞잡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날은 모두들 업무를 볼 기분이 아니었는데, 국상 기간 중이 아니었더라면 퇴근 후 일부는 술집에 가서 거나하게 취해 있었을 것이었다. 특히 황자들이 포섭한 관리들은 부모가 죽은 것처럼 넋이 나가 있는 반면, 태자를 호위하던 세력들은 대전을 나설 때 보니 애써 담담한 척 하고 있으면서도 희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고청운은 홍려사에 돌아와 사람들이 소곤소곤 속삭이고 있는 모습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눈을 반짝거리며 엉거주춤하게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대고 있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이번엔 고청운도 본체만체했는데, 그 자신도 오늘은 공무를 볼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아아, 새로 교체된 폐하를 모시는 게 제발 너무 힘들지 않기를.’

* * *

오후 퇴근시간이 되어 집에 돌아오던 고청운은 정자에서 땅콩사탕을 먹고 있는 고전각의 모습을 보고, 한걸음에 다가가 그 앞에 쪼그려 앉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짱짱아, 왜 너 혼자 나와 있느냐?”

“할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새하얀 얼굴에 밝은 웃음을 띠운 아이는 흐르던 침을 꿀꺽 삼키며 옹알댔다. 

“제가 책을 다 봐서 어머니께서 상으로 주신 거예요. 할머니랑 어머니께서는 안에 계신데…….”

그는 말하면서 안채 쪽 방향을 가리켰다.

“할아버지에게도 땅콩사탕 한 알을 먹여다오.”

고전각의 입에 들어있는 사탕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고청운은 정신적 피로가 좀 심해졌는지 아무래도 사탕이라도 좀 먹고 기분이 나아지고 싶어 이렇게 말했다. 

고전각은 어리둥절해하며 새까맣고 큰 눈으로 고청운을 쳐다보고, 또다시 두꺼운 식탁보 위에 놓인 백자 접시를 둘러보았다. 그 위에는 땅콩사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큰데도 아직 사탕을 드세요?”

머뭇거리며 묻던 고전각은 잠시 생각해 보더니 또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버지는 많이 크셔서 이젠 안 드시는 거랬어요.”

고청운이 엄숙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단다. 네 아버지는 단 걸 싫어하고, 할아버지는 단 걸 좋아하지.”

고청운은 손자가 사탕을 아까워하는 눈빛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그는 당연히 고전각이 먹을 수 있는 사탕의 개수를 하루에 세 개로 정해 두었는데, 아이가 유독 단 것을 먹는 걸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것도 고전각이 말을 잘 들을 때만 먹을 수 있었다. 

“좋아요, 그럼 할아버지께 드릴게요.”

눈썹을 비비며 한참을 생각하던 고전각은 마침내 옷깃에서 손수건을 꺼내 침에 젖은 자기 손가락을 닦고 나서야 땅콩사탕을 새로 집어 들어 고청운의 큰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고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할아버지, 달죠?”

“당연히 달지, 고맙다 짱짱아. 할아버지 기분이 매우 좋아졌구나.”

고청운은 아이의 통통한 얼굴을 살짝 만져보다가 문득 아까의 일이 납득이 갔다. 

‘내 어찌 미리 불필요한 걱정을 하고 있었지? 즉위 예정인 새 황제 폐하께서도 그리 시중들기가 어려울 것 같지도 않고, 게다가 전 황제께서 옆에서 지켜보고 있을 텐데 말이야. 어차피 내가 다른 부서로 전출되어 가더라도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고, 또 난 어디로 전근을 가게 되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정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교편을 잡으러 가도 되겠지. 또 지금은 이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량가아가 이미 벼슬자리에 올라 있잖아.’ 

고청운이 기뻐하는 모습을 본 고전각은 아까 잠시 서운했던 것도 잊고 하하하 웃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