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34)화 (434/504)

434화. 사건 (1)

집으로 돌아온 후, 고청운은 방희림이 보내온 서신을 받았다. 그는 복상 기간 동안 현학과 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학생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었다. 서신에서 그는 고청운에게 상성에서 고영진과 고경이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알려 주며, 그 둘과 무심코 한 번 마주치게 되어 매우 즐거운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고청운은 말이 없었는데, 방희림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찬사를 보고 있자니, 꼭 자신이 애지중지 키운 아이를 누군가 가로채 가려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고청운은 다음 날 도착 보고를 하는 고영진의 안부 서신을 보니, 기쁘기만 했다.

* * *

고청운은 고영진과 고경이 상성 담주부(潭州府)를 지날 때 마침 부학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방희림과 마주쳤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고청운은 아이들이 보낸 서신을 보고, 진가(陈家)에서 외할아버지 진이문(陈一文)이 별세하고 나서 외할머니도 그 뒤를 따른 것을 알게 되었다. 두 분이 떠난 일자 간격이 열흘을 넘지 않았기에, 그들은 현지에서 잠시 더 머무르다가 임계촌으로 떠날 수 있었다고 했다.

또한, 부모님이 잇달아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은 소진씨가 고향으로 달려갔다가 과로와 상심이 겹쳐 병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이 내용까지 읽은 고청운은 깜짝 놀랐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용을 읽어 내려갔고, 소진씨가 지금은 건강을 회복했다는 내용을 읽고는 겨우 한숨을 놓을 수 있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고계산과 노진씨의 몸은 더 쇠약해지고 있었는데, 고계산의 정신이 혼미해지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소식에 고청운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갔다.

‘일들이 모두 한꺼번에 들이닥쳤구나…….’ 

아들들의 복상 기간은 내년 1월에 끝이 나고, 4월에는 고영진의 혼인식 예정되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영진이 이번 회시에 참가하지 말라는 의견에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의 옆에서 일찌감치 서신을 다 읽은 간미가 자연히 본가의 일에 대해 알고, 고청운의 손등을 위로하듯 다독거리며 말했다.

“부군, 언제 휴가를 내서 다녀오셔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도 안심하지 못할 것이었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년에 꼭 한 번 고향집에 다녀와야겠소.”

회시 전에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때는 모두가 바쁠 시점이었으니, 회시가 끝난 다음에야 황제가 휴가를 허해 줄 것이었다.

고청운은 또 다른 서신들과 배첩 등을 뒤적거려 보았는데, 모두 각지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진사 동기들이나 혹은 지인들이 보내온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그가 원하는 소식을 담고 있는 것은 없었다. 

“고모님들은 아직 찾지 못한 듯하오.”

고청운이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같은 때 사람을 찾기란, 정말이지 망망대해에서 바늘 찾는 격으로 힘든 일이구려.”

고청운은 피난 당시 그들이 어디에 정착했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전시(戰時)로 인해 세상이 어수선할 때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모두들 길에서 누구를 마주하거나 해도 서로 경계하여 남과 이야기하는 일이 드물어, 무슨 소식을 알아보려 해도 도무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고청운은 줄곧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계속해서 그들의 행방을 알아내고자 부탁해왔지만, 결국 돌아오는 소식은 없었다. 그는 고모들이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기도 했는데,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았던 것이었다. 진씨 가문에서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 고모들은 그들 뒤에 뒤쳐져 있었고, 그런 그들이 있던 곳에 반란군 무리들이 한 번 크게 지나갔었다고 했다.

물론 고청운은 이런 가능성들에 대해서 고계산과 노진씨에게 얘기할 수 없었다. 그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남은 희망도 너무 희박했다.

간미는 말없이 있다가 화제를 돌려 말을 꺼냈다. 손아래 처남인 간유의 아내가 임신했다고 하는데, 앞서 딸을 출산하고 다시 한번 임신했다니 모두 기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찌되었건 기쁜 소식이었다! 고청운도 덩달아 기뻤기에, 저녁에 방인소가 도화주를 한 잔 더 마신다고 해도 뭐라고 말리지 않았다. 심지어 축하주를 마시려는 방인소를 위해 좋은 말로 포장하여 연 씨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기도 했다. 

* * *

고청운은 집에서 3일을 다 채워 쉬지 않았다. 주원인은 새해에 임박해서 전국 각지에서 4품 이상의 지방관들이 여러 조로 나누어 경성으로 돌아와 황제를 알현하고 중요 업무 보고를 진행했기 때문인데, 어느 성에서 어느 일자에 경성으로 들어와야 하는지 정확하게 잘 배정해야 했다.

홍려사는 지방관의 경성 방문 및 황제 알현 문제도 황궁 쪽과 연계하여 인솔해야 했기에 이 시기에는 위아래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바빠졌는데, 다행히 매해마다 진행한다고는 하나 연말에만 한시적으로 행해지는 의례였기에 다른 기간은 지낼 만했다.

작년이야 고청운은 손발이 바빠 버벅거렸지만 올해는 경험이 쌓였고, 게다가 사전에 초안 설계를 해 두었기 때문에 모두 각자 맡은 바로 바쁘기는 했지만 일사분란하게 잘 진행되었다. 이번 행사에서 그를 기쁘게 해 준 한 가지는 방자명도 함께 경성으로 돌아왔다는 점인데, 그는 경성에서 며칠간 더 머물다가 춘절이 지나 낙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아내와 딸도 이번에 방자명이 함께 데리고 내려간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온가족이 다 모이게 되었다. 

“청운아, 서가아(*방서)가 그때 일로 정말 자네에게 감사한다고 하던데.”

황제 알현 순서를 기다리던 방자명은 고청운의 복상 기간이 다 끝나지 않았음에도 집으로 찾아왔다. 

“별거 아닙니다, 작은 일이 큰 문제로 번지지 않았으니 되었어요.”

고청운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방서는 한동안 고영진을 따라다니면서 전보다 더 영민해졌고 세상 물정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 왕비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주아까지 찾아와 고마움을 표했었는데, 그때 그들은 고청운네보다 조금 늦게 소식을 접한 모양이었다. 

“내 어찌 고마움을 표해도 모자란 것을, 이런 일은 네가 아니었더라면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을 거야.”

방자명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춘절만 지나면 부모님과 서가아 모두를 다 낙양으로 데리고 갈 참이다.”

“그럼 서가아는 언제 임산현으로 돌아가 과거 시험을 볼 수 있게 됩니까?”

고청운이 물었다. 원래는 올해 황립 서원을 수료하면 고향으로 돌아가 시험을 보게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물론 방자명은 어떻게 생각을 바꾼 것인지는 더 언급하지 않았고, 당분간 방서를 방인례와 방인소에게 맡겨 좀 더 공부하게 하기로 했다. 나이가 그렇게 많은데도 두 형제 사이에 방서의 교육 문제에 대한 갈등들이 좀 생겨났긴 했지만 말이다.

“급하지 않네. 아직 시국이 안정되지 않았으니, 조용하게 지내며 큰 파란을 대비하기로 했다네.”

방자명이 속으로 계획한 바가 있는 듯했다.

“그동안은 우리 원아가 낙양에서 혼례를 마치고 있을 게야. 혼사는 8월 중이지.”

“그때 저는 휴가를 내지 못해서 못갈 수도 있을 겁니다.”

고청운이 고개를 저었다.

“미아를 비롯해 가족들만 대신 보낼지도 모르겠네요.”

고청운은 문득 주아가 지금 회임 중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아직 방 형이 외할아버지가 되는 걸 축하해 주지 못했군요. 하하, 친할아버지는 되고 싶다 한들 아직은 언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보아하니 서가아가 이제 학업에 전념하게 된 것 같던데요.”

고씨 집안의 고전각은 내년이면 바로 글공부에 돌입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 것을 보고 한발 앞서면 또 한 발 앞서가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가. 이 일을 다시 언급하니, 방자명은 감정이 복잡해지면서 감회가 새로워졌다. 

“딸은 역시 본가보다 문벌이 좀 떨어지는 집안으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 옳은 일인 듯하네. 사위가 아이에게 잘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도와 줄 수 있으니 말이네. 아무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 쪽 집안이 좀 되면 사돈과 상의라도 하고 문제를 논할 수라도 있을 텐데, 아이가 황가로 시집을 가버리니 아무리 염려되거나 의심스러운 상황이 생긴다고 한들 정말이지 아무것도 할 수 없더군. 

네 딸 소아를 시집보낼 때는 반드시 눈을 크게 뜨고 딸아이에게 제대로 좋은 사람을 찾아 주어야 하네. 지금이야 예전과는 풍조가 많이 바뀌어 18, 19세가 되어 시집가는 일도 더러 있으니 급하게 하지 말게.”

고청운은 방자명의 준수한 얼굴 위로 스치는 불쾌한 낯빛을 보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정말이지 누가 아니라던가. 딸의 혼처를 알아보는 일은 며느리를 얻는 일 보다 더욱 신경이 쓰였다. 앞서 그와 간미는 사윗감을 물색하는 중이었는데, 뾰족한 수가 없던 찰나에 외할아버지의 일 때문에 잠시 사윗감 찾는 걸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요즘 경성의 물이 예전 같지 않아서 사돈 집안 찾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다. 

방희림이 다시 서신으로 혼사를 언급해도 고청운은 여전히 탐탁지 않아 했는데, 방정심에 대한 호감은 있었지만 그들 집안에 대한 불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은 그저 고경과 방정심이 서로 잘 안 맞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아 쪽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고청운이 질문했다. 육황자에게 작위가 부여되었다고는 하나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지극히 낮았다.

방자명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탄식하곤 말했다.

“큰일은 없는 듯하나, 부부가 서로 삐걱대는 것 같네.”

그는 시선을 고청운의 책상에 놓인 아직 펼쳐보지 못한 서신들 위로 향했다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올해는 탄경(*炭敬: 지방 관리들이 중앙의 권세가에게 겨울에 보내는 선물)이 예년보다 많았는가?”

고청운은 주아의 일에 대해서 방자명에게 더 캐묻지 않았는데, 정 궁금하면 나중에 연회에서 돌아온 간미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그 역시 화제를 돌리는데 덩달아 동참했다. 

그의 책상 위에 함께 놓인 서신 봉투들에는 ‘<사십현인전(四十贤人传)> 일부(一部)’ 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서신 봉투 위에는 ‘<매화시팔운(梅花诗八韵)>’ 아니면 ‘<대연(大衍)>’ 이라는 글씨들이 적혀 있었는데, 봉투 위의 글씨가 고상하고 우아했던 것에 반해 봉투 안에는 모두 은표가 들어 있었다. 금액은 동일하지 않았고 금액이 적은 것도, 큰 것도 있었다.

“네, 예년보다 많습니다.”

고청운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탄경이란 겨울이 되어 외지의 관리들이 경성의 관리들에게 보내주는 일종의 난방비 같은 것으로, 그는 청나라 때 이런 관행이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관리들 사이에서 이런 명목이 되풀이 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는 이 왕조의 관직 사회 수준이 아직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 슬프기만 했다.

“내가 귀경 한 번 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더냐? 폐하께서 아무리 엄하게 단속하신다고 해도 이런 일은 다 억제할 수 없는 법이지. 내가 안하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다 하고 있는 걸. 다행히 액수는 그리 크지 않더군. 난 그런대로 낼 만 하던데.”

방자명이 서신 봉투에 적힌 글씨를 따라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사십현인전 일부’에는 40냥이 들어 있는 게지? 그런데 이건 누가 보내준 걸까? 이렇게 대범하게. ‘매화시팔운’은 8냥이겠군. 나도 올해는 모든 사람에게 딱 이 정도만 보냈지.”

대연(*大衍: 고대 중국의 점을 보는 방법에서 사용하는 산가지의 수가 50개였다는 데서 나온 50을 가리키는 말)은 물론 50냥을 가리키는 말로, ‘대연의 수는 오십’이라는 해석에서 따온 것이었다.

고청운은 누가 보냈는지는 적혀 있지 않은 서신 봉투들을 잘 거두어 서랍에 넣어 두었다.

“괜찮습니다. 그들이 경성을 떠날 때, 보내는 송별 의례품에 도로 넣어 돌려주면 되니까요.”

이어서 두 사람은 다시 관가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같은 관가의 상황을 봐서는 황태자 문제에 있어 별 다른 방도가 없었기에, 그저 괜스레 남의 총알받이나 되지 않도록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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