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3화. 부시험관
양주성에는 항구가 하나 있어서 요 몇 년 동안 경제 발전이 매우 빨랐고, 인가도 매우 밀집되게 되었다. 고청운 일행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배들이 앞다투어 물살을 가르고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항구가 있는 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상인들이 오가고 있어서 외국인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 번화한 광경에 고청운은 감개무량해졌다가 누군가 끊임없이 그들 일행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입가에 자기도 모르게 경련이 일었다. 바로 어림군이 2개 부대나 자신들을 뒤따르고 있었던 것인데, 이래서야 그들이 어찌 신분을 숨길 수 있겠는가?
이윽고 그들은 지방관들이 열어주는 환영회 없이 부두에서 향시 시험관들이 기거하는 향시 회관으로 바로 건너갔다. 이번에 부정행위 사건이 불거진 이후, 고청운 일행은 더욱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대인, 이곳 수재들이 재시험 소식을 제때 통보받기는 했을까요?”
고청운은 향시가 열흘 앞으로 다가와 있어 너무 먼 곳에서 향시를 보러 와야 하는 수재들이 제 시간에 향시를 다시 보러 올 수 있을지 걱정되어 오 시랑에게 질문을 했다. 비록 그는 누군가 과거 시험 결과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한 이후, 대부분의 수재들이 성내를 떠나지 않고 줄곧 소식을 묻고 있다고 듣기는 했으나, 그래도 일부 수재는 귀찮은 일이 생길까 염려되어 진즉에 이곳을 떠났을 거라 짐작되었다.
“그 일은 걱정 마시게나. 재시험 소식은 조정에서 진작부터 박차를 가해 현에 사람을 보내 최대한 빨리 통보해 주었네. 이에 현학의 교유(*教谕: 현의 관아 내 직책)들이 수재들에게 하나씩 일일이 이 사실을 알려 주었지.”
오 시랑은 주임 시험관이라 고청운보다 사실을 더 빠르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좀 놓였다.
과연 그들이 마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갈 때, 고청운은 일부 사람들이 향시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이미 자신과 오 시랑의 이름이 널리 퍼져나가 있는 듯했다.
“아이고, 이번에는 오 대인이 주임 시험관으로 오신다는데? 그분은 시화에 재주가 있으신 것으로 기억하는데, 글씨도 매우 잘 쓰시지. 이번 시험에서는 아마 서예 솜씨가 아주 중요하게 평가될 걸세.”
“시부 문항은 분명 어렵겠군. 나는 시부 쪽에는 소질이 없는데.”
“시부가 아무리 어려워도 정해진 분량을 넘겨 기출이 되지는 않을 걸세. 갑자기 시부 문항만 잔뜩 기출 되진 못할 테니, 우리가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은 경의 문항이 어렵게 기출 될 것이라는 점일세. 절탑제(*截搭题: 과거 시험에서 경서에 나오는 어구를 추려내 이어 붙여 시험 문제로 삼은 형식의 문제) 문항만 기출 되지 않기를 바라야지.”
“산술 문항도 있지 않나. 고 대인께서도 오셨던데, 그분이 기출하실 산술 문제는 어려울까, 아니면 쉬울까? 참, 고 대인께서 오시는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그간 출판하셨던 책들 좀 죄다 사서 보았을 텐데, 내 소식이 너무 늦었지 뭔가. 그분의 저서를 좀 사 보고자 했을 때는 도처에 이미 서적이 다 팔려나가 남은 게 없었다네.”
“하하, 나는 산술 문항이 어려워질수록 좋네, 이쪽으로는 꽤 자신이 있거든.”
“두 대인께서는 모두 외국과 담판을 짓는 자리에 나선 적이 있지 않으신가, 그러니 이번 시험에는 외국과 관련된 문제들이 나올 것 같네.”
…….
인파가 너무 북적이는 바람에 사거리에서 통행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그 짧은 찰나에, 고청운은 찻집에서 수재들이 시험 문제를 두고 의논하는 소리들을 듣고 이마를 짚고 말았다. 이 광경은 옛날 그가 과거 시험을 준비했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그들 무리에는 저 사람들처럼 소식에 정통한 자가 없었던 반면, 저 사람들은 오 시랑에 대해 매우 잘 파악하고 있었다.
시험 문제에 관하여 고청운은 세관에 관해 무역의 균형과 관련된 책론 문제 하나를 펴냈다. 오 시랑이 동의만 한다면, 이 문제는 이렇게 기출이 확정될 것이었다.
“숙부, 저 학생들 참 활기차네요.”
고삼원이 웃으며 다시 고청운의 찻잔을 만져 온도를 파악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현시였다면 사정이 좀 나았을 텐데요. 시험 준비 전 진즉에 현령의 문풍을 파악하기가 쉬웠을 테니까요.”
이번 여정에서 고청운은 늘 그렇듯 간단하게 채비했고, 곁에 고삼원만 대동했다.
“다 그렇지 않겠느냐.”
고청운이 생긋 웃었다. 고삼원의 아들 고전양은 고영진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그 역시 여러 해 공부를 왔으니 내년에 있을 시험 준비를 한 번 해 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고영진의 경우, 고청운이 현 시국을 고려해 지난달에 서신 한 통을 써 보냈다. 그에게 내년 3월 회시에 참가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이 의견에는 방인소도 동의했다. 그렇다면 언제 경성으로 돌아와야 할 것인가? 귀경은 고향에 있는 고계산과 노진씨의 건강 상태가 어떤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늦어도 내년 4월에는 돌아와야 할 것이었다. 고영진의 혼례일자가 그 즈음이었으니 말이다.
* * *
이후 진행된 향시의 절차는 예전과 같았다. 다만 이번에는 향시를 보는 시점에 날씨가 좀 추워졌을 뿐이었고, 시험을 진행하는데 들어가는 인력도 예전보다 넉넉했다. 경성을 떠나기 전에 오 시랑과 고청운은 황제에게 의견을 물었었는데, 이번 향시의 시험장 입장 규칙과 관련하여 가죽옷을 입을 수 있도록 하고, 1장의 시험이 3일간 진행되어 총 3장의 시험을 9일 연속으로 진행했던 것에 반해, 회시의 방식처럼 1장이 끝날 때마다 시험장을 나서서 오후 및 저녁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시험장으로 입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시험이 진행되는 9일 내내 시험장에만 머물러야 했을 때보다는 응시자들의 사정이 훨씬 더 나아졌다.
이는 시험에 재응시를 해야 했던 수재들의 몸 상태를 고려하여 결정된 사안들이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했으니 그들에게는 약간의 보상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모두들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서 일을 처리하여 이번 향시는 순조롭게 끝났고, 중간에 그 어떠한 큰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 * *
고청운은 다시 경성 땅을 밟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때는 이미 12월 하순으로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간미는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당연히 매우 기뻐했다.
“눈보라 때문에 이렇게 빨리 돌아오시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간미는 그의 주위를 빙빙 돌며 만면에 기쁨이 가득한 모습을 보였다.
“돌아올 때 경항 대운하를 통해 왔더니 별다른 우여곡절 없이 순조롭게 돌아올 수 있었소.”
지금 고청운은 온몸을 뜨거운 물에 담그고 있었다. 이 욕실은 바닥 난방 설비를 하느라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제 값을 하여 지금의 그는 온몸이 따끈한 것이 비할 데 없이 편안했다.
양주에서 경성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이런 날씨에 왔다 갔다 해야 하다 보니 정말 힘들기는 했다. 하마터면 그는 찬바람 때문에 감기에 걸릴 뻔했는데, 오 시랑의 경우엔 집으로 돌아가 의원을 불러 약을 처방받아 좀 복용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몸 상태가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내일 바로 다시 조정에 드셔야 합니까?”
간미가 수건을 들고 그의 등을 문질러 주며 물었다. 향시를 주관하고 돌아왔을 땐, 황제에게 보고를 해야 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니오, 나와 오 대인은 지금 폐하의 알현 일정을 기다리고 있소.”
고청운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참, 진가아와 소아에게서 답장이 온 건 없소?”
“답장은 아직 못 받았어요.”
이 얘기를 언급하자, 간미는 좀 걱정이 되었다.
“이 두 녀석이 잘 도착했다는 확인 서신 하나 보내오지 않다니, 집에 돌아오면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얼마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지 모르고 있단 말인가? 9월에 경성을 떠났으니, 날짜를 따져보면 이번 달 안으로는 답장이 돌아왔어야 했다.
“진가아가 이번에 처음 귀향길에 오른 것도 아니니, 마땅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오. 아마 며칠 더 기다리면 서신이 오겠지.”
고청운이 위로했다.
* * *
황제는 그래도 세심한 편이라 고청운과 오 시랑에게 하루 정도 쉬고 다음 날 알현할 수 있도록 했다.
하루 정도 집에서 몸을 풀고 나서 입궁하여 황제를 알현한 고청운은 오 시랑의 뒤에 얌전히 서 있었다.
향시를 치르는 과정에 큰 파란이 없었으니, 그는 사실대로 이번 일정에 관한 것을 보고 드리면 되었다. 다만 그가 의외로 여겼던 것은, 기출한 시험 문제를 본 황제가 그에게 시박사(*市舶司: 세관과 비슷한 역할을 한 관아)에 대한 질문을 했다는 점이었다.
다행히 그는 사전에 이쪽 문제에 대해 고찰해 오고 있던 바, 요즘에 생긴 사치품의 풍토에 대하여 고할 수 있었다.
모두들 너도나도 은자를 사용하여 해외에서 들여온 향신료와 보석 등 일상에 별로 큰 쓸모가 없는 물건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국내의 금은을 해외로 반출시키는 작용을 일으켜 국내의 금은 등의 유출을 야기했다. 이러한 현상은 송나라의 상황과 약간 유사했지만 당시에는 아무도 제지할 수 없어 이를 만회할 재간이 없었는데, 지금 상황은 그때와 조금 달라 모두가 합심하면 이러한 문제를 사전에 해결할 수 있었다.
“폐하, 조정에서는 원래부터 구리와 은이 부족했는데, 만약 대량의 은 유출까지 더해지면, 통화(通貨)가 부족해지는 현상이 야기될 겁니다. 이로써 물가가 폭등하는 현상이 생겨나면 피해가 발생하는 건 우리의 백성과 조정이 될 겁니다. 우리가 해외 무역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본 왕조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이니, 사람들이 벌어들인 돈을 생산에 다시 재투자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켜야 할 겁니다…….”
고청운은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바에 대해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는 그가 그간 1년 정도의 시간을 들여 책을 읽고 자료를 살펴본 결과 얻어낸 성과였다.
다른 제왕들 면전에서라면 고청운도 좀 망설였겠지만 영안제의 앞이었고, 특히 서방세계가 지금 급부상하고 있는 지금 약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절박함에 처음부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음, 짐이 이해했노라.”
영안제는 조금 전 자신의 질문에 고청운이 답을 하면서 다른 문제까지 함께 거론할 줄은 몰랐다. 그의 거침없는 답변에 황제는 저절로 빙그레 웃는 표정을 지었다.
고청운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자신이 어디 잘못 말한 것은 없는지 생각하며 매우 불안해했다.
“이번 향시 일정으로 고생이 많았네. 짐이 사흘간 휴가를 줄 테니 돌아가서 푹 쉬고 오시게.”
마지막으로 영안제가 말했다.
고청운은 이 말을 듣고 당연히 너무나도 기뻤기에 다급히 말했다.
“알겠습니다, 폐하의 세심한 배려에 망극합니다.”
이어서 그는 예를 올리며 바로 물러나왔고, 하사품을 얻어 집으로 돌아갔다. 하사품의 물질적 가치야 크지 않았지만, 황제가 그에게 별 불만이 없었다는 걸 반증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번 만남으로 인해 고청운이 안타깝게 여긴 한 가지는 바로 황제의 기력이 예전만큼 충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가 오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런 것 일수도 있겠으나 고청운은 영안제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