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2화. 부정행위
관 소경은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봉 소경을 힐끗 쳐다보면서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칠칠치 못한 성정이야, 어쩐지 상서 어른이 그를 홍려사에 보냈다 싶었지.’
관 소경은 자신이 이미 늙었다고 느끼고 있었기에 지금은 그저 퇴직 때까지 편안한 나날이 계속되기만 바라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도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는데, 눈썰미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서자인 황자들이 적자의 지위를 탈취하고자 만들어낸 사단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히 황제가 태자에게 직접 조사를 가라고 시켰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황제는 뭐든 다 뛰어나고 영민했지만, 후계자 승계에 대해서만은 그 뛰어난 안목을 조금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황제는 도대체 태자한테 만족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조정 대신들은 이 문제에 대해 머리를 싸매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한 번 생각이 많아지면 일이 꼬인다고, 안정을 꾀하고자 하는 행위 때문에 되레 책이 잡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했다.
* * *
오후에 고청운은 집에 돌아와 막 옷을 갈아입고 서재에서 책을 몇 장 넘기지도 못했을 때, 장수원이 찾아왔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장 형, 오셨습니까!”
얼른 그를 바깥의 서재로 안내한 고청운은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물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고청운의 집이 아직 상중인데도 불구하고 장수원은 방문을 청했는데, 이 둘이 직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로가 친인척 간인 것을 감안하면, 상중에 방문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수원이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며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니, 또 무슨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겐가? 다름이 아니라 오늘 조정의 일 때문에 온 것이라네. 내 보기에 이 일이 매우 중대한 일인지라 자네와 이야기를 좀 해 보고자 한 거지.”
장수원은 너무 나태해서인지 권세에 빌붙어 이익을 꾀하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물론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건 두 사람의 입장은 일치하는 편이었다.
“신지, 폐하께서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다고 보는가? 하나하나 드러나는 사실이 정말이지 사람을 미치게 하는군. 내 보기에 누군가 이 일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더는 통제가 되지 않을 것 같네. 자네도 좀 보게나, 지금 이렇게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사건이 터지기 전에 제방 수도 공사 일도 있지 않았는가. 이런 일들 때문에 결국 백성들만 봉변을 당하는 게지. 폐하처럼 영명하신 분이 이런 점을 간파하지 못하고 계실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다만…….”
장수원은 고청운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쏟아내었다.
아마도 젊은 수재나 거인들과 자주 접촉해 왔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장수원의 성정은 일단 무슨 일이 생기면 매우 조급해 보이고는 했다.
집의 창문과 대문들이 활짝 열려 있었는데도, 고청운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솔한 생각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장수원의 말에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난번 해전 때도 다른 사람들이 감히 조잡한 짓거리를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을 보면 비록 폐하께서 상황을 잘 통제하고 계시다고 하지만, 태자 전하의 자리가 하루라도 안정적이지 못하니 다른 황자들이 자신들에게도 기회가 있다고 여기고 있는 듯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요 몇 달간 분위기가 좀 이상했으니까요.”
고청운은 황제가 반년 전에 한차례 병을 앓게 되면서 며칠 동안 조례를 진행하지 못한 후 이런 사건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라는 지금 나날이 번영하고 있었는데, 그는 태자를 세우는 일로 이 나라에 동요가 일까 봐 정말로 두려웠다. 속마음을 말하자면 그는 태자에게 마음이 가 있었는데, 옛날의 태자는 좀 더 거만해 보였었지만, 요 몇 년 사이에 그런 모습은 수그러들어 있었고,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며, 조정의 일과 정치에도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생각은 지금의 황제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는데, 태자가 적어도 다른 황자들보다는 정사를 처리하는 능력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황제만이 태자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들을 본 고청운은 고영진을 고향으로 돌려보낸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그들 세 부자가 조정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에 휩싸이지 않게 작은아들이 내년 회시에 참가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는데, 잘못했다간 괜히 남들의 총알받이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고영량의 경우, 다행히 요 몇 개월 동안 복상 기간이라 입궁해서 당직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고청운은 크게 마음을 졸여야 했을 것이었다.
“요즘 들어서 어쩔 때는 내 벼슬자리의 일을 한 번 제대로 하는 것도 힘들 때가 있다네. 남들에게 속아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몸을 사려야 하니 말일세.”
장수원이 한숨을 내쉬며 고청운과 눈을 마주쳤고, 이내 서로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어차피 핵심인물이 될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결국은 자신들의 행동에나 더 신중을 가하기로 했다.
보아하니 장수원은 당분간 집에서 마음이나 다잡으며 밖으로 다니지 않을 모양이었다.
* * *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사건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는지, 일련의 조사를 거치며 한 달 동안이나 사실 확인 작업이 계속되었다. 이윽고 사건의 내용과 경위가 밝혀지게 되었을 때, 고청운은 초 대학사의 몸종이 문제를 유출시켰다는 것과 통정사(*通政司: 국내외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맡아보던 중국 관명) 사람이 이를 도와서 모 수재가 시험 문제를 빼돌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신중하지 못하다니! 노비들이 얼마나 믿을 만하지 못한지 몰랐다는 말인가? 이런 사단이 이름 없는 사람들이 일으킨 유혈사태라는 거야?’
어찌 되었건 태자가 최종적으로 밝혀낸 이 사건에 연루된 관원은 뜻밖에도 십몇 명이나 되었는데, 각자가 저지른 잘못의 경중에 근거하여 귀양을 보내거나 아니면 면직 처리를 했다. 이번 사건의 책임자 격인 주임 시험관이었던 초 대학사는 즉각 참수형에 처했으며, 그의 처와 자식들은 3,000천리 밖으로 유배되었다. 그간 초 대학사가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맡은 바 직무를 열심히 해 온 사람이 아니었더라면 내려진 형은 더 무거웠을 것이고, 함께 연루되었을 사람도 훨씬 더 많았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태자가 이렇게 사건을 귀결 지은 이유에 대해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어차피 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도 황제가 태자에게 사건 처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에 그 어떠한 의견 표명도 하지 않았다는 게 생각났다.
사건이 마무리된 후, 황제는 고청운을 양주로 파견을 보내 향시의 부시험관 직을 맡게 하고, 예부의 오 시랑을 주임 시험관으로 내세웠기에, 결국 둘이서 양주 지역의 향시 재시험을 주관하게 되었다.
이번 향시의 부정 사건이 벌어진 양주 지역의 강소성(江苏省)은 부정행위가 밝혀진 이상 이전의 시험 성적이 당연히 무효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조정은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서 강소성 일대의 향시를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수재들이 이 무더운 8월 달에 이미 막 9일간 시험장에서 처참한 몰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고청운은 그들에게 깊은 동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지금은 이미 10월 말이 다 되어 날씨도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부시험관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언급을 하자면, 조정에서 오 시랑이 자신을 추천한다는 발언을 듣고 고청운이 멍해져 있을 때 황제가 그런 자신을 잠시 쳐다보더니 하문을 한 것이었다.
“고 애경(*爱卿: 군주가 신하를 칭하는 말로, 존중과 친애를 표한다)은 여기에 이의가 있는가?”
그때 고청운은 남몰래 깜짝 놀라 별 다른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절하며 고할 수밖에 없었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이렇게 결정이 되었다.
* * *
지금, 양주로 향하는 뱃머리에서 고청운과 오 시랑은 경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대인, 일전에 미처 여쭙지 못했는데 왜 폐하께 저를 강소성 부시험관으로 추천하셨는지요?”
시간이 급박했기 때문에 아침 조례가 끝난 후 그는 즉시 홍려사와 부하 직원들에게 돌아가 해결하지 못한 업무들을 인수인계했다. 남은 일들은 모두 전례를 따라야 했기에, 경험이 풍부한 관 소경에게 이 일을 맡기는 것은 퍽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그 후 고청운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 짐을 꾸렸다, 간미 등 집안사람들은 그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된 것에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는 황제의 명령으로, 할 수 없이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고청운은 바로 오늘 출발해야 했기에 전혀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오 시랑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는데, 바닷바람에 옷소매가 마구 펄럭여댔다. 그는 허허 웃더니 고청운 대신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답했다.
“신지, 자네는 함부로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비하하지 마시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격렬하고 첨예한 대립이 펼쳐져 있는 투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부는 자네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네.”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고청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시험 문제는 잘 생각해 두었고?”
고청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생각 중에 있습니다.”
‘그만하자, 오 시랑이 무슨 연유에서 나를 추천한 것이든 이미 이런 상황에 처한 이상 더 생각할 필요도 없으니.’
다만 출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하자면, 어제 오전에 황제가 직접 몇 명의 관리들을 모아 몇 문항 정도 출제해 주었고 어림군에게 문제의 유출 방지를 일임했기에, 그들 둘은 예전처럼 일부 문제만 기출하면 되었다.
잠시 오 시랑과 이야기를 나누던 고청운은 바닷바람이 세게 불어오자, 온도가 더 떨어지면서 날이 추워지는 걸 느끼고 급히 말했다.
“대인, 이제 바닷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니, 저희는 선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습니까? 건강에 유의하셔야 합니다.”
오 시랑의 우람한 체격의 몸종은 그 말을 듣고 고마워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노부는 늘 건강하네.”
줄곧 자신의 건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었던 오 시랑은 꽤나 의기양양하게 수염을 매만졌다.
“신지, 지난번에 노부가 보니 자네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더군. 만약 이쪽으로 계속 흥미가 있어 궁금한 게 생기거든 언제든지 이 노부를 찾아와도 좋네.”
그 말에 일순 헉 했던 고청운은 자신이 오 시랑이 그려 준 그림을 받고 매우 좋아했던 걸 떠올렸다. 그런데 그때 그건 기념 삼아 그림을 받을 수 있던 것이라 좋아했던 것이었다. 허나 그가 다시 생각해 보니 그림을 그리는 것은 확실히 자기 수양에 도움이 될 테니 나중에 자신이 퇴직할 때가 되어 그림 쪽으로 좀 깊게 배울 수 있게 되면, 퇴직 후의 여가 시간이 너무 무료해지지 않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간신히 오 시랑을 선실로 돌아가라고 권유하는데 성공한 고청운은 자신도 방으로 돌아와 어떤 시험 문제를 기출 해야 할 지 고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