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1화. 부고 (2)
북소리가 울리자 모든 문무백관들은 급히 두 줄로 나누어 서서 대열을 갖추었고, 악대의 연주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 줄을 맞추어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오황 만세 만만세(*吾皇万岁万岁万万岁: 우리 황제폐하 만세)’ 라는 소리와 함께 문무백관들이 절을 마치고 나면, 관리들이 주사(*奏事: 황제에게 보고함)를 시작했다.
고청운은 손에 상아홀(*象牙笏: 상아(象牙)로 만든 홀(笏). 홀이란 1품에서 4품까지의 관위에 있는 자가 관복을 했을 때 손에 가지는 수판(手板))을 든 채, 위쪽의 빈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황제에게 아뢸 일이 있으면 미리 홀에 간단히 말할 내용을 적어 놓았는데, 그는 황제에게 아뢸 일이 많지 않아 상아홀이 아주 매끈했다.
비록 아뢸 내용이 없었음에도 그는 아주 열심히 다른 사람들의 주사를 경청하고 있었고, 오래지 않아 모두의 관심이 다른 곳을 향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황제가 몇 가지 일을 해결하고 나자, 갑자기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일이 매우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군.’
옆의 오 시랑을 한 번 쳐다본 고청운은 그가 자신을 향해 눈짓을 해 주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와 관계된 일은 아니구나.’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한 어사가 양주에서 치러진 과거 시험에 부정행위 및 뇌물 수수 사건이 있었다고 아뢰었던 것이다. 이 말에 온 장내가 술렁거렸다.
‘과거 시험에 부정행위라니? 본 왕조에서는 벌써 30년 동안 이런 사단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건만! 그런데 양주의 주임 시험관이 누구였지? 그건 초유(楚瑜)의 친숙부가 아니었던가?’
고청운은 자신의 진사 동기인 초유를 떠올렸다.
‘그가 동궁(*东宫: 황태자 혹은 태자궁을 이르는 말) 쪽에서 근무하고 있었지, 아마.’
머릿속으로 초유를 떠올린 그는 잇따라 곧 태자도 함께 떠올렸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티 나지 않게 태자 쪽을 쳐다보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보아하니 조정에 다시 한번 큰 파동이 일 것만 같았다. 그는 이 불길이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까지 옮겨 붙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날 아침 조례에서 보고된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 사건으로 인해 모두들 조만간 큰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만 황제는 매우 격노했음에도 불구하고 뜻밖에도 태자를 시켜 대리사와 형부의 사람을 데리고 양주에 가서 자초지종을 조사하게 시켰다.
* * *
아침 조례가 끝나고, 얼굴색이 창백해진 초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지금 첨사부(*詹事府: 황자가 거주하는 동궁의 살림 및 업무를 맡아보던 관청)에서 3년째 정4품 소첨사(少詹事)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초 형, 괜찮으신지요?”
초유의 걷는 모습이 좀 불안해 보여, 고청운은 급히 걸음을 늦추고 그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진사 합격 동기 사이였는데, 초창기에는 그런대로 관계가 괜찮아서 늘 함께 모여 술도 마시고 문회 등에도 참가했으나 한림원을 나오고 난 후, 사이가 멀어졌다.
초유는 일심전력으로 태자의 편에 서서 활동하게 되면서 고청운을 누누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고, 고청운은 자신들 두 사람이 같은 편이 아니라고 느끼고 그의 회유를 거절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사이도 조금씩 멀어지게 된 것이었다. 후일 고청운이 다시 또 승진했을 적에 초유는 아직도 단념하지 않았던건지 다시금 회유를 시도했지만, 고청운은 여전히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초유는 그것이 이제는 언짢았는지 더 이상 그를 회유하려는 술수를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던 간에 두 사람은 그래도 여전히 마주쳤을 때 한담 정도는 나눌 수 있는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초유는 고청운의 물음을 듣고도 멍해 있었다가 고청운의 부축도 거절하고는, 방금 보인 추태를 숨기려는 듯 한번 심호흡을 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괜찮네, 신지. 자네가 믿건 아니건 간에 우리 숙부님은 늘 청렴결백하시고 공정하신 분일세. 그런 분이 어찌 뇌물을 받으셨겠는가? 문제 유출이라니? 억울한 일을 당하신 걸 게야!”
작년에 그의 할아버지가 이부상서(吏部尚书)직에서 퇴직을 했다고는 하나, 아직 세력이 건재한 그들 집안에서 어찌 얼마 되지 않는 은전 따위를 위해 시험 문제를 유출하여 과거 시험에 부정행위를 했다는 걸까?
고청운은 초 대학사(楚大学)의 평소 인품이나 사람됨에 대해 마음속으로 그래도 인정하는 면모가 있었다. 그는 그간 사림(*士林: 사회와 정치를 주도한 세력) 안에서의 명성 역시 고결했는데, 판에 박힌 듯한 융통성 없는 면모와 허술함 없는 것으로 유명해서 그런지 뜻밖에도 과거 시험의 부정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다만 아까 두 어사가 가져온 증거물들은 너무 놀라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태자 패거리가 아니면 침묵을 지키거나 이미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슬슬 위해를 가하고 있었다.
“지금 폐하께서 태자 전하와 사람들을 시켜 진상을 알아보러 파견을 보내셨으니, 중상모략을 당했을지언정 굳이 초 형이 나서서 결백을 밝히지 않더라도 결백한 자는 그 결백함이 제대로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숨죽이고 있던 고청운은 적당한 말이 떠올라 마침내 입을 열어 그를 위로했다.
초유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숨과 함께 말했다.
“내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 먼저 가 보겠네, 우리 다음 기회에 이야기 나누세.”
말을 마친 초유는 공수를 해 보이며 인사를 하고는 표연하게 멀리 가버렸다.
고청운은 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며, 방인소가 일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관직 생활이란 역시 너무 서슬이 퍼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초유는 아주 풍족한 생활을 영위했는데, 부티가 나고 늘 늠름한 모습에 그의 옆에는 항상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이 탄핵 사건이 벌어지자, 옆에 붙어 있던 사람들은 금방 없어져 버렸고, 또 어떤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함께 연루라도 될까 그를 피하기 급급해 했다.
오늘의 그는 높은 벼슬과 많은 녹봉을 받는 고관대작의 모습이었으나 내일의 그는 죄수의 모습일 수도 있었다.
고청운은 속이 너무나 갑갑해서 자신의 옆구리 쪽에 매어놓은 옥패를 만지작거렸다. 황권 사회에서 벼슬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안정감이 떨어졌다. 자신이 아무리 높은 벼슬자리에 앉아 있다고 해도 황제가 쓴 성지 하나에 그 자리가 주던 영광이 연기같이 싹 사라져 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문득 허기가 지기에 품에서 염낭을 꺼내 그 속에 든 야채떡 하나를 꺼내어 입에 물고, 머릿속으로 이번 일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았다.
다행히 방자명이 지부직을 맡고 있는 곳은 낙양 지역이었기에 양주성내에 그들과 관련된 사람은 별로 없었다. 기껏해야 두 명의 진사 동기가 그 지역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다들 자신들과 관계가 깊지 않은 이들이었다.
* * *
고청운이 홍려사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 식사 시간을 훌쩍 넘겨 있을 때였다. 고삼원이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탕비실에서 데워 둔 찬합을 들고 와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으며 재촉했다.
“숙부, 음식이 식지 않게 잘 데워두고 있었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고청운은 집에서 먹던 대로 흰쌀밥이 가득 담긴 밥 한 공기와 구운 계란 두 개, 나물 한 접시와 죽순 요리 한 접시를 보자, 오는 길에 떡 몇 개를 집어먹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식욕이 올라왔다.
“숙부, 조정에서 일이 났다고 하던데요?”
고삼원이 그의 관모를 잘 놓아주며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누군가 과거 시험의 부정행위와 관련된 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고청운은 또 한 번 그 소식에 놀라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조정에서 방금 나온 이야기인데, 내가 아직 조정에서 홍려사로 돌아오기도 전에 삼원이가 알고 있다니.’
“그래, 이 일은 어디 가서 더 묻지도 말고, 또 밖에서도 이에 관해 그 어떠한 말도 내뱉어서는 아니 된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하세요. 잘 이해했습니다.”
고삼원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조금은 다행스러운 듯 다시 말을 이었다.
“숙부, 일전에 양주에서 시험관을 하지 않으신 게 참 다행입니다. 만약 가셨던 곳이 양주였다면, 다 같이 운이 좋지 않을 뻔했습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고청운의 곁을 지켰기 때문에 당연히 과거 시험에 관한 부정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스스로 결백하고 무고한 경우라 해도 의심이 제기된 이상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아 좌천 아니면 면직 처리가 되어 일반 백성 신분이 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옥고를 치르게 될 수도 있는 등 그 뒷일이 매우 심각할 것이었다.
그런 결말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던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내왔는데, 올해 갑작스레 이런 큰 사건이 터질지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폐하께서 태자 전하를 시켜 직접 이 사건을 조사하게 한 건 도대체 어떤 의중이신 걸까? 초 대학사가 태자 전하 쪽 사람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말이야.’
고청운은 이번 사건의 경과를 생각해 보니, 평소에 명성도 없고, 학업 역시 부진하던 어떤 사람이 돌연 과거에 급제하고 심지어 그간 구사하지 못했던 아주 수려한 문장력을 발휘해 시험 답안을 작성했으니 해당 시험에서 낙방한 사람들이 당연히 그 사실을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 명이라면 그나마 낫겠지만, 그런 사람이 네, 다섯 명씩이나 된다면, 당연히 시험 결과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것이었다. 해당 인물의 평소 학식이 어떠한 수준인지 다른 사람은 모를 수 있지만, 주변의 과거 시험 동기들은 그들의 실력을 확실히 잘 파악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낙방한 수재들은 시험관들이 문제 유출을 한 게 아니냐, 뇌물을 수수한 게 아니냐면서 문제를 지적하는 여론을 조성했을 테고, 어사들도 이러한 여론을 감지하고 황제에게 보고하게 되었을 것이었다.
이 얼마나 사람들을 뒤흔들만한 사건이란 말인가. 고청운은 내일 경성의 소보들이 이 소식을 틀림없이 폭로해 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게 될까? 과연 이번 사건의 주동자로 또 누가 지목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고청운은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채 준비된 점심을 다 먹어버렸고, 소화를 하기 위해 정원으로 나가 좀 걷고자 했다.
정원 밖에선 이미 홍려사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곤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고청운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가 소속된 홍려사의 사람들은 매일 황궁에서 당직을 서기 때문에 소식에 매우 정통했다. 단지 모두가 자신의 분수를 지키느라 누가 무슨 일을 벌이고 다니는지 못 본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관 소경과 봉 소경이 고청운이 온 것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걸어왔다.
“대인, 그 사건을 정말 초 대학사가 벌인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고청운의 귓가에 대고 봉 소경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
“정말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앞뒤가 너무 맞지 않잖습니까.”
고청운이 낮게 헛기침을 하고,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관 소경을 힐끗 쳐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말하기 어렵네,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이라 우리도 함부로 넘겨짚을 수는 없지 않나.”
그는 좀 언짢아져서 그들과 이 일의 잘잘못에 대해 조금이라도 토론하고 싶지 않아졌다.
고청운의 표정을 본 봉 소경은 머쓱했지만, 자신의 상관이 평소 보이던 품행에 생각이 미쳐 다시 얌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