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0화. 부고 (1)
고청운의 뒤를 따라 서성거리던 고영진은 아버지가 끝맺지 못한 말이 무슨 내용이었을지 알고 웃으며 답했다.
“아버지, 이 일은 아버지의 외가와 관련된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제가 가는 건 정상이지요. 이런 일은 당연히 과거 시험보다 더 중요합니다. 아무튼 저는 아직 젊으니, 앞으로 또 회시에 참가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게다가 시험 준비에 지장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는 거지요.”
그는 자신의 튼튼한 가슴을 쳐 보였는데, 자신의 체력에 꽤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한 고청운은 결국 이렇게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어서 짐을 싸고 채비를 하거라. 이런 일을 천천히 진행할 수는 없지.”
비록 이곳에서 상성까지 가는데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기에 아들이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외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나 있을 테지만, 그래도 현지 묘소에 가서 향을 피워 올리고 제사를 지내 추모해 드려야 했다. 또 외할머니도 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청운이 생각지도 못했던 복병은 고경이 상황을 전해 듣고 뜻밖에도 자신도 동행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아니 된다. 오가는 여정이 너무 힘들게야. 너는 오라버니들처럼 장거리 여행을 해 본 경험도 없지 않느냐.”
고청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이라 육지에서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편하기야 하겠지만, 배 위에서 변함없는 풍경과 끊임없이 마주하며 제한적인 단조로운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은 극히 무료한 일이었다. 또한 운하를 통해 가는 구간은 그나마 괜찮으나, 바닷길을 통해 가야 할 때는 풍랑을 만날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 위험까지 따랐다. 이 여린 아가씨를 어찌 그런 고생길로 내몰 수 있겠는가?
“아버지, 저는 그래도 가고 싶어요. 전 아버지의 외가댁 분들을 아직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잖아요.”
15살의 고경은 피부가 희고 매끄러웠으며, 그 용모도 청아하고 수려했고, 몸놀림도 매우 민첩하고 아리따웠다. 또한, 그녀의 기질은 매우 점잖아 학자의 느낌을 짙게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런 자태로 고청운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전 몸도 튼튼하잖아요, 아버지도 제가 잔병치레가 적다는 걸 그간 봐오지 않으셨어요?”
고청운은 이 모든 공세를 견딜 재간이 없어 눈을 깜박거리며 머리를 굴렸고, 그녀의 사윗감을 물색하는 동안 딸이 은근히 성혼 문제에 거역했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좀 불안해졌다.
‘어쩌면 딸은 직접 얘기했던 것처럼 정말 혼인을 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니면 이 아이는 정말로 심심이를 마음에 두게 된 걸까?’
하지만 방정심은 1년이라는 복상 기간을 치르는 터라, 이미 몇 달이 지나도록 그들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 아무튼 저는 제가 아직 시집가지 않았을 때 한 번 다녀와 보고 싶어요. 나중에 시집가고 나서는 이럴 수 있는 기회가 적잖아요.”
결국 고경의 이 한마디가 고청운을 흔들었다.
고청운이 허락했으니, 간미와 방인소까지도 어쩔 수 없이 이번 결정에 동의하게 되었다.
남매는 허락이 떨어지자 재빨리 짐과 선물을 챙겨 들었고, 이튿날 바로 출발했다. 이는 가히 엄청난 진행 속도였다.
* * *
그들이 떠나자마자 고청운을 비롯한 가족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바로 복상에 들어갔다.
상을 치르게 되면서 고청운은 갑자기 조용하고 한적한 나날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동안은 머리를 쥐어 짜가며 어떻게든 거절했던 초대 등에 이제는 노골적으로 당당하게 댈 수 있는 거절 이유가 생겼다.
누가 그를 초청하러 오거든, 상대방이 제대로 볼 수 있게 신발에 매어 둔 숙마포만 드러내 보이기만 하면 되었고, 이를 본 상대방은 분별 있게 상황을 이해해 주었다.
* * *
이런 나날들이 며칠 지나지 않아, 고청운이 집필한 <포수강좌(炮手教程)>가 드디어 인쇄를 마치고 정식으로 출판되었다. 대부분 군대에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샀는데, 일전에 고청운이 공부에 머물며 행했던 업적들이 있었기에 군내에서는 고청운의 인지도가 꽤 높아 포수 쪽으로 관심이 있는 병사들이 이 책을 구입해 보았고, 다른 무장들 역시 이 책을 사서 자신의 서고를 채웠다.
다만 이러한 책의 판매량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는가. 잘 팔린다면 그것은 거짓일 것이었다. 판매량 저조의 주원인은 군대에 글을 아는 병사가 너무 적었고, 또 대부분 각 지역의 군대에서 해당 서적을 구입해 몰래 화포 포수 학원을 개설해 이전에 고청운 등이 경성에서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포수 양성하는데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 교습서는 실전 전쟁에서도 증명된 아주 효과적인 수단을 도입하여 제작한 책이라, 포수가 화포의 명중률을 효과적으로 높일 수 있는데 크게 기여했다.
황제와 내각에서도 그의 이러한 행보에 격려하는 태도를 취했다.
고청운은 <포수강좌> 서적의 판매고에서 보이는 그 쓸쓸한 지표에 대해 이미 이럴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이러한 성과 지표를 본 사장정만 이를 빌미로 단념하지 않고 이제는 화본을 써야 할 때라며 시도 때도 없이 그를 종용하곤 했다.
고청운은 어이가 없어서 재빨리 서신을 회신하여 이를 거절했다.
‘이럴 시간에 책 몇 권을 더 번역하는 것이 낫지.’
그가 화본보다 번역을 택한 제일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지금의 자신은 돈이 부족하지 않아 화본을 다시 집필할 원동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 * *
아무리 지금 고청운이 복상 기간을 보내고 있다고는 하나, 그래도 평소대로 조정에는 들어야 했다.
그래서 이날 아침, 그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전 4시 45분에 일어나 헐렁한 옷을 입고 세수를 마친 후 제일 먼저 미지근한 물을 한 사발 마시는 것을 시작으로, 바로 정원으로 나가 권법 두 식(式)을 연마하면서 몸을 좀 더 풀고는 방으로 돌아와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이때쯤 되면 간미가 깨어나 있었다. 고청운은 그녀가 회임했을 시기를 제외하고 줄곧 그녀를 자신이 일어나는 시각과 비슷한 시각에 일어나게 하고자 노력했으나, 그녀는 도통 자신의 권고를 듣지 않았다.
고청운은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고 그 위에 베옷을 한 겹 더 덧입고는 다시 간미의 도움을 받아 관복을 걸친 후 안에 입은 베옷을 조심스럽게 정리했다.
이때 시간은 오전 5시 20분으로, 그가 문을 나서는 시간은 아무리 늦게 준비를 해도 오전 5시 35분을 넘기지 않았다. 이 시각이 되면, 고청운은 이미 만두와 밑반찬을 아침으로 다 먹은 후라 정신 상태가 매우 좋았다.
그리고 이 시각은 고영량이 막 기상을 하는 시각이기도 했다. 고청운이 홍려사경직에 오르고 난 후, 두 부자가 동시에 문을 나서는 일은 아주 적었다.
고청운은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대부분 말을 타고 출근을 했다. 이 시각은 아직 날이 완전히 다 밝아질 때가 아니라, 겨울이었다면 길을 걷는데 의지할 다른 빛이 더 필요할 정도였는데, 게다가 지금 막 아침 식사를 마친 참이라 말에 올라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조금 천천히 가야 했다.
거의 오전 6시가 되었을 때야 하늘이 좀 어슴푸레하게 밝아왔다. 이때 즈음 그가 지나치고 있는 곳은 모두 대문이 높고 큰 부잣집들이 몰려 있는 큰길로, 양옆에 매달린 등불만으로도 온 거리가 충분히 밝았고, 길도 넓고 인파가 적어 그가 말을 채찍질하여 힘차게 달리기에 충분했다.
고청운은 보통 6시 반 정도면 황성의 서장안문(*西长安门: 서장안문은 장안우문(长安右门)으로, 장안좌문과 함께 황성에서 내성으로 통하는 두 개의 측문(側門)임, 황성 정문인 천안문 밖 좌우 양측에 설치됨)에 도달했다.
고청운은 여기서 말에서 내려 얼굴을 문질렀는데, 지금 계절이 늦가을이라 그런지 얼굴과 손에 차가운 느낌이 확연히 느껴졌다.
그는 좌우를 한 번 둘러보고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태상사경(太常寺卿)과 인사를 나눴다. 이후 고삼원과 소만의 도움을 받아 의관을 정리하고, 궁문의 어림군(*御林军: 황제의 근위군)의 한 차례 검문검색을 받고 나서 함께 황궁 안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 * *
그들은 가는 도중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때때로 고청운은 길에서 자리를 안내하던 홍려사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눈짓을 했다. 이때는 아직 아침 조례가 시작할 시간이 아니었기에, 고청운 등은 먼저 조방(*朝房: 조신들이 조회를 기다려 모이던 방)으로 가서 대기해야 했다. 이곳은 아침 조례에 참석하는 관원들이 잠시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청운은 자신의 품계에 따라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조방으로 들어가 다른 관원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가 문가 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누군가 잽싸게 뜨거운 차를 건네주었는데, 차의 온도가 고청운이 딱 좋아하는 온도로 맞추어져 있었다. 대체로 황궁 안에는 홍려사 사람들, 즉 자신의 사람들이 배치되어 있는 곳이니 이런 편의가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던 고청운은 봉 소경(封少卿)이 자신의 앞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재빨리 일어나 그와 함께 밖으로 걸어 나가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의 직속 수하인 좌우 소경은 교대로 황궁 안에서 당직을 섰는데, 오늘은 마침 봉 소경의 당직일이었다.
고청운은 말로는 무슨 상황인지를 묻고 있었음에도 머릿속으로는 어제 있었던 일을 재빨리 한번 되짚어 보고 있었는데, 자신이 뭘 더 해야 할 일은 없어 보였다.
‘폐하를 알현할 외빈도 없고, 지방 고관의 아침 조례 참석 건도 없는데…….’
만약 추가로 진행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면, 사전에 먼저 연락을 받았을 것이었다.
“대인, 오늘 분위기가 좀 안 좋습니다. 제가 감찰어사 두 명이 오늘 아침 조례에 올라오는 걸 보았는데, 그들의 거동이 좀 수상쩍었습니다.”
봉 소경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그 두 사람은 이전에 양주(扬州)에 근무하던 자들인데, 원래 일정상으로는 이렇게 빨리 경성으로 돌아올 일이 없는 자들입니다.”
어사(御史)는 언관으로서 특수한 직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경성에 머무르고 있는 한 품계에 관계없이 조례에 참석할 수 있었으며, 특히 관료를 탄핵하고 싶을 때 그런 특수한 권한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이는 황제가 그들에게 부여한 권한이었다.
“너무 관여치 말고, 그냥 원래 따르던 규정대로 예의에 맞게 그들을 인솔하면 될 일이네.”
홍려사는 자리 배치를 맡아 인솔하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조례에 참가하는 관원들의 인원수는 일정하지 않았기에 문제가 생겼을 시 죽도록 고생만 하고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대체로 일부가 가지고 있는 이름뿐인 허직이 품계가 높고, 외려 실권을 쥔 사람의 품계가 그들보다 훨씬 낮을 수도 있거나 혹은 누군가는 어제부로 갑자기 좌천된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자칫 실수를 했다가는 원한을 맺기가 쉬웠다…….
이 모든 변수들은 홍려사의 사람들이 얼마나 정보력을 잘 구성하고 있는지를 검사하는 시험과도 같았기에 그들은 자리 인솔에 있어 매우 심사숙고를 해야 했다.
다행히도 홍려사에 재직 중인 관리들은 경험이 풍부했고 관직변동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봉 소경 등은 아주 가끔 스스로 자리 배치를 결정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나 고청운을 찾아와 의견을 묻고는 했다.
고청운은 방금 봉 소경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표정은 좀 심각해졌다.
그는 상대방이 무엇인가를 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오면서 그가 본 몇 개의 조방 분위기가 약간 괴이했던 것이다. 보통 여느 때 같았으면 지금쯤 다들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휴식을 취하고들 있었을 텐데, 왠지 오늘은 다들 이리 저리 눈을 굴리며 서로 입을 잘 열지 않고 있었다.
‘양주라, 양주에서 벌어질 만한 일이 뭐가 있지?’
고청운은 속으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자신이 이와 관련하여 알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다는 걸 깨닫고 결국 답을 찾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이 정보력이 좀 떨어지는 것은 늘 중립을 지키거나 사람들과 접선하고 교류하는 일들을 줄이고 있는 그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는 바람에 그는 중요한 요소들에 어둡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