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28)화 (428/504)

428화. 반항기

집에 돌아온 고청운이 세 번째 정원이 있는 곳에 들어서자, 바로 요란하게 깔깔대는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웅웅,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녀오세요?”

방인소와 시소를 타던 고전각은 고청운을 보자 눈이 커지더니, 그 작은 손을 내밀어 흔들며 인사를 했다.

고청운은 뽀얗고 통통한 손자를 보고는 얼른 자신의 책을 내려놓고 몇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스승님, 오늘 벌써 기원에 다녀오셨습니까?”

‘음, 드디어 아기를 안아보았구나.’ 

고청운은 온몸에 젖내가 풀풀 풍기는 고전각을 힘껏 품에 안으며 그 하얗고 보드라운 얼굴에 뽀뽀를 하고 웃으며 물었다. 

“짱짱아, 방금까지 고조할아버지랑 뭐 하고 놀았느냐?”

“시소, 시소요.”

고전각은 고청운의 턱밑에 뻗친 수염에 찔려 볼이 살짝 아팠지만 그의 다정함이 익숙했기에 별것도 아닌 듯 깔깔 웃었고, 이내 고청운의 뽀뽀를 피하면서 앙증맞은 손으로 고청운의 머리에 씌워진 관모를 움켜쥐었다.

서둘러 그의 작은 손을 제지한 고청운은 시소에 올라탄 방인소를 바라보았다.

“요즘 경성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돌아다니는 것 같구나. 축국 구단도 만들어 축국 행회(*行会: 동업 조합)에 참가 신청도 하는 모양인데, 지금 거리가 어찌나 시끌벅적한지. 어디를 가도 그렇게 사람이 많을 수 없어. 기원의 늙은이들도 다들 구경하러 가버려서 바둑 둘 사람이 몇 명 남지 않아 노부도 일찍 돌아왔단다.”

방인소는 약간 서운한 듯했다.

“이 노부가 일찍 알았더라면, 차라리 낚시를 하러 갔을 게야.”

축국 행회는 민간 조직으로 축국을 즐기는 일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 규모가 매년 민간 축국 대회를 개최할 수 있을 정도로 역동적으로 커졌다.

“아이고, 스승님, 며칠째 계속 물고기를 잡으셨는데, 또 낚시하러 가신다고요? 여기서 더 잡으시면 저희 집에 있는 물고기를 다 못 먹을 지도 모릅니다. 어항에 더 들어갈 자리도 없어요.”

그는 스승님이 직접 잡아온 생선을 하인들에게는 내주지 않으려 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각 집마다 삼시세끼 물고기 반찬을 올려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상상만으로도 왠지 자신의 몸에서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청운이 방인소가 낚시하러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방인소와 일행들은 경성 부근의 낚시터가 도전성이 떨어진다며 매번 아주 멀리까지 걸어 나가 낚시를 했는데,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때로는 밖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미 다들 80세가 다 된 노인들이라 그들이 밖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으면 집안사람들이 안심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대가족이 어찌 이 정도를 다 못 먹겠느냐?”

방인소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많으면 친지나 지인들에게 좀 보내주자꾸나. 그러면 다 먹을 수 있을 게야.”

“할아버지!” 

조그만 고전각은 고청운과 방인소가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지켜보더니, 고청운의 관모를 잡아당기며 침을 줄줄 흘렸다.

고청운은 그의 턱받이를 잡아당겨 침을 닦아주고는 다시 아이의 통통한 몸을 고쳐 안으며 말했다.

“스승님, 꼬맹이가 정말 꽤나 무겁습니다. 어쩐지 량가아가 엄살을 부리더라고요.”

눈 깜짝할 사이에 고전각은 3살이 되었는데, 날짜를 따져 보니 올해 8월이면 벌써 만 3살이 되는 것으로, 4살이 되면 이제 글공부를 시작할 준비를 해야 했다.

“노부는 진작부터 안아주지 못하겠더구나.”

방인소가 그를 도와 관모를 벗겨 주었다. 

“이 아이는 참 키우기 쉽지, 먹을 것도 가리지 않으니 말이다. 언제 동생을 볼 수 있으려나, 곧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서 노는 것이 외로울 게야.”

고청운은 이번에 말을 하지 않았다. 영요는 고전각을 출산할 때 심한 편은 아니었지만 몸이 조금 상하여 몸조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는 그동안 그녀의 건강이 많이 회복했다는 말을 듣긴 들었다.

그와 간미는 둘째 아이를 가지라고 부부에게 재촉하지 않으려 했는데, 결국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방인소는 이 사실을 아직 알지 못했고, 단지 어린 증손주 부부를 당초의 고청운 부부처럼 여기며 너무 빨리 재촉은 하지 않지만, 둘째 아이를 갖는 것은 보고 싶어 했다.

* * *

두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안채로 향하자, 뒤따르던 여종 하나가 그들이 두고 간 물건들을 정리해 가져왔다.

안채에는 집안 여인들이 모두 모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고청운과 방인소가 들어오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방인소는 바로 자리에 가서 앉았다. 

바쁜 집안 상황을 본 고청운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마저 일들 보시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저 일들 보시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앵무새처럼 똑같이 말을 따라하며 손사래를 치는 고전각의 모습이 고청운과 거의 똑같아 보는 이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 * *

잠시 뒤, 간미는 고청운을 따라 침실로 돌아왔다.

고청운이 무심코 관복을 벗어 던지며 물었다.

“아직도 바쁜 일을 끝내지 못했소?”

“초청할 사람이 너무 많아 아직도 청첩장을 쓰고 있습니다.”

간미가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평상복을 찾아 주었다.

요즘 고택은 두 가지 경사로 인해 매우 분주했는데, 하나는 5월에 있을 고경의 15세 계례(*笄礼: 여자의 성년식으로 만 15세(시집갈 나이)가 되면 비녀 같은 장식품을 머리에 꽂는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고, 또 하나는 고영진의 혼례 준비였다. 

그의 혼례식 일자는 6월로 정하되, 정확한 혼례 날짜는 두 집안의 상의를 거쳐 고영진이 회시 시험을 치른 후 거행하기로 합의했다. 만약에 그가 방상괘명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혼례식을 거행한다면 두 사람 다 나이가 20세를 넘겨야 할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당연히 찬성이었다. 지금의 고영진은 무조건 회시에 전념하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축국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자, 최근 며칠간 고영진은 밖에서 친구들을 불러 모아 동료를 이끌고 축국 경기에 가고는 했다.

그는 본래 고영진을 한바탕 꾸짖으려 했으나, 고영진의 학업 상황 전반을 검사해 본 후 이 몇 번의 외출이 시험 성적에는 크게 영향을 줄 것 같지 않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 *

이틀도 지나지 않아, 고청운은 고영진 뿐만 아니라 온 백성들이 뜨겁게 축국 행사에 매료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황립 서원에서 공부하던 방서(*방자명의 아들)까지 그 영향을 받아 동기들과 서원을 무단결석하고 축국을 하러 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식을 듣고 놀란 고청운은 가까스로 퇴근시간을 기다려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그는 답답하기만 했다. 

‘내 두 아들은 어렵사리 그 유명한 반항기를 거치지 않고 여태껏 잘 지내왔는데, 어찌 방서에게는 반항기가 찾아왔단 말인가? 만일 아이가 정말 학업을 등한시하게 된다면, 앞으로 어떻게 방 형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

* * *

고청운은 황립 서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는데, 푸른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서원의 봄 경치를 마주하자 갑자기 화가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내부 길을 잘 알기에 바로 갑원반의 선생님의 집무 공간으로 찾아갔다. 

“고 대인, 오셨습니까!”

그를 기억한 문지기가 얼른 뛰어나와 절을 올리고 말했다.

“송 선생님을 찾으십니까? 소인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청운이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말했다.

“송 선생님께 손님이 오시지는 않았는가?”

“대인께 아뢰옵니다, 손님은 없으십니다.”

문지기가 대답했다.

방서는 8살 때부터 이 서원에서 공부해 오고 있었는데, 고청운은 방자명의 부탁을 받고 이런 방서를 돌봐 오고 있었다. 황립 서원은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쉽게 연결되는 구조였기에, 그는 때때로 서원을 찾아와 방서에 관한 것을 한 마디씩 물어보고는 했고, 그가 서원을 찾아 간 지 너무 오랜 시일이 지나면 방서에 관한 일로 때때로 서원에서 그에게 먼저 통지해 주기도 했다. 

방서가 방자명의 외아들이라 방인례와 왕 씨 모두 그를 매우 총애하고 있었는데,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도 기껏해야 말로만 타이를 뿐이었다. 조금만 어리광을 부려도 이것은 아이의 매우 훌륭한 갑옷과 무기가 되어 주고는 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발생하자, 방자명은 아예 서원에서 발생한 방서의 잘잘못을 고청운에게 알렸는데, 황립 서원의 선생으로 지냈던 고청운이 이곳의 몇몇 선생님들과 친분이 있어 더욱 의사소통이 수월했던 것이었다.

과연 그가 아직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마흔이 넘은 송 선생이 먼저 일찍이 연락을 받고 바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저희 아이가 선생님께 폐를 끼쳤습니다.”

고청운이 상황을 보고 재빨리 몇 걸음 다가가서 인사하려는 동작을 하려하자, 그가 제지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예의 차리지 마시게, 여기가 아침 조례 장소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내가 예를 올려야 하는 것을, 하하.”

황립 서원의 반을 맡고 있는 담임은 관직이 없는 전업 교사로, 일반적으로 거인이나 진사가 맡았으며, 특정 과목만을 전문적으로 맡은 사람만 겸직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자리에 오르려면 서원에서는 꽤 까다로운 요건을 제시했는데, 어느 한 과목으로 큰 재주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상태여야 했다. 

고영량과 고영진 모두 송행지(宋行之)의 제자였기에,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라 몇 마디 인사만 나눈 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방서는요?” 

고청운은 이렇게 물었지만 시선은 옆방을 향해 있었다. 

송행지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방서라는 아이가 수업을 빼먹은 게 처음이 아니네. 앞서 두 번은 산술 과목과 제국 국정학 수업을 빼먹었다가 덜미를 잡혔지. 나중에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성실한 태도를 보이기에 이를 참작하여 한 번 더 기회를 줬는데, 어제 또 무단결석하고 밤늦게까지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아 이리 급히 와 주십사 연락을 하게 되었네.”

사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좋지 않은 학생들의 경우 일찍이 학부모에게 통지하고는 했는데, 방서는 줄곧 잘해 왔었고, 또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가 매우 좋았던 데다가, 고청운과의 관계도 있었기 때문에 한 두 번의 기회는 더 주었다. 그러나 그 기회가 세 번을 넘지는 않았다.

고청운은 얼굴을 약간 찌푸렸다. 

‘방서의 담력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는데.’ 

방서는 서원에서 요 몇 년 동안 특별한 일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기껏해야 시험에서 뒤에 처져 울며 겨자 먹기로 자신에게 과외를 요청해서 겨우겨우 다른 동기들과 수업의 진도와 성적을 맞춘 적이 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는 그는 더는 이런 간교한 계책을 부리지 않았었다. 이에 고청운은 마음을 놓고 지냈는데, 지금 이렇듯 그가 감히 수업을 빼먹는 정도로 대담하게 발전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이건 그의 예상 밖이었다.

“그를 데려가 잘 말해 주시게나. 곧 서원 수료를 앞두고 있는 아이가 하필 목전에서 이런 사고를 치다니…….”

송행지의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보였다. 

황립 서원의 아이들은 모두 부유하고 귀한 아이들이니,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한들 마음대로 아이들을 대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을 훈계하거나 교육을 해야 할 때도 그 방법에 대해 고심을 해야 했는데, 때로는 아예 학부모에게 인계하여 교육을 시키라고 보내기도 했다. 그러면 학부모는 분노가 폭발하여 아이를 혼쭐을 내서 서원으로 돌려보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고청운은 방서가 올해 15살이고, 8월까지는 별다른 이변이 없으면 황립 서원을 수료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는 한 단계 높은 무원(武院)반으로 올라가거나, 고향집으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하며 과거 시험 참가 준비를 해야 할 것이었다.

방서의 경우엔, 그는 당연히 임산현으로 돌아가 시험을 쳐야 했다.

“제가 데리고 돌아가 분명하게 잘 이르겠습니다.”

고청운은 단단히 당부한 후 옆방으로 건너가 책을 베끼는 벌을 받고 있던 방서를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는 꼬맹이의 요구 사항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송행지에게 작별을 고했다. 

“신지, 혹 요즘 시간이 나거든 서원에 들려 산술이나 제국 국정 수업을 하나 열어줄 수는 없겠는가? 우리 서원이 일손이 모자라 원장님께서 안 그래도 자네 얘기를 하던 참이네.”

송행지가 제안했다.

고청운은 작년 말 외부세력과 담판을 벌였던 일로 경성 사람들 앞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그 조약의 내용은 자연히 서원의 열혈 소년들에게 강한 열망을 불러 일으켰다. 언젠가는 자신도 적을 바람 앞에 떨어지는 꽃잎들처럼 초토화시켜 국가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동경이 팽배했던 것이다.

고청운은 그런 제안을 듣기만 해도 설레었지만, 고민 끝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

“이제 막 새 직위에 부임해 지금은 업무가 바빠서 한가한 시간이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려사의 일이 한가하다고 소문이 났으나, 아무리 그래도 겸직을 하러 올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는 않았다. 또한 황제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좋기도 했거니와, 실은 아무리 선례를 찾아보아도 5품 이상의 관원이 이곳을 찾아 교편을 잡는 걸 본 사례가 없었다. 

송행지 역시 고청운이 거절하자 더는 권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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