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화. 제안
이 씨는 고이하의 말을 이리저리 생각해 보더니 문득 크게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일렬의 행위를 멈출 수 있었다.
”여보, 역시 당신 보는 눈이 현명하십니다.”
이 씨의 눈에서 부군을 숭배하는 빛이 번쩍였다.
고이하는 헛기침을 하고 소매를 한 번 휘저으며 수염을 쓰다듬고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괜찮소, 이런 일이야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 알게 되는 이치인 것을. 당신은 이제 마땅히 본분을 지킬 줄 알아야 하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본말(*本末: 사물이나 일의 처음과 끝)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오.”
이 씨는 의심스러운 듯 그를 쳐다봤다.
“본말이 무슨 뜻이에요?”
고이하는 수염을 쓰다듬던 손이 잠시 주춤하더니, 한참 동안 침묵에 잠겨있다 말했다.
“뭐, 어쨌든 당신은 그냥 내 말을 잘 듣기만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오. 어서 서두르시오. 배가 고파지니 빨리 가서 밥을 차리시오. 나는 오늘 저녁으로 홍소(*红烧: 고기, 물고기 등에 기름과 설탕을 넣어 살짝 볶고 간장을 넣어 익혀 검붉은색이 되게 하는 중국 요리법의 한 가지) 족발이 먹고 싶구려.”
“집에 요리사가 있는데도 자꾸 찬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제가 무슨 평생 당신한테 빚이라도 졌습니까?”
이 씨는 원망스럽다는 듯 한마디 하고는,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은 채 보통 사람보다 풍만한 몸을 재빨리 움직여 밖으로 나갔다.
* * *
고청운이 집에서 서신을 받았을 때는 이미 3월 초하루가 되었는데, 이때는 이미 봄빛이 완연하고 만물이 크게 자라는 계절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답장이 이제야 도착한 것이 이상하지 않았고, 아마도 최근에 상경하는 상단이 마땅치 않아서 그리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대하는 분명 역참을 이용해 서신을 부치는 비용이 너무 높아 아까워서 그리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서신을 펴서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서신을 내려놓았을 때, 그는 입가를 살짝 들어 올리고 눈에는 다행이라는 기운을 깃든 채 웃음을 지었는데, 다행히 할아버지, 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더 나아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나빠지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그들 가족 중에서 그 자리를 갖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고, 정신이 맑아진 고계산의 강력한 요청으로 사촌 형인 고청명에게 은음의 자리를 내줬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견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적어도 겉으로 그들은 별다른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는데, 고청운이 보기에 특히 숙부인 고이하의 행동이 매우 적절해 보였다.
고청운은 고이하와 함께 했던 때를 떠올리며 그가 확실히 이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문중 중에서도 보기 드문 총명한 사람이었는데, 심계가 꽤 있어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가장 좋은지 알고 있었다.
고청운이 이제 이 일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을 때, 고영량이 입구에서 걸어 들어왔다.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서신이 왔나요?”
고영량은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신을 집어 들고 잽싸게 펼쳐 보았다.
고청운이 그의 붉어진 뺨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며 웃었다.
“또 짱짱이(*고영량 아들의 아명)랑 놀다 온 게냐?”
“예, 아버지, 이제 아이가 너무 무거워졌습니다. 제가 오늘 안고 거리 구경을 나갔는데, 팔이 마치 제 것이 아닌 듯한 느낌입니다. 팔이 너무 시큰시큰하게 아픈데, 하필이면 짱짱이가 안 걷겠다고 생떼를 쓰지 뭡니까. 아뿔싸, 외증조할아버지께서 계속 놀리시는 와중에 짱짱이가 계속 몸을 뒤척여대니, 어쩔 수 없이 제 어깨에 올려놓고 걸어 다녔습니다.”
고영량은 오동통한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웃었다.
“동생도 어릴 때 이렇게 통통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아이가 다 장성했을 때의 모습을 괜히 걱정했을 겁니다.”
“하하, 아이가 좀 뚱뚱한 게 뭐 어떻다고. 괜찮다, 조금만 더 자라면 나중에 권법도 배우고, 활도 쏘고, 체력 단련을 하면서 몸의 살집도 점점 더 빠질 게야. 네 동생도 그렇게 살아왔다.”
고청운이 말했다.
아이는 약한 존재라 조심하지 않아 작은 병이라도 생기면 살이 뭉텅 빠져버렸기에, 이때의 사람들은 항상 아이를 하얗고 통통한 모습으로 키우는 것을 복으로 여겼다. 이런 것이 아이가 식욕이 좋고 몸이 건강하다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영량이 고전각을 품고 나가면, 아이들을 본 주변 사람들이 아이가 잘생겼다고 말해 주고는 했다.
고영량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중하여 서신을 다 읽은 후 고청운의 소감과 같은 의견을 냈다.
“아버지, 저희 문중 분들은 정말 다 괜찮은 분들이신 것 같습니다. 각자 양보하면서 이런 일로 서로 척을 지고 남들의 비웃음을 사지 않으니까요.”
속마음이든 아니든 이번에 고신하와 고이하는 서로 양보를 거듭하며 둘 중 그 누구도 나서서 이 혜택을 채가겠다고 하지 않았고, 중간에 고계산이 버티면서 고청명이 그 은음의 정원을 받아 사용할 수 있도록 자리를 주선했다.
소식이 전해진 후, 현지에서는 고씨 가문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미담으로 전해지고 있었는데, 결국 모두들 이렇듯 우애롭게 지내는 방식을 더 선망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큰할아버지께서 계실 때부터 전해 내려주신 좋은 선례다.”
고청운이 감격하여 말했다.
“문중에서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품행이 발라야 해. 그래야만 그 아래의 사람들이 따라오게 되니 말이야. 그렇게 천천히 가풍이 형성되는 게다.”
윗물이 맑지 않으면 아랫물이 맑지 않다고들 하는데, 그들 고씨 가문 역시 그들과 큰할아버지네 두 집안만 잘못되지 않으면 웬만한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가문과 달리 조문헌의 가문은 그러지 못했다.
며칠 전, 고청운은 하겸죽과 만났을 때도 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조씨 가문은 문중에서 그 수장과 장로들이 예전부터 조문헌의 아버지가 물려준 가산을 노리며 조문헌과 그의 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이러한 만행이 시작되자 다른 문중의 사람들 역시 모두 그 고아와 과부의 재산을 은연중에 탐내게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말았다.
요 몇 년 동안 조문헌의 문중은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고, 문중에서 배출하는 인재 역시 갈수록 적어지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뜻밖에도 그들 문중의 사람들 중 조문헌이 제일 가세가 좋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조문헌은 지난번에도 낙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후 과거는 단념한 듯 어디 연줄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가 교사직을 수임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회시에 대한 기대는 아예 접은 것 같았다.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집안에 한 분이라도 좋은 어른이 계시다는 건 마치 보배를 지닌 것과 같은 법이다. 우리 집안은 운이 좋아 문중에 계신 어른들이 대체로 사리를 잘 아는 분들이시구나.”
그는 말하면서 또 서랍에서 다른 서신 한 통을 손으로 더듬어 꺼냈다.
“방씨 집안 역시 한 번 실패를 겪으면서 그만큼 지혜가 늘은 것 같습니다. 날짜를 헤아려 보니 이제 심심이가 돌아올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고영량은 들고 있던 서신을 내려놓았다. 그것은 상성의 진교가 보낸 서신으로, 이 서신에는 현지에서의 방씨 가문의 현황이 적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방씨 가문은 삽시간에 조용해졌고 문중의 족속에 대한 관리 역시 매우 엄격해졌다. 심지어 그간 저축한 가산을 내어 현지에 다리를 건설하고 길을 닦는 등 선행을 해왔기 때문에 수년간 현지에서 얻어오고 있는 평판은 좋은 편이었다.
방정심은 지난해 방희림의 부모님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하직하게 되어 석 달간의 복상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방희림의 경우 부모상을 당한 것이기에 좀 더 긴 복상휴가를 냈는데,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지나자 어머니도 따라가셨지만, 부모상의 복상 기간은 합산해서 총 3년만 지내면 되었다.
고청운은 3년 뒤 방희림이 경성으로 돌아오게 될까 짐작해 볼 수 있었지만, 아직 상대측에서도 가타부타 언급이 없었기에 우선 말을 아꼈다.
벼슬아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모님이 돌아가시는 것이었다. 복상 기간으로 인해 정치 생명 역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초 방인소가 부모상을 당하여 복상 기간을 갖지 않았더라면 아마 퇴직할 때의 그의 품계는 좀 더 달라져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가 복상 기간 동안 조정을 떠나 있을 때, 새 황제가 등극하면서 많은 변화가 찾아왔었으니 말이다.
이따금 고청운은 이런저런 막연한 상상을 해 보고는 했다. 관리들이 부모에게 이리도 지극히 효를 다하는 것은 같은 피가 흐르는 부자(父子)와 모자(母子)의 천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부모님이 더 오래 살고 더 건강해야만 별일 없이 벼슬길에 오를 수 있기 위해서라는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그는 물론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한 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내비친 적은 없었다.
“음.”
아들이 방정심 얘기를 꺼내자, 고청운은 무표정하게 응수하고 양 대사가 새로 저술한 산술 서적 한 권을 꺼내 들여다보았다.
고영량은 고청운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다 그만뒀다.
어차피 고경의 혼사 문제는 정황상 자신이 알아서 할 수 없었고 또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저 방정심이 가련해 보일 때 옆에서 토닥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참, 오늘 저녁에 은음의 정원 후보자 신청서를 작성하고 내일 바로 이부로 보내서 임산현이나 북산현의 자리를 명기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신청을 해 두어야 나중에 빈자리가 났을 때, 바로 자리를 통보 받을 수 있을 게다.”
언제 자리가 날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었는데, 어떤 때는 빨리 빈자리가 생길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때는 시간이 오래 걸릴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명은 북산현 지역까지 발령이 나더라도 임산현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나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고청운은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먼저 결원이 생긴 곳으로 발령을 받아 직무에 돌입하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더 좋은 관계를 찾아다니면서 임산현으로 자리를 옮겨도 될 거라고 말이다. 고청명은 올해 48살이고, 65살에 퇴직할 때까지는 아직 17년의 시간이라는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고영동이 거인을 넘어서 진사가 될지도 모르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후보자로 올리지 않았고, 고청평과 고청안 등도 있었지만 장유유서 상으로 차례가 될 수 없기는 했다.
“기억하겠습니다.”
고영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림관으로 일하는 그에게는 이런 신청서 서식을 작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지 않았는데, 이제 그는 한림원에서 조서 작성을 도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발휘하고 있었다.
“아버지, 다음 휴무일에 저희 한림원과 아버지께서 계신 홍려사 간에 축국 경기를 치른다고 합니다만, 출전하십니까?”
고영량은 갑자기 자신이 방금 이 방에 들어왔던 목적이 생각나 서둘러 물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십여 년의 발전을 거쳐 매년 봄 경성의 각 부서 간의 축국 경기는 서서히 하나의 정기 시합의 형식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는데, 경기가 주로 열리는 시기는 3월 초부터 4월까지이며, 누구와 시합할 것인지는 부서의 주관이 결정하여 진행해서 친선 경기의 성격이 강했다.
이들의 경기가 끝나면 민간에서도 자율적으로 조직한 군단들이 경기를 치르곤 했는데, 경기의 격렬함이나 운영 방식이 이들보다 훨씬 강해 관전하는 데 더 매력적이었다. 요 몇 년 동안은 민간에서의 경기들도 꾸준히 진행되어, 경성 부근의 부, 현에서 경기 소식을 듣고 올라와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이들의 경기는 3월에서 5월 사이에 열리고는 했는데, 경기들이 주최되는 이 기간 동안에는 온 경성의 객잔들이 꽉꽉 차서 3년에 한 번 열리는 시험보다 더 시끌벅적해졌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데도 큰 보탬이 되었는데, 이 시기에 장사꾼들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론 회시가 열리는 해에는 시험 기간만큼 경기가 늦춰져 6월에나 모든 경기 일정이 끝났다.
이에 조정에서도 치안유지를 위해 이 기간 동안 매년 5성 병마지휘사와 1개 군대를 파견해 경성 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순찰을 돌았다. 경기가 계속된 지 몇 년이 지나니 지금은 새로운 산업 사슬도 형성되었는데, 전문 축국 구단도 생겨나고, 또 어떤 이들은 승패율로 도박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돈을 거는 사람은 매우 많아서, 당첨된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며 장내를 돌아다녔다.
경성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도박의 이윤을 탐내는지, 비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하더라도 도박을 주선하는 몇 곳은 너무 역사가 깊어 다른 사람들은 새로 도박장을 열고 싶어도 감히 끼어들지 못했다.
”내가 경기를 뛰었으면 하는 게냐?”
고청운이 웃으며 물었다. 두 부의 실력은 큰 차이가 없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는데, 그렇지만 않았어도 그는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싶지요. 아아, 아버지, 저도 경기에 나갈 예정입니다. 홍려사 분들에게 본때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편 고영량은 어렸을 적 운하 변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축국 경기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졌다.
“내 나이가 있으니, 젊은 너희들과 경쟁하기엔 좀 더 고민해 봐야겠구나.”
고청운이 급소를 찔렀다.
“아버지, 이제 마흔 셋이신데 한창 나이지 어찌 늙으셨다고 하십니까?”
고영량은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며 반박했다.
고청운은 말없이 웃을 뿐, 고영량이 오랫동안 내보이지 않던 애교를 부렸음에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출전 여부를 알려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