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23)화 (423/504)

423화. 서신 (1)

점심 식사 시간이 되자, 고청운은 외부의 주루로 그를 데려가 한 끼를 대접하고 난 뒤에야 서로 헤어졌다.

담자례는 그곳을 떠나기 전 고청운의 꼿꼿한 모습과 그가 입고 있는 관복 가슴에 수놓인 구름과 기러기 자수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관복이 아직 청색에 백로만 수놓아져진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부터 내쉬었다.

‘남들은 한 걸음 한 걸음 성실하게 맡은 바 업무를 수행하며 직급이 올랐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가 나오지도 않았지. 나도 더 이상은 이렇게 지낼 수 없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 다시 생각해야 해.’

그는 내년에 거인이 되는 시험에 응시할 큰아들을 생각하며, 오른손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눈에는 꿋꿋한 빛을 띄우며 다시 도감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 * *

고청운은 익혀야 할 내용들을 다 숙지한 후, 예부상서에게 불려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바로 본격적으로 조정에 참여하는 관직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침 조례는 진시(*辰時: 아침 7시부터 9시까지)에 시작했는데, 해가 막 떠오르는 시간에 시작하여 보통은 사시(*巳时: 오전 9시에서 11시 사이의 시간)가 다 되어서야 끝났고, 더 늦으면 사시를 넘겨 점심 먹을 시간이 되어 나오기도 했다.

아침 조례를 마치고도 그는 계속 관서로 넘어가 업무를 보아야 했다.

고청운의 집은 황궁에서 그리 멀지 않아 빠르면 반시진이면 도착하는 거리라 예전보다 30분 정도만 더 일찍 일어나면 되었기에, 그의 생활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아침 조례는 주변에 있는 홍려사 사람들이 이끌어 주어서, 고청운은 별 탈 없이 있을 수 있었다. 다만 막 새로운 직책에 부임한 탓에 황제에게 보고할 내용이 없어, 그저 다른 이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하 왕조의 진정한 관리자와 지도자들이 모여 있었기에, 고청운은 조례에 들 때마다 뭔가를 얻어가는 것이 있어 국가 정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이 모든 걸 일기에 담아볼 요량이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어떤 정책을 누가 제안했고, 누가 실행했는지, 또 효과는 어땠는지 등을 말이다. 이때의 기록을 다시 되돌아볼 생각을 하자, 그는 생각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웠다.

* * *

고청운이 경성에서 서서히 자신의 새로운 직위에 적응하고 더 좋은 정책을 모색하고 있을 때, 월성 임산현 임계촌의 고씨 집안 식구들은 고청운이 예측한 시간보다 더 오래인 춘절을 보내고서야 서신을 받을 수 있었다. 

두 통의 서신은 비록 며칠의 차이를 두고 발송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도착하게 되었다.

서신과 연말 선물이 임계촌 고씨네 도착하자, 문지기는 최대한 빨리 고대하와 소진씨에게 이것들을 들고 달려갔다. 

고대하는 탁자 위의 눈에 익은 나무상자를 보자마자 눈이 번쩍 뜨이며 재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나무상자의 얼룩덜룩한 흔적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이 상자는 그와 아버지가 직접 만든 나무상자로, 총 세 개를 만들었는데, 경성과 임계촌을 오갈 때 각종 서신과 물건들을 넣어 보내고는 해서 매우 친숙한 물건이었다.

나무상자 몸체에 긁힌 자국을 하나하나 정확히 잘 알고 있었던 그는 눈에 익은 그 상자를 볼 때마다 매우 기뻤다. 이번에 다시 보니 나무상자 옆에는 작은 소포도 더 있었다.

‘녀석이, 왜 소포를 나무상자에 같이 넣어 보내지 않았을꼬?’ 

고대하는 좀 이상했지만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마침 안방에서 나온 소진씨가 나무상자를 보자마자 온몸으로 기쁨을 표출하며 거의 뛰듯이 다가오며 말했다.

“전자가 보낸 물건이 도착했군요! 안 그래도 방금까지 왜 올해 서신이 이리 늦게 도착했는지 구시렁대고 있었는데, 아마 좀 밀린 모양입니다.”

그녀의 뒤에 있는 몸종들이 너무 빨리 움직이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다급하게 외쳤다.

“마님, 그리 급히 다니시면 안 됩니다. 조금 천천히 가시지요.”

고대하와 소진씨는 이미 나이가 연로했기에, 고청운은 비록 먼저 일을 행하고 나중에 허락을 받기는 했으나 장모님인 방 씨에게 부탁을 해서 여종 몇 명을 더 사들여 부모님의 시중을 돕도록 했다. 이렇게 사들인 여종들은 부부지간에 서로 화목하고 선한 고대하 부부의 모습에 더욱 정성스럽게 그들의 시중들어 주었다.

“내가 그리 늙지도 않았는데 뭐가 그리 무서우겠느냐?”

소진씨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올해 이미 65세가 되었지만, 몸은 여전히 건강했는데, 이것은 그녀가 열심히 건강관리에 신경을 써온 결과였다.

그녀의 또래와 외모를 비교해 보면, 그녀는 적어도 10살은 젊어 보였는데, 비록 젊었을 때 노동으로 인해 용모가 조금 상하기는 했으나 그 후 20여 년간 호강하며 건강관리에 노력을 기울여 용모도 많이 회복되었다. 

고대하는 그녀처럼 정성스럽게 건강관리에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자신이 사내이니 소진씨보다는 더 노화 속도가 느릴 거라고 생각했다.

“좀 천천히 걸어야겠소. 팔다리가 이미 노쇠해 버렸잖소.”

고대하가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함께 나무상자와 소포를 보며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여종이 문지기가 아직 같은 자리에 머물며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가와 낭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서신 배달을 도와준 이를 잠시 머물라 하여 식사 대접은 했나요?”

“했습니다. 상단의 집사와 점원, 그리고 역참의 군인 나리까지. 모두 다 집안의 관례대로 대접했소이다.”

문지기가 씩 웃더니 대뜸 대답했다.

이때 정신이 든 고대하도 한마디 거들었다.

“이리 춘절을 쇠는 기간에 움직여 배달을 해 주었으니, 쉽지 않았을 텐데. 후하게 답례해서 보내드리거라.”

여종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지기와 함께 나갔다.

방 안은 곧장 조용해졌다. 고대하는 열쇠를 들어 자물쇠를 열더니 다시 밀봉을 벗기고, 옷감이니 약재니 하는 것은 들쳐보지도 않고 바로 두툼한 서신 한 통을 먼저 집어 들었다.

그가 응접실에 준비해 둔 교도(*交刀: 가위)를 가져와 소포를 개봉해 보니, 그 안에도 똑같이 생긴 서신이 들어 있었다.

“왜 서신이 두 통씩이나 있지요?”

소진씨가 의아해하자 고대하가 웃으며 말했다.

“분명 전자가 서신을 한 통 작성하고 나서 할 말을 다 끝맺지 못하여 또 한 통을 부쳤겠지요. 알지 않소, 길이 머니 역참이나 상단에서 각각 가지고 와도 함께 도착하기도 하니 이상할 것도 없소.”

소진씨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다시 고개를 내밀며 말했다. 

“영감님, 어서 읽어보세요. 서신에 뭐라고 적혀 있습니까?”

그녀가 글자를 읽을 줄 알았다면, 어찌 그에게 무슨 내용인지 읽어달라고 부탁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녀는 정말 젊었을 때 글자를 익히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서두르지 마시오, 내 천천히 읽어주리다.”

고대하는 오른손으로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당겨 두꺼운 담요를 깔아놓은 걸상에 함께 앉았다.

이어 그는 부인이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고는, 실은 자신도 너무 궁금했던 터라 마음이 급해져 부랴부랴 서신을 펼쳐 읽었다.

요즈음 그는 서신을 읽기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덕에 학식이 크게 늘게 되었다. 그래도 고청운이 그의 수준을 고려하여 매번 서신을 쓸 때마다 통속적인 문체로 작성했기에 그가 읽기에도 낯선 글자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낯선 글자가 보이면, 그는 표시를 해 두었다가 <설문해자(*说文解字: 중국 최초의 문자학 저서)>를 뒤져 글자의 뜻을 살펴보고는 했다. 

고대하는 시간 순서대로 첫 번째 서신을 읽었고, 두 사람은 고청운이 큰 공을 세워 어머니가 고명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이 적혀 있자 크게 기뻐했다.

고대하는 더 고민할 겨를도 없이 두 번째 서신도 마저 읽어 내려갔다.

고대하와 소진씨는 모든 서신을 다 읽고 난 뒤 서로를 바라보며 기쁨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모두가 아들이 이룩해낸 성과들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비록 무슨 조정의 중대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관원들의 품계의 높고 낮음 정도가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는데, 승진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큰 경사였다. 

그때 갑자기 소진씨가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고대하의 얼굴에 웃음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황급히 물었다.

“왜 우시오, 아들이 승진한 게 좋지 않소? 좀 보시오, 이제 얼마 안 있어 누가 찾아와서 고명 부인이 되셨다는 소식을 전해 주러 칙서를 가지고 찾아올 것이오. 매년 수령하는 녹봉도 오를 게요.”

말을 좀 해 보자면, 그는 속이 좀 뜨끈하니 그녀가 부러웠는데, 왜 조정에서는 어머니의 존재만 챙겨주고 아버지의 존재는 없는 듯 챙겨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소진씨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사내들이란 이리 세심하지가 못합니다. 그저 아들이 승진했다는 소식만 보이시지요. 그 아이가 승진을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내가 알기로는 공을 세운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황제 폐하께서 우리 아들을 승진시켜주실 정도라면 분명히 보통 큰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우리 아들이 너무 고생해서 지금 몰골이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녀는 큰 도리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지만, 가장 간단한 사실들은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주는 것이 있어야 얻는 것도 있는 법, 아들이 반드시 어떤 큰 대가를 바쳤기에 이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혹 나쁜 일이 생겼는데, 아들이 서신에는 그런 언급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지금 경성에 있었다면, 아들 곁을 좀 지켜줄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에 소진씨는 또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아들, 며느리, 손주, 손녀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짱짱이(*증손주인 고전각)도 또 그간 얼마나 자랐을까요?”

아들이 가끔 증손주의 그림을 보내온다고 하지만, 실제 사람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그녀가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은 아들이었다.

소진씨는 아들인 고청운의 서신을 받을 때마다 한바탕 울었는데, 고대하는 다른 사람이 그녀를 위로하고 말릴수록 그녀가 더 서럽게 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잠시 생각해 보고는, 먼저 서신을 다른 곳에 감추고 와서 다시 상황을 좀 보고자 했다. 

* * *

그는 안채로 들어가더니 또 연결된 곁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이 곁방에는 창문이 하나 나 있었고 방 안은 넓고 환하며 매우 깨끗했는데, 너무 과한 장식도 없이 큰 상자들만이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고대하는 나무상자 가까이에 다가가 조심히 뚜껑을 들어 올린 후, 방금 전해 받은 서신 두 통을 만지작거리다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고청운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방금 전 고대하의 능숙한 몸짓을 보면서 아버지가 이 일을 아주 자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었다.

고대하는 상자에 가득 담긴 서신을 보며 웃는 얼굴로 혼잣말을 했다.

“이 상자가 또 가득 차 버렸으니 사람을 시켜 하나 더 사오라고 해야겠구나.”

그는 또 잠시 생각해 보더니 다시 내려놓았던 서신을 꺼내어 다시 한번 읽어보았는데, 아들에게 별 탈은 없는 듯했지만 좀 피곤하기는 했을 것 같았다.

아들은 서신을 통해 늘 기쁜 소식만을 전하고 우려되거나 근심어린 소식은 전하지 않았는데, 어떤 작은 손해가 있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정도는 서신에 담아 그들을 안심시켰다. 아들은 서양인과 담판을 짓겠다고 말했는데, 그 과정을 적어 보낸 것을 읽어보니 이 일로 며칠 동안 잠을 잘 못 잔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아들이 이 정도는 견딜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아들이 전쟁터 같은 곳에 나가지 않는 한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4품이라는 관직으로 승진하다니 아들이 정말 잘나기는 했구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대하는 절로 가슴이 쭉 펴졌다. 방씨 집안사람 말고 임산현에서 누가 자신의 아들보다 더 잘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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