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1화. 은음(恩荫) (1)
간미는 가볍게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고청운에게 물었다.
“부군, 은음 대상은 어찌 선정해 보실 예정이신가요?”
보통 사람들은 자손을 위하여 그 자리를 보류해 남겨두거나 자신과 가까운 친인척에게 그 혜택을 내주기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넘기는 것 또한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범주였다.
고청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비로소 대답했다.
“처음에는 삼원이에게 그 자리를 주려고 했소. 이렇게 하면 그가 경성에 진정으로 제대로 안착할 수 있으니 말이오. 다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면 문중에서 좋지 않은 의견이 나올 것 같았다오.”
확실히 고삼원이 고청운을 따라다니는 것에 대해, 일부 문중의 사람들은 눈을 부릅뜨고 부러워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만일 이러한 혜택까지 그에게 돌아간다면 그 문중의 식구들 사이에서는 분명 머리를 끄잡아가며 다퉈서라도 그의 곁으로 와서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었다.
게다가 고삼원의 아버지 곁의 계모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꽤 뻔뻔스럽기까지 해서 고삼원이 가끔 고청운에게 이에 대한 원망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만약 고삼원이 정말 관리가 되어 경성에 계속 정착하게 된다면, 고청운의 짐작으로는 그들 부부가 가족들을 이끌고 상경할 것이니 그때 가서 고삼원의 집안은 엉망진창이 될지도 몰랐다.
이런 집안일은 그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다고 한들, 때론 함부로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허나 문중의 가족들을 적당히 제재하는 것이야 가능하니, 만약 임산현을 생각해서 고씨 문중에서 누군가가 임산현에서 관리가 된다면 고씨 집안의 뿌리는 더욱 견실해질 것이었다.
“네, 확실히 삼원이에게 혜택을 넘기는 것은 조금 마땅찮을 수도 있겠네요.”
간미가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임계촌의 친지들 중에서 다시 선택하시는 것이 낫겠어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지금은 임양부에 계시고, 현아에는 큰 외숙이 계시지요. 사돈 관계를 맺은 인척들까지 생각하면……. 우리 고씨 집안과 함께 하고 있는 관계들 사이에서 누군가 현아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면, 그에 따르는 이익은 둘째 치고 우리의 소식통 또한 영민해질 테고, 인맥도 더 견고하게 다질 수 있게 될 거예요.”
간미가 말한 큰 외숙은 바로 방자명의 서출 형인 방자뢰(方子磊)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방자명보다 두 살 위로 올해 이미 46세가 되었다.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그는 현시와 부시에만 합격한 상태로 사람들이 말하는 ‘동생’의 신분이었기에, 원시 시험은 어찌해도 스스로의 힘으로 합격하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방자명이 낙양의 지부로 승진한 후 그에게도 품계에 따라 은음으로 올릴 수 있는 정원수가 할당이 되었는데, 그의 수중에서 은음에 대한 열기를 채 느껴보기도 전에 그의 아버지 방인례에 의해 급히 방자뢰에게 그 혜택이 넘겨주게 되었다. 그 일로 방자명은 고청운에게 서신까지 써서 아버지가 너무 큰형만을 편애한다고 원망하기도 했었다.
왕 씨 역시 그간 이 일로 인해 방인례와 사이가 틀어져 매일같이 고청운의 집으로 달려와 연 씨와 간미에게 하소연을 했기에, 고청운은 덩달아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임계촌 고씨 문중에서 기댈 곳이라고는 달랑 고청운 일가 하나뿐이었다. 남은 문중의 가족들 중 신분이 가장 높은 사람은 수재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필이면 고청운은 멀리 경성에 떨어져 지내고 있었으니, 만일 정말 무슨 사고라도 난다면 그들은 도움을 주지 못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만약 어느 가족이라도 현아에 관직을 지내고 있는 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많이 다를 수 있었다.
“그러면 삼원이에게는 그 이야기를 꺼내신 적이 있으신지요?”
간미가 그에게 다시 물었다.
“아니오, 그저 속으로만 생각해 보고 있었을 뿐이라오. 처음 이 일을 생각했을 당시에는 내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날이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기에 더는 생각하지도 않았었소.”
고청운은 자신이 항상 신중하게 행동하여 확실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사전에 확언을 하고 다니지 않았던 것을 다행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고삼원을 보는 것이 불편해지거나 매우 난처할 수도 있을 터였다.
“지금 같아서는 임산현의 어느 자리가 공석인지 알아보는 일만 남았소.”
고청운이 탄식했다. 타 지역의 관리로는 7품 이상의 관리만이 부임할 수 있었지만, 7품 이하인 현지인이 맡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5년 전 기존 관직 품계에 대한 체계가 시대의 발전에 뒤따르지 못하게 되자, 관아는 이와 관련된 사항들을 조금씩 조정하고 편성을 늘려오고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그가 근무하던 공부의 도수사 역시 원래는 정6품의 주사직은 정원이 단 두 명뿐이었으나, 후일 공부의 업무가 너무 과중하여 한 명의 정원을 더 추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변화가 격심한 곳은 역시 말단인 현과 부 단위로, 관아에서 9품 관료의 정원을 많이 늘렸던 것이었다. 예전 9품 관리들은 대부분 경성에 집중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면, 공부 직조 공방의 대사들이 정9품의 품계를 가지고 있었다. 외려 현아에 편성되어 있는 9품 관리의 정원은 몇 자리 없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 지현(知县), 현승(县丞), 교유(教谕), 주부(主簿)와 훈도(训导) 등 몇 가지 편성이 한꺼번에 더 생겨나게 되었다.
현아는 비록 작지만, 필요한 부서는 모두 다 갖추고 있었다. 중앙 정부에는 각각 이, 호, 예, 병, 형, 공으로 불리는 6부가 있듯, 현아에도 이와 같은 6방(房)이 있었는데, 이전의 호방(户房)의 관리자가 바로 서기(*书吏: 옛날의 하급 관리)나 서리로 불리던 자들이었다.
고청운이 갓 동생의 신분으로 현청에서 공부하며 임시 노동으로 회계라도 배워 돈을 벌려고 했을 때 그에게 계산 기술을 가르쳐준 것도 바로 호방의 서리였다. 그는 꽤 높은 신분으로, 현대의 재정국(财政局) 국장 정도에 해당하는 인물이었고, 현지에서는 그래도 꽤 실세가 있는 자였다.
이런 이(吏)들은 임명으로서 관직에 봉해진 것이니 시험을 쳐서 관직을 얻은 관신(管身)에는 속하지 않았으나,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실무를 보는 자들로 백성들과 실질적인 접촉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낮은 직급의 자리들은 기본적으로 부자 관계를 통해 계승되어 몇 대가 내려가게 되면 현지에 견고한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그 기초가 너무나 튼튼해서 조정에서 임명한 지현직조차도 그들과 감히 맞서지도 못하고 되레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어정쩡하게 실무에 껴들지 못하고 집무실에서 고무도장만 파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서리들은 한 자리를 몇백 년이나 이어 갔기에 진정으로 국가와 한 몸이 되어 그 국가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들의 지위도 사라지지 않았고, 공작이나 후작 같은 권력자보다 더 오래 그들의 권력이 후대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다지 좋지 않은 비유일 수도 있겠으나, 일례로 관신과 이(吏)사이의 갈등은 마치 처첩 간의 갈등 관계와도 같아서 때로는 서로가 엎치락뒤치락하며 두 세력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국으로 치닫고는 했는데, 어느 쪽의 수단이 더 셌는가에 따라 그 운명이 갈리고는 했다.
고청운이 예전부터 지방관으로 내려가는 것을 꺼렸던 이유도 바로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의 수완으로는 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전심전력으로 더욱 공부에 매진하여, 경성의 관리가 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원래부터 과거의 그 많은 왕조들에서도 다 이렇게 살아왔기에, 다들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7년 전, 또 한 명의 신임 진사가 현령으로 바로 부임한 후, 서리 하나가 그의 앞에서 농간을 부리다 발각이 된 일이 있었다. 이에 그 신임 진사는 다른 사람을 시켜 문제의 서리를 잡아들이게 했는데, 그 서리는 감히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생트집을 부려가며 신임 진사의 면전에 대고 도발했었다. 그러자 신임 진사는 분기탱천하여 자신의 검으로 서리를 찔러 죽이고 말았다.
바로 10여 년 전 방희림이 행했던 일과 거의 비슷한 사건이었다.
그 참혹한 사건이 밖으로 알려진 후, 경성은 또 한바탕 시끌벅적하게 들썩였다. 사건은 연이어 터지는 법, 순식간에 각 현의 관신과 이들의 관계가 점점 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일부 현들의 경우 일 처리가 예전만큼 순조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다들 속으로는 누군가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번번이 애매하게 절차상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 구색을 맞춰가며 농간을 부리니, 정말이지 마음속에 고충은 있으나 차마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아마도 요 몇 년 동안 호부로 모여드는 돈이 많아졌는지, 아니면 모종의 고려를 토대로 한 방책이었는지, 조정에서는 이 서리들에게 정식 관신으로서 품계를 부여해 주었다. 예를 들면, 기존의 호방(户房) 서리를 정9품 품계의 호조(*户曹: 호부(戶部)의 관리)로 올려주는 식이었다. 만약 인구가 적은 현성의 경우에는 서리의 품계가 종9품으로 그치기도 했다.
이러한 사건들이 터졌을 때 먼저 이러한 묘안을 제안하고 주재에 나선 관원이 좌승상(左丞相)으로, 앞서 고청운이 만났던 바로 그분이었다.
“조정이 세운 이 제도가 참 좋지 않소. 예전에는 은음의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원수를 확보하기도 어려웠다오. 때로는 꿩 대신 닭이라고, 기껏 은음의 혜택을 볼 수 있는 품계에 올라서도 정원을 받아 낼 수가 없어 국자감 같은 곳에 넣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때도 있었지.”
고청운이 감탄하며 말을 이었다.
“이렇듯 이 사람들에게도 관신으로서의 자격이 생기고 나자, 자연히 한 조직의 일원이 되었다는 생각에 신분이나 명성 따위를 신경 쓰며 자중자애(*自重自愛: 말이나 행동, 몸가짐 따위를 삼가 신중하게 함)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다 같이 더 높은 곳으로 오르고자 하게 되었다오. 그들은 공식적인 녹봉을 수령하고 있어 백성들을 상대로 너무 과하게 착취할 수 없게 되었고, 또 이제는 그들의 금품을 부당하게 빼앗을 핑계도 댈 수 없게 되었지.”
고청운은 이 제도가 고관들만이 누릴 수 있던 은음 제도의 정원수를 더 늘릴 수 있는 복지를 도모한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대물림해 온 농단의 폐해를 타파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관신이란 것은 세습할 수 없는 것이라 관직을 가진 자가 세상을 떠나거나 혹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직위가 사라져 유동성이 예전보다 더 증가했기에, 아랫사람들도 이 제도를 매우 기뻐하며 반겼다.
이 제도의 단점이라면 국가에서 소비해야 할 은자가 좀 늘어난 것 정도랄까?
간미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 문제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다시 질문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부군, 아직 그 자리를 누구에게 주고 싶은지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촌 형이나 둘째 동생도 모두 가능하겠지. 그들은 경험도 있고 또 능력이 되니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을 것이오. 무엇보다 그들에게는 수재라는 신분이 있어 심사 없이 바로 임용될 수 있을 테니, 만약 공석만 있다면 그들이 최우선으로 선택될 것이오.”
고청운이 짐짓 허황된 말을 하지 않고 대꾸했다.
은음의 정원은 누군가에게 준다고 해서 바로 관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한 번의 검증을 거쳐 일정한 조건에 부합되어야했다. 예를 들면 글자를 알고, 이목구비가 반듯하며, 집안 내력이 깨끗하고 해당 직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여부 등이 검증되어야 했는데, 고청운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호조(户曹) 같은 경우에는 일정 산술학적인 기초도 있어야 했다.
간미는 그 말을 듣고는 의아해했다.
“저는 당신이 숙부님 댁에 바로 그 은음 혜택을 넘겨드릴 줄 알았습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