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화. 희망 (2)
육훤이 얼른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이번에 다시 되찾은 요주에 가보았는데, 외부세력이 이곳을 40년 넘게 차지하고는 있었다지만 개발된 지역은 일부에 불과하여 대부분이 미개발 지역인 상태였습니다. 저는 그곳의 기후가 작물 재배에 알맞고, 토지도 매우 비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이번에 조정에서는 이곳에 대해 매우 큰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그중 하나로 내륙의 백성들 일부를 그곳으로 이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서는 사탕수수와 벼가 많이 생산되어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부양하며 지낼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기엔 폐하께서 요주를 내륙으로 여기시고, 이곳을 건설하실 것 같습니다.”
“잘된 일이구나.”
이와 관련된 일들로 며칠 동안 난리도 아니었기에, 고청운도 이쪽 일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다.
“비록 조정에서는 갖은 방법을 다 모색하여 자국의 국토를 다른 곳에 뺏겨 줄어들지 않게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써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십 년간 나라가 발전을 거듭해 오면서 사람은 늘어나고 땅은 모자라게 되었으니, 지금 이렇게 우리의 영토가 더 늘어 사람들을 옮겨가 거주할 수 있게 된 건 정말 잘된 일이다. 게다가 요주는 내륙에서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니, 자국의 백성들이 건너가 지내게 되면 조정의 통치가 더 오래 유지될 게야.”
국력이 올라가면 경제가 따라 발전해 인구 증가로 이어지는데, 그 기간이 오래되면 국내의 토지 면적이 부족해지는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좋은 정책만 잘 장려된다면 반드시 그곳으로 옮겨가 거주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생겨 해당 지역으로 달려갈 것이었다. 한인(汉人)의 적응력이야 두말할 나위 없지 않은가. 이후 이곳저곳 머나먼 땅에도 ‘차이나타운’이라며 자리는 잡는 걸 보면 말이다.
육훤의 생각에도 그의 말은 일리가 있어 보였다.
“아쉽게도 저는 이번에 다른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발령을 받았습니다만, 아버지께서 요주로 가실 예정이세요.”
수사 장병에 대한 치하 및 봉작과 하사품 수여에 관한 성지는 어제 이미 하달된 상태였다. 육훤은 일약 정5품 수비(守备)직으로 승진을 했는데, 올해로 겨우 27살로 젊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이 자리는 그가 목숨을 걸고 싸워 얻은 대가인데다 육택과의 관계까지 겹치게 되니, 사람들은 아무리 그를 질투한다 해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야 그가 경성에 머무르고 있다지만, 상처만 다 나으면 바로 지방으로 넘어가 새로운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번 전쟁에 출전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승진하여 녹봉이 오르게 되었다. 이를 부러워 떠벌리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특히 위험이 두려워서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전쟁터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바빴던 귀족 자제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분명 전쟁에 맞서지 않고 꽁무니를 뺀 것에 대해 아마 애간장이 시퍼렇게 멍들도록 후회를 거듭했을 것이었다.
육택은 정2품인 민성(闽省)직으로 승진하여 지방으로 발령받았는데, 이와 동시에 요주의 육군 정비 및 확립에 대한 임무도 함께 부여 받았다.
가장 큰 공신인 척 장군(戚将军)은 정남백(定南伯) 작위에 봉해져 일약 민성과 요주를 총괄하는 총독으로 부상하며 권위가 높아졌다. 그는 황제에 대한 충성심이 워낙 강하고 수사들을 지휘해 전쟁을 치른 경험도 있었기에, 모두들 이 지역에 그가 있는 것만으로도 크게 안심할 수 있었다.
한편, 조정에서는 이번 배상금을 빨리 손에 쥐고자 했는데, 은연중에 상대측에서 보복 조취가 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되어 자연히 더 군력을 보강하여 국토를 잘 지키도록 했다.
* * *
며칠 후, 고청운은 뜻밖에도 이부(*吏部: 중앙정부 육부 중의 하나, 문관의 인사와 공훈에 관한 사무를 맡아 봄) 관리의 방문을 받게 되었다.
고청운은 이부 관리가 자신이 ‘국가에 중대한 공헌’을 했기에 그 기준에 부합하여 자신이 원하는 한 사람에게 봉호를 수여할 수 있게 되었다며, 봉전(*封典: 중국 황제가 공신 및 그 조상에게 작위명호를 내리는 일) 할 분의 성함을 기입하라고 하자, 이 사실을 바로 믿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내 그는 정신을 차리고는 두말없이 봉증(*封赠: 옛날 천자가 고관으로 있는 사람의 살아 있는 가족에게 영전(榮典)을 수여하는 것을 ‘封’이라 하고, 그들이 고인(故人)일 경우에는 ‘赠’이라고 말함)하고자 하는 사람의 이름으로 할머니의 이름을 써 올렸다.
이는 그간 그토록 소망해 온 것으로 이제야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니, 그는 기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부의 관원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청운을 몇 번 쳐다보고는 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 대인, 나중의 일은 더 고려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이부의 관원은 고청운이 고민 없이 바로 자신의 할머니에게 봉증하겠다고 말하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계속 생각만 하며 지켜보다가, 결국 그에게 한마디 깨우쳐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결정을 위해 며칠간 고민을 하고는 했는데, 이 기회를 통해 바로 한 사람을 은음제도의 혜택으로 관직에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집안의 자손 한 사람을 그 누구든 8품 이하의 관직에 올려 줄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얻은 사람은 이후에 점점 더 승진을 거듭하여 십수 년이 지난 후 만약 그때까지도 가족들의 비호만 굳건하다면 정5품직에 오를 가능성까지 있었다. 물론 종4품 이상은 은음 출신으로 올라가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것은 거인(举人)이 관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로, 하늘이 내린 운과 실력이 없이는 종4품의 한계를 돌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부 관원은 고청운의 두 아들을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괜한 참견을 한 것인가 생각했다.
‘하긴 그에게는 두 명의 걸출한 아이가 있으니 자손의 앞날을 걱정할 필요 자체가 없기는 하지.’
고청운은 그를 올려다보곤 웃으며 말했다.
“폐하께서 이 은혜를 내려 주신 것만으로도 본관은 매우 만족하오.”
그는 자신에게는 봉전이 내려진 칙명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순간 실망했던 노진씨의 모습을 잊지 못했었다. 비록 그녀는 재빨리 실망한 기색을 감추었지만, 소진씨에게 며느리가 받는 그 대우가 부럽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고청운은 지금 고향으로부터 너무 오래 멀리 떠나와 있었으니 그의 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이부 관리는 그 말을 듣고 감탄하며 말했다.
“고 대인께서는 진정 효자이십니다!”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내막을 알게 되자, 그의 눈앞에 있던 이부 관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소한 종4품이라는 품계는 이미 조정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고관 반열에 오른 것으로, 이전과는 다른 신분이기에 상대에게 더 각별히 예의를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고청운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했다.
“이 왕조는 효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나라이니 본관과 같은 사람은 부지기수요, 이상할 것이 없다오.”
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인사말을 건네고 나서야 각자 할 일이 있어 곧 헤어졌다.
고청운은 상대방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곧바로 자신의 집무실 안을 서성거리며 즐거움에 심취해 있었다.
* * *
과연 며칠 후 저녁 식사 때, 고영량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지, 증조할머니께 고명(诰命)이 내려졌습니다. 오늘 이부 사람들이 우리 한림관 몇 명을 불러 증서 기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었는데, 증서 작성을 돕다가 그중 하나에 쓰여 있는 증조할머니의 성함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관직 변동이 많아, 이부에서는 한림원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는 했다.
4품 이상이 되어야만 ‘고명(诰命)’이라는 봉작의 이름이 수여되었는데, 고청운은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품계 역시 이미 그렇게 정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승진 여부는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는 느낌 등을 통해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남들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 혹은 무심코 흘려 들어온 소식 등……. 이러한 각종 전후들은 당사자들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고청운이 고개만 끄덕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밥을 먹는 것을 보고, 고영량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계속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의 임명도 이미 결정됐습니다. 제가 공 학사님께서 조서를 쓰고 계신 것을 보았는데, 일부러 제게 보여주시려는 듯했습니다.”
공번충은 그동안 계속 한림원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상황을 봐서는 앞으로도 계속 그곳에서 지내게 될 것 같았다. 그의 품계는 종5품 시독학사(侍读学士)로, 주변 사람들은 그가 한림원의 미래 장원학사 직위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무슨 자리더냐?”
이때 옆에서 경청하던 방인소가 드디어 입을 열고 질문했다.
고영량은 겸연쩍은 듯 방긋 웃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연 씨와 간미를 보고는 재빨리 답했다.
“제가 고개를 빼고 너무 티가 나게 들여다보기 곤란해서 확실히 보지는 못했지만, 열에 아홉은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던 그 자리가 맞습니다.”
방인소는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다시 한번 당초 자신의 좋은 안목에 대해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러다 음, 다시 낙양에 있는 방자명을 생각하니, 그는 그저 마음에 큰 위안이 들었다.
고청운은 소식을 듣고 즉시 편지를 써서 임계촌으로 보냈는데, 자신의 승진 소식은 아직 언급하지 않고 노진씨에게 고명이 생겼다는 내용만을 고대하에게 전해 주었다.
적당한 기회에 미리 이 소식을 알려야지, 노진씨가 아무런 준비 없이 이 소식을 접했다가 단번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을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건강 상태를 봐서는 아무래도 너무 한꺼번에 큰 감정 기복을 겪지 않게 하는 것이 좋았다.
* * *
며칠 지나지 않아 정식으로 성지가 내려와, 고청운은 정4품인 홍려사의 사경직을 수임하게 되었다. 물이 불어나면 배도 따라 물 위로 올라가는 법이라, 간미에게도 역시 고명이 덩달아 부여 되었기에, 이제 그녀는 4품 공인(恭人)으로, 소진씨는 태공인(太恭人), 노진씨는 노태공인(老太恭人)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었다.
황제는 승진 소식 외에도 황금 200냥, 옥여의(*玉如意: 좋은 길조가 있고 뜻하는 바가 소원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뜻에서 소장하는 옥 장식품) 한 자루, 침향목 지팡이 하나, 비단 등을 하사해서 고청운을 기쁘게 만들었다. 하사된 200냥의 황금으로는 장신구를 만들거나 2,000냥에 달하는 은자 대신으로 쓸 수 있었고, 침향목 지팡이는 황제가 집안 어른들에게 상으로 내린 것이라 그 이면에서 황제의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마침내 정식적으로 일이 공표되고 나니, 고청운 일가는 마침내 기쁨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엊그제까지는 그저 꾹 참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성대한 잔치를 열어야만 한다, 아주 크게 열어야 할 게야!”
방인소와 고청운 등이 받아온 성지를 작은 사당 안에 고이 모셔 두고 밖으로 나와 보니, 간미가 사람을 시켜 자신에게 고명을 하사한 성지를 전용 보관함에 담아 옮기고 난 후 신이 나서 말을 하고 있었다.
“대단한 경사가 아닙니까! 당신, 이번에는 절대 거절하지 마세요.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축하 연회를 열어보겠습니까? 이미 소구경(*小九卿: 황제 직속의 중앙 관서의 수장을 나타내는 말) 중 하나가 되신 건데, 이런 일로 축하를 하지 않는다면 또 언제 축하를 하겠습니까?”
고청운은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 5, 6년은 다른 직위로 옮길 수 없을 테니, 차라리 이번 기회에 한 번 축하 자리를 갖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고청운은 오 시랑으로부터 그가 자신을 협상단에 추천했다는 말을 들은 이후 오 시랑 어머니의 생신에 맞춰 선물을 보낸 적도 있었고, 과거에 상관 및 동료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연회에 초청해왔던 것을 생각하며, 끝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이번에는 내가 축의금을 돌려받을 차례가 온 게야. 오는 것이 있고, 또 가는 것이 있어야 균형을 유지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