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17)화 (417/504)

417화. 배상 (2)

“요주의 위치가 이렇게 중요하니 그들이 얻은 이득도 많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이곳을 차지하겠다며 3천 명도 안 되는 병력으로 감히 우리와 싸우려 들지 않았을 테니까요.”

고청운은 요주의 중요성을 몇 번이고 강조했는데, 이곳이 있으면 이후 하 왕조의 조정에서는 해상 무역으로 인해 매우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하 왕조의 사람들도 그 중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해권(海权)에 대한 기본적인 관념의 차이는 중서방(*중국과 서방 국가)이 아직도 그 격차가 매우 컸는데, 이 때문에 하 왕조 및 이전의 왕조들이 요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초래한 데 비해 서방 국가들은 일찍이 이주의 전략적 가치를 깨닫고 어느 서방 국가든 모두 차지하려 시도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은 이 중요한 요주를 자신들이 수복하는데 성공하였다!

고청운은 앞으로도 여러 석상에서 해권에 대한 관념을 고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앞서 육훤이 자신이 일전에 전시 시험에서 작성했던 해권론(海權論)의 영향을 받은 적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 그는 앞으로도 해권에 대한 인식 고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은자 천만 냥을 배상으로 받는 것은 절대적으로 많은 금액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 배상액에는 아직 이번 전투를 위해 조정에서 투입한 많은 인적, 물적 재력 및 군비에 대해서는 아직 산정하여 반영한 게 아닙니다. 저희는 사로잡은 많은 포로들의 몸값도 계산해야 하는데, 대략적으로 우리가 은자 천오백만 냥을 제시한다고 해도, 이는 충분히 반영한 금액은 아닐 겁니다.”

고청운은 이렇게 결론지은 후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대한 이견이 없어 보이자, 자신이 제시했던 또 다른 조건들에 대해 계속 설명을 이어나갔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아연실색한 모습들이었는데, 자신들의 사고방식과 고청운의 생각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언급된 나머지 조건은 그들의 함선제작자 몇 명을 보내줄 것이냐, 그들이 점거 중인 타지역에서 하 왕조의 사람들이 그들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으며 자유무역을 할 수 있는가 정도였다. 고청운은 우선 자신의 생각을 한번 제의 해 본 것뿐이라, 더 구체적인 협약은 현장의 업무를 맡아보고 있는 이들을 거쳐 더 완벽하게 보완해서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거라 생각했다. 

“허허, 고 낭중의 발표가 끝났으니 이제 자네들이 말할 차례네. 내각에서 우리에게 준 시간은 한 달로, 그 안에 협약 조건들을 다 완성해야 하네.”

오 시랑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청운에게 앉으라고 의사를 표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는데, 조리가 분명하고 뚜렷한 의견이 있던 고청운의 발언에 반해, 자신들의 의견이 정말 너무 간단한 것들뿐이라 전혀 내세울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오 시랑은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다시 의견을 제시하였다.

“일단 돌아가서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고, 닷새 뒤에 다시 논의해 보세. 오늘 언급되었던 일은 반드시 기밀에 부쳐야지, 절대로 밖으로 흘려서는 아니 된다는 점을 명심하게.”

사람들은 일어나서 일제히 응낙했다.

* * *

오후에 퇴근시간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장수원이 굳이 고청운과 함께 가야겠다며 찾아왔다.

고청운은 홍려사가 외빈을 모시는 건물이 자신의 집인 고택에서 그리 멀지 않기도 하였고, 장수원이 할 말이 있다는 것이 너무 눈에 보여 아예 그를 자신의 집 마차에 태웠다.

어제오늘 날씨가 급변하여 북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며 추워졌다. 며칠 전에 축국을 하러 나갔다가 온몸에 땀을 흘렸던 고청운은 집으로 돌아오다가 중간에 하겸죽을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집에 도착해서 마치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전조 증상을 발견하고는 더는 이 추위에 말을 타고 바람을 맞고 싶지가 않아 요 며칠간은 직접 마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남의 제안을 곧잘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던 장수원은 마차에 들어오더니, 안정적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신지, 어찌 그런 조건들을 생각해 낸 겐가? 내 보기에는 그 조약들이 아주 일리가 있었다네.”

고청운은 아까까지는 미처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지만, 방금 일을 장수원이 딱 짚어 이야기하자 매우 흥분되었다. 

고청운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매우 들떠 있었다. 만에 하나 이 조항들이 정말로 성사된다면, 은자 천만 냥이 얼마나 큰 액수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들이 세울 수 있는 공로가 얼마나 큰 것일 지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다들 조정의 뜻을 알고 있잖은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이득을 보지 않고 그저 예전처럼 그들이 와서 특산물을 상납하면 폐하께서 다시 답례를 보내는 정도로 절차를 마무리했을 거라네. 난 우리가 되레 그들에게 배상하라고 나올 수 있을 줄은 몰랐네.”

장수원은 눈앞에 신세계의 새로운 문이 서서히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어느 책에서 봤는지 잊어버렸습니다만…….”

고청운은 몇 마디 얼버무렸다. 평행 시공 너머의 서방 세계가 일전에 청나라에게 이런 배상조건을 걸었다고 말할 수도 없잖은가?

“또 우리 선조들이 과거에 유목 민족들에게 이와 비슷한 보상을 요구했던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 다시 이런 사례가 나온다고 해서 놀랄 일이 아닙니다.”

고청운이 다시 설명했다.

“그때와는 조금 다르지 않나. 지금은 서양 쪽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데다가 요구하는 배상액도 엄청나니 말일세.”

장수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고청운과 조약의 가능성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토론하기 시작했다.

장수원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조약 체결 후 세울 수 있는 공로가 생각났던 것이었다. 하 왕조의 관리로서 역시 총명했던 그는 다른 각도로 접근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는 끊임없이 자료를 찾아 고청운의 생각을 증명하려고 하였고, 자주 바다로 나갈 일이 있는 해상 무역인을 찾아 상황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이 분야에 대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자신들이 제시할 협약 조건에 대한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났다.

* * *

한 달 후, 모두들 이미 마음속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상대에게 제시할 조건 역시 고청운이 최초로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완벽하게 정비되어 있었는데, 배상액 역시 더욱 터무니없게 은자 2천만 냥을 책정해서 요구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준비한 협약서 내용을 포로로 잡힌 총독에게 건네주었고, 통역의 말을 들은 그는 크게 분노하며 연신 외쳤다.

“불가능하오.”

담판 자리에는 두 명의 통역사가 함께 배석하게 되었는데, 한 명은 하 왕조의 표준어와 외국어에 모두 정통한 신부 한 명과 외국 상인 한 명으로 구성되었다. 

오 시랑은 그 모습을 보고 불쾌한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시끄럽게 떠들어대긴……, 다 같이 감금된 포로들 주제에 성가시게!”

총독 뒤에 따라오던 하급 무관 두 명이 나지막이 일갈했다.

총독은 그동안 자유를 잃었던 날을 생각하며, 속으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다시 결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이 협약서에 절대 서명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너무나도 황당무계해!”

그의 표정은 매우 격앙되어 있었다.

신부가 그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오 시랑 등은 상대방이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야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을 드러낼지는 모르고 있었기에 마음이 꽤나 안절부절못했다.

고청운은 자신의 본토에서 보복을 하러 달려올 거라 외치며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도 않은 채 고집스럽게 버티는 총독의 모습을 보고 입을 열었다.

“당신네 본국의 군대가 쳐들어온다고? 당신은 그런 날을 볼 수 없을 것이오. 자네의 나라는 지금 다른 국가와 한창 싸우고 있을 텐데,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로 얼마나 군함을 보낼 수나 있겠소? 본관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소. 이곳은 본관의 조국으로, 우리는 지리적인 우세를 이미 차지하고 있기에 어떠한 도전도 두렵지 않소. 이 협약서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당신네 나라와 그 어떠한 거래도 하지 않을 것이니 잘 생각해 봐야 할 것이오.”

관복 차림의 고청운의 입에서 익숙한 자국의 언어가 흘러나오자 총독은 어리둥절해졌다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들에게 있어 하 왕조와 교역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큰 손실을 의미했다. 찻잎, 도자기, 실크……. 단순히 이러한 교역물자만 하더라도 엄청난 수익이 보장되었는데, 만약 일전에 이 품목들로 창출해낸 수입이 없었더라면 타국과의 전쟁에서 진즉에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위해서나, 앞으로의 협력을 위해서나 결국 타협을 선택한  총독은 협상 자리에 함께 앉아 얼굴을 붉혀가며 푼돈 몇 푼까지 자잘하게 따졌다.

* * *

보름간의 어려웠던 담판 기간을 거쳐, 조약의 최종 조건이 마침내 확정되었다.

주요 사안 중 첫 번째는 양국이 종전 선언을 하고 평화적인 상태에 돌입한다는 것이었는데, 고청운 등은 추후 보복행위가 발생하면 당하게 될 일들에 대해 이미 조정에 통보를 한 상태였다. 

둘째는 그들이 하 왕조에게 은자 800만 냥을 배상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는 전쟁 배상금과 포로들의 몸값 및 하 왕조가 이번 전쟁에 들인 수군의 군비 등을 포함한 것이었다. 하 왕조는 배상금의 일부를 금으로 지불해야 하며, 부족한 부분은 현물로 해당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이 지불한 배상금이 하 왕조의 수중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하 왕조 쪽에서는 포로들을 풀어주기로 했다. 

세 번째는 요주나 인근 섬에 대한 소유권을 하 왕조로 명시하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고청운 등 사람들이 제시했던 내용과 큰 차이 없이 진행된 조약들이 더 있었다. 

밥은 자고로 한 술씩 먹어야 하는 법이라, 현재 하 왕조 수사(*수군)들의 실력은 아직 일정 범위까지 확대시켜 나가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지금 그들은 서양 수군력에 비할 바가 못 되었기에, 그 뒤에 따라오는 일부 조약들의 이행 여부에 대해서는 역시 그들 자국의 실력이 얼마나 받쳐주느냐에 따라 실행 여부가 결정될 것이었다. 

다만 앞의 중요 조항 세 가지에 대한 확답을 확보해 두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오 시랑은 흐뭇해 마지않았다.

* * *

정식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의 모든 문무백관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원래 전쟁에 이겼다고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관리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한 수 더 배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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