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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10)화 (410/504)

410화. 기쁜 소식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또다시 연말이 되었다. 날씨는 추웠고, 전쟁은 멈춘 지 오래였다. 이전 몇 달간은 승부가 계속 엇갈리는 국지전이 이어졌지만, 그 규모는 크지 않았으며 서로를 탐색하기만 하는 자잘한 경우가 더 많이 발생했다.

척 장군의 침착한 태도에 조정에서는 당연히 이러한 전술에 불만이 있었고, 탄핵을 하자는 상주문도 날이 갈수록 많아졌다. 

이 시기에는 척 장군이 보유한 인맥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었는데, 몇 명의 대신들이 그를 지키고 있는 데다 황제가 이 뜻에 동참하고 있는 형국이라, 오히려 반대 의견을 펼치는 대신들은 그저 어쩔 수 없이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쟁은 우위를 점하고 있는 바다가 없다면 국가의 재산이 최소한 절반은 줄고, 조정이 거두어들일 수 있는 세금도 크게 줄어든다는 깊은 이치를 일깨워줬다.

전쟁이 터지고 해외 무역이 줄어들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다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되자, 연해 일대의 물량 유동이 정체되고 작업장은 멈추어 섰던 것이다. 상인들이 바로 타격을 입고 울부짖고 있으니, 전쟁을 빨리 끝내자는 신하들도 더러 있었다.

어쨌든 춘절(*중국의 설날) 대목인 만큼 전쟁은 잠시 일단락 짓고, 내년의 새로운 국면을 기다려 볼 수밖에 없었다.

* * *

고청운은 명절마다 더욱 친지들 생각이 간절해지고는 했는데, 특히 올해 춘절에 그는 임계촌의 노인들만 생각하면 마음이 유독 불편했다. 바로 춘절이라는 제일 큰 명절에도 연로한 그의 부모님들의 곁에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없었던 것이다. 고청운의 두 누이만 다녀갈 텐데, 그나마 명절의 이튿날에야 친정을 방문할 것이고, 다른 시간들은 모두 자신들 집에서 손님맞이에 바쁠 것이었다.

왠지는 모르겠으나, 고계산과 노진씨의 몸 상태 때문에 고청운은 올해 유독 느낌이 남달랐다. 그는 잠깐 자기혐오와 자괴감에 빠져 있다가도 주변 가족들의 밝은 모습을 마주하면 또 그저 그러한 우울한 감정을 속으로 감춰둔 채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 춘절에는 그나마 고청운의 손자인 고전각이 있어, 그들 가족은 흥을 좀 낼 수 있었다. 이제 막 한 살 하고도 4개월 된 그 아이는 희고 통통한 모습으로, 앵무새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흉내낼 수 있었는데, 옹알대는 소리로 침을 흘려가며 말을 따라 했다. 아이는 이제 막 걸음마도 시작했는데, 걷기에는 아직 안정되지 않아서 때때로 조심하지 않으면 쉬이 넘어지기도 했다. 

아이는 어릴 적 고영량처럼 사람들이 많이 북적거리는 곳에 가서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는데, 아마 사람들이 매번 아이를 볼 때마다 잘 대해줘서 그런 듯했다. 아이는 방인소와 연 씨의 사랑을 특히 더 많이 받았는데, 그들은 매일 같이 반드시 아이의 얼굴을 보고자 했다.

고향에서 온 서신을 보면, 고대하도 빈번히 어린 증손주 얘기를 꺼내며 아이를 매우 그리워해서, 고청운은 그 글들을 읽다 보면 탄식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하긴 집에 십여 년 동안 갓난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으니 모두들 앞다투어 고전각을 총애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었다.

올해에는 선물을 보내려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방자명, 하겸죽 등은 말할 것도 없었고, 아직 관선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지만 이미 지방으로 내려가 현승직을 수임한 하지(何智)도 사람을 보내서 명절 선물을 보내온 것이었다. 

고청운은 선물을 보내온 인편에, 답례 선물을 가지고 내려가도록 했다.

* * *

한편, 고청운은 고영진과 진사 시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청운이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고개를 돌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시험도 치기 전에 벌써 진사에 합격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게냐.”

‘이 녀석, 너무 자신 있어 하는 거 아닌가?’

고영진이 헤헤 웃으면서 쑥스러워했다.

“그저 전 좋은 쪽으로 한 번 생각해 본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화목 책상 위에 가지고 놀던 전함 모형을 올려놓고 정색하며 말했다.

“어차피 형이 경성에 있으면 제가 지방에 갈 것이고, 만약 형이 지방에 가게 된다면 제가 경성에 남을 겁니다.”

오늘날 고씨 가문의 사회적 지위를 보면 이미 실력과 인맥이 갖춰져 있었는데, 아이들이 갈 곳을 조금은 마련해 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었고, 고청운이 하고자 마음만 먹으면 중간 다리를 놓는 사람은 쉬이 찾아낼 수 있었다. 그저 관직 생활을 계속 해 왔을 뿐인데, 알고 지내게 된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났고 집안 간 사돈 관계까지 맺게 되면서 그들과의 관계도 급속도로 확장되었다.

“아버지, 만약 제가 이번에 진사 시험을 좋지 않은 석차로 통과하여 한림원에 들어가지 못하면, 저는 경성에 있게 될까요? 아니면 하 아저씨와 같이 지방으로 내려가서 벼슬을 하게 될까요?”

사람을 보낸 뒤 옆에 있던 고영진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들 집에는 아직 두 아이가 혼처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혼인을 하기 전부터 관계망이 크게 늘어나 매번 명절 때마다 선물을 보내고 받을 곳이 되레 많아졌으니, 그 아이들마저 시집, 장가를 가고 나면 이 많은 집들이 서로 몇 대째 얽혀 이어져 가게 될지 짐작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고영량은 3년 뒤 지방으로 내려가고 싶어 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되어 처음 지방에 부임하게 될 낯섦을 고려해 볼 때, 역시 경험이 풍부한 스승과 함께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우선은 지방에 있는 방자명의 도움을 구할 수 있어 잠시나마 도움이 될 테니, 아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나와 네 어머니는 아직 연로한 게 아니니, 너희가 우리를 옆에서 모시고 살 필요는 없다. 너희 형제가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그 과정에서 우리를 의식할 필요는 없단다.”

고청운은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고영진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어차피 그는 그들 형제 중 한 명이 경성에서 부모님의 곁을 지키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이미 형과 약속한 바가 있었다. 

* * *

춘절이 지난 후, 고택에서는 지금 전시 상황이 잠시 소강상태라는 것을 고려하여 노씨 집과의 혼사를 진행했고, 정식으로 정혼 절차를 이행하며 내년에 다시 혼례식을 올릴 계획을 세웠다. 그때가 되면 고영진은 19세가 될 것이고, 노씨 집안의 둘째 처녀 노묘운(卢妙云)는 18세로 관가의 여식으로서는 막 적기의 나이가 될 터였다. 

고영진은 정혼이 진행된 이후, 식사도 집에서 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노씨 집을 방문하여 고청운과 간미의 애를 태웠다.

“이건 장가들기도 전에 처가에 가서 아첨을 떨고 있는 격이로군요. 그 녀석, 요즘 들어 우리와 이야기하다 말고 자꾸 바보처럼 웃는 것 좀 보세요.”

간미는 그날도 고영진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지 않겠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갑자기 마음이 좀 씁쓸해졌다.

고청운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박달나무빗으로 두피를 마사지하던 중 그녀의 말을 듣고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며 위로의 말을 전했다.

“소년이 누군가를 사모한다는 게 이런 것이니, 정상 아니겠소. 나중에 혼인하고 나서도 진가아 부부는 반드시 사이가 좋을 것이오.”

원래 고청운도 시샘이 나 시큰거리던 참이었는데 간미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고는 먼저 위로해 줄 수밖에 없었다.

“량가아는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에요.”

간미는 한마디 더 중얼거리더니 그의 뒤로 가서 고청운 대신 나무빗을 들고 그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고청운은 그녀에게 빗을 양보해 주고 나서 편안하게 숨을 내쉬었다. 잠들기 전 머리를 빗어 두피를 마사지하고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거울 속 자신을 다시 살펴본 고청운은 머리카락이 여전히 풍성하고 대머리의 성향도 보이지 않자, 가발을 살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아들들 성정이 다르니, 행동도 다 제각각인 게지요.”

큰아들이 작은아들에 비해 많이 내성적이기는 했지만, 고청운은 이를 정상 범주로 보고 있었다.

* * *

이후 계속 창창한 나날을 보내던 고청운은 고향에서 보내온 서신을 받게 되었는데, 고청안 등 친지들이 올해 8월 원시에 다시 응시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고청운은 고씨 문중에서 몇 명의 인재라도 더 나오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10월 중순이 되면서 다시 한번 고향으로부터 올라온 서신을 받게 된 고청운은 고청안이 마침내 원시에 합격하여 수재가 되었다는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필경 이렇게 여러 해 동안 고청안은 늘 시험에 떨어지면서도 손에서 공부를 놓지 않았지만, 그간 서신으로 전해 온 소식에 의하면 그가 아직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말뿐이었는데 올해 이런 운이 찾아올 줄이야!

비록 합격 석차는 뒤쪽이었지만, 어쨌든 수재에 합격한 것이었다. 이제 공명이 생긴 것이니, 그는 그의 형인 고청평과 대등한 신분이 된 셈이었다. 고청운은 숙모가 이 소식에 얼마나 기뻐할지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은 미간을 찌푸린 채, 서신을 들고 반복하여 읽었다.

“아버지, 저와 형이 합격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기뻐한 모습을 보이신 적 없잖아요!”

고영진은 고청운이 서신을 읽고 또 보는 모습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 당숙이 이번에 수재에서 또다시 낙방했더라면, 이제 남은 시험에서는 정말 사촌 동생들과 함께 시험장에 입장해야 했을 것이었다. 

“누가 그러더냐?”

고청운이 반박했는데, 당연히 아들의 합격에 더 기뻐했었음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영진은 그 말에 매우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허허 웃으며 고영량을 향해 한쪽 눈을 찡끗해 보였다.

그를 힐끗 쳐다본 고영량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말없이 그저 쥘부채만 펴서 흔들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정원 저쪽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에 이번에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당숙이 쉽지 않았을 게야. 그렇게 여러 번 시험을 보고도 낙방을 거듭하여 이제는 재시험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이렇게 결국 소원을 성취했구나.”

고청운은 그간의 일들을 돌아보았다. 어릴 적 일을 생각해 보면 그때의 그들은 밥이나 겨우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뿐인데, 누가 이렇듯 집안을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이런 날이 오게 되었구나.’ 

그의 또래 사촌 형제는 큰할아버지 쪽 가족을 포함해 4명이나 되었는데, 그중 사촌 형 한 명과 사촌 동생 두 명이 모두 공명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수재라 할지라도, 임계촌에서는 이들도 괜찮은 축에 속했다. 

다만, 사촌 형인 고청량은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고 상업에 종사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이들 세대는 자녀들 중 고청운네 두 아이를 빼고는 고영동만 수재의 신분이었고, 나머지 아이들은 아직 과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무리 조건이 좋다고 한들, 과거 시험은 결코 쉽지 않은 시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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