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7화. 허심탄회 (1)
그 후 두 사람은 헤어졌고, 고청운은 말을 타고 거리를 천천히 나아갔다. 그때 양옆으로 불이 환하게 켜진 주점이나 찻집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는데, 대부분의 이야기 초점은 이번 전쟁에 맞춰져 있었다.
고청운은 가끔씩 가던 걸음을 멈추고 병부의 무능을 욕하는 자, 공부에 욕설을 하는 자, 그리고 조정 대신에게 욕설을 하는 자의 말을 경청했다. 지금 세상은 언론에서 떠든 말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없었기에, 각종 소보들이 궐기하게 되면서 경성 사람들은 마음껏 떠들어대는 반면, 관직이 있는 사람들은 언사에 매우 신중했다.
일반 사람들은 조정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황제를 욕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관복을 입은 탓인지 남들이 자꾸만 쳐다보는 시선을 발견한 고청운은 다시 집으로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 * *
고청운이 집에 돌아오자 간미가 매우 기뻐했다.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던 고청운은 마침 저녁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서 자리에 앉아 밥상을 둘러보다가 물었다.
“진가아는?”
고청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 집의 식사 시간에는 남녀가 각자 다른 상에 앉아 그 사이에 병풍을 쳐 두었기에, 지금 고청운 앞에는 방인소와 고영량만이 보일 뿐이었다.
고영량이 말했다.
“동생은 오늘 저녁에 일이 있어서 친구들과 밖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통금 전에는 돌아올 겁니다.”
“요 며칠 밤 동안 도통 보질 못했구나.”
고청운이 생각해 보니, 보름 넘게 공부에서 잔업을 하고 늦게 집에 들어왔기에 저녁을 좀 챙겨 먹고 나면 쉬는 시간이 없었다. 책을 읽으려 해도 30분 정도밖에는 독서를 할 수가 없었는데, 더 읽었다가는 수면의 질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며칠 동안 고영진을 못 본 것 같았다.
고영량은 머뭇머뭇하다가 방인소를 한 번 보고는 나지막한 기침을 했다. 그는 요즘 한림원이 바빠 한림원 근무에 착수하자마자 해전과 관련된 업무를 보게 되었는데, 때로는 선배들을 따라 황궁에서 야근해야 하는 등 중압감이 꽤 심했다.
“진가아가 나쁜 짓을 하러 다니는 건 아니고, 듣자 하니 무슨 전함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것들을 직접 손발을 움직여 제작을 해 보고 실험하는 것 같더구나.”
방인소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 애는 예전부터 이쪽으로 취미가 있지 않더냐. 과거 시험도 잠시 내려놓은 분위기인데, 노부가 이쪽 일을 하고 싶으면 해 보라 했다. 오랜만에 그 아이가 축국도 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니, 나중에 업을 이어받아 공부에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해 보고 있다라, 그 애들이 해낼 수 있을까? 그들 중 누가 목수 일을 배우지 않는 이상은 힘들 텐데.’
“그것도 진사 시험에 붙고 난 다음 일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그냥 장인이 되겠다고 한답니까?”
고청운은 눈썹을 찡그렸다.
“사실 이쪽 방면의 것들을 연구하는 건 나쁠 게 없습니다. 다만 첫 목표가 전도될 수는 없는 법, 매일 나가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자연히 학습량이 줄어들게 될 테니 나중에 다시 되돌아가려면 그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그의 말은 당연히 진사에 먼저 합격해 놓고 그 다음에 취미를 발전시키는 것이 낫다는 것이었다. 그는 진사에 합격만 한다면 아들이 한림원에 오래 머물며 연구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러려면 우선은 과거 시험을 단숨에 해치워야 했다.
“진가아는 원래 말을 잘 들었지. 또 자기 분수를 지키는 녀석이니 너무 빠져들어 버린다 한들, 그때 가서 네가 다시 깨우쳐 주어도 늦지 않을 게다. 해가 지나면 이제 18살로 적지 않은 나이가 될 테니 어린애 취급해서는 아니 된다.”
방인소의 말에는 깊은 뜻이 서려 있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돌리고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스승님, 제가 너무 엄격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저도 그냥 여쭤 보기만 한 겁니다만?”
고청운의 말투엔 좀 억울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그런 고청운의 말투에 놀란 방인소는 안식구들이 이쪽을 쳐다보자 웃으며 말했다.
“밥부터 먹고 보자, 음식 다 식을라.”
“예, 식사부터 하시지요.”
고청운도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말했다.
* * *
식사 후, 고청운과 방인소는 다시 한번 고영진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이대로 아이를 방목할지, 아니면 강압적이게 나갈지 이야기하다가 단지 그를 일깨워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바로 이때 고전각이 마침내 잠에서 깨어나 안채로 안겨 들어왔는데, 옹알거리는 앳된 소리에 방인소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얼른 일어서며 말했다.
“짱짱이가 잠에서 깨어났으니 이 노부가 가서 좀 거들어 주어야겠구나.”
고청운은 말이 없었다.
‘이 꼬맹이가 계란찜을 다 먹고 나면,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또 아이를 어르고 떠받들며 보살필 텐데, 이건 너무 아이를 성대하게 대접하는 게 아닌가.’
큰손자가 좀 더 자라면, 자신은 아이의 총애를 조금이라도 더 받고자 얼굴에 분칠이라도 해야 할지 몰랐다. 설령 꼬마 도련님이 자신과 친밀도가 좀 떨어진다고 해도, 그는 멀뚱히 서서 그저 어쩔 수 없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고청운은 아들들의 성장 과정에서 그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지만, 아들들과 그들의 아이들과의 관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또, 자신과 손주와의 관계 역시 앞으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고청운은 한참 동안 정원을 돌아다닌 끝에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고영진과 마주했다.
“어딜 다녀오는 게냐?”
고영진은 느닷없이 들려오는 그윽한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아버지, 어찌 여기 나와 계십니까?”
고영진은 실눈을 뜨고 은행나무 아래에 등롱을 걸어 놓고 팔짱을 끼고 있는 희미한 그림자를 보았는데,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들뜨게 되어 급히 몇 걸음 더 빨리 걸어가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그제야 고청운이 나무 아래에서 걸어 나왔다. 고청운은 방금 계집종이 고영진이 대문을 지났다고 알려오자, 자기도 모르게 그가 기거하는 정원의 입구 앞까지 걸어온 것이었다.
“몇 날 밤 동안 못 보았더니, 마침 보고 싶어 나와 있었다.”
고청운은 자연스럽게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뱉었다.
하필이면 고영진은 이런 수법을 좋아했기에, 곧바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고청운의 어깨를 꼭 껴안고 매우 즐겁게 웃었다.
“아버지,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뭘 하고 다니는 게냐? 요새 집에는 도통 얼굴을 보이지 않는구나.”
고청운은 그가 걷는 방향을 따라 함께 서쪽 정원으로 난 문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벗들과 새로운 전함 설계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과거 시험에만 몰두했던 사람들이라 이쪽으로는 잘 몰랐기에, 저희가 제작한 배는 금방 가라앉아 버리더군요. 지금 다들 낙담하고 있어, 저는 돌아와서 책을 좀 더 보고 내일 벗들과 논의를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입니다.”
고영진은 이 얘길 꺼내며 머리를 긁적였는데, 그 말투가 자못 실망스러운 기색이었다.
“배를 직접 만들었느냐?”
고청운은 이 점이 가장 궁금했다.
“네, 대부분 제가 직접 했습니다.”
고영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부연 설명을 했다.
“다른 사람이 저를 도와주어서 목공 작업을 조금 할 줄 알게 되었거든요.”
“언제 목공을 배운 게야?”
어둠 속에서 들리는 고청운의 목소리에는 기쁨도, 노여움도 들어있지 않았다.
고영진은 고청운의 팔을 꼭 껴안고 솔직히 밝혔다.
“제가 저번에 임계촌에 가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긴장을 풀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를 따라 목공을 배우고 연마했습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께서는 늘 저와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농사일과 목공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유독 기뻐하시더니, 기력이 괜찮으신 날은 목공을 배우는 일을 거들어 주시고 지도까지 해 주셨습니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께서 먼저 목공 일을 가르쳐 주셨다고?”
고청운은 믿기지 않았다.
“물론 아니죠!”
고영진이 고개를 연신 흔들었다.
“그런 게 아니라 제가 부탁드려서 알려 주신 겁니다. 원래는 전수해 주지 않으려 하셨는데, 제가 그걸 배우고 싶다고 떼를 썼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저더러 평소대로 공부를 하라고 하셨고요. 아버지, 저는 정말 이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일부러 숨기고 거짓말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덧붙이자면 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제가 목수가 되겠다고 했더니 웃으며 저를 봐주셨지 않습니까.”
고청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격하게 흐트러뜨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억지를 부리는구나, 그건 네가 어렸을 때 한 말이지 않으냐. 내가 그것을 묵인했다는 뜻은 아니란다.”
“아버지께서 이를 반대하지 않으실 줄 알고 한 겁니다.”
고영진이 하하 웃었다. 어릴 때부터 지금껏 그는 할 일을 제때 마치면 남은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하고는 했다.
이내 고영진은 일부러 고개를 숙여 고청운에게 머리를 비벼대며 미적거렸다.
고청운은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예전의 그 땅딸막하고 뚱뚱했던 꼬맹이가 이제는 나와 키가 같아져 머리를 한 번 두드리려 해도 팔을 더 높게 치켜들어야 하는구나.’
“매일매일 공부에 지장을 주면 아니 된다. 온고지신을 잊지 말고 매일 최소 세 시진씩 공부에 매달려야 해.”
고청운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2년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가 버릴 게야. 다음 회시 시험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는 성혼을 앞두고 있으니 진사에 합격하기만 한다면야 누구에게나 좋은 일이 될 게다.”
어릴 적 고영진은 어른이 되면 큰 배를 만들겠다고 했었다. 아이가 무심코 한 말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런 것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고청운은 좀 놀라웠지만, 오늘 저녁 밥상머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앞으로 다른 잘못을 더 범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고영진은 고청운의 손을 잡고 부끄러워했는데, 새로운 배의 형태를 축조하는 것에 심취하여 공부하는 시간이 적어졌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이다.
“진사 합격은 늘 제 목표였으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특히 고영진이 이렇게 하는 데에는 그의 위에 우수한 형이 있다는 것도 작용을 했다. 귀경하는 동안, 또는 어디든 놀러 갈 때, 그는 항상 누군가 자신의 형 이름을 언급해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부담도 느꼈다.
그러나 형이 그렇게 우수하니, 동생으로서 너무 뒤쳐질 수도 없는 법이었다.
“음, 앞으로의 인생은 너의 것이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는 네가 지금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달려 있지. 우리가 대신 해 줄 수는 없다.”
고청운은 늘 입버릇처럼 해 오던 이야기를 한 뒤,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운을 떼었다.
“네가 정말 이쪽으로 흥미가 있다면, 이 아버지가 예전에 정리해 둔 선박에 관한 도감을 한 무더기 가져다주마. 크기와 재료 사용과 관련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간단한 구조도들로, 꽤나 상세하게 그려져 있지. 그중 어떤 건 선박 공방에서 직접 가져온 것인데, 모두가 지금 왕조에서 가용되고 있는 선박 양식에 부합되는 것들이란다.”
그 말을 들은 고영진은 크게 기뻐하며 고청운을 응접실 쪽으로 끌어다 앉히더니, 자신은 고청운 앞에 쭈그리고 앉아 가지런한 흰 이빨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아버지, 보고 싶어요, 볼래요.”
그는 아버지가 선박 공방에 시찰을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선박을 만들지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 돌아가 정리해서 건네주마.”
고청운은 생글생글 웃으며 고영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 자료들은 그가 조심스럽게 수집해 오던 것들로, 가지고 있는 자료들 중 기밀 관련 자료도 있었기에 다시 선별해내야만 했다. 이것들은 아들에게 건네 줄 수 없는 자료들이었다.
그는 그동안 자료를 수집해 체계적으로 알아보려고 한 것이지, 구체적으로 배를 만드는 법을 배우려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이 활용 가능한 정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라, 그는 그저 배의 종류와 그에 따른 크기, 그리고 필요한 재료와 가격 등에 대해 정확히 알고, 감찰 등에 있어서 기만을 당하지 않기 위해 자료를 보고 배우며 노력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모았던 자료들로 지금 고영진을 도울 수 있자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