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6화. 관심
시간이 지나면서 해상에서 치러지고 있는 전쟁에 저도 모르게 많은 사람의 마음이 동요되었다. 장기적이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백성 모두는 자기 나라의 군대가 무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변방의 유목민들을 꼼짝 못하게 굴복시킨 적도 있지 않은가. 서양인과 싸워서 질 리 없을 테지만 아직도 두 달째 확실한 승전보가 전해지고 있지 않으니, 다들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하기 싫은 것이 더 잘 들어맞는다고 하더니, 모두가 걱정하던 일이 드디어 터지고야 말았다. 9월 초하루, 날아든 전보에서 그들 하 왕조가 뜻밖에도 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던 것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온 나라가 들끓었다. 특히 경성에 있는 사람들은 이 소식을 믿을 수 없었고, 조정에서도 황제 영안제(永安帝)가 노발대발하며 격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소식을 알았을 때 고청운도 마찬가지로 대경실색했는데, 줄곧 하 왕조의 전함 기술력이 서방 세계의 것보다 별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요주 부근에서 발생한 해전은 적들에 비해, 그들 하 왕조가 지리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어 좀 더 우위를 점하지 않았던가. 이에 그들이 점친 최악의 결과는 비기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졌다니, 이런 결과는 실제로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그는 먼저 구체적인 해전 기록에 대한 경위를 수소문했는데, 특히 전사자 명단에 대해 알길 원했다.
고청운은 전사자 명단 중에 육훤의 이름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이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는 육택에게 육훤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육훤은 다행히 약간의 상처를 입었을 뿐, 며칠만 몸조리를 하면 좋아질 거라고 했다. 또한 지금이야 패전이라는 소식 때문에 사람들에게 소홀하게 여겨지고 있을 뿐이지, 그가 타고 있던 함선은 상대 전함 하나를 격파시킨 공을 세웠다고 했다.
모두들 실패의 원인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지, 외출해 보면 거리마다 온통 이번 전쟁에 대한 이야기들로 무성했다. 떠도는 이야기 중에는 한 민간 군인이 조리 있게 분석한 내용이 있었는데, 정말 그럴싸했다.
이번 전투의 실패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주목하게 만들었는데, 이전의 강남 쪽 신식 방적기가 야기했던 관심마저 시들해질 정도로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전해진 전보에 따르면 전투 과정에서 하 왕조의 전함 5척이 소실되고 54명에 달하는 하 왕조의 장병이 사망했다고 했다. 하지만, 적군의 함선은 겨우 2척만 불탔고 15명을 살상했을 뿐이었다.
이렇게 확연한 대비는 조금의 의심의 여지없이 하 왕조의 건국 47년 이래 지금까지 없었던 실패의 기록이며 심지어 지금 64세가 된 황제의 노년에 닥친 치욕이었으니, 오죽하면 그가 격노해 마지않았겠는가.
이는 조정의 관직 높이에 상관없이 모두 부끄러움을 느낄만한 일이었다.
* * *
송죽서재 2층에 고청운과 사장정이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이 일 때문에 거리의 귀족 자제들이 모두 집안으로 끌려 들어가 단속을 당하고 있다네. 이 기간 동안, 그들이 밖으로 나가 눈에 띄는 일을 저지르지 못하게 말일세. 지금 윗사람들은 폐하의 눈에 띄어 화를 당할까 봐 매우 초조해한다네. 하긴 다들 화풀이 구실은 피하고 싶을 게야.”
사장정이 먼저 나지막이 말했다.
두 사람은 이미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날 오후 고청운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책을 사러 서재에 들르지 않았더라면 언제 만나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어쩐지 요즘 동네 도련님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했네.”
고청운은 그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만약 사장정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말 이 일에 대해 몰랐을 것이었다.
패전 소식이 전해져 온 후, 고청운은 너무나도 바빠서 매일같이 잔업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하던 일을 일단락 짓고 겨우 제때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합격점에 드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사는 것도 쉽지 않지. 다들 언제 뭘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는 잘 알고 있을 걸세.”
사장정도 이러한 경험이 많았었다.
그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는데,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하품이 나와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사장정이 그의 안색을 자세히 관찰했다.
“요즘 잠을 설치고 있는 것 아닌가?”
고청운의 눈 밑에는 옅은 청색이 서려 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잠을 못 이루고 있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조정에서는 이 일을 어찌 보고 있는가? 내가 보기에는 이 싸움을 계속해야 하네만. 조정에서 이 치욕을 어찌 그냥 넘어간다는 말인가.”
사장정은 찻잎을 좀 더 넣어 고청운에게 농도가 짙은 차 한 잔을 따라 주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고청운은 지금 전국이 복수로 가득 차게 만든 패전 소식을 떠올렸는데, 다들 앞선 패전 소식을 수군이 방심하여 습격을 당한 탓으로 생각하고 다음부터 더 조심하고 방비하면 또다시 패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공부에서는 전쟁이 막 시작될 때, 전반적으로 밑 작업을 미리 진행해 두었는데, 선박 공방과 화포 공방이 밤낮으로 일을 계속하여 용도가 서로 다른 크고 작은 40척의 전함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게다가 원래 천주에 대기하고 있는 몇몇 수군기지의 함선 숫자와 합치면, 현재 출항 가능한 함선의 수는 이미 백여 척에 이를 터였다.
그중 신형 화포는 이미 최신 연구 개발을 완료한 화포 앙각계를 장착하고 있었기에 각도를 더 빠르고 안전하게 읽어낼 수 있어 화포의 명중률을 높이는 데 매우 유리해진 실정이었다.
과정이 이처럼 신속하게 완비가 되자, 고청운은 이 시대의 장인들에게 매우 탄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기발한 생각과 기술로 관청과의 결착이나 구속 없이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 냈던 것이었다.
“다음 해전에서 수군들이 승리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래야지.”
사장정의 얼굴이 엄숙해졌다.
“반드시 그럴 것이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는 고청운의 표정 역시 굳어 있었다.
“듣자하니, 패전 소식을 듣고 안도하는 귀족 출신 무장들도 있었다는군.”
사장정은 그들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수군이 패해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 걸세.”
그랬다. 처음에는 이 전쟁이 빨리 끝날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크게 위험하지도 않아 그저 열심히 임하는 척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일부는 육군에 속해 있었는데, 육훤처럼 수전에 미리 방비해 놓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 짧은 시간 동안 해전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패전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들 중 일부는 내심 기뻐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청운이 들은 풍문에 의하면, 2차 해전에는 귀족 자제 무장들이 더 많이 투입될 것으로 보였다. 이는 황제와 조정 대신이 필승의 의지를 굳혔다는 얘기였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일이라 고청운은 말을 꺼내기 어려웠지만, 사장정 역시 이쪽으로 들은 바가 있으리라 믿었다.
“아이고, 우리 수군이 패하는 것을 보니, 내가 젊을 때 수군이 되어 나서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네. 내가 이 해전에 참가하여 적을 물리칠 수 있었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이 자리에서 한숨만 쉬고 있을 일도 없었겠지.”
사장정은 갑자기 서글픈 말투로 말했다.
“나는 지금 무장이 되지 못한 것에 마음속으로 큰 후회를 느끼고 있는 중일세. 일전에 너무 많은 시간들을 허비했어.”
고청운은 놀란 눈으로 그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속으로만 이상하게 여겼다. 예전의 사장정은 생활이 소탈하고 국사에 대해서도 퍽 심드렁해서 국가 대사에 주동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지금의 패전 소식을 접하고 이렇게 탄식을 거듭하는 면모를 보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사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그 뿐만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이번 패전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바다로 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고청운은 이 패전 소식이 복인지, 화인지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모두가 해상 권력에 대한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할 수만 있다면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실패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앞으로의 국운에 도움이 된다면, 이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아들이 있지.”
사장정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자 눈이 번쩍 뜨였다.
“나야 예전부터 환경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었다지만, 우리 천보는 조건이 갖춰 있지 않은가, 나중에 무관으로 성장할 수도 있네.”
그는 어릴 적 외가로 보내져 자랐다. 제일 기본적인 교육만 받아야 했던 그때 그는 매우 가난했고, 귀족 자제의 각종 교육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없어 이를 향유해 본 적이 없었다.
“자네가 그것을 정할 수 있는가?”
고청운이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
사장정은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고청운에게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 것도 정하지 못하겠는가? 우리 부부는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상의를 거쳐 정하니, 나는 공주께서 반드시 내 의견에 동의하실 거라고 믿네.”
그리 말을 마치고는 사장정은 재빨리 이야기 주제를 바꿨다.
“참, 이번에 자네가 지내고 있는 공부가 폐하께 혼쭐이 났다면서?”
이번에는 고청운이 얼굴을 붉힐 차례가 되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뿐 아니라 병부도 그랬지. 대신들이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 배를 제작하지 못해 적군의 함선보다 못한 거라고 하더군.”
당연히 이 일을 혼자 뒤집어쓰려 하지 않았던 병부와 공부는 호부의 발목을 붙잡아 같이 걸고 넘어졌다. 이들이 호부가 자신들의 운영 경비를 삭감했다고 주장하자, 문과 및 무관 사이의 다툼으로 발전하여 몇 명의 상서와 각로가 황제 앞에서 잠시 말다툼을 벌이게 되었는데, 화에 휩쓸린 나머지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황제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이전에도 언쟁이야 벌인 적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이토록 심하게 싸우지는 않았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이 대인들을 뜯어말리면서 그중 나이가 많은 몇 분은 궁내 의원인 어의까지 불러다 진찰을 받아야 했다.
어쨌든 진위를 모르는 싸움에 황제와 내각은 매우 단도직입적으로 곧 다음 계획을 세워 다시 출병하기로 했다.
고청운은 하 왕조가 외국과 접촉하게 되면서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보고 그것을 자국에 어떻게 흡수시킬지를 생각했다. 사실 그들의 전함 기술 수준은 지금의 서양국가와 큰 차이가 없었는데,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전보가 진즉에 전해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만 하 왕조의 수사들은 이쪽으로 경험이 별로 없었으니, 경험 많은 서양군에 비해 해적 정도나 소탕하던 하 왕조 수사들이 배의 화포를 믿고 무릎을 꿇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전해진 좋은 소식은 이번 서양인들과의 해전 결과 때문에 앞으로 공부에 연구 개발 비용이 더 많이 투입되었고, 그 덕에 무기 연구에도 더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다른 이들은 공부에서 연구 개발해 낸 성과를 직접 목도하게 된다면, 앞으로 예산이니 삭감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더는 왈가왈부하지 못하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이 또 하품을 했다. 그는 점심시간에조차 쉬지 못했는데, 요 며칠 밤에도 잘 쉬지 못하고 아주 적은 시간만 잠을 자서 그런지 어둠이 내려오자 약간 졸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사장정이 말했다.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자네의 이리 피곤한 모습을 보니 관직 생활도 쉽지 않나 보군.”
고청운은 그를 한 번 노려봤다. 그는 사실 마음속으로는 사장정과 다시 밀린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필경 사장정에게는 많은 이야깃거리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 고영진이 행방이 묘연한 곳에서 무엇인가 일을 꾸미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우선은 집에 조금 일찍 돌아가 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