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05)화 (405/504)

405화. 호감

그들 부부 두 사람이 함께 안채로 옮겨 갔을 때, 고경도 이제 막 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3개월간의 개축 기간을 거쳐, 은자 6백여 냥을 들여 그들 집안의 장부상에 기록된 모든 은자를 다 소진하고 나서야 고택은 마침내 개축이 끝났고, 그 결과는 심히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사중정원을 보유한 사합원 형식의 새로운 고택은, 중심이 되는 축선을 따라 앞마당, 객실, 대청, 마구간, 도좌방(*倒座房: 사합원에서 정문과 나란히 가장 남쪽에 위치한 건물로, 정문을 가운데 두고 문간방과 나란히 하고 있고, 북쪽을 향하고 있기에 손님이나 하인의 거처로 쓰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번째 사합원 형식의 건물에는 고영량과 고영진이 거처했는데, 각자의 공간에 정원이 하나씩 달려 있었고, 과원(*跨院: 중국식 가옥에서 안채 곁에 있는 뜰)까지 두고 있었다. 

세 번째 건물이 바로 고청운 내외가 거주하는 공간으로, 지금은 고경도 이곳을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마지막 건물은 바로 사중정원의 마지막 건축 구조물로, 후원으로 사용되는 곳이었는데, 고청운이 퇴직하여 여유 시간이 나거나 혹은 고대하와 소진씨가 상경하게 되면 사용하려고 둔 공간이었다. 

이 밖에도 후원의 뒤쪽에는 후조방(*后罩: 본채 뒤에 나란히 지은 가옥으로 보통은 주인집의 여식을 기거하게 하나 노인이나 아이들이 거주하기도 함)이라 불리는 건물도 한 채를 올렸는데, 원래는 안식구나 계집종들의 거처로 사용되나 앞쪽에 배치한 도좌방만으로도 고택의 하인들을 수용하기에 충분하여 후원의 화원으로 삼아 구성하게 되었다. 

이곳에는 그네도 설치하고 각종 식물을 심으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날씨가 더워 미처 화초들을 다 심지 못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게 큰 저택에 그들 가족들이 살기에는 충분하고도 남는 면이 있었다. 이에 간미는 네 명의 하인들을 더 사들였고, 영요에게도 장원에 보낸 친정에서 데려온 하인들을 다시 불러들이게 했다. 

이러한 새로운 거주 형태가 그들의 생활에 가져온 변화는, 앞으로 그들이 방택으로 넘어가려면 길을 더 많이 걸어가야 한다는 정도였다.

이때 고청운은 얼굴이 불그스름하고 귀밑머리가 촉촉해진 고경을 보고 급히 물었다. 

“방금까지 뭐 하고 있던 게냐? 머리가 온통 땀으로 젖어 있구나.”

고경은 간미의 옆자리에 앉아 뽀얀 얼굴위로 갑자기 환한 웃음을 띠며 답했다. 

“아버지, 저는 방금 조카랑 화원에서 놀다 오는 길이에요. 아기가 너무 귀여워요. 조카는 다른 아이들처럼 울며 보채지 않고, 되레 우리가 얼러주면 아주 잘 웃어요. 정말이지 얌전하고 사랑스러워서 잠시라도 손을 뗄 수가 없게 만드네요.”

고청운은 의아해하며 고경을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아까 집으로 돌아왔을 때, 왜 네가 화원에 있는 것을 보지 못 한 것이냐?” 

그들이 지금 거주하는 건물의 정원에도 예전부터 남겨둔 화초와 수목들이 있어 경치가 아주 보기 좋았는데, 그가 조금 전 걸어 들어오며 손자가 있던 것을 보았다면 당연히 그쪽을 들려 보았을 것이었다.

“그건 저희가 외증조할머니네 있었으니까요?”

고경은 눈을 깜박이며 약간 이상하다는 듯 대답했는데, 왠지 아버지의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였다. 

고청운은 머릿속이 좀 혼미해진 걸 깨닫고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평소 이맘때 손자는 방택에 건너가 있었는데, 저녁 식사 시간이 되지 않는 이상 그전에 먼저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아버지,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는지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고경은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으며 고청운을 재촉했다.

간미는 모처럼 그녀의 발랄한 모습을 보니, 마음속으로 매우 기뻤다. 이제는 큰손자가 있었지만, 그것과는 또 달랐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녀에게 재촉을 해야 그나마 겨우 조금씩 움직였는데, 지금은 외려 매일같이 황립 여자 서원에서 돌아와서는 먼저 큰조카를 찾아 노는 걸 보니 성격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았다.

헛기침을 한 번 한 고청운은 간미가 고의로 자신 쪽을 쳐다보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조금 억울해졌다. 

‘지금 이건 그녀가 나한테 모든 걸 맡기려는 하는 걸까? 말을 말자. 일도양단이라 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야겠다.’

“심심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고청운의 물음을 들은 고경은 매우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이 일을 언제 제게 물으실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자매들과 교류해 오면서 그녀는 자신이 행운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자신을 이토록 아껴 주는 부모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그녀의 혼사를 이용해 집안을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를 위해 배려해 주고 있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조금 놀라서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버지, 방씨 집안에서 보내온 서신과 관련된 내용은 이미 오라버니들께서 제게 오래 전에 귀띔해 주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 스스로도 그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어요. 그저 그와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인데, 어떤 일을 대할 때의 의견이 대부분 저랑 잘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서적을 그도 좋아한다고 하고, 게다가 그는 여자아이가 많이 배우는 게 옳다고 보고 있었어요. 우리를 무시하지도 않더군요. 이런 점이 제가 느낄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다만 앞으로의 일들에 관해서는 누가 알겠어요? 저는 아직 14살이라 급할 것이 없는 걸요.”

맑고 듣기 좋은 목소리로 단숨에 말을 마친 고경은 느릿느릿 자신의 손수건을 다시 잘 갠 후 고개를 들어 고청운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에 움츠러들지 않았다. 

“저는 급하지 않아요. 적어도 최소한 방씨 집안의 구체적인 집안 사정을 먼저 똑똑히 들어봐야겠지요.”

고청운은 그 모습을 보고 약간 어리둥절했다. 그는 이러한 딸아이의 모습을 보니 딸이 이미 장성한 것 같아, 좀 기쁘기도 하고 서글프게도 느껴졌다. 

그는 고경이 방정심에 대해 약간의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딸아이가 여전히 이성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방정심에 대한 마음이 별것 아닌 것도 같았다.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듯한 이 불분명한 느낌이라니, 소아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그런 걸까?’

이때 간미가 입을 열었다. 

“나와 네 아버지는 너를 걱정할 뿐이란다. 만일 너희들이 정말 잘 이루어진다고 해도, 네가 방씨 집안의 어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까 염려가 되는구나.”

이 공간에는 지금 그들 세 사람밖에 없었기에, 무슨 일이든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었다. 

고경은 비단 손수건을 다시 소매에 집어넣으며 웃음을 띠고 말했다.

“아버지, 어머니, 안심하세요. 정말 그러한 지경에 몰리게 된다고 해도 제가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항상 있을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요 몇 년 동안 헛공부를 한 게 아닐까요?”

그녀는 그저 책에서 다루는 이론적 내용만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는 책벌레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가 늘 이론과 실재를 잘 접목시켜 주었기에 서적에만 구속되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그저 천천히 계속 궁리를 해 오고 있었다.

고청운과 간미가 반응하기도 전에 고경이 간미 품에 안기며 말했다.

“그럼 제가 18살이 되어 시집가는 건 어떠세요? 저는 지금 조금도 시집갈 생각이 없어요.”

간미는 온몸으로 표현하는 애교를 받고 놀랐으나, 고경이 모처럼 자신에게 응석을 부리는 걸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그러자꾸나. 너는 아직 어리니 급할 것 없다.”

간미의 품속에서 고경이 몰래 웃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들은 고경이 성혼에 대한 큰 의견이 없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내 화제를 돌려 고전각의 놀랄 만한 사건, 사고 얘기를 꺼내며 웃음보따리를 터뜨렸다.

* * *

이 일이 있은 후, 고청운은 상성에 머물고 있는 사촌 형 진교에게 서신을 한 장 보내어, 담주부(潭州府)에서의 장씨 집안의 현지 평가가 어찌한 지 물어보았다. 

고경의 일은 잠시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방정심은 여전히 때때로 고택에 와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서동을 데리고 새로 구입한 이중정원 형태의 사합원에서 거처하고 있었는데, 백씨 집안에서 문간방과 부엌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를 보내줘서 편히 생활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했을 것이었다. 

그가 고영량과 같은 진사 합격 동기이자 동료이며, 고청운 친우의 아들이기도 했기에, 고청운 일가와 그는 고경에 대한 언급만 하지 않으면 외려 매우 화기애애했다. 다만 고청운은 남들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단둘이서만 한 자리에 있지 못하게 했다. 두 사람도 이를 잘 알고 있듯이 단 한 번도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매번 고영량이나 고영진이 있는 자리에서만 함께했다.

설령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 젊은이들은 교제 반경이 예전 세대보다는 넓었기에, 고경은 친구들을 따라 자주 모임에 참석해서, 밖에서라도 이 두 사람이 만날 기회는 많이 있었다.

고경의 혼담은 잠시 언급치 않기로 하고, 고영진의 혼담은 드디어 중추절(*중국의 추석)을 넘기고 일단 가닥을 잡게 되었다. 고영진과 노씨 집안의 둘째 여식이 여러 차례 만나 본 후에야, 고영진이 고청운에게 혼사에 대한 의사를 드러낸 것이다. 

“노씨네 둘째 아가씨가 확실한 게냐?”

고청운이 고영진에게 물어보았다.

고영진은 얼굴에 갑자기 홍조를 띠며 눈꺼풀이 늘어뜨리고는 수줍은 듯 대답했다. 

“아버지, 저는 그녀를 아주 좋아합니다. 저희는 이야기가 통하거든요. 그녀는 축국을 좋아하는데 그 기술도 많이 압니다. 그녀와 있으면 아주 재미있지요.” 

그들은 자신의 친구들끼리 한 패씩 나뉘어 놀러갔을 때, 노개운의 감독 아래 단둘이서도 만나 보았었다.

모처럼 보이는 아들의 색다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고청운이 추궁하듯 따져 물었다.

“정말 그녀라고 확신하느냐?”

그는 간미가 어젯밤에 자신에게 불평했던 것을 기억했다. 노씨네 둘째 아가씨는 제일 처음 만났을 때 보여 주었던 온화함과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은 다 연기라며, 친해지고 나니 원래의 성격이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고영진이 진중하지 않고 가벼울 수도 있는 그녀와 만나, 나날을 보내면서 혹여 부딪히기라도 할까 염려되었다. 

고영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던 간에 그녀로 정하겠습니다.”

고청운은 한참을 망설였지만 그래도 진즉에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바로 대답했다.

“좀 이따가 다시 네 어머니께 가서 말씀드리거라. 우선 혼사를 진행하기로 집안끼리만 이야기를 맞추고, 정혼 절차는 잠시 뒤로 미뤄야겠구나. 지금은 전시이니, 이런 상황에서 경사를 치를 수는 없지.”

“잘 알겠습니다, 아버지.”

고영진은 이해할 수 있었다.

* * *

이후 두 집안은 일단 신물(*信物: 뒷날에 보고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을 교환하여 양측 모두 혼사에 대한 일을 진행시키기로 확정지었는데, 당분간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기다리다가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정식으로 정혼 절차를 밟으려고 했다.

전쟁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전장에서 보내오는 소식의 전달이 느려 고청운은 다급해할 뿐이었는데, 특히 육훤까지 관계되어 있어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출근길에 육택을 마주친 고청운은 상대가 여전히 침착해 보이지만 그의 입가에 생긴 물집으로 말미암아 그의 조바심과 근심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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