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번뇌
7월 하순, 방정심은 고향의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면서 고청운에게 방희림이 쓴 서신을 가져다주었다. 서신에서 방희림은 그의 집 고경에 대해 직접적으로 마음에 든다고 밝히며, 방정심 대신 혼사를 논하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그 어투가 매우 정중했다. 심지어 ‘민전강매 사건’ 이후 일어난 그간의 일들에 대해 한 번 쭉 언급하며 고청운의 근심이 없게 하고자 무던히 노력하는 것이 엿보였다.
서신을 다 읽고 나서 크게 놀란 고청운은 방정심이 자신에게 서신을 건넸을 때의 수줍게 굴었던 행동을 떠올리며 문득 깨달았다.
‘틀림없이 그놈이 먼저 소아를 보고 마음에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 방희림한테 말했을 게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갑자기 방희림이 이 혼담을 꺼낼 수 있을까?’
이 때문에 고청운은 일순 갈등에 휩싸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방정심이 마음에 들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얼떨결에 고경을 그에게 시집보내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는데, 그 후로 여러모로 진지하게 고심을 거듭한 결과, 더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게 억누르고 있었다.
특히 방정심이 탐화로 시험에 합격하고부터는 그런 생각들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는데, 고청운은 인기가 많은 방정심이 자신의 집안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방희림이 이 혼사를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잖은가? 또한, 만약 방씨네 집안에서 이미 혼사를 준비 중인 여식이 있었다면?
그가 사윗감으로 꼽았던 인물로는 고경에게 이미 말했듯이 혼인 상대로는 문인 집안의 차남인 것이 좋고 더불어 독서, 세상 구경 등 고경과 공통된 취미를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에 드는 소년을 찾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요즘 같아서는 사내들이 출세를 위해 죄다 벼슬길에 오르려 준비하고 있는데 말이다. 고청운은 그런 소년들에게 모든 출셋길을 버리고 고경만을 위해 그녀만을 중시하며 살라고 말할 자격이 없었다.
다른 것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이, 자신에게 그러한 생활을 강요한다면 자신 또한 그리 살 수는 없을 것이었다. 자신만 해도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살아오면서 대부분의 정력을 과거 시험 준비에 쓰거나 그 이후로는 관직 생활과 양육에 힘을 썼고, 화본 집필과 산술 서적에 노력을 기울이며 정작 간미에게 쓰는 시간은 비교적 적지 않았는가.
고청운은 얼마 전에 겨우 조건에 맞는 것을 혼처를 찾았지만, 상대가 이미 정혼을 했거나 성향이 잘 맞지 않을 것 같거나, 천성적으로 바람기가 있거나, 혹은 집안에 이미 정을 통하는 여종을 여럿 두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시간이 흘러, 고청운과 간미는 먼저 고려했던 조건 때문에 혼처를 찾기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계속 고경의 혼사를 위해 궁리하던 중이었는데, 때마침 방정심이 나타났다. 그는 고경을 매우 좋아하여 정식으로 부부 관계를 성립하고 싶어 했는데, 고청운이 보아도 그는 매번 고경을 바라볼 때마다 두 눈이 밝게 빛내고 있었다.
‘답답하구나. 우리 소아는 이제 겨우 14살인데, 벌써 누군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니.’
말을 좀 하자면, 고경이 이쪽으로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기에 그녀의 뜻까지는 아직 모르겠다만, 도대체 방정심 이놈은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품고 있었단 말인가?
고청운은 간미를 보고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미아, 당신 의견은 어떠오?”
간미는 고청운 주위를 한 바퀴 맴돌더니 이 문제에는 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 아파하며 다른 말을 했다.
“당신, 또 더 마르셨네요.”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위아래로 살펴보니 옷을 입고 있는 허리의 맵시가 좀 헐렁해진 듯했지만, 이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저 근육이 더 튼튼해진 것이오.”
간미는 그를 힐끗 보더니 그에게 권유했다.
“앞으로 저녁 식사 때 고기를 좀 더 많이 드셔야 합니다. 여기서 더 살이 빠지는 건 좋지 않아요.”
속으로 그녀는 앞으로 그에게 몸보신이 되는 각종 탕국을 좀 끓여 주어야겠다고 궁리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고청운은 결국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는 매일 일정 운동량을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 자신의 몸매가 적당하고 또 표준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업무상 약간의 고생이 더해져서 그런 것뿐.
게다가 저녁 식사로 고기를 적게 먹고, 평소 식사의 6~7할만 배가 부르게 유지하는 것은 그가 여러 해 동안 유지해 온 것으로, 그 성과가 줄곧 현저히 드러난 덕에 자신의 몸은 매우 건강하며, 병도 거의 없었다. 어쩌다가 가끔 부주의로 감기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매우 빨리 회복했다.
“설마, 장 형 같은 모습이 되어야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오?”
고청운이 그녀를 흘겨보았다.
중년의 나이에 이르러 조금씩 방종해지면서 이제는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온 장수원은 요즘 함께 축국 경기를 뛸 때면 진작부터 자신을 쫓지 못하고, 그저 매번 헐레벌떡 뛰어다니기만 할 뿐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다음 경기엔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소리치는 게 다였다.
고청운은 정말로 그의 결실을 줄곧 기다려 보았으나 결과는 그대로였다.
간미는 억울해하는 고청운의 눈초리를 느끼고 계속 설득할 생각을 접어야 했다. 에휴, 가끔 그녀는 부군이 좀 더 뚱뚱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의 그의 몸매는 여전히 젊었을 적처럼 꼿꼿하고, 어깨는 넓었으며, 다리와 허리도 가늘었던 것이다. 머리카락도 아직 칠흑 같이 검었으며, 눈에는 기개가 서려있었고, 손발의 움직임도 온화하고 예의바르며 책을 오래 읽고 깊이 공부 한 티가 물씬 풍겼다.
비록 피부색이 좀 예전보다는 어두워졌지만, 두 아들과 걸어 다니면 아직은 아이들의 맏형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나중에 자신이 그와 함께 서 있다가 그의 누이로 보이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나이만큼 늙어 보이지 않는 부군이 곁에 있다는 것도 꽤나 중압감을 받는 일이었다.
“참, 미아, 당신이 심심이에 대해 속으로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 아직 들려주지 않았소.”
고청운이 소리를 높여 묻는 소리가 들리자, 간미의 딴 생각이 멀리 달아났다.
“저는 방정심이 좋은 소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국가의 부름을 받아 나라의 벼슬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또 그 집안에는 한 번의 교훈이 있었으니, 앞으로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확률이 높지요. 그의 형제자매들에 대해서는, 자매들은 우선 이야기할 것 없고, 남자 형제들도 마음 쓰는 걸 보니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간미는 얼렁뚱땅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방 탐화와 당신의 관계만 보더라도, 그가 우리 소아에게 어찌 할 수는 없을 거예요. 백 동생의 경우, 방정심의 말을 듣자 하니 올해 10월 5일이 백 대인의 65세였던 생신이라, 그녀가 심심이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데리고 경성으로 올라와 생신 연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다시 가서 보시죠.”
방희림에게는 2남 1녀가 있었다. 올해 열다섯인 둘째 아들은 아직 명성을 떨치지 않았는데, 시험을 치지 않아 공명(*功名: 과거의 칭호나 관직의 등급)이 없었던 것이다.
고청운이 그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둘째 아들의 경우 급하지 않아 조금 더 있다가 과거 시험을 치르게 할 것이라고 했다.
65세 생일을 맞아 여는 연회는 10년 주기로 돌아오는 끝수가 없는 정식 잔치는 아니기에, 그렇게 큰 규모로 치르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백엽은 현재 정2품인 형부상서(*刑部尚书: 형부상서는 경찰, 검찰, 법원의 최고 통솔자 정도로 주요 직책은 형법을 관리하고 사람을 벌하는 직책)직을 수임하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접근하여 잘 보이고 싶어 할 것이라 이 잔치에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3품 이상의 품계는 고위 관직으로 분류하고 있었기에 보통은 65세가 넘으면 퇴직을 해야 했지만, 백엽은 건강상에 이상이 없는 한 70세에 퇴직을 할 것이었다. 황제가 노신들이 점차적으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원해서 이들을 허직(*虛職: 명칭만 있고 직무가 부여되지 않은 관직)에 봉하고는 했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삼공삼사(*三公三师: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 등 태자나 황자의 스승) 등이 그러했다.
백엽의 부친인 백치원(白致遠)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제사(*帝师: 황제의 스승)로 유명한 대유(大儒)이기도 했고, 백엽도 황제의 심복으로서 확고한 황당파에 속해 있어 다른 황자들의 포섭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백엽은 고청운이 진사 시험을 쳤을 때 그를 발탁 시켜 준 좌사(座師)이기도 했는데, 그는 결탁하는 것을 싫어하여 일전에 유일한 그의 서녀를 방희림에게 시집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그 해 합격한 진사들에게는 늘 담담하게 대했다.
고청운은 백씨 가문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왔고, 명절 때마다 서로 선물을 주고받았다. 하상 대인이 벼슬자리에서 내려오고, 고청운이 정5품의 공부의 낭중으로 승진하고 나자 백엽과의 관계가 비로소 긴밀해지기 시작했는데, 연회를 열게 되면 이젠 배첩을 보내어 초청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하여 이번 백엽의 생일잔치에도 고씨 집안에서는 반드시 방문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탐탁지 않소.”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좀 더 대하기 쉬운 집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좋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첩을 두지 않아야 했다.
그가 방희림과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는 이유는 방희림이란 사람 자체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으로, 자신의 처 외에 다른 여인을 곁에 두지 않았다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그들은 서신으로 당연히 이런 내용에 대해 말을 나눈 적이 없었던지라, 고청운도 동년배들과 모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러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물론 방희림이 그렇다고 해서 방정심이 앞으로 자신의 처에게만 일편단심으로 지낸다는 게 보장되는 것도 아니었다.
“당신도 너무 마음이 급하십니다. 저희가 아무리 이런 말을 많이 주고 받아보았자 아무 소용없지 않습니까. 소아의 의향을 먼저 보셔야지요. 만일 그 아이가 싫다고 한다면, 우리가 이렇게 마음 쓰는 건 그저 헛수고가 되는 겁니다.”
간미는 고청운이 번뇌에 휩싸인 모습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그녀가 보기에는 자신의 딸은 조용한 것을 좋아하고 성정이 냉랭한 편이었지만, 필경 자신의 외할머니와 자신이 합세하여 길러낸 여식인데다가 또 황립 여자 서원에서 경험한 바도 있기에, 딸아이의 사람됨이라면 이 세상에 처신하며 살아가기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그녀의 딸은 그 어디로 시집가더라도 아주 잘 지낼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딸은 자신을 따라다니며 각종 자리에 참석해 오면서 단 한 번도 실례를 범한 적이 없어, 다른 부인들에게 남긴 인상도 매우 좋은 편이었다. 그와 부군이 합심하여 정성들여 교육하지 않았던가. 딸아이를 안채에서만 생활하는 여성상으로 키우며 그녀의 능력을 국한하지 않고, 마음이 굳건한 여인으로 키우려고 얼마나 노력해 왔던가.
아무래도 이 세상은 여인에게 불공평하여, 여인은 부군이 되는 자의 바람기로 인해 자기 연민이나 세상에 대한 원망에 빠지기 쉬웠다. 이럴 때 여인들은 평소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한두 가지 있다면 생활이 좀 더 편안해졌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기나길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간미의 말을 들은 고청운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바로 종이 달린 줄을 당겨 하인을 부르더니 고경을 안채의 응접실로 데리고 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