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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402)화 (402/504)

402화. 발발(勃發) (2)

한쪽에서는 간미와 연 씨가 영요에게 말을 걸며 안부를 묻고 있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방인소가 고전각을 끌어안고 활짝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얼굴의 주름살을 생동감 있게 움직이며 아이를 어르고 있는 그의 모습을 그저 넋을 놓고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스승님, 저도 좀 안아보게 해 주세요. 이렇게 오래 안고 계셨는데, 팔이 아프지 않으십니까? 짱짱이(*고전각의 아명)가 꽤 무겁습니다.”

고청운은 개구멍바지를 입고 있는 고전각을 보며 그의 작은 손을 만지작거려 보았는데, 정말이지 보들보들하니 너무나 부드럽고 연약했다. 거기에 아기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까지 들리자, 마음도 몹시 편안해졌다. 

“노부는 힘들지 않구나, 나는 좀 더 안아줄 수 있어. 네 외할머니로부터 어렵사리 겨우 뺏어온 기회란 말이다.”

방인소는 그를 한 번 흘겨보더니, 갑자기 놀란 듯 외쳤다.

“아이고, 짱짱아 수염은 잡아당기지 말거라! 어찌 네 아버지 어릴 때와 이리도 똑같을 수 있느냐?”

이를 본 고청운은 얼른 고전각의 작은 손을 덥석 잡고 방인소의 수염을 조심스레 빼주며 말했다.

“이젠 제가 안아 주는 수밖에 없지요? 저는 수염이 없으니까요. 하하, 제게 선견지명이 있었네요.”

“아니 된다, 노부가 조금만 더 안고 있으마.”

여전히 손을 놓고 싶지 않았던 방인소는, 이번에는 고전각의 작은 손을 잡은 채 다시 아이를 어르기 시작했다. 

“어휴.” 

고청운은 한숨을 내쉬며 그저 다시 넋을 놓고 구경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광경을 마주한 고영량과 고영진은 서로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을 아끼고 있었다. 

고경이 옆에서 입을 가리고 몰래 웃자, 고영진이 눈을 부라렸다.

“큰오라버니, 둘째 오라버니, 서운해요?”

고경이 웃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예전에는 두 분이 고향에서 돌아올 때마다 외증조할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 지금은 입지가 뚝 떨어졌잖아요. 힘들 거예요, 전 이해할 수 있어요.”

고영량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고영진은 답답할 것이었다. 

예전에는 고향에서 경성 집에 돌아올 때마다 집안 어른들이 그들을 빙빙 돌며 더우면 더울세라, 추우면 추울세라 살뜰히 돌보아 주었었다. 그러니 이번에 그들은 경성으로 돌아와 받았던 환영들 중 처음으로 확연하게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었다. 물론 이전에도 처음에만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끌려다니며 한바탕 눈물을 지어내다가, 그들이 휴식을 취하고 다시 방에서 나오면 그 지위는 금세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 몇 년 동안 못 뵈어서 그동안 아버지를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요.”

고영진은 손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걸어가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으신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빠요.”

마침내 고청운은 손자에게서 시선을 거두어들이고, 그가 어깨를 풀어주는 것을 잠시 만끽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네 조카를 보는 것이라 그랬구나. 아직 아가이지 않느냐. 자, 이리 가까이 오거라, 좀 더 자세히 보자꾸나.”

고청운은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영진을 위아래로 몇 번을 훑어보더니 놀라서 말했다.

“네가 3년 전 경성을 떠날 때만 해도 내 어깨에 겨우 닿을만한 키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나보다 더 커질 줄은 몰랐구나.”

“그건 당연하죠. 제가 지금은 형님보다 손가락 두 마디만큼은 더 큰 걸요.”

고영진은 비교하는 손짓을 해 보이며 턱을 살짝 치켜들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제 생각에 저는 아직 좀 더 클 수 있을 것 같아요.”

고영진과 고영량이 함께 서 있으면 아무리 그들을 처음 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둘이 바로 친형제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17살이 된 고영진은 몸이 건장하기 그지없었는데, 형보다 조금 더 크다고 하나 형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동생이 많이 컸지요, 저보다 커졌습니다.” 

고영량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영진과 자신의 키를 비교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성혼을 해도 되겠어요.”

“형님!” 

고영진은 고청운을 힐끗 쳐다보며 구시렁거렸다.

“나야말로 지금은 혼인을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이번에 돌아온 목적은 바로 그의 혼사를 위해서였으나, 물론 그의 학업도 관련이 되어 있기는 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임계촌에 계속 더 머물렀어도 그런대로 괜찮았을 것이다.

그의 밀색 피부가 은은하게 붉은빛을 띠는 것을 본 고청운은 그가 부끄러워서 헛기침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거짓 연기로 짐짓 나무랐다. 

“이건 네 맘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벌써 이만큼이나 장성한 녀석이 이젠 혼사를 치러야지, 몇 년만 더 기다렸다가는 좋은 집안의 딸들은 모두 남에게 빼앗기고 없을 게다.”

고영진은 ‘흥’ 하는 소리를 내며 고청운을 다시 끌어당겨 앉혔고, 그의 어깨를 계속 다듬이질하듯 두드려 주면서 더 말하려 하지 않았다.

고청운은 이것이 그가 묵인한다는 표시임을 알고, 빙긋이 웃으며 고영량과 눈을 마주쳤다.

* * *

이제 막 경성으로 돌아온 고영량은 사흘정도 휴식을 취한 뒤 한림원에 도착 보고를 올린 뒤, 정식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고청운과 고영진, 두 부자 사이는 더없이 다정했는데, 고청운이 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매일같이 고영진에게 시험 문제를 내줄 정도였다. 

한편, 간미는 고영진을 데리고 각종 연회에 참석했다. 그녀는 누구의 환갑잔치이든 상관없이 어느 연회든 초청을 거절하지 않고 참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는데, 조금이라도 더 빨리 아들에게 좋은 며느리를 찾아주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고청운은 이렇듯 가족이 주는 단란함을 누렸지만, 그럼에도 대다수의 시간과 노력은 화포 앙각계 개발에 들였다. 그들은 원래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새 발명품을 연구, 제작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충돌이 먼저 한 번 빚어지며 갑자기 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 * *

이 소식이 경성에 전해지자, 온 세상이 떠들썩해졌다.

비록 모두들 그간 소보에서 본때를 보여 주겠다며 아우성쳐댔었지만, 이는 단지 입으로만 떠들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 싸울 날이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하 왕조가 태평한 시기를 보낸 지 이미 너무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해상 무역의 발달로 인해 경성의 많은 사람들 역시 바다의 일에 직간접적으로 뛰어들고 있던 상태라, 이번 전쟁 소식은 비록 멀리서 터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한동안 해전 얘기로 온 경성이 비할 바 없이 달아올랐는데, 다들 서로 마주치기만 해도 해전을 주제로 한 얘기를 했고, 아무도 그간의 낭설이니, 염문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떤 소보든 상관없이 해전과 관련된 새로운 소식을 전할 때마다 사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서 한 번 찍어낸 것을 아무리 재판해도 공급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였다.

조정 관리인 고청운은 관에서 발행하는 관보나 전보를 받아 볼 수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소식을 받아 볼 수 있었다. 

고청운의 소식통이 보통 사람보다 더 정통하다고는 하나, 현재 새로운 소식은 얼마 전해지지 않고 있었다. 다만 천주와 영파의 전함이 이미 출항한 것은 알려졌는데, 선봉으로 출정한 수군이 출격하여 다른 전함 한 척을 격파해 다른 수군들보다 조금 더 나은 승리를 점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수군이 어떻게 이 국면을 돌파할지, 최종 결말은 아직 그들의 손에 달려 있는 상태였다.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이 세계에는 아직 무전기 같은 것이 발명되기 전이라 빠르게 소식을 전달받을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이 전쟁에 대해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 오고 있었으나, 전쟁의 발발 시점이 대략 그들이 예견하고 있던 시점보다 약 3개월 이상은 빨리 시작되어 버렸기에 어떤 방면의 준비는 아직 완전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이제 와서 모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내각의 명령 하에 전쟁터의 장병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여 전쟁의 승리가 자신들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돕는 것뿐이었다. 

육부 중 전시 상황에 놓이자 가장 바빠진 것은 병부와 호부였다. 공부의 경우, 초기에 돌입했던 작업들은 이미 완성을 보이고 있어, 전함의 개조 역시 다 끝마쳐 병부로 인도를 하는 걸 완료해 두었었다. 현재 그들 공부에 남겨진 임무는 더 크고, 더 선진적인 전시용 전함을 구축하여 제조해 내는 것이었다. 

전 왕조의 어떤 명장이 언급했던 바에 의하면, ‘해전이라는 것은 큰 배로 작은 배를 이기고 큰 총포로 작은 총포를 이기는 것이며, 여러 척의 배로써 소수의 함선을 물리치는 것이다. 즉 다량의 총포로 소수의 총포를 이겨내는 것에 불과하다.’ 라고 했었는데, 본 왕조의 장병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조정에서는 근래 요 몇 년 사이에 해외 무역의 발전을 통해 얻은 사실 때문에 줄곧 선박 방면의 발전에 투자를 거듭하고 있었는데, 그 결과 특히 남경과 산동 지방의 선박 공방이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밖에 동남부의 해안 지대에도 남쪽에서 북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매우 많은 조선소가 자리해 있었다. 그중에는 관청에서 세운 것도 있었고, 개인이 세운 것들도 있었다.

조선업과 관련해서 일부 지역에는 목재, 쇠못, 밧줄, 청동 판금 등을 제작하는 관련 산업도 등장했다.

이런 발달 양상은 조선 산업의 부흥과 동시에 공부에게도 커다란 편익을 가져다주었고, 최소한 일부 조선 작업을 개인 공방에 하청을 맡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 안에서의 이익 배분에 대한 갈등이 매우 복잡하여, 고청운은 자신이 인솔하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좌우시랑이 눈치를 주었기에, 부정을 목격해도 그저 못 본 척 눈감아 주며 크게 관여할 수 없었다.

그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완제품으로 완성된 선박에 대한 품질 검수 권한이었다. 그는 만약 품질이 기준에 부적합하면 절대 통과시켜 주지 않았고, 품질 미달된 그 어떠한 배도 선박 공방에서 출고시키지 않아 이러한 문제 선박들이 절대로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이것은 자신의 가족의 생명과 연계된 문제로, 절대 애매모호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만약 이렇게 빠듯하게 굴지 못했다면, 고청운은 벼슬을 그만둘지언정 이 일을 계속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 그의 결정을 이해하고 지지해 주었는데, 결국 윗사람부터 그런 엄격한 태도를 보이니 아랫사람들 역시 자연히 알아서 잘해 주었다. 

게다가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결코 문관만 중시하고 무관이라고 무시하는 세상이 아니었다. 이 둘 중에서 하나라도 잘되지 않으면 아니 되었는데, 만일 병부 사람들이 공부 사람들이 관리 감독하여 출고시킨 함선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일은 바로 밖으로 새어나가 온 관직 현장을 흠칫 놀라게 할 것이고, 일이 이렇게까지 확대되면 분명 누군가가 나서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해전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경성에 거주 중인 절대 다수는 일상적인 생활을 계속 영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사전 준비를 충분히 진행하여 식량 가격을 안정시켰기에 백성들의 생활은 잠시의 영향도 받지 않은 채 흘러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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