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401)화 (401/504)

401화. 발발(勃發) (1)

시간은 흘러 이제는 드디어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고청운 등 일행은 관선(*官船: 관청에서 소유한 배)을 타고 귀경을 하기로 했는데, 이 배에 육훤의 아내 영 씨와 아이들을 태워 가기로 했다. 영 씨와 영요는 사촌 자매 지간이었다. 

고청운은 주변 시선 때문에 그녀와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가 없었는데, 다행히 그들이 탄 관선은 무려 3층짜리 선박이었다. 

영 씨 일행은 최고층에 머무르며 쉽게 내려오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여기저기 다녀도 상관없었다. 

“고 할아버지, 우리 언제 다시 낚시하러 가요?” 

일곱 살 육기(*陆圻: 육훤의 큰아들 이름)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고청운의 팔을 껴안고 계속 흔들어 댔다.

고청운은 책에 열중하고 있다가 아이의 말을 듣고는 입을 열었다.

“공부는 다 했느냐?”

고청운은 육훤의 부탁으로 경성으로 돌아가는 동안 육기를 보살펴 주기로 했다. 이 꼬맹이는 생긴 것이 귀엽기가 그지없었는데, 겉모습은 육훤의 어린 시절 모습과 매우 비슷했지만 성향만은 완전히 달랐다. 

활발하며 낯을 가리지도 않았던 육기는 며칠 만에 고청운에게 감히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아직 네 살배기 딸과 두 살 밖에 안 된 작은아들이 곁에 있었던 영 씨는 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 와중에 육기는 발이 재빨라 혼자서 위와 아래층을 뛰어다니며 오갔다. 이렇게 접촉이 계속되는 가운데, 두 사람은 서서히 친숙해졌다.

고청운은 육기의 움직임이 너무 활발한 것을 보고, 아랫사람들만으로는 보살핌이 소홀할까 봐 염려 되어 아예 자신의 곁에 붙들어 두고 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하기로 했다. 

“저는 이미 다 외웠는걸요, 못 믿으시겠다면 제가 다시 외워서 들려 드릴게요.”

육기는 상황을 보더니 득의양양하게 웃었는데, 눈에 교활함이 번뜩이는 걸 보니 벌써 준비를 해둔 모양이었다.

“그래, 시작해 보거라.”

고청운은 보던 책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여 그를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육기는 작은 가슴을 한 번 펴더니, 다시 조그마한 입을 열었다. 

“……가급천병(*家给千兵: 제후 나라에 일천 군사를 주어 그의 집을 호위하게 한다)이라. 고관배련하니, 구곡진영이로다(*高冠陪辇, 驱毂振缨: 높은 관을 쓰고 연(임금이 타는 수레)을 모시어 제후의 예로 대접하니, 수레를 몰며 관에 달린 끈을 떨치는 것이 임금 출행에 제후의 위엄이 있다)

세록치부 차가비경이리니(*世禄侈富, 車駕肥輕: 대대로 녹이 사치스럽고 부하니 제후 자손이 세세 관록이 무성함, 천자의 가마인 鳳輦(봉련)에 따라가는 군신과 측근들이 받는 봉록은 많고, 타고 다니는 말은 기름지고 옷은 사치스럽다는 말이다. 곧 천자의 행렬이 장대하고 화려하다는 말인데, 태평하고 부유한 시대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책공무실하니 늑비각명하라(*策功茂实, 勒碑刻铭: 큰 공을 세우도록 꾸며 그 공이 茂實(무실)해지면 그것을 讚美(찬미)하기 위하여 史蹟(사적)을 金石(금석)에 새겨 남긴다. 나라에서는 공신들의 업적을 책록에 기록하여 실적에 힘쓰게 하고, 명문을 새겨 비석을 세운다. 그리하면 나라의 인재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된다는 뜻).”

맑은 소리가 나는 귀여운 목소리였지만, 소리의 높낮이와 곡절이 조화로웠다. 육기는 운율이 구성지게 천자문을 줄줄 외워나갔다. 

고청운은 머릿짓까지 하며 천자문을 외는 아이를 보면서 자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이 꼬맹이는 기억력이 매우 뛰어나구나. 몇 번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네.’

육기는 벌써 5살에 글자를 깨치기 시작하여, ‘삼자경(*三字经: 글을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글자를 깨우치기 위하여 사용했던, 세 글자로 된 단어를 모아 엮은 책)’도 얼마 전에 다 뗀 상태였다. 하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그 아이도 앞으로는 무관 쪽으로 종사하게 될 것이었다. 육훤이 지금까지 아이의 문학적 자질에는 연연하지 않고, 외려 신체적 자질을 향상시키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왔기 때문이었다. 약욕(药浴)을 시킨다던가, 체력 단련을 하는 등 말이다……. 

거기에 육훤은 계속 공무가 날로 바빠짐에 따라 글을 읽고 독서를 해야 하는 과제는 아예 글스승을 초빙해서 맡겨두었는데, 그 자신이 글공부 상황에 관심을 갖고 잘 물어보질 않자 아이의 학업 진도는 좀 느리게 진행되었다.

이번에 아이를 경성으로 보내는 것은 육훤이 해전에 참여하게 된 것도 있었지만, 실은 육기의 학업을 위해서도 있었다. 황립 서원과 비교하자면 천주 지역의 교육 수준은 크게 떨어지는 편이었던 것이다.

또 육기는 육훤의 적장자이기도 해서 이변이 없는 한 후부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 먼저 상경시켜 육택이 그 아이를 곁에서 돌보는 것이 좋았다.

고청운은 육기가 천자문을 다 외우자 크게 칭찬하며, 바다낚시를 같이 해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과연 수확이 있을 것인가?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잡았느냐 아니냐가 아닌 ‘물고기를 낚는 것을 즐긴다.’라는 것에 있었다.

육기의 경우, 그것보다는 갑판 위를 뛰어다닐 때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해양을 날아다니는 새들을 구경하는 기쁨을 만끽하는 것이 더 즐거워 보였다.

고청운은 육기의 발랄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큰손자를 떠올렸다. 앞서 그는 고영량이 고향으로 내려가기 전에 이미 아이의 이름을 고전각(顾传恪)으로 정했는데, 아이가 신중하고 예의바르게 살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자신 역시 조금만 더 있으면 손주를 만나볼 수 있을 터였다. 

‘지금쯤이면 임계촌 가족들이 아주 기뻐하고 있겠지?’ 

마을 어귀에는 진사 비석이 하나 더 들어서게 될 테니, 고씨 집안의 기반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었다.

그나저나 육기와 함께 지내다 보니, 고청운은 자신이 더 검게 그을려 버린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 * *

6월 하순이 되어서야 드디어 상경해서 업무 보고를 마친 고청운 일행은 큰 이변이 없는 한 경성에서 지내며 더 이상 출장을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만약 공사 쪽으로 일이 있어 출장을 나가야만 하는 일이 발생한다고 해도, 고청운은 직접 나가 시찰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간 이쪽으로 경험을 많이 쌓아 업무가 익숙해진 도수사의 관리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이미 대부분 혼자서 한 국면을 담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출장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고청운은 공부에서 죽치고 앉아 화포를 어떻게 개량할 것인가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는데, 포수와 무장들의 의견을 듣고 왔으니 연구를 더욱 표적화하여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원정 시연을 치른 후 고청운 등 일행은 포를 조작할 때 계산에 용이하도록 포관의 앙각(*仰角: 지면에서 올려다보는 각)을 읽어 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위해서는 화수들이 화포를 한 발 발사한 뒤 포구(*砲口: 대포의 탄알이 나가는 구멍) 쪽으로 달려가 조심스럽게 측량을 진행해야 했는데, 이번 같은 시연에서야 이런 행위를 할 만했지만, 실제 전쟁통에서는 적의 화력을 뚫고 포구로 달려가 측량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천만한 상황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이 상황에 대해 고청운은 먼저 사(司) 내부 사람들을 소집하여 의견을 수렴했는데, 다들 그간 많은 책들을 읽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구 하나 이쪽 문제를 뛰어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이 지났음에도 다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대인…….” 

한참 뒤 좌우를 둘러본 왕령지(王翎知)가 다시 말없이 고청운을 바라보았다.

“하관이 우둔하여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그도 마음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고신지는 아마도 모든 사람들이 자신과 같이 여러 분야의 책을 많이 읽고 박학다식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한데, 그 누가 이런 기계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산다는 말인가? 지금 일렬의 연구에 대한 검수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도 나한테는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는데, 혹 내가 무기를 좀 만지러 간다고 하면 용서해 주려나?

그런데 무기 개발이니 하는 것들은 원래 다 장인들이 도맡아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우리가 그들에게 어떠한 무기를 만들어 내라고 요구만 하면 될 것을, 예전부터 왜 저렇게 구는 건지.’

미 주사와 황 주사도 왕령지가 나서서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고,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 전근 온 장 주사(张主事)는 더욱 고개를 숙인 채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본 고청운은 자신이 의견을 물을 사람을 잘못 짚었다는 생각이 들어 의욕적으로 이들을 소집했을 때의 기운이 쭉 빠져 나가, 책상을 두드리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나가들 보시게나. 누구든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본관에게 고하는 것을 잊지 말고.”

* * *

그들이 차례로 자신의 집무실을 빠져나간 후, 고청운은 집무실 안을 돌아보고는 황실 장서루에 가서 혹 수확이 있을지 살펴보려 했다. 그곳의 서적은 한동안 꽤 많이 늘어났는데, 그들 중 어떤 것은 외국에서 가져온 서적들도 있어서 이전에 그에게 꽤 많은 수확을 안겨주고는 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번 경우에는 며칠 동안 계속 책 속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고청운은 서방 세계에서는 이미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단지 책으로 이러한 내용이 출판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만약에 쓰지 않았다고 해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관련된 해결책을 연구해서 성공적으로 무기를 제작해 냈다고 해도 내부적으로만 그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책으로 정보를 펴내기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고청운과 장인들은 자력갱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한번 합심하여 머리를 쥐어 짜냈고, 많은 토론을 거친 후 포관 끝부분에 자동으로 각도를 읽어 낼 수 있는 기구를 발명해 냈다. 이로써 직접 앞으로 나아가 각도를 계산해야 하는 것보다는 안전성이 보장되었고, 그들은 이 발명품을 화포 앙각계(火炮仰角仪)라고 명명했다. 

사고의 방향이 잡혔으니, 이제 연구 개발이 그 뒤를 이어야 했다. 설령 개발 속도가 아주 느리더라도 사람들의 자신감은 넘쳐 있었다. 

이런 일정으로 시간이 흘러가게 되자, 한 달이란 시간은 너무도 빨리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7월 하순이 되자, 고영량 일행이 경성으로 돌아왔다.

* * *

오랜만에 만나게 되니 당연히 경성의 가족들은 그들의 무사 귀환을 크게 기뻐했는데, 게다가 고계산과 노진씨의 병세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고청운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 

그에게는 이것이 가장 좋은 소식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씨네 가족들은 마침내 그렇게 그리워했던 큰손자를 만나 보게 되었다. 꼬마는 다음 달이면 돌이 되었는데, 힘도 그런대로 좋은 편이라 기는 것이 마치 나는 듯 빨랐다. 다만 아직 말을 많이 하지는 못하고 겨우 엄마, 아빠 정도만 말할 줄 알아서, 그가 ‘할아버지’ 소리 하는 것을 들으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고씨 집안의 유전자는 유전인자가 강한 편인 듯, 고청운이 아이를 이리저리 살펴보니 손자가 아들과 매우 닮아서 실로 예쁜 아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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