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화. 준비 (2)
집을 다 둘러 본 두 사람은 바로 사람을 구해 개축을 시작했는데, 이번 개축 때는 공부의 장인이 자발적으로 먼저 개축을 돕겠다고 간청하여 고청운은 고심 끝에 이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합당한 임금도 지불을 하였다.
장인이 와서 개축이 필요한 저택을 둘러보았는데, 그들 눈에는 기존의 고택 역시 손 볼 곳이 있었기에, 고청운과 간미는 또다시 옆집 방택으로 이사를 가서 머무르게 되었다.
개축과 관계된 일체의 준비와 처리는 모두 방인소와 간미가 책임지고 있어, 고청운은 대부분의 정력을 공무에 집중하면 되었다.
* * *
그러는 사이, 고청운은 자신이 예전에 공동 집필한 문제집이 아주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이 책이 공부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열렬한 반향을 일으켰고, 특히 동생과 수재들 사이에서 아주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이 책을 간행하는데 들어간 원금은 이미 회수된 상태라, 이제부터 남는 이윤은 모두 성남의 사합원 운영비 및 산술 연구에 사용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비록 이 책을 집필할 때 참가한 이들은 아주 적은 비용의 윤필료밖에 받지는 못했지만, 책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을 보자 심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희소식에도 그는 아직 본업에 더 치중할 수밖에 없어, 그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였다.
* * *
고청운은 함선의 운용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천주(泉州)를 한 번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육훤까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기쁜 일이었다.
회성(徽省)에서 천주까지 전근 와 있던 그는 겨우 몇 년 사이, 정6품의 천총(*千总: 하급 무관(武官)의 직명(職名), 수비(守备)의 아래 직급)직에 올라 있었다.
“진짜 전쟁이 일어나겠구나.”
육훤과 군영 밖 객잔에 마주 앉아 있던 고청운이 탄식하며 말했다.
그는 저녁에 현지의 수비(*守备: 무관의 직명) 등 관리들과 식사를 한 뒤 자신이 묵고 있던 객잔으로 돌아왔는데, 이때 육훤이 그의 객잔으로 따라왔다. 그들은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이번에 모처럼 만날 기회가 생겨 당연히 매우 기뻤다.
“당연히 격돌을 해야만 합니다. 맞붙지 않고서야 어찌 이 분노를 삼킬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 해상에서 그들이 얼마나 날뛰고 다니는지 모르실 겁니다. 그들은 관문까지 설치해서 지나는 선박들에게 비용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이윤을 그들이 착복하게 두어서는 아니 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육훤의 눈에서 번쩍이는 빛이 일었다. 수사(*水师: 수군)로 지내고 있었던 그는 경성에서 지낼 때만 해도 하얗던 피부가 이미 그을려 있었고 몸매도 매우 단단해져 있었는데, 매우 단단한 근육질의 몸에서는 의젓한 기개가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고청운보다 키도 조금 더 컸다.
“그렇다면 네가 보기에 우리 쪽 승산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 게냐?”
고청운이 나지막이 물었다.
“물론 더 큽니다. 승산이야 어떻든 이번 싸움은 반드시 치러야 하는 겁니다. 스승님, 저와 다른 동료들은 스승님께서 쓰셨던 책론을 읽어 보았는데, 매우 일리가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육지의 땅을 더 넓히기에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지요. 여기서 더 확장한다 한들 관리의 어려움이 따를 테지만, 바다 쪽은 사정이 다릅니다. 바다 쪽에는 엄청난 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육훤은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손을 흔들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스승님께서 쓰신 책론에서도 언급되어 있듯 해상에서의 힘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력을 좌우하게 될 겁니다. 미래에 누가 바다를 더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강대국으로써의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준비를 갖춘 나라가 비로소 이 세계의 강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책론?”
고청운은 자신이 예전 전시의 답안으로 작성했던 책론 문장을 떠올렸다. 그때 작성했던 그 글은 일찍이 예부를 통해 답안 모음집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는데, 그 내용을 육훤이 찾아봤을 줄은 몰랐다.
“음, 몇 년 전 갑자기 궁금해져서, 제가 그 글을 찾아 읽어 보았어요.”
육훤이 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책론을 읽은 전, 그 내용이 정말 일리가 있었기에 동료들과 지인들에게 그 글을 추천했는데, 다행히 그 글에 관심을 갖는 이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고청운은 그의 말을 듣자 매우 감격스러웠다. 만약 하 왕조의 군인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후 해군 쪽으로도 분명 발전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시공간 너머의 세상처럼 만만하지 않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님, 이번에 몸담고 계신 공부에서 개조한 화포가 정말 괜찮았는데, 명중률이 높아져서 이전의 것보다 훨씬 더 사용하기 좋았습니다. 오늘 시연에서도 보셨지요? 전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그들로부터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면, 조정의 그 문관, 아니, 그 관리들도 매년 군대에 너무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며 더는 예전처럼 수군거리지 않게 될 겁니다.”
준수한 얼굴에 살기가 서렸던 육훤은 스승님도 문관의 일원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욕을 내뱉기가 좀 그랬다.
고청운도 여기에는 느끼는 바가 있었다. 문관과 무관 사이의 갈등은 계속 존재해 왔던 것이다. 십 몇 년 동안 이 나라는 변방에서 일어나던 우발적인 소동을 제외하고는 매우 태평한 시기를 보내고 있어, 군대가 아주 오랫동안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 이에 호부에서는 당연히 군비를 삭감하고도 또 삭감했는데, 이렇게 되다 보니 병부와 갈등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번 전쟁은 단지 이익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닌 군대의 필요성을 조정에 다시 한번 보여줄 매개가 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통해 얻어질 인정과 공훈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야 어찌 승진하여 출세하고 부자가 되며, 또 공훈과 업적을 쌓을 수 있겠는가? 문관들이야 육부에서 배정한 업무만 해도 계속 이력이 쌓여 승진할 수 있었지만, 무관들은 그렇지 못했다. 평화 속에서 그들이 이력과 공을 쌓을 수 있는 속도는 너무 더뎠다.
“이번엔 시간이 너무 촉박한데. 실은 화포를 좀 더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우리가 마침 인원을 조직하여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고청운이 부연 설명을 하였다.
“게다가 포수를 훈련시킨 기간이 길지 않아, 전장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까 염려되는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얼버무렸다. 화포는 좀 더 개량이 가능하고, 포탄의 명중률을 높이는 데에 더 도움이 될 만한 것들 역시 내재되어 있었지만, 시간이 좀 걸릴 것이었다.
“전장에서 함선을 좀 더 상대 진영에 가까이 대면, 명중률이 오를 겁니다.”
육훤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렇다고 함선끼리 가까이 가면 위험성도 너무 커지지. 어쨌든 너는 이번에 출정하게 되면 반드시 안전에 유의해야 한다.”
고청운은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스승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이미 해적을 소탕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게다가 이런 전쟁에 참여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번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겠다고 찾아와 경쟁이 심했는데, 다행히 저는 평소 실력을 잘 갈고 닦아 선발될 수 있었습니다.”
육훤은 자랑을 하면서 히죽히죽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이번엔 스승님을 번거롭게 해드렸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걸.”
고청운은 그의 젊은 얼굴을 바라보았다. 실은 고청운의 마음속에는 이 일로 인한 걱정과 내적 갈등이 한가득 들어차 있었다. 전장에 나가는 것은 육훤에게 임무이자 기회이긴 하였지만,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전이란 육지보다 그 위험성이 크기에 어쩔 수 없이 마음속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그가 언급한 소위 번거롭게 해드렸다는 일은, 육훤의 처자를 이번에 함께 경성으로 데리고 가 주기로 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육훤은 올해 26살이 되었고, 이미 2남 1녀를 본 상태였다. 그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처자식이 이곳에서 있는 것보다는 경성으로 돌아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스승님, 이곳은 월성과의 거리가 가까운 지역인데, 고향에는 들르십니까?”
육훤이 또 물었다.
고청운은 잠시 머뭇거렸다. 확실히 여기서 며칠만 더 길을 나서면 바로 고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천주는 월성의 임산현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었는데, 수로에서 순풍만 잘 불어준다면 6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자신의 다음 출장지가 천주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고청운은 예전에 써먹었던 수법을 다시 한번 활용하여 친척 방문 휴가를 내보고자 여러모로 궁리를 해 보았지만, 노 시랑과 이야기를 해 본 후에 이번에는 그렇게 휴가 처리를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설사 출장 업무로 경성을 벗어났다고는 하나, 이번 출장 업무가 워낙에 지대하게 중요한 일이라 개인적인 일을 끼워 넣어 공적 임무를 뒤로 밀리게 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라고 했다.
특히 지금은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고, 그의 곁에는 아직 부하들도 한 뭉텅이씩 뒤따르고 있었으니, 이런 상황에서 고청운은 더더욱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과연 육훤은 사정을 듣고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고 그저 스승님을 위로했다.
“고향집에는 소석이와 소어가 있지 않습니까.”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또다시 한참 동안 말을 나누었다.
* * *
날이 이미 저물어 버리자, 고청운은 급히 그를 서둘러 돌려보냈다.
“스승님, 제가 오늘 밤에 여기서 자고 가는 건 어떻습니까?”
육훤은 그의 의중을 떠보듯이 말을 건넸으나, 눈에는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아직도 스승님과 나눌 이야기가 많습니다. 저희는 몇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잖습니까.”
고청운은 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 된다. 내가 습관이 안 되어서 안 돼. 빨리 돌아가 쉬거라. 내일 얘기해도 늦지 않다.”
이 시대의 풍조는 사내들끼리 이야기를 하다 시간이 좀 늦으면, 주인집에서 손님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자기 집에서 묵게 해 주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게 하면 한 방에서 밤을 새우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그러다 결국 따로 쉬는 경우가 더 많기는 했다.
“알겠습니다.”
육훤은 입을 실쭉거리며 매우 실망한 듯 탐탁지 않게 말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내일 저녁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청운은 천주에 이틀을 더 머무르며 더 많은 실험 결과를 수집해 가야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번 출장에서 고청운은 천주에 도달하기 전, 먼저 영파(寧波)라는 거점에 들렀었다. 이번 출장은 양성(羊城), 영파, 천주 등 세 군데를 들리게 되는 여정으로 기획되어 있었는데, 이 경로를 거치면서 뒤따르던 포수들을 제각기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기로 했던 것이었다.
예전에 포수들은 경성으로 올라와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었으니, 당연히 그들이 원래 있던 소속지로 돌려보내 주어야 했다.
그러니까 이틀 후면 귀경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경성으로 돌아가기 전, 고청운은 남는 시간 동안 낮에는 정무를 보느라 바빴고, 저녁에는 무관들과의 전투용 함선에 대한 논의를 갖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시간을 육훤과 함께 보냈다.
육훤과의 관계 덕분에 일의 진척은 매우 순조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