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99)화 (399/504)

399화. 준비 (1)

역시나 고청운의 생각은 딱 들어맞았다. 합격자 발표일 이후, 경성에 있는 백씨네(*방희림의 아내) 집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사돈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씨네에서는 영험한 고승이 외손자가 너무 어려 일찍 장가들 수 없다고 했다며, 곁에 딸아이와 사위가 없으면 자신도 혼처를 주선할 수가 없다고 밝히자, 잠시 들끓었던 열기는 서서히 물러갔다.

고청운은 방정심의 혼사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여전히 공무에 더 큰 정력을 쏟고 있었다.

* * *

고영량의 진사 합격 축하 연회를 마치고 나니, 이제 남은 일정은 고영량이 고향에 돌아가 조상님들께 제를 지내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경성에 남아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간유도 이번 귀향행에 동행하기로 했다.

“네 증조할아버지께서 정말 좋아하시겠지만,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노인분께 경사를 알릴 때는 조심해야 할 게다. 혹여…….”

고청운은 그 뒤에 마저 이야기하려 했던 ‘즐거움 끝에는 슬픈 일이 생기는 수도 있다’라는 말을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는데, 실제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고영량의 진사 합격 소식을 알게 되고 너무 격동한 나머지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겁이 났던 것이다. 물론 이미 부모님한테 서신을 전해 이런 일을 예방해 두기는 했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 결과를 전할 때는 서신을 통할 필요가 없었는데, 고영량이 장원 급제자라서 한림원의 관선 시험에 참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일찍 고향에 조상님께 제를 올리러 갈 수 있었고, 아마 관보를 통해 전해지는 합격 통보보다 조금 늦게 도착할 것이었다.

“아버지, 안심하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정도를 지키시는 분들이신 걸요.”

고영량이 그를 안심시켰다.

“경성으로 돌아올 때는 운하를 이용해 오거라.”

고청운이 다시 한번 당부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린다고는 하나, 그 방법이 더 안전한데다 배도 덜 흔들린단다.”

고영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만 가거라.” 

고청운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너희들이 돌아왔을 때면 주택 개축이 이미 끝나 있을 게다.”

고영량과 간유를 떠나보낸 후, 고청운은 바로 새로 구입한 저택의 개조에 온 신경을 쏟았다. 

* * *

이중정원을 가진 사합원 구조의 저택을 새로 구매하기 위해선 은자 2,200냥이 들었다. 고청운과 간미에게는 이 비용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일만은 아니었기에, 당연히 그들 소유의 상가나 논밭을 팔아야 할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이 금액의 일부는 고향에서 가지고 온 것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고영량이 고향으로부터 가져온 400냥의 은자가 그것이었다. 만약 보내준 은자 중 일부를 남겨 고계산과 노진씨의 간호 비용으로 주지 않았다면, 좀 더 많았을 것이었다. 

이제 총 주택 구입비에서 남은 것은 1,800냥인데, 방인소한테 300냥을 빌렸기에 최종적으로 그들이 마련해야 할 비용은 1,500냥이었다. 물론 이 정도는 고청운과 간미가 추려낼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도수사(都水司)의 낭중직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이 직함은 한 사(司)의 수장에게 부여되는 이름이었다. 조정의 세수(*稅收: 국민에게서 조세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 수입이 증가하기 시작하며, 작년부터는 관원에게 지급되는 녹봉이 올랐기에 지금 그가 받고 있는 녹봉은 매년 은자 600냥에 달했다.

이것 외에도 말할 수 없는 수입 역시 이전에 종5품 원외랑직에 있을 때 보다 훨씬 늘어났다. 이 말할 수 없는 수입이란, 최소한 수도사에서 다 쓰지 못한 공사비 등을 말했는데, 여기에서 큰돈을 챙길 수 있었다. 매년 상하 관계 유지와 뇌물로 들어가는 비용을 제외하고도 그에게 떨어지는 순수입은 1,000냥에 달했지만, 그는 이것을 따로 챙기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금액들은 상인들의 수입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허나 ‘삼년청지부, 만냥백화은(*三年清知府,万两白花银: 아무리 부정한 돈을 축척하지 않는 청렴한 지부라고 해도, 합법적인 방법만으로도 3년이면 은자 10만냥이 모인다.)’이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물론 이런 이야기들과 달리 그가 그가 모은 비용은 매우 적은 규모이기는 하였다. 

허나 부를 축적하는 다른 방식들과 비교해 볼 때, 지금 조정에서 채택하고 있는 제도로 인해 공적인 은자에 함부로 손을 뻗기에는 위험이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고청운은 지금까지 이런 방법으로 집안을 일으키거나 부자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돈이 잘 모였기에, 고향 집에서 보내준 돈까지 합치자, 지금 고청운이 살고 있는 경성 집은 드디어 사중정원 형태를 지닌 저택의 모습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되었다. 

“별다른 예외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앞으로 이 집이 바로 우리 고씨 사람들이 경성에서 지내며 살 집이 될 것이오. 정원이 4개나 있고, 방들도 충분하니 이제 이사 갈 일은 없을 테지.”

새로 산 저택과 원래 고택 사이에는 아직 두 개의 벽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고청운과 간미는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야만 그쪽 집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아무리 많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나중에는 분가할 테니까 말이오.”

그들의 신분과 사회적 지위라면 이 정도 저택 규모가 적당했다. 더 클 필요는 없었다.

“분가요?” 

간미가 저택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옛 주인이 이사를 가고 나니 집이 더 텅텅 비어 보였다. 

“우리에겐 아들이 둘 밖에 없는 걸요.”

“지금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나중을 이야기한 거요.”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진가아가 성혼을 하고, 소아도 시집을 가게 되면, 즉시 우리 집 재산을 일부 떼어 두 아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들이 직접 관리하고 손익을 스스로 책임지게 할 수 있도록 해 봅시다. 아이들이 이렇게 장성했는데도 아직 우리한테 손을 벌리게 해서야 쓰겠소?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 그들 형제가 밖에서 벌어 온 돈을 공동 자산으로 귀속시키지 않고, 자신들이 직접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오. 남은 재산은 우리가 떠나고 나면 다 배분해 줍시다.”

이것은 사전에 간미와 상의가 되어 있는 내용이었다. 

“그럼 아들들한테 개인 재산이 생기게 되겠군요!”

잘 관리가 되어 보이는 간미의 얼굴에 의아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다른 집에서 하는 것을 보니, 설령 자신들이 자산을 관리한다고 하더라도 벌어온 녹봉 등은 다 공동 가산에 귀속시키던걸요?”

그녀는 아직 가산 관리의 권한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성혼을 하지 않은 아이가 두 명이나 더 있었기 때문이었다. 몇 달 뒤 영요가 경성으로 돌아오더라도 가산 관리는 간미가 하게 될 것이었다.

“남은 그저 남이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하면 되지요. 어떤 일들은 조금 일찍 시작해도 괜찮다오.”

고청운은 요즘 둔전사의 노 낭중(鲁郎中) 집안이 재산 문제로 그 집 아들들 사이에 암암리에 큰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결국 관련된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 공부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집안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그는 자신이 키운 아이들에 대해 자신이 있었으나 세상일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법이니, 아무래도 사고란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았다.

“네, 당신의 말에 따를게요.”

간미는 잠시 생각해보고 반대의견을 내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뒤따르고 있는 나이든 여종에게 눈짓해 물러나게 한 후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집안의 가산은 분명 량가아에게 대부분 더 많이 돌아가겠지요? 그러니 제가 시집올 때 챙겨온 혼수는 진가아에게 더 많은 부분을 남겨주고 싶어요.”

“좋소, 그 일은 당신에게 맡기겠소.”

고청운은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기뻤다. 나중에 분가하게 되면 공식적으로는 분명히 고영진이 고영량보다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것이었으나, 간미의 의견을 따르게 되면 작은아들도 간미 덕분에 모자란 부분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될 터였다.

“혹시 모르오, 나중에 우리가 늙으면 그때 우리 아이들은 이 늙은이들 수중에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신경을 아예 쓰지 않을지도…….”

고청운은 말을 하면서 화단에서 활짝 핀 작약 한 송이를 따서 간미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간미는 옆머리에 꽂힌 꽃을 매만지며 활짝 웃었다.

“자손들은 다 자기 복을 스스로 갖고 태어나는 법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이 능력이 있어 돈을 버는 것이 제일 좋으나, 우리가 아이들을 공정하게만 대한다면 아무 문제 될 게 없을 거예요.”

고경이 태어난 이후, 간미는 부군이 가장 아끼는 자식이 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딸에 대한 그의 애착이 다른 자식들에 비할 바 없으리라 여겼는데,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다니 예상 밖이었다. 

그는 집안의 여자아이이라면 꼭 배우는 것들을 고경이 배우는 걸 반대하지 않았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배우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녀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한하여 선택적으로 배울 수 있게 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을 보면 부군은 비록 딸을 끔찍이 아낀다고는 하나, 그래도 각 방면의 사회적 구속과 규범에 대해서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세 아이를 대하는 태도의 경우, 그는 대체로 공평함을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물론 딸을 좀 편애하는 것을 제외하면 두 아들을 대하는 태도는 서로 비등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

“이것은 내가 느끼는 바가 있어 그리하는 거요. 이번에 진가아가 돌아오면, 되는대로 빨리 그의 혼사를 진행합시다.”

좋은 집안의 여식들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좋습니다. 노씨네 안주인께서 아직 산동(山东)으로 돌아가지 않고 경성에 머무르고 계신데, 제가 보기에는 그쪽 역시 저희와 같은 뜻일 것 같습니다.”

간미는 노씨 집안의 둘째 여식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용모가 아리땁고, 성격이 차분한데 집안의 가산을 관리해 본 경험도 있어서 맏며느리 못지않았는데, 심지어 같은 월성 출신이기에 어째 한 번 만나 본 이후로는 보면 볼수록 자꾸 더 마음에 들었다. 

상대방 집안의 품계가 4품인 지부(知府) 관리라고는 하나, 자신의 부군은 그래도 경성의 관리이니 격차가 그리 큰 편도 아니었다. 

고청운은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노 씨의 여식이 맏며느릿감 같은 좋은 인상 때문에 간미가 점찍어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간미가 선호하는 며느릿감의 조건은 아직까지 변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당신이 근무하고 계신 도수사의 미 주사(米主事)댁 큰 여식, 그 집 아이도 괜찮은 듯합니다.”

간미는 다시 몇 명의 아가씨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했다. 

“내가 보기엔 다 괜찮은 듯하니, 량가아 때와 같이 진가아가 경성으로 돌아오면 그때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합시다.”

고청운은 말을 마친 뒤 저택 안을 샅샅이 훑어봤는데, 벽을 새로 갈아엎고, 욕실, 주방, 대문을 새로 지어야 하는 것 말고는 손을 댈 범위가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은 아마 전문가를 모셔서 보여야 할 것이었다. 

간미는 당연히 이 의견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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