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8화. 묻다
“얼굴이 빨개져요? 꼭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흥분하거나, 어색하거나, 설레거나 했을 수도 있잖아요.”
간미는 고청운이 여전히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한쪽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곰곰이 생각한 후 말했다.
“소아는 피부가 얇아서 감정이 조금이라도 격해지면 얼굴이 금방 빨개져요. 예전에는 기분이 나빠도 그리했고, 지금 어른이 되어서는 무표정으로도 얼굴색이 변합니다.”
이쯤 되니 간미는 아쉽지만 어릴 때 그녀의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뽀얀 딸을 이제 시집보내고, 딸아이가 손주를 안아들고 올 날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어리둥절해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럼 그놈 때문에 얼굴이 붉어진 것이 아닐 수도 있겠구려.”
고청운은 두 사람이 정말 눈이 마주쳤을까 봐 겁이 났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과연 난 이 둘 사이를 동의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반대를 해야 할까?’
고청운은 정말 화본에서 나오는 것처럼 몽둥이를 들고 원앙을 억지로 떼어놓는 역할만은 맡고 싶지 않았다. 자녀의 혼사와 관한 큰일에 의견 차이가 생기면, 결국에는 반드시 부모 쪽이 실패하거나 양쪽이 모두 실패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좋은 수가 나오기는 힘들었다.
“전에 심가아는 우리 집에 자주 와서 아들과 함께 학문 연구를 하곤 했는데, 때때로 우리 소아도 그 사이에 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는 했어요. 그들이 얼마나 환담을 나눴는지 기억나십니까?”
이번에는 간미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뭐요? 그걸 내가 어찌 모르고 있었지?”
고청운이 크게 놀랐다.
“그때는 정말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게다가 며칠간은 출장도 나가 계셨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소아는 그때 완전히 평소와 다름이 없었어요. 소아의 계집종들에게서도 아무런 귀띔이 없었고요.”
간미가 눈썹을 찡그린 채 다시 말했다.
“괜찮을 겁니다. 그리고 알다시피 소아가 우리를 속이지는 않을 거예요.”
고청운은 눈꺼풀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부군, 일전에는 심가아를 꽤 맘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까?”
간미가 그를 놀렸다. 그들의 집에 와서 인사를 하고 간 소년 인재들이 수없이 많았음에도, 방정심은 부군이 첫 만남에서부터 상대방의 아명을 부른 첫 번째 사람이었다.
고청운은 머쓱해지자 코를 만졌다.
“그저 그가 마음에 든 것이지, 내가 그를 사윗감으로 점찍었다는 뜻은 아니오. 알지 않소, 방씨 집안은 안채가 복잡한 것을. 우리 집은 관계가 단순해 화목한 편이라, 소아가 시댁의 분위기나 사건에 대처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오. 게다가 그런 상황에 잘 대처하는 것 또한 좀 이상하지 않소? 인생에 있어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 매달리느니, 차라리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낫지요.”
이른바 유별난 친척을 가장 싫어하는 고청운은 육택의 친지를 다루는 수단에 가장 감탄하고 있었다. 20여 년 전 경성으로 돌아온 육택은 자신을 찔러 죽이려 했던 사람들 중에 그의 둘째 숙부인 육권(陆权)의 알선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육권의 다리를 시원하게 분질러 버렸다. 이때 그는 다리를 평생을 절게 만들고 나서 이 모든 게 마치 불의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것처럼 가장했는데, 이 사건 이후로 육권은 관직 생활을 하고자 했던 희망마저 날리게 되었다.
권력도 없고 절름발이가 된 사내가 무슨 근거로 정용후 작위 자리를 다툴 수 있겠는가. 일전에 후부의 노부인이 돌아가시고 나서 육택은 3년의 복상 기간을 마친 후 바로 둘째 숙부 집을 분가시켜 버렸는데, 육권의 자손 중에는 출세한 사람이 없으니 이제 곧 2, 3대가 더 지나고 나면 여느 후부 댁의 방계 정도의 수준으로 전락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아무리 방정심이 눈에 들어도 고경을 그 집안으로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와 잘 알고 지내는 사람은 방희림이지, 그의 아내 백 씨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방씨 집안을 언급하니, 간미가 정색을 했다.
“방씨네는 다른 곳에 비하면 안채의 관계가 그리 복잡한 편이 아니지만, 만약 시집을 보낼 일이 있다면 방 탐화의 형제자매들이 친족 관계니 항렬 같은 것을 믿고 너무 성가시게 구는 것이 문제겠지요. 그들을 보면 일전에 방 탐화에게 사고가 생겼던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옛날 방씨 집안이 경성에 있었을 때, 그녀는 방씨 집안에 가 본 적이 있었기에 그 잡안에 내제되어 있는 갈등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간미는 농가 집안에서 갑자기 벼슬자리에 오른 관리가 배출되면, 두 가지 상황이 발생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는 극한의 열등감 표출로, 다른 관리의 가족들과는 어울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언사를 흉내 내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 가족이 관원인데 못할 일이 뭐가 있냐는 식으로 근거 없는 풍문으로나 듣던 일을 실현시켜 자칫 소란을 피우는 것이었다.
후자의 경우, 집안의 어른이나 수장의 머리가 좋으면 가족을 통제할 수 있어 큰 문제가 야기되지 않았다.
그리고 조정의 대다수 한미한 가문 출신들의 집안 분위기는 대부분 그러했다.
처음에 그녀가 고씨 집안과 사돈을 맺으려 할 때, 어른들은 집안 사정을 자세히 알아본 후에 결정을 내렸는데, 그때 보여준 부군 가족들의 생활상이나 활약은 아주 괜찮은 편이었다.
“백 동생은 성질이 온화하고 유순하여 무슨 일이든 방 탐화의 말을 따르고는 했지만, 애당초 경성에서부터 그 가족들을 통제할 수는 없었어요. 지금은 관계가 어찌 개선되었을지…….”
여기까지 말을 마친 간미는 고청운의 말이 사실일까 걱정되어 서둘러 말했다.
“먼저 소아의 의중을 좀 알아보지요.”
“가보시오, 다녀오시오.”
고청운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직접 묻지는 말고, 또 괜히 없던 일을 사실인양 착각하게 두어도 아니 되오.”
“알겠습니다.”
간미는 대답하고 다급하게 문을 나섰다.
* * *
곧 고청운은 간미로부터 고경과 방정심과의 사이에는 어떤 일도 없었음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을 짓누르던 큰 돌 하나가 마침내 내려지자, 그는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고영량에게 다시 신경을 집중했다.
관례에 따르면 고영량은 장원이니 종6품 한림원 수찬직을 수임할 것이고, 방안과 탐화는 정7품 편수직을 수임하게 될 것이었다.
고청운은 고영량이 자신의 품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늠해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 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품계를 따라잡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아들의 앞길을 가로막지 않기 위해, 난 퇴직할 나이도 못 채운 채 병가를 내고 퇴직을 먼저 해야 할 지도 모르겠구나.’
그가 고민을 하고 있는 이유는, 조정에서는 직계 자손의 품계가 윗사람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세워두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더 이상 관직 생활을 영유하지 않고 퇴직하여 한가한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다고 여겼는데, 스스로 좋아한다고 여기는 일을 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아들만큼 빨리 승진을 하지 못해서 관직에서 물러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너무 면목이 없지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본 고청운은 하하 웃으면서 자기가 속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얘기하자.’
* * *
“몇 년 정도 한림원에 머물 계획이냐? 앞으로 지방관으로 내려갈 생각은 있고?”
오늘부터 고영량은 하 왕조의 관리 신분이 된 것이기에, 고청운은 그의 계획이나 앞으로 그가 지향하는 바를 묻기 시작했다.
“외증조할아버지, 아버지, 저는 우선 한림원에서 3년 정도는 지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좋은 시기가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나 다시 지방관으로 전근 신청을 할 생각입니다.”
고영량은 매우 침착한 모습이었고, 그의 말투에서는 자신감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는 지금 대변혁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제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지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어요.”
서로 눈을 마주친 고청운과 방인소는 이런 방향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계획은 변화보다 빠르지 못한 법이라, 지금 같은 시기에는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었는데, 나중에 가서 자칫 변동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대강의 큰 목표를 세우고, 최대한 그 목표에 가까운 방향으로 항로를 잡아 움직이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고영량은 어려서부터 고청운과 방인소가 정성을 쏟아 키운 아이라 그렇게 흐리멍덩한 것도 아니었기에, 황립 서원과 국자감에서 머물렀던 아이를 조금만 깨우쳐 주는 것 말고는 그들이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없었다. 그는 정식으로 관직에 입문하고 나면, 나머지 필요한 것들을 자연히 체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
“시험은 어떠했느냐?”
고청운은 전시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전시에 출제된 문제가 진짜 아버지께서 기출문제로 내어 주신 거였어요. 서양 국가와의 교류에 대해 지녀야 할 척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고영량은 이 말을 할 때 한껏 흥분한 모양새였다.
“어쨌든 모두 다 잘 대답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아침 조정을 마무리 하시고 저희를 보러 오셔서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앉아 계셨는데, 폐하의 건강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그의 말투에는 기쁨으로 충만해 있었다.
오늘날 바다 너머의 나라들은 일률적으로 서양 국가라고 부르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오늘날 황제가 영명하고 위풍당당하며 뛰어난 성군이자 여야를 아울러 지고한 명성을 얻고 있는 모습으로 여겨졌기에, 고영량 등의 햇병아리들은 그런 황제를 만나 알현할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출제된 문제에 대해서는, 요 몇 년 동안의 시험에서 지속적으로 이 나라가 현재 눈앞에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기에, 소식에 정통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문제가 출제될 것이라고 맞춘 사람이 적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전시보다 회시가 실질적으로 학문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것에 있어 더 영양가가 있다고 여겼고, 회시에서의 석차와 전시에서의 석차 간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았을 거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고청운은 내심 한숨을 내쉬며 황제의 옥체 건강에 대한 여부는 더 논하지 않고 되물었다.
“그럼 네가 어찌 장원으로 호명된 게냐?”
이 말을 꺼내자 방인소도 매우 궁금해했는데, 그 역시 사전에 자신의 외증손자가 장원이 될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들 이 일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는데, 그가 탐화나 전려 정도만 되어도 쾌거를 이루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대인들께서 토론하실 때, 원래는 제가 전려나 탐화로 선정되는 것이 맞았으나, 폐하께서 저를 대전 안으로 들이시더군요. 그러고는 10위 안에 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말을 거셨는데, 폐하께서는 저를 보자마자 제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보셨습니다.”
고영량은 여기까지 말하고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져 보았다. 아버지를 닮은 얼굴 덕분에 그는 많은 성가신 일을 덜고 공사로 발탁이 될 수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데, 앞서 면접을 볼 때도 한림원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비교적 친절했다.
“어차피 폐하의 결정이 곧 천자의 명령이니, 폐하께서 장원이라고 하시면 장원인 것이라 다른 대인들은 다들 반대를 하지 못했습니다. 심가아의 경우, 몇몇 노신들이 그의 나이가 너무 어리다고 해서 석차가 좀 더 뒤로 밀릴 뻔했으나, 폐하께서 방 아저씨의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더군요. 게다가 심가아의 답안 역시 훌륭해, 결국엔 탐화로 선정되었습니다.”
고영량은 혼자 잠시 생각해 보았다.
‘혹시 전시 석차가 10위 안에 드는 공사들 중에서 방정심만이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아서 그가 탐화가 된 건가?’
방인소는 이 말을 듣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추측해 보았다.
“보아하니, 네 벗이 이제 다시 기를 펼 수 있게 되려나 보구나.”
고청운도 잠시 생각해 보더니, 방인소의 의견에 반대하지 않았다.
‘혹시 이건 방희림이 의도한 바인가?’
고청운은 그저 그가 원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만약 그의 계획이 잘 먹혔다면, 그의 아들 방정심 역시 이리도 젊은 나이에 탐화에 등극한 것이니, 아무리 방정심이 아버지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앞날이 밝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를 사위로 삼고 싶은 집안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인데, 그를 사위로 모셔 가면 집안에 내각 중신을 모시게 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