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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97)화 (397/504)

397화. 황홀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 했는데도 고영량 일행은 아직 근방에 도달하지 않았다. 비록 새로 부임한 진사들이 말을 타고 거리 유세를 다닌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큰길에서는 대책이 없는 것이 말로 맹렬하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거의 걷는 속도로 다녀 당연히 그 속도가 매우 느렸던 것이다. 고청운네 가족들은 이런 행사에 참여한 것이 처음이 아니니, 이런 속도가 그들에게 짜증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진가아가 이 소식을 들으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군요.”

고청운은 고향에 가있는 고영진을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독서를 너무 열심히 해서 몸이 상하지나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한 가정에서 형이 출세하면 다른 형제들은 중압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잘못하면 갈등이 생기기도 쉬웠다. 

고청운은 당연히 다른 집안처럼 형제간 갈등이 빚어져 생기는 비극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네 집 아이들은 서로 질투하지 않고 얼마나 위하는가. 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는 형제자매간의 관계를 적절하게 지도하기만 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행히 자신은 아이가 셋밖에 없어서 아이 하나당 더 많은 노력을 들여서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니 아이들이 삐뚤어질 확률도 많이 낮아졌다.

방인소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 진가아는 분수를 지키는 아이이니, 걱정 말거라.”

그때 간미가 말했다.

“부군, 짱짱(壮壮)이 본명을 어찌 지으실지 잘 생각해 보셨습니까? 벌써 돌이 다 되어 갑니다.”

회임 당시 입덧이 심했던 영요는 아기를 건강하게 순산했지만, 아이는 몸무게가 가벼웠다. 그래서 고대하는 튼튼하다는 뜻의 ‘짱짱이’로 아이의 아명을 지었다. 

고영량이 이 사실을 그들에게 말했을 때 가족들은 말문이 막혔지만, ‘개똥이’ 등의 이름은 아니니 다행이라고 여겼다.

고청운은 자신의 ‘전자’라는 아명을 떠올리며 이 정도는 정상범주라고 생각했는데, 어차피 아명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소석이나 소어도 다 그렇게 불러오지 않았는가.

“첫돌까지는 8개월이나 남아 급하지 않으니 좀 더 잘 생각해 보겠소.”

고청운은 입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다시 방인소를 한 번 보았다. 스승님은 이름을 지어 주려 하지 않았는데, 관례를 따르자면 할아버지인 고청운이 이름을 지어 주어야 했다.

솔직히 고청운은 손자를 아직 보지 못한 상태라, 할아버지로서의 실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들 고씨 가문의 ‘영전창성, 흥연계승(*传昌盛,兴延继承: 고청운의 후대 항렬에서 사용될 8대의 돌림자)이라는 항렬을 고려하면, 손자들은 ‘전(传)’자를 사용해 이름을 지어야 하였는데, 이에 어울리는 좋은 글자를 찾아야지 마음대로 지을 수는 없었다. 

“다음 달에 량가아가 고향으로 내려가서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야 할 텐데 빨리 생각해 주세요.”

간미는 그를 재촉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이 고향에 내려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그녀의 부군은 여전히 우물쭈물하며 이것저것 다 나쁘다고만 생각해 이름을 결정짓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좋소, 더 재촉하지 않도록 내 빨리 지으리다.”

고청운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손자의 큰 외숙이 이번에도 합격을 못 했네요…….” 

간미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래도 제가 보기엔 거인이라는 신분으로 있어도 나쁠 것 같지 않아요, 영씨 집안이 한미한 집안도 아니고요.”

‘영씨 가문은 연줄이 없을까 걱정할 만한 집은 아니지.’

고청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영요의 큰오라버니는 아직 젊어서 다시 시험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귀족 자제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니 틀림없이 시험에 합격하고 성실하게 벼슬자리에 올라가려 할 것이지, 거인의 신분에 그치는 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고영량에 대한 예감도 있었는데, 아들이 그쪽 집안과 가까워졌으니 아마도 고영량이 시간을 많이 할애해 공부를 봐줄 것 같았다. 지금은 손자도 보았으니 가족 관계가 더 가까워져, 그는 이런 부탁을 사양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때 창밖에서 한바탕 북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왔다! 장원이 도착했다! 진사 나으리들께서 오셨다!”

“어디? 어디까지 오셨어?”

…….

고청운 외 사람들은 곧 대화를 멈추고 귀를 기울였는데, 과연 밖에서는 징과 북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따가 너희들 중 누가 가서 량가아한테 꽃을 던져주겠느냐?”

고청운이 갑자기 엄숙하게 물었다.

사람들은 서로 쳐다보았지만, 시선의 대부분은 고경에게로 쏠려 있었다.

“아버지, 못 던져요. 지금 바깥에 바람이 불고 있다고요.”

그녀는 양궁 연습을 해봤지만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아 오빠들 같은 실력은 없었고, 아버지만큼 돌팔매질이 능숙하지도 않았다.

“어린 여자아이가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나가 꽃을 전할 수도 없으니…….” 

연 씨가 머뭇거렸다.

“괜찮습니다, 지금 사회적 풍조는 예전 같지 않으니까요. 공주 전하께서는 귀족 여식들을 데리고 남장을 한 채 다니기도 하신답니다. 거리에조차 나가보지 못하는 풍조는 개국 초에 이미 다 사라졌습니다.”

지금의 황태후는 아직 생존해 있었지만, 병상에 누워 있어 영향력이 거의 없었다.

이 세상이 문인 가문의 여식에게 이리 가혹하게 대하지 않았다면, 고청운은 늘 고경을 데리고 다녔을 것이었다. 이제 어른이 된 고경은 많이 나가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방인소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량가아에게 몇 송이 더 전해 주어 머리에 꽃을 더 많이 달게 해 주렴.”

연 씨가 그 뜻을 알아차렸다.

“이 자리는 18년 전 우리가 앉았던 자리지. 그때 청운이가 탄 가마가 이곳을 지나면서 량가아가 아버지에게 꽃을 전해 주었었는데, 이제는 량가아한테 꽃을 전해 줄 차례가 되었구나.”

이들은 그때 3살이었던 고영량이 힘이 부족해 결국 고삼원이 대신 꽃을 던졌다는 사실은 잊어버리고 있었다.

징과 북소리가 갈수록 커지자, 길 양쪽의 사람들이 더욱 흥분하기 시작했고, 시끌벅적한 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은 모두 일어나 창문 앞에 서서 신진 진사들이 오는 방향을 지켜봤다.

“왔다!”

사람들이 소리쳤다. 

고청운은 대로에 새까맣게 몰린 시민들을 바라보고, 또 건너편 찻집 창문과 좌우 창문에서 모두들 고개를 내밀어 신진 진사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백성들의 구경꾼 기질은 정말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담자례였다니! 

‘그가 오늘 나와 같은날 휴가를 냈다는 말인가?’ 

고청운은 조금 놀랐다.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5분 후, 그들이 얼마 기다리지 않았을 때 신진 진사의 행렬이 마침내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는데, 먼저 징을 치고 북을 치는 대열 뒤로 어림군과 말을 탄 신진 진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장원이 제일 앞, 방안과 탐화가 그 뒤를 이었다. 

앞장서는 고영량을 보던 고청운은 오늘 그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다른 때보다 더 잘생겨 보여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곧 사람들은 신진 진사들의 용모와 석차를 논하기 시작했는데, 고영량의 석차가 빈번히 제기되었다. 그가 어디를 바라보면 어디선가 여인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소녀들은 그가 이미 아이가 있는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소 앳된 얼굴의 방정심을 더 주목하더니, 이내 그에게 꽃, 향낭, 손수건을 던져댔다.

‘겨우 17살에 탐화랑이라니! 일가에 두 명의 진사를 배출한 것으로 모자라, 두 부자가 모두 탐화랑을 역임하다니 정말 대단하구나!’

고청운은 오늘이 지나면 바로 눈앞의 이들이 진정한 ‘일약 천하의 명성을 거머쥘 인재’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고영량이 드디어 이쪽을 쳐다보자, 고경이 고청운에게 바짝 붙어 서서 소리쳤다.

“아버지, 오라버니가 이쪽을 봤어요!”

고청운은 모처럼 발랄한 그녀를 보고 마음이 흐뭇해져서 외쳤다.

“너도 빨리 오라버니한테 꽃을 던져줘야지!”

“자, 그럼 던질게요. 오라버니, 여길 보세요!”

그때 고영량이 그들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백성들의 환호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고, 분위기도 매우 열렬해졌다.

고경이 분위기에 들떠 꽃을 던지며 외쳤다.

“오라버니, 여기 있어요!”

그녀는 손안의 날카로운 꽃가지를 일찍이 비단 천으로 꽁꽁 싸 두었다가 화살 날리듯 집어던졌는데, 그 위에 활짝 핀 석류꽃은 곧바로 고영량 쪽으로 날아갔다.

“아!” 

그런데 고경이 던진 꽃의 방향이 바람에 비뚤어져 고영량 근처에 떨어지지도 못했다. 석류꽃은 오히려 방정심이 탄 말 등에 떨어졌고, 방정심은 꼿꼿이 세웠던 몸을 깊이 숙여 꽃을 집어 들었다.

방정심은 꽃가지를 주워 들고 고개를 들어 고경을 바라보더니, 또 옆에 있는 고청운을 보고 힘껏 흔들었다. 그가 손을 흔들며 크게 웃음을 짓는데, 흰 이가 햇빛에 반짝거렸고 볼에는 보조개가 선명하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고경은 겉으로는 차분해보였지만, 얼굴은 약간 붉어져 있었다.

고청운은 딸아이를 보고 헛기침을 하고는, 자신의 손에 있는 꽃가지를 들어 고영량의 머리 쪽으로 다시 던졌다.

이번에는 꽃가지가 고영량 앞에 얌전하게 떨어져 그의 손에 안착할 수 있었다. 

고영량은 웃으며 붉고 아리따운 석류꽃을 자신의 머리에 꽂고, 가족들을 돌아보며 힘껏 손을 흔들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고청운은 18년 전에 이 거리에서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약간 어렴풋한 표정을 지었다. 

‘세월이 유수처럼 흘러 어느덧 내가 41살이 되었구나. 3살이었던 소석이는 과거 시험에서 장원으로 급제했고 말이야, 그때의 내가 상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어.’

인생은 정말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고청운은 마음속으로 매우 교만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퍼졌다.

아래층 사람들은 2층의 고청운을 보고, 또 고영량도 보았는데, 두 사람의 용모가 매우 빼어난데다 또 그들이 서로 워낙 닮았기도 하니 이 둘이 친족 관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상황에 맞게 더욱 환호성을 질렀다.

“요요와 손자가 이 자리에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장면을 지켜보던 간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성혼을 하고 21년 만에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맞이한 그녀는 영요가 이곳에 와보고 싶었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돌아가면 이 광경을 그림에 옮겨야겠어요.”

고경은 무슨 생각이 있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진 진사들이 지나가자 군중들은 점차 흩어졌고, 한편으로는 걸어가면서 토론을 계속했다. 

곧이어 고청운네 가족들도 집으로 돌아갔다.

* * *

집에 돌아오자마자 고청운은 간미를 데리고 침실로 가서는 다급하게 말했다.

“미아, 가서 소아의 생각을 좀 알아보고 오시겠소? 그녀가 심심이(*방정심)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아닌지.”

방금 거리에서 본 장면이 떠오른 그는 마음이 매우 조급했다.

간미가 말했다.

“심가아를 마음에 들어 한다고요? 말도 안 되죠! 우리 소아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는데요?”

“아니 될 것은 또 무엇이오?”

고청운은 조급한 듯 방 안을 맴돌았다.

”그 아이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내가 똑똑히 보았소. 소아가 조심하지 않아 꽃을 방정심 쪽으로 잘못 던졌는데, 그놈의 자식이 딸아이를 향해 웃었다오! 웃었소!”

앞서 고청운은 방정심이라는 젊은 소년이 재치가 있어 마음에 들었고, 또 자신의 친한 친구의 아들이라 그를 좋아했는데, 지금 그가 고경과 무엇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간의 호의가 시들해졌다. 

조건을 좀 보자면 방정심은 장남이라 고청운이 생각한 조건에 맞지 않았다. 또한, 방희림이 지금까지 두 집안 사이의 혼사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없으니, 고청운은 지금 이 상황을 신중하게 잘 생각해 보아야 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그는 당연히 이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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