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6화. 장원
고청운은 주름진 관복을 보고, 먼저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신진 진사들의 가두 행진을 구경하려고 했다. 그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문지기가 그를 보고 기뻐하며 말했다.
“나으리, 다녀오셨습니까.”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고 문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나서 마차 쪽으로 돌아섰는데, 고삼원이 사람들을 지휘해 마차에서 짐을 내리고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구나. 삼원아, 따로 사람을 공부로 보내서 왕 원외랑한테 내가 돌아왔다고 전하고, 사무청에 들러 반나절짜리 휴가를 내고 와주겠느냐?”
출장을 다녀오면 공사 내부 사무청에 보고를 해야 했는데,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출장 휴가가 취소되는 등 제도가 매우 엄격했다.
오늘이 전시의 성적이 발표되는 날이라는 것을 알고 고청운은 오후에 당직을 서지 않으려 했다. 그는 반드시 거리 유세를 지켜보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그는 남들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일단 절차를 준수해 휴가를 신청하기로 했다. 이전의 경험에 의하면, 사실 내일 아침에 공부로 가서 일을 처리해도 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숙부, 제가 가면 됩니다. 별로 피곤하지 않아요.”
고삼원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이런 일은 자신이 잘해 오던 일이라 방충 집사 외에 다른 사람을 시키기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고청운은 상황을 보더니 고삼원의 말에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그가 집 안으로 몇 걸음 들어가자마자, 간미와 고경이 맞이하러 나오는 것이 보였다.
“겨우 며칠 못 본 것을 가지고 이리 반갑게 마중 나오니, 깜짝 놀랐구려.”
고청운이 씩 웃으며 간미의 손을 잡았다.
“왜 예약한 주루에 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소?”
고청운은 간미가 일찌감치 주루의 방을 예약하여 신진 진사가 말을 타고 거리 유세를 하는 것을 보려 준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벌써 가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 량가아가 나오는 시간이 그리 이르지는 않을 것 같아, 혹여 부군께서 제시간에 당도하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시기를 좀 더 기다리고 있었지요.”
고청운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간미는 고청운이 바람을 맞고 고생해 상한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공부의 일은 호부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부군의 정신 상태는 이전보다 더 좋아보였는데, 그녀는 이 늠름한 모습이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고경이 고청운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 저와 어머니는 오늘 내내 함께 큰오라버니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아직 아무도 기쁜 소식을 전하러 오지 않았어요. 안절부절못하시던 어머니는 아버지께서 먼저 당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고청운은 고경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간미를 곁눈질해 보았는데, 그녀는 눈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온몸에서는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꼭 쥐고 있는 손을 보니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고청운이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들며 말했다.
“평소보다 늦었지만 매번 이리 발표가 늦는 것은 아니오. 그리고 아직 시간이 이르지 않소, 예년처럼 점심때 정도면 성적 발표를 할 테니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그는 고개를 돌려 고경을 쳐다보았다.
“너는 어떠했느냐?”
고경은 입을 오므리고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저도 아버지가 보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이번엔 꽤 오래 다녀오셨는데 나중에 다시 경성을 나서서 출장가실 일이 있으십니까?”
“그래, 출장이 필요하면 어쩔 수 없이 가야지.”
고청운은 솔직히 대답했다.
간미와 고경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망하긴 마찬가지였다.
“참, 미아, 챙겨 온 짐에 방 형이 가져가라고 준 상자가 두 개 있으니 잘 기억해 두었다가 방씨네 보내주겠소?”
갈 때는 왕 씨와 방서가 두 상자를 그에게 맡겨 방자명에게 전해 주었는데, 이번에 경성으로 돌아올 때는 방자명 쪽에서 두 상자를 더 얹어주어 가지고 가게 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 남경에 가서 외종숙부와 식구들을 만나 보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들은 다 잘 지내고 있었나요?”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곤 남경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내 두 사람은 뒤뜰로 자리를 옮겼다. 뒤뜰에선 혜향이 일찌감치 뜨거운 물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고경은 안채로 넘어갔고, 간미는 고청운을 도와 옷을 벗겼다.
고청운은 그녀에게 등을 긁어달라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가서 빨리 준비하시오. 내가 다 씻고 나면 바로 출발합시다.”
“식사는 안하시고요? 부엌에서 이미 다 준비를 해 두었습니다.”
간미는 그를 도와준 후, 새로 지은 청색 피풍의를 꺼내들었다.
“아니, 주루에서 식사해도 되지 않소.”
거리 유세를 시작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거리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기에, 고청운은 늦게 출발했다가는 주루에 제때 들어가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다.
* * *
다행히 그들이 도착했을 때, 새로 부임한 진사들은 아직 이 거리까지 나와 있지 않았지만, 때는 이미 합격자 발표를 알리는 명단이 붙은 뒤였다.
방인소와 연 씨는 고청운을 보자마자 두 눈을 부릅뜨더니 다시 재회한 감정을 내보이지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전시 성적이 나왔다. 우리 량가아, 량가아가 장원이라는 구나!”
고청운은 순간 머리가 하얗게 질려 발걸음을 휘청거리다가 세워져 있던 병풍에 부딪힐 뻔했다. 다행히 간미의 큰 목소리가 그의 이성을 붙잡아 주었다.
“장원이요?”
간미의 목소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또는 수긍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 바로 장원이라니까. 집사가 이미 다 알아보고 왔단다.”
방인소가 손에 쥔 종이를 고청운에게 건네주었다.
고청운이 종이를 펼쳐보니, 단정한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재빨리 시선을 제일 위로 가져가 보았는데, 과연 고영량의 이름이 1위 자리에 올라 있었다.
뜻밖에도 장원으로 합격을 하다니. 고청운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주점의 객실 안을 서성거렸다. 이는 상상해 본 적 있는 결과 중 단연 제일 좋은 결과였다! 그는 황제가 자신의 큰아들을 장원으로 호명해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이번 시험에 아들이 방안(*榜眼: 2위로 합격한 사람)에 머무르거나 탐화(*探花: 3위로 합격한 사람)가 되었더라도 만족스러웠고, 이번에 큰아들이 자신의 석차인 전려만 되어도 부자가 둘 다 전려 출신이 되는 것이라 그림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아들이 장원이 될 확률이 제일 적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희소식이 너무 빨리 찾아와서 고청운은 심히 놀라버렸다.
고청운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계속 행렬을 바라보았다.
방안은 원래 소씨 성을 가진 지난 회시의 회원 출신이 자리하게 되었고, 탐화는 뜻밖에도 방정심이었다! 다른 주요 석차를 차지한 인물 말고 노개운이 34위에서 20위까지 올랐다는 걸 제외하면 다른 이들의 순위는 회시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좋아, 장원이라니 정말 잘되었구나!”
고청운은 간미에게 종이를 전달하며 씩 웃고는 말했다.
“우리 량가아가 정말 잘 해냈소.”
자신의 집안에서 생각지도 못하게 장원이 하나 배출되다니! 그가 전생에 봤던 문헌 자료에는 중국 역사상 장원이 딱 7백여 명 정도로, 이 세계는 송나라 이후의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지만 장원의 숫자 정도는 거의 비슷할 것이었다.
비록 장원이라고 해서 나중에 무조건 성공하는 건 아니었는데, 반드시 고관대작으로 승진할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하지는 않더라도, 고영량이 이미 과거 시험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고 여긴 고청운은 이후의 그가 걸어갈 길에 대해서는 그때 가서 다시 이야기하면 될 거라 생각했다.
온 객실에는 기쁨으로 일렁였고, 옆에서 시중드는 하인들까지도 기쁨이 넘쳐 희색이 만면했다.
간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고청운이 아직 점심 식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나 소만을 보내 주방에 기스면(*鸡丝面: 가늘게 썬 닭고기를 얹은 육수) 한 그릇을 준비해 달라고 일렀다.
구수한 기스면이 상 위에 올라오자, 고청운이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무리 기쁘다 한들 배고픔은 견디지 못하겠구려.”
“신진 진사들의 거리 유세가 아직 여기까지 오지 않았으니 어서 드세요.”
간미가 젓가락을 그에게 건네주었다.
“부인, 정말 내게 신경을 잘 써 주시는구려.”
매우 감동을 받은 고청운은 고의로 어떤 사람을 힐끗 보았다.
“우리 부인은 정말 누구와는 다르오. 누구는 이렇게 여러 날을 만나지 못했는데 나를 만나서도 보고 싶었다는 말조차 해 주지 않았는데 말이오. 정말 너무하지 않소?”
이 말을 들은 그 ‘누구’인 연 씨는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그 나이에도 아들과 총애를 다툴 셈이냐, 이게 무슨 시샘이냐?”
그녀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외손녀의 사위를 참 잘 고른 덕에 자기 집안의 외증손자들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요 몇 년 동안 두 노인도 큰 공경을 받으며 지내오고 있었다. 이 사위는 때로는 매우 짓궂게 장난을 치는 등 자기 아들에게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며, 노인 둘을 심심하지 않게 해주었다.
연 씨는 고청운이 아들을 시샘할 때마다 자기 부군이 은근히 즐거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는 남들의 손에서 무엇인가를 뺏어 오는 것을 은근한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연 씨는 눈앞의 광경을 보다가 자신의 손아귀를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유가아도 뭔가 먹고 싶지는 않으냐?”
간유는 부채를 펴고 힘껏 두어 번 두드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밥을 먹은 지 얼마 안됐어요. 할머니, 걱정 마세요. 배고파지면 말씀드릴게요.”
일찍 도착한 그는 당연히 점심을 여기서 먹었고, 아까 매형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다른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마침 옆의 객실이 노씨네에서 예약을 한 것이었다.
고경은 고청운이 식사하자 얼른 작은 그릇에 식초를 조금 덜어 주었는데, 고청운의 취향에 딱 알맞은 양을 덜어 주었다. (*중국에서는 시샘하는 것을 식초를 먹는다고 함)
이를 지켜보던 방인소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윽고 모두들 겉으로는 평정을 되찾았다.
탁자 위에는 아직 찻물과 물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어차피 가족들이 먹던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고청운은 체면을 차리지 않고 바로 가져다 마셨고, 국수도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이후 방인소는 고청운의 출장에 관한 일을 물었다.
고청운은 몇 마디 간단히 말하고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은 집밖에 나와 있었기에, 벽 너머에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귀가 있을 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방인소도 자연히 더 이상 묻지 않았고, 단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만 알았다.
이제 그들은 진사 행렬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이야기는 고청운이 출장을 갔을 때, 뒷집과 주택가격을 협의했던 내용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2,200냥에 주택을 넘겨받기로 했다.
그때 고청운은 간미를 보고 돈이 충분하냐고 묻지 않았다.
이어 그는 방자명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예를 들면 주아와 원아가 언제 시집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고, 토론은 당연히 흥미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