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5화. 개선 (2)
“서양 무기가 우리보다 낫다고?”
어둠 속에서 방자명의 약간 의아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음, 그럼요. 제가 직접 고치고 실험도 해봤습니다. 폐하와 내각 쪽은 결과물에 만족하고 계시니, 이제 공방을 독려해야 할 차례입니다.”
고청운이 구체적인 개조 방안을 밝히지 않은 것은 기밀이었기 때문인데, 방자명한테도 이에 대한 언급을 피해 폐를 끼치지 않도록 했다.
방자명은 이 사실을 잘 알고 더 이상 묻지 않고 오히려 고청운이 황제를 알현한 일에 관심을 가졌다.
“그때에는 제가 품계가 낮아 나설 수 있는 차례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건 우리 상서 대인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고청운은 보름 전의 일을 생각하다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듯 얼굴을 드러내놓고 일을 주도하여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은 아직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기에, 대신 고청운은 공부 상서와 인맥을 만들어 황제가 시찰하기 전에 새 화포의 우수성을 자신의 상관이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지를 가르쳤다.
좋은 쪽으로 생각했을 때, 이번 일이 잘 풀리게 되면 이번에는 그들 모두에게 공로가 돌아갈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얼굴을 내밀었군?”
방자명의 말투가 긍정적이었다.
“그렇죠, 결국 폐하께서 저와 우형사의 낭중 한 분을 불러 치하해 주셨으니까요.”
고청운은 하품을 하며 황제와 만났을 때를 떠올렸는데, 그때 마주했던 황제의 손등에 두드러진 노인 특유의 반점과 볼록하게 솟은 힘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두 사람은 정말 고청운이 견딜 수 없을 때까지 한밤중이 다 지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고청운이 몇 십 년 동안 길러온 생체시계의 습관에 저항하지 못했고, 결국 두 사람은 잠에 들었다.
* * *
다음 날 방자명은 아침밥을 먹은 후 관아에 가서 출근 도장을 찍었고, 고청운은 선박 공방에 가서 화포 설치 상황을 살펴보았다.
이전에 장인들과 의논을 거쳐서 새로운 화포를 또다시 개조하여 관벽을 좀 더 두껍게 설정했는데, 그렇다고 포관은 같이 두꺼워지지 않았다. 앞쪽부터 뒤쪽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관의 지름이 넓어져서인지, 실험용 포는 구식 포보다 사격 거리가 늘어나고 살상력이 강해져 예전 포에 비해 모두들 매우 만족해했다.
무엇보다도 화포의 몸체에는 가늠쇠와 가늠구멍을 설치했는데, 이것은 조준을 쉽게 하기 위함으로, 그 양쪽에는 포귀(砲耳)를 주조해 달아 사격 각도를 잡아 조절할 수 있도록 했기에 포차나 포대 위에 설치하기에도 이전보다 편해졌다.
그중에서도 가늠쇠와 가늠구멍의 경우, 외부의 것을 그대로 가져다 쓰지 않고 한 차례 개조를 거친 후 적용시켜서 서양의 것보다 더 좋아졌다.
이 포는 군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는데, 구체적인 효과는 실전에서 사용해 보아야 더 확실해질 것이었다.
고청운은 서양의 군사학이 이미 수학과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기술적인 함량이 있는 작업들이 수학과 잘 접목되어 있었기에, 화포수의 경우 반드시 수학을 배워야 했다. 전에 기하학을 번역할 때, 그는 외국인과 교류하면서 서양이 군사와 수학의 연계를 의식해 발전시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과 함께 기하학 번역에 참가한 신부가 ‘책에서 기하학을 서술한 저자는 오직 병법을 연구하는 일가로, 국가의 대사 및 국가적 안위의 근본을 위해 기하학의 힘을 제일 빈번하게 사용했다.’ 라고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고청운은 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적당한 때를 보아 상소문을 올려 기하학적 지식이 병법의 발전에 필요한 것이며, 이후에 사람들을 조직해 이를 배우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계획을 세웠다.
고청운은 이러한 내용의 상주문을 올리는 걸 서두를 생각이 없었는데, 어차피 지금은 이런 내용을 올려도 아마 기용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야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았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고청운은 정신을 가다듬고 신속하게 마차에서 내렸다. 이때 선박 공방 입구에는 이미 한 무리의 사람들이 새까맣게 모여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공방을 시찰하는 일은 그런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중간에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도 모두의 노력 하에 현장에서 바로바로 해결되었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국정이 태평하고 세월은 고요했지만, 세상사의 변화에 민감하고 소식이 정통한 사람들은 전쟁의 발걸음이 이미 임박했음을 알고 있었다.
* * *
고청운은 3일 동안 남경에 머물렀다. 요 3일 동안 고청운은 방자명의 집에서 묵으며, 한가한 시간에 그와 몇 년간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또 어떤 일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교환했다.
요 몇 년 동안 그들은 줄곧 서신을 통해 교류해 오고는 있었지만, 서신만으로는 매우 상세한 소통이 어려웠었다.
고청운은 시간과 공간의 격차가 그들의 깊은 우정을 변질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욱 돈독하게 만들어 준 것 같아 매우 기뻤다.
이와 함께 고청운은 방자명의 성장이 매우 빠르다고 느꼈고, 혹은 그가 *후흑학을 잘 배워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흑학(厚黑学) : ‘후흑(厚黑)’은 글자 그대로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을 합성한 말로 ‘뻔뻔하고 음흉하다’는 뜻이다. 후흑은 유교적 가치와 반대로 수천 년 중국 통치술의 정수를 꿰뚫는 성공의 원리를 ‘뻔뻔함’과 ‘음흉함’으로 설명한다.)
고청운은 방자명의 고백, 즉 상사를 위해 그의 주머니가 털린 그간의 사정에 대해 열심히 들은 후, 어쩔 수 없다는 듯 손을 떼며 말했다.
“저는 이쪽으로는 안 됩니다. 방 형 같은 사람들은 이쪽으로 얼마나 영민한 지, 전 상대도 안 되네요.”
방자명 같은 사람들은 상사의 단 한 마디 말로도 그 뒤에 숨은 속사정이나 몇 가지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지만, 고청운은 이럴 기회가 많지 않았고, 또 이런 일들이 자신을 대개 난처하게 만들어 좋아하지 않았다.
방자명은 심호흡을 하고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정말 이게 자네한테는 그리 어려운가?”
“방 형한테는 밥 먹고 물 마시듯 쉬울지 몰라도 제겐 어려운 일입니다.”
고청운은 솔직히 시인했다. 그는 상관의 심중을 애써 궁리하고 싶지 않았고, 상관의 취향을 그의 말 한 마디만으로 맞춰내기도 싫었다. 그렇다고 상관의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더 돋보이게 하는 것도 싫었기에, 승진을 위해 머리를 싸매는 일이 참 어려웠다.
“지난번에 폐하를 알현했을 적에 자네가 조금만 더 말을 잘했더라면, 이미 4품 관직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었을 걸세.”
방자명이 고청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가 이쪽으로 더 단련이 되지 않음을 아쉬워했다.
그는 그렇게 고청운의 앞을 서성이다가 또다시 탄식을 뱉었다.
“됐네, 난 자네가 이렇게 마음이 맑기만 한 사람인 줄 알고 있었지. 자네가 이리 말할 줄 알았는데, 괜히 나만 속마음을 내비쳤군 그래.”
“방 형이 저를 위해 해 주는 말임을 잘 알고는 있습니다만, 어차피 폐하께서는 지금 저를 다른 곳으로 전근 보내지는 않으실 겁니다. 지금 저희 부서는 이제 막 중요한 구간을 지나고 있으니 말입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화포를 개량하는 이 일은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해 오고 있었기에, 지금 와서 다른 사람으로 담당자를 교체하면 비교적 번거로울 것이었다.
이때 그들은 앞마당의 2층 다락방에 서 있었다. 이곳은 장서실(藏書室)로 방자명이 여러 해 동안 수집한 서적을 두는 곳이었는데, 현관을 지키는 자도 따로 두고 있었기에 두 사람이 하는 말이 새어 나가진 않은 터였다.
“정말이지 이런 자네가 어찌 공부의 낭중직에 올랐는지 알 수가 없군.”
방자명이 투덜댔다.
“역시 호부에서 밀려나 쫓겨난 게지.”
고청운은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 그를 힐끗 보기만 했다. 고청운은 참 답답했는데, 이것은 자신의 난처한 곳을 건드린 것으로, 호부에서 공부로 이동한 것은 확실히 좌천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고청운은 공부에서 인맥이 좋고 또 눈에 띄게 밉보이지 않았기에 아무도 그에게 달려와 조롱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비록 자신이 이 공부로 옮겨오면서 품계는 올랐으니 화를 복으로 얻은 셈이라지만, 고청운은 아무래도 좀 답답했다. 결국 그는 호부에서 일을 잘 해내고 있다가 갑자기 발령이 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입을 조심히 간수하고, 위기의 순간을 조용히 지낸 덕분이지요.”
고청운은 끝내 묵묵히 있다가 대답했는데, 이는 말솜씨가 서툴고 오직 일처리만 능숙한 그가 가진 묘수 중 하나이기는 했다.
결론을 내 보자면 다섯 글자로 간추릴 수 있었다.
‘신중한 언사.’
“그래, 내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
방자명은 한참 동안 어이가 없어 하다가 결국 이 말을 뱉었다.
고청운이 입꼬리를 휘어 올린 채 그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아이고, 저한테 방 형의 경험까지 전수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마다 성정이 다르듯, 방 형의 방법이 제게 꼭 맞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 말도 맞네.”
방자명은 그의 뜻이 여기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마음을 산학서 연구에 쏟아 왔지 않은가.
그래서 방자명은 신속하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로 했다.
“전 왕조의 계광 황제(*启光皇帝: 고청운처럼 시공을 초월해 넘어온 전 왕조의 타입 슬립자 황제)의 야사(野史)를 기록한 서적이 내게 있네.”
방자명은 말을 마치자마자 두 번째 서가로 가더니, 맨 꼭대기 층에서 책 한 권을 꺼냈다.
그제야 고청운은 방자명이 자신을 왜 이 다락방 같은 곳으로 끌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맞습니다, 저는 이런 걸 보는 게 좋습니다. 계광 황제가 다스리던 시기의 일이라면 사사건건 모든 일이 다 궁금합니다.”
그는 전 왕조의 타임 슬립자 황제가 통치하던 시절의 일들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건네준 책을 살펴보았는데, 책이 좀 낡고 벌레 먹은 구멍이 몇 개 보이자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남경의 어느 부랑자 하나가 생활이 어려워지자 선조 때부터 소장해 오던 책들을 팔아버렸고, 내가 때마침 그를 만나 한 번에 여러 권을 사들였다네. 돈이 많이 든 편은 아닐세.”
방자명은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마저 부연 설명을 했다.
“앞으로 우리 후대에게도 이런 날이 올지 모르네. 내가 애써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싸게 팔아버릴 지도 모르지.”
비록 듣기 싫은 말이었지만 그 말도 일리는 있었다. 영원히 번영하는 가문은 없고, 세상일은 어떻게 굴러갈지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언제 어떻게 가문이 몰락할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후손을 잘 가르치고 대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 * *
떠날 날이 곧 다가왔다. 4월 25일 아침, 부두에서 고청운과 방자명은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물줄기를 따라 기슭에 서 있는 방자명의 인영이 점차 작아지자 고청운의 눈시울은 어느새 촉촉해졌다. 그는 그제야 한참 만에 흔들고 있던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옆에 있던 부하 직원들은 말없이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고청운은 눈을 애써 깜빡거렸는데, 바람이 불자 눈에 맺혔던 습기는 금방 사라졌다.
남경에서 경성으로 오는 길에 여러 강둑을 살피며 돌아오다 보니, 그들이 무사히 경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7일이 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정오가 가까워 오자, 함께 길을 떠났던 미 주사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보고 말했다.
“모두들 먼저 집에 돌아가서 여독(*旅毒: 여행으로 생긴 피로나 병)을 푸시게. 오후까지는 쉬고, 내일부터 정상 출근을 하세.”
여러 사람들이 기뻐할 때, 미 주사가 다른 사람들을 힐끗 쳐다보며 먼저 답했다.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자신이 움직이지 않아 그들이 귀갓길을 재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빌린 작은 마차를 타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고청운이 마차에 오르자마자 고삼원이 함께 휘장을 걷고 기어 들어왔다.
“숙부, 제가 알아봤는데 공사 분들이 아직 황궁에 머무르고 계신 듯합니다. 하지만 합격자 발표는 아직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
고삼원은 그의 생각을 잘 알고 있기에 막 시내에 도착해 성 입구에서 제일 먼저 전시 시험에 대한 상황을 알아보았다.
“잘 되었구나, 보아하니 내가 막 도착했을 때가 한창이겠어.”
고청운은 그 말을 듣고 기뻐했다.
‘큰아들의 경사를 놓칠 순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