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3화. 재회
축하객들이 흩어지자, 고청운은 고삼원을 불렀다.
“누가 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지 보자꾸나.”
고삼원은 바로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것은 그가 방금 찾아온 명단으로, 이런 소식은 줄곧 아주 빠르게 전해져 오고 있었다.
고청운은 종이를 넘겨받고 재빨리 훑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이름이 더 있는지 찾아보았다.
회원(*会元: 회시의 장원 급제자를 지칭하는 말)은 강소성과 저장성 일대 지역의 사람이었는데, 성은 소(苏)씨로 올해 35세이고, 젊은 나이에 급제하여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다만 그간 여러 차례 회시를 볼 때 낙방을 거듭하다 뒤늦게 빛을 본 경우였다.
이 소식을 보고 고청운은 이마를 문지르며 한참을 읊조렸다.
‘큰아들의 답안이 그의 답안 수준을 넘어설 수 없었나?’
고청운은 조금 기다렸다가 예부에서 간행하는 회시 문제집이 나오면 반드시 잘 들여다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청운은 매년 이 문제들을 보며 과거 시험의 형평성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들인 고영량의 답안이 수록이 될 테니 더 잘 봐야했다.
고청운은 계속 명단을 훑어보며 잘 모르는 이름은 생략한 채, 아는 사람의 이름을 찾아보았다.
방정심은 10등으로 시험에 합격했다. 그의 나이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인지 알 수 있었는데, 비록 본 왕조의 건국 이래 최연소 진사는 아니었지만, 1~3위에 들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고청운은 이번에 주임 시험관을 역임한 봉 상서 역시 16세가 되기도 전에 진사 시험에 22등으로 급제하면서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인물이라는 걸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방희림의 아들이구나!’
고청운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입꼬리를 약간 일그러트렸다.
고영량의 친구이자 동창인 대리사경의 아들 요빙(姚炳)은 11위, 노개운은 34위를 차지했다. 하지는 조금 더 뒤인 68위를 차지했는데, 전시 시험까지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삼갑(三甲) 동진사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하지가 예전에는 아무 동정도 내보이지 않았었는데, 시험 보러 처음 상경해서 이리 단번에 합격할 줄이야.’
그는 자신보다 2살 어리니 39살에 진사에 급제한 것으로, 그리 늦지만은 않은 나이였다.
앞에 배열된 명단을 다시 본 고청운은 이번 진사 시험의 합격자들이 모두 나이가 비교적 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합격했을 때의 수준과 견줄 만할 정도로 이 중에 미혼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만약 30세 이하에 아직 아내가 없다면 틀림없이 엄청난 인기를 끌 테니 아무리 자신의 눈에 든다 한들 그런 혼처를 쟁취하지 못할 가능성도 클 것이었다.
그러나 고청운은 25세가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했거나 정혼자조차 없다면 부득이한 사유가 있거나 혹은 신진 진사로서의 자신의 가치를 알고 있는 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들은 무릇 자신의 가치를 입에 담고 가격을 셈하기 마련이었는데, 고청운은 그런 부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방정심은 17세로 아직 너무 젊으니 제외였다.
이때 고영량도 고청운에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내밀었고, 그의 손에 들린 명단을 함께 둘러보았다.
“하지 아저씨도 합격하셨네요!”
간유가 방인소와 연 씨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외할아버지, 매형, 제가 하지 아저씨의 나이가 되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요?”
방인소가 손가락을 구부려 그의 이마를 한 대 때렸다.
“철없는 놈, 늘 잔꾀를 부리지. 이전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으면 더 노력 할 생각을 해야지. 네가 더 노력했다면 오늘 네 이름이 합격자 명단에 올라 있었을 게다.”
간유가 이마를 가리며 소리쳤다.
“외할아버지, 다른 사람은 낙방한 사람에게 조심조심 대하는데, 왜 저한테만 여전히 이렇게 거칠게 대하시는 거예요. 외할아버지는 역시 매형과 량가아만 아끼시는 거죠!”
그의 목소리는 과장되어 있었다.
고청운은 헛기침을 몇 번 했는데,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지금 스승님께서 제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은 자네지. 스승님께서는 좋아하는 사람을 때리고 싶어 하신다네. 처남, 여기서 3년만 더 같이 살면서 지내보세.”
그 말을 들은 간유는 잠시 멍해져서 있다가 기대 섞인 모습의 연 씨와 간미를 보더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볼게요.”
이곳에서 3년을 더 보내면 앞으로 어떤 나날이 펼쳐질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덩달아 구시렁거렸다.
“인생에 있어 늘 과거 시험만 염두에 두고 맴돌고 있다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이미 거인 신분이고, 또 집은 먹고 살 걱정이 없지요. 벼슬아치는 일반 사람보다 지위가 높으니 어디를 가도 두렵지 않다고는 하나, 저는 경의 같은 학문만 보아도 이젠 머리가 아프니 차라리 바다라도 나가 좋은 세상을 구경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심 평생 공부만 하고 살았는데, 자신이 젊은 시절을 틈타 여기저기 돌아다녀 보지 않으면 늙어서 더 꼼짝 못할 지경에 이를까 봐 정말 두려웠다. 그럼 이 한 평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고청운은 뒤의 말을 듣고는 놀라서 간유를 쳐다보았다.
‘처남이 이런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어쩐지 소아와 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더라니.’
동년배도 아니고 조카와 외숙 사이라 망정이지, 지금은 사회 풍조가 개방적이라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그렇게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었을 것이었다.
방인소는 이 구시렁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화가 진즉에 나 있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늘 사내란 모름지기 공부를 하고 과거에 합격하는 것만이 옳은 길이었으니 말이다.
* * *
그 다음 며칠 동안은 고씨 집안에 축하 선물을 보내오는 사람이 계속 줄을 이었는데, 특히 고청운의 부하 관원들이 가장 먼저 선물을 보내왔다.
그들의 축하 선물을 받은 후, 고청운은 노 시랑을 떠올렸다. 그의 큰아들은 이번에도 낙방을 하였는데, 그의 둘째 아들이 이미 다른 곳에서 6품 통판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큰아들의 앞날은 밝지가 않아 보였다. 이러니 고청운은 선물할 필요가 없었고, 또 그를 만나야 하는 상황이 되면 얼굴에 희색을 거두어야 할 것이었다.
고영량이 두문불출하며 전시 시험을 대비하고 있을 때라, 고씨 집안에서는 축하 연회를 서두르지 않았다.
게다가 고청운은 기쁜 와중에도 계속해서 업무에 정력을 쏟고 있었다. 매일같이 잔업을 하고, 때로는 밤이 되어서도 선박 공방에 자주 나갔는데, 이렇게 현장에 나가 업무를 시찰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주로 선박의 제조 상황을 점검했다.
이 선박들은 보통 상선이 아니라 전시용 군함으로, 그가 부임한 이래로 줄곧 장인들을 조직하여 화포를 개량하고 그 위력을 더욱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작도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
예산이 아직 많지 않아, 그는 호부와의 관계를 이용해 예산을 신청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여 여러 연유로 인해 자금은 늘 부족했기에 개량에 들어가는 시간도 덩달아 더 늦추어졌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요주(么州) 사건이 알려지자 호부 역시 발끈해지며, 인력과 재력을 대거 투입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개량 및 연구와 관련된 진도가 매우 빨라졌다.
군함의 개조가 완료되고 형태가 어느 정도 잡힌 후에는 병사들에게 화포 조준 훈련을 시켜야 했는데, 이는 일정한 수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 혼자서 훈련할 수 없는 항목이었다. 고청운은 경험과 운으로 여기까지 왔을 뿐이라 훈련을 시키는 것까지는 어려웠는데, 정확한 조준을 위한 포물선만 가르치려 해도 우수한 병사들 중에서 엄선한 병사들조차 골치 아파했던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배워야지!’
전쟁이 임박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고청운은 지금도 소보에서 출병 여부를 놓고 옥신각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정 관료들이 거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머지는 야당 정도에서나 움직임이 있었을 뿐이었는데, 여전히 그들은 입씨름을 하느라 소란스러웠다.
고청운은 말없이 입을 다물고 예전처럼 필명 뒤에 숨어 여론전을 벌였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는 너무 바빠져 땅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을 정도였고, 이에 그의 부하 관리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이런 시간들이 계속되자, 그들은 은근히 그를 원망하고 있었는데, 고청운의 업무 관리 요구에 대한 기준치가 너무 엄격하여 이를 조 대인으로부터 배운 것 같다는 평판이 줄을 이었다.
물론 이 내용은 고청운의 밀고자가 그한테 알려준 얘기로, 그는 모른척하고 있었다.
* * *
고영량이 전시를 치르고 있을 때, 고청운은 경성에 있지 않고 남경의 선박 공방에서 선박 건조(*建造: 건물이나 배 따위를 설계하여 만듦)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이번에 고청운은 드디어 방자명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고청운은 지방 관리들과 식사를 하고 술자리를 보낸 후, 부에서 마련해 준 거처로 가지 않고 방자명을 따라 그의 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 사람들과 점점 멀리 떨어지자, 고청운과 방자명은 흐트러진 몸을 곧게 펴고 앉았는데, 얼굴에는 취기조차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두 사람은 마차 안에서 서로 쳐다보면서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아까 술자리에서는 설렘이 컸는데, 지금은 서로가 걱정이 돼서 오히려 이야기를 잘 나누지 못했다.
고청운은 방자명이 아래턱에 기른 수염과 여전히 하얀 피부를 쳐다보고는, 아리따운 얼굴에 질투가 나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주물렀다.
“방 형, 수염만 빼고 많이 달라진 것이 없군요.”
잘생긴 얼굴의 중년 아저씨가 되어 있는 그는 온몸에서 성숙한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었기에, 고청운은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다.
방자명은 득의만면하게 턱을 긁으며 웃으며 말했다.
“자네야말로 변한 게 없는데. 누가 자넬 40살이 넘은 사람으로 보겠나?”
그는 고청운의 팔을 내리더니 탄식해 마지않았다.
“우리 십수 년 만에 보는 게지?”
이 한 바탕의 난장판 속에서 두 사람 사이의 서먹함도 사라졌는데, 서로 그간 워낙 자주 서신으로 교류해왔기 때문이었다.
“네, 오래됐죠. 12년이나 되었군요. 그리고 40살이 넘었다니요? 저는 벌써 41살입니다.”
고청운은 뒤에 붙은 ‘1’을 강조했다.
‘한 살이라도 소홀해서는 안 되지.’
방자명은 다시금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지방 장관들은 해마다 상경해 보고를 올리는데, 방자명은 보고를 올리러 출장을 갈 수 있는 품계에 조금 모자랐다. 4품에는 올라야 매년 귀경할 수 있었고, 그렇지 않으면 황제의 특별한 명령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고청운은 여러 차례 출장을 갔지만, 어째서인지 남경에는 한 번도 올 일이 없었다. 이번에 선박 공방을 순찰해야 하는 것이 첫 번째 남경 방문이었는데, 이 일이 아니었다면 그는 여전히 여기에 올 일이 없었을 것이었다.
방자명은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려다 일부러 웃으면서 말했다.
“자네는 나이가 많은데 왜 아직도 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는 겐가?”
고청운이 그의 동작을 제지하며 말했다.
“차는 마시기 싫습니다, 오늘 저녁에 배 속 가득 물을 마셨어요. 방 형 부서의 담 대인이 술을 너무 많이 주더군요. 제가 긴급 조치로 물을 대신 마시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을 겁니다. 혹은 옆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겠지요.”
담 대인은 남경 지역의 지부였다. 그는 원아의 미래의 시아버지인데, 방자명과의 관계를 생각해 오늘 저녁 술자리에서 자신한테 매우 잘 대해 주었다.
“여전하네. 몇 년째 그 수법을 쓰고 있는 겐가? 몇 년이 지나도 자넨 변하질 않는군.”
방자명이 그를 놀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