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주아와 원아 (2)
이 육황자는 일련의 황자들 사이에서는 신분이 가장 낮은 편이었다.
비록 대황자의 어머니와 같이 육황자의 친모도 궁녀 출신이었으나, 대황자는 그래도 ‘장자’를 차지했으니 자연히 신분이 다를 수밖에 없긴 했다.
올해로 16세인 육황자의 친모는 일개 궁녀의 신분이었다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정5품의 귀빈(*贵嫔: 황후 다음 비빈 중의 한 지위)으로 봉해졌는데, 이것으로 황제의 육황자에 대한 감정과 총애 여부를 알 수 있었다.
육황자는 외가가 없고 지금도 별다른 직무를 맡아보고 있지 않아 존재감이 낮았고, 앞으로 황권을 계승할 가능성도 무한한 불가능에 가까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 황제의 즉위 이후에는 새 황제와 별다른 원한 관계가 있지 않은 이상, 다른 것은 몰라도 일개 군왕의 작위 정도는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방자명이 보낸 서신을 본 고청운은 그래도 그가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고청운은 육황자의 처지를 생각하니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이 정혼을 반대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그가 반대를 한다고 해도 아무 효력도 없겠지만 말이다.
쌍둥이 중 동생인 방원아(方媛儿)는 소주의 담씨 가문과 정혼하게 되었다. 맞다, 바로 담자례의 가문으로, 담씨 가문의 방계가 되는 집안이며 남경의 지부를 역임하고 있는 사람의 아들과 성혼을 하게 되었다. 이제 막 18세가 된 그는 올해 거인이 되었는데, 4위라는 석차 순위로 시험에 합격해서 어린 나이에도 미래가 유망했다.
이 소식들을 접했을 때 고청운은 매우 놀랐는데, 방자명이 그간 맘에 차는 사위를 구하지 못했다며 자꾸 서신으로 투덜댔기 때문이었다. 그간 그와 공통의 골칫거리를 안고 있다고 생각해 오고 있던 고청운은 방자명이 먼저 생각지도 못하게 이렇게 급작스럽게 매우 빠른 속도로 두 딸의 혼사를 성사시키고, 게다가 혼처도 모두 괜찮은 편인 걸 알고는, 그에게 부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 참, 일 처리하는 속도하고는. 또 안목은 어찌나 뛰어난지!’
고청운과 간미는 지금 둘째 며느리를 고르느라 무척 애를 먹고 있었는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은 둘째 아들이 현재 곁에 없었기에 이렇게 더 고심하고 있었다. 혼사란 결코 어른 둘이서 이렇게 가볍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이며, 고영진 자신이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청운은 또 그동안 그 사합원을 자주 찾아다니며 연습 문제집을 엮느라 더 몸을 뺄 도리가 없었다.
* * *
간미는 고청운이 전해준 방자명네 이야기를 듣자마자 말했다.
“주아와 원아는 좋은 아이들이니 자연히 이리 좋은 사윗감을 구하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참, 주아는 경성에서 혼례를 치르게 될 텐데, 우리 집에서 혼수로 쓸 것들을 좀 더 후하게 보태줘야겠습니다. 황가에 시집가는 건데, 남들에게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되죠.”
어릴 적부터 방인소와 연 씨 부부 곁에서 자라 방씨 집안에 대한 정이 깊었던 간미는 지금 주아가 좋은 곳으로 시집가게 되는 것을 보니 마음이 편해지며 매우 기뻤다.
“그건 당신이 보고 알아서 해 주시오. 나는 여기에 별다른 이견이 없소.”
고청운은 아까부터 보고 있던 산술 서적을 밀치고는, 붓을 들어 자신이 알고 있는 소년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해 내려갔다.
그는 그동안 성남 사합원을 다니면서 많은 젊은이들을 알게 되었는데, 비록 자신의 딸이 더 뛰어나 다른 소년들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람은 결국 현실을 직시해야 하는 법이라 생각을 되돌렸다.
‘소아도 역시 시집을 가야 해.’
“아이, 황자비가 된다는 건 얼마나 많은 처녀들이 부러워하는 경사인가요. 다만 황가에 시집가는 일은 쉽지 않으니, 앞으로 주아가 고생하게 될 거예요.”
황자비는 겉으로만 번지르르하지 속사정은 운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봐야 했기에, 간미는 한숨을 내쉬며 육황자가 주아와 잘 지내면서 주아한테 온화하게 대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주의해야 하긴 하오. 그리고 모든 일은 다 마음의 성장을 수반해야만 하는 법이지.”
고청운은 이전에 만났을 때 주아의 활약을 떠올렸는데, 그녀는 성격이 온건하고 세련된 면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적장녀에 걸맞는 교육을 받아오며 자라 매우 총명하니, 분명 황자 집안의 안채의 일들에 휘말리지 않고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었다. 육황자는 당연 대황자 자리를 탈환할 희망이 없을 터, 아마도 방자명의 장인인 하상(夏尚) 대인이 이미 벼슬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황제가 이 혼사에 동의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황실과 인연을 맺은 이상 방자명은 내년에 승진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는 평소에도 워낙 우수해 매번 직무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왔는데, 이제는 또 이런 대단한 관계가 생기지 않았는가.
그의 승진을 예견하는 것은 마치 순리를 따르는 것과도 같았다.
말을 마친 고청운은 자신의 차기 사윗감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양쟁은 올해 14살, 고경보다 1살 많은데, 태부(*太傅: 태자의 스승)인 양불언의 막내조카로, 자신과는 마치 고신하(*顾申河: 큰 할아버지 고백산의 아들)와 같은 3대를 벗어나지 않는 사이라 혈육으로써의 인연이 깊었다. 양씨 집안에는 이 양불언이라는 태부가 존재하고 있었기에, 그들 고씨 집안과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위상이 높은 존귀한 문인의 집안이라 할 수 있었고, 양쟁 개인의 실력도 출세를 하기 충분해 보였다.
양쟁 이 녀석과는 고청운도 이미 꽤 익숙한 사이였다. 그는 똑똑하고 눈치도 잘 보는 성격이었는데,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면 그의 부모가 일찍이 모두 돌아가셨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고청운은 양쟁의 양친이 모두 돌아가신 것에 대해 별로 꺼리지 않았다.
양쟁은 사람됨이 총명하고 공부에도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기에, 지금은 겨우 수재에 합격했을 뿐이지만, 앞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를 수 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양쟁의 출세욕이 강하다고 느꼈는데, 앞으로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출세에 무게 중심을 두게 될 테니, 그와 고경의 사이가 좋을지에 대한 여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고청운은 턱을 쓰다듬다 말고 손을 찌르는 수염을 느끼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양가는 문벌 차이 때문에 크게 어울리지 못할 수도 있으나, 양쟁의 일신상의 사정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진행만 잘 된다면 아예 쟁취를 못 할 상대도 아닌 듯싶었다.
고청운은 속으로 한참을 궁리하다가 결국은 그의 이름을 명단에서 지워버리고는 이어서 몇 개의 이름들을 더 써내려갔다. 하지만 결국은 또다시 이전에 했던 생각들을 다시 하게 되면서, 아무래도 이들도 역시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되었다, 좀 더 생각해 보고 다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구나. 다행히 딸은 아직 혼기가 차지 않았으니 말이야.’
이어서 그는 둘째 아들의 혼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벌써 유력 후보가 몇 정해져 있어서 사람을 시켜 은밀히 상대 처자의 인품을 알아봐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낸 이들이 돌아오면 의견을 물어본 후 이야기를 진행시킬 예정이었다.
물론 이 일도 아직 급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아들은 아직도 고향에 있었으니 말이다.
간미는 고청운이 뭔가 썼다 지웠다 하고 있는 것을 보더니,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을 시켜 자신의 바느질감을 들고 자리를 옮겨가도록 했다.
고청운이 정신을 차렸을 땐, 서재에 그 혼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 * *
11월 초, 고청운과 사람들의 노력 끝에 <산학 문제집(算学题集)>이 마침내 탈고가 되었다. 이 책은 총 세 권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과거 시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들을 분류하여 총망라한 후 확장해 낸 것으로, 그가 후대에 본 기존의 연습 문제와 비슷했다.
물론 그가 새로 출간한 <기하상해>의 내용은 이 문제집에 담지 않았는데, 관련 내용은 조금 더 연구를 거쳐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히려 이전에 번역한 <기하학>의 내용과 산술식이, 생활 속 실제 문제에 접목했을 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아, 과거 시험 문제로 기출 된 적이 있는 기하학 문제들을 넣었다.
이쪽 방면에 있어 하 왕조의 문인들이란, 과거와 관련된 것이라면 누구나 최선을 다해 맹렬히 공부했다. 이에 발맞춰 지금의 어질고 덕이 뛰어나며 영명한 황제가 시대적 요구에 맞게 재능 있는 신하를 발굴해내어 조정 역시 시대와 함께 발맞추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또, 여러 산술학계의 대가들의 주도 하에 이 몇 년 동안 산술이라는 학문이 매우 왕성하게 발전을 거듭하여 때때로 새로운 발견 및 술식이 발표되기도 하였는데, 고청운조차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했기에 책을 사서 공부해야 했다.
현재 고청운의 산술 연구는 이미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해 있었는데, 미적분의 내용에 대해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외에도 천문학 분야가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기에, 이제는 그가 천문학, 역학 등의 방면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갈 때였다.
오늘날 같이 항해에 대한 열기가 여전히 뜨거울 때, 항해술에 필요한 정확한 방향과 위치를 가늠하는 법을 발전시켜야 했는데, 예를 들면 경위도라든지, 항해에 사용되는 시침이나 시계추 같은 것들에 대한 기술적인 발전을 더욱 도모해야 했다.
육훤과 서신을 교류하면서 그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었다.
만약 전 왕조에 나타났던 타임 슬립자 황제가 좀 더 만능의 사나이였다면 더 좋았을 것인데, 그가 아직도 실존해 있었다면 왕조의 위세가 가히 대단했을 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황제로 지내던 시간은 너무 짧았다.
개혁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좋은 시절과 비교해 보면,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한 지금, 무슨 개혁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절대 다수가 이 사상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결국 관성적인 본성이 있기 마련이라, 생사의 존망의 고비가 걸린 심각한 문제가 아닌 이상, 누구 하나 뜬금없는 변화가 생겨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개혁은 일부의 이익만 겨우 건드릴 수 있었다.
그는 황실의 장서루에 책을 보러 다닐 때, 전 왕조의 정사나 쉽게 접할 수 없던 야사를 한 번 훑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의 짐작에 따르면 전 왕조의 타임 슬립자 황제는 아마 후대 중에서도 1980년대에서 지내다 이 세계로 건너온 것 같았다.
이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보며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고청운은 이제 이 문제는 더 이상 생각하지 말고, 간행을 맡길 인쇄 공방을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