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7화. 주아와 원아 (1)
“부군, 당신은 여인이 아니니, 우리 여인들의 속마음을 모르십니다. 성혼까지 한 부군의 출세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간미가 그를 놀리듯 말했다.
“만약 우리가 처음 상경하려 했을 때 제가 회임 때문에 부군을 따라 함께 상경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면, 당신은 저를 두고 혼자서 상경하셨을까요?”
고청운이 코를 만지며 멋쩍게 웃으며 투항했다.
“알겠소, 내가 당신을 어찌 이겨 먹을 수가 있겠소. 당신과 며늘아기와의 사이가 좋으니 사고방식도 비슷할 것 같군.”
간미는 고청운이 모처럼 패배를 인정하자 매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그 아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찌 그리 눈이 빠지게 고대하며 그 아이를 우리 집으로 오게 했겠어요. 저는 시어머니로서, 무슨 악랄한 시어머니가 되고자 하지도 않을 것이고, 그저 우리 요요가 아들을 잘 보살펴 주기만 하면 만족합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고청운은 고영량과 영요가 경성의 집에서 함께 지냈던 때를 회상했는데, 영요가 집에 들어온 이후 간미는 식사 때마다 영요에게 찬을 집어주며 며느리만을 챙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물론 그 이후로도 그녀의 앞에서 무슨 가풍을 바로 잡는다느니 하는 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는 비록 안채의 일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그간 들어온 몇 가지 풍문으로 고부 사이가 소홀하다는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남들의 우스갯거리가 될 거라는 건 알았다.
“이건 제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고 한 행동입니다. 제가 이 집으로 시집을 오고 나서, 시어머님께서는 제게 예의를 갖추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지요. 또 제게 어찌나 자상하게 해 주셨는지, 저도 그리해야 마땅합니다.”
간미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는데, 소진씨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진사에 갓 합격한 자식을 둔 농가의 집안으로 시집온 그녀가 제일 두려웠던 것은 고향의 시어머니가 마구 생트집을 잡지는 않을까, 여러 시누이와 친척 아주머니들이 그녀를 괴롭히지는 않을까였는데, 외려 온화한 말투와 부드러운 말투로 대접을 받게 되었다. 기타 자질구레한 일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단 하나, 자신이 요 몇 년 동안 상경하여 지내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않는 것만 보아도 자신에 대한 배려를 알 수 있었다.
조금 모진 시어머니라면 충분히 자신만이라도 고향으로 불러들여 시댁 어른들을 모시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일을 설령 외부인이 알게 되더라도 그들 역시 잘못되었다 하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였더라면 요 몇 년간 경성에서 지내는 자신의 부군이 얼마나 많은 서자, 서녀들을 보고 있을지 전혀 알지도 못하고 지냈을지도 몰랐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부군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일은 감히 시험할 수도, 가정할 수도 없었다.
외당이모가 장씨 집안으로 시집가서 만난 시어머니와 비교하면 자신은 정말 운이 좋았다.
간미는 자신의 여자 지인들이 자신에게 아주 천천히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고, 며느리를 대하는 것이 자애롭다고 할 때마다 그저 말없이 웃기만 했던 걸 떠올렸는데, 자신의 생활이 행복했기에 자연히 비뚤어지지 않고 자애롭고 화목하게 사람을 대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고청운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고경은 여기까지 듣더니, 읽고 있던 책에서 고개를 떼고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최고세요.”
아이의 갑작스러운 말에 고청운은 바로 고경을 쳐다보았는데, 고경은 영롱한 작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 채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제가 보기엔 좋은 시어머니와 좋은 남편을 만날 확률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시집을 가고 싶지가 않은데, 그리해도 되겠습니까?”
고경은 엄숙하고 조심스럽게 마지막 한마디를 끝맺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깜짝 놀라 눈을 마주치고 나서 다시 고경을 바라보았다.
“이 녀석이, 무슨 농담을 하는 게냐?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아니 된다.”
간미는 손에 들고 있던 바느질거리를 서둘러 내려놓고 잰걸음으로 고경에게 다가가 옆에 앉았고, 그녀를 품에 안고 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게야. 여인이 시집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시집가지 않으면 절에 가서 비구니 노릇을 해야 하는데, 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네가 고생하는 것을 어찌 보겠느냐.”
고청운은 잠자코 있었다. 지금 고경이 13살만 아니었더라도, 여자아이만 아니었더라도, 아이가 어렸을 때처럼 아이를 안아 위로해 주었을 것인데, 이제는 고경의 나이가 차서 그러지를 못했다.
솔직히 그는 개방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딸이 평생 시집가지 않는 것은 원치 않았다. 설령 그와 간미가 그녀에게 늙어서도 충분히 건사할 만한 재산을 남겨준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그녀가 ‘별종’처럼 비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되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나중에 심성이 변하기 마련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몇 백 년 뒤의 현대 사회에서조차 여자가 결혼하지 않으면 주변으로부터 호의를 가장한 간섭이나 괜한 지레짐작에 시달리기도 하고, 부모들도 고개를 들기 어려운 경우를 겪었는데, 그나마 좀 개방적인 곳이어야 이런 사정이 나아졌다.
하여 그는 자연히 그런 딸아이의 의견을 독려해 줄 수가 없었다.
간미가 여전히 고경을 끌어안은 채, 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고자 했다.
부모님의 반응에 고경은 어쩔 수 없이 답했다.
“아버지, 어머니, 안심하세요. 그냥 해 본 말이에요.”
내심 한숨을 금치 못한 고경이 중얼거렸다.
“여인이 시집가서 한 평생 후원에 갇혀 사는 게 재미없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이 세상은 이렇게나 좋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말이에요.”
그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청운과 방인소를 따라다니며 세상을 돌아본 적이 있었는데, 이미 이 세상의 정경을 맛본 그녀를 어찌 집안에만 앉혀 두고 남편을 내조하며 자녀를 교육하는 데만 몰두하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게다가 그녀는 외국어를 배웠고, 바다 밖에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 사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것들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또한, 그녀는 지금 황립 여자 서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그녀의 둘째 오라버니가 과거에 급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자신과 좋은 인연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아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에 대한 태도 역시 더 좋아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여자아이들이 귓속말을 나눌 때, 가끔은 안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도 나누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그녀의 집안이 제일 깨끗한 것에 대해 다들 부러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집안에는 첩이나 서자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문에 일정한 자산도 있는데다가 부모가 그녀를 총애하고 있고, 두 오라버니도 유능했으며, 그녀가 비록 고관 집안의 여식은 아니나 고결한 문인 집안의 딸인 점도 부러워했다.
물론 이런 조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이런 조건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더도 말고 관계가 참 깔끔하지 않은가? 가능하기만 하다면야 누가 나서서 싸움의 한복판에 끼어들고 투쟁을 원하겠는가? 그 누구라도 당연히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할 것이었다.
고청운은 딸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는, 그저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나와 네 어머니는 너와 함께 유람을 다닐 부군을 찾아야겠구나. 가문이 조금 쳐져도 상관없겠지. 하하. 차남 같은 사람이 낫겠구나, 가문을 떠받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정혼하게 될 대상과 반드시 만나 볼 수 있도록 주선하고, 네가 동의한 후에야 혼사를 정할 거라는 거다.”
고경은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이번에 그녀는 처음으로 부모가 자신의 혼사에 관련해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 알게 되었다.
그녀는 또 간미를 쳐다보았는데, 어머니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고청운과 간미는 이것이 그녀의 암묵적 동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뒤이어 간미는 고경을 옆집의 방택으로 보내며, 새로 쪄낸 계화떡 한 접시를 가져다 드리게 했다.
딸이 자리를 떠나고 나서야 간미가 고청운에게 말했다.
“이게 다 당신과 외할아버지 때문입니다. 늘 저 아이를 데리고 놀러 다니셨으니 아이 마음이 산란해진 거예요. 어느 집의 딸이 저 어린 나이에 벌써 시집가기 싫다고 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는 어찌나 놀랐는지.”
“그저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안목을 좀 넓혀주고자 함이 아니었겠소.”
고청운이 간미의 어깨를 감싸며 위로했다.
“괜찮소.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받치리다. 그 아이는 아직 어리지 않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도 바뀌어 갈 것이고, 오래지 않아 아이도 다른 마음을 먹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딸아이에게 어떤 사윗감을 찾아줘야 하나 궁리해 보고 있었는데, 계속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 뿐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고청운은 답답해졌다.
“사위를 찾는 일이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소. 미아, 방 형은 딸이 둘이나 있는데다 아이들의 미모가 또 보통 빼어난 것이 아니지 않소. 그는 도대체 어떻게 사윗감을 정했을지 궁금하구려.”
방자명의 쌍둥이 딸인 주아(姝儿)와 원아(媛儿)는 고영진과 동갑의 나이로 올해 16살인데, 얼마 전 방자명으로부터 받은 서신에는 두 자매의 혼처가 정해졌다는 소식이 담겨 있었다. 고청운이 보기에도 이 두 혼처는 확실히 매우 좋아 보였다.
몇 년 전 방서(方瑞)가 귀경하여 황실 서원에 입학하고 나서 방자명의 친모인 왕 씨가 경성으로 따라와 손자를 돌보았는데, 그 후 어찌된 영문인지 임산현의 방인례도 따라 올라오게 되었다.
당초 이들이 돌아왔을 때는 고영량의 성혼식에 참석해야 했을 때였는데, 하 씨 역시 쌍둥이 자매와 함께 돌아와 한동안 경성에 머물다가 남경(南京)으로 돌아가 방자명과 다시 합치고 나니, 방인례와 왕 씨만 방서와 함께 경성에 남아 그를 돌보게 되었다.
고청운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그들이 경성에 머무르는 동안 별다른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었다. 앞서 방자명 역시 별다른 언급이 없었는데, 며칠 전 황제로부터 성지가 내려오고 나서야 고청운은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황제는 한 번에 5, 6, 7번째 황자, 즉 세 명의 성혼을 주재했는데, 육황자가 방주아(方姝儿)의 장래의 부군이 되었고, 성혼일자는 내년으로 정해졌다.
방씨 가문에서 황자비를 배출하게 된 건 고청운으로서는 그저 놀라운 일이었다. 방인소조차 이 소식을 알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멍해져 버렸다.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언제나 아리따운 미모는 희소가치를 지녀왔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 쌍둥이 자매의 용모는 대단했는데, 그녀들이 조금 자라면서부터 방자명은 그녀들을 데리고 문밖을 나가거나 유람하는 일이 아주 적었다.
그러나 고청운과 방자명은 주아가 황가로 시집을 가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특히 고청운은 그의 친한 벗이 황실과 무슨 연관이 있게 되리라고는 더욱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