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86)화 (386/504)

386화. 고 대사(大师)

고삼원과 소만은 일찌감치 문밖에 머물러 있었다. 고청운은 세 대사들에게 허락을 표하고 양 대인의 아랫자리에 앉았다. 

“신지도 도착했으니, 이제 서둘러 시작해 보자꾸나. 신지, 자네가 말한 기하학과 입체 기하학을 응용하여 우리를 설득해 보겠나? 또한, 사용되는 축에 표기를 왜 서양 알파벳으로 표시하는 것인지, 왜 우리 본토의 문자로 표기하지 않는 것인지 말을 좀 해 보시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사치레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었던지라, 그들 중 장 대사가 먼저 의례적인 인사말조차 없이 입을 열어 본론을 말했다.

일찌감치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고청운이 대답했다.

“계산하기 더 편해서 그러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좌표점들이 더 잘 계산되니 말입니다. 만약 이 알파벳 표기를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고쳐 버리게 되면 산술 문제를 풀 때 편리하지 못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세 사람은 붓을 들어 계산하기 시작했고, 이런 계산식들을 어느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지 혹은 응용에 있어 어떤 결점이 있는지 함께 따져보기로 했다.

이들은 고청운이 출간 전 초고를 보여 주었었고, 책으로 간행되어 나온 후에는 몇 권 선물을 받았기에, 이 책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가끔 대답하기도 했다. 

고대에는 수학이라는 것이 죄다 응용수학(*应用数学: 자연과학, 사회과학의 각 분야에서 이용되는 수학의 모든 분과의 총칭으로, 응용수학에 대한 분야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보통 자연과학, 사회과학에 응용의 색채가 강한 부문을 모아서 말하는 것이라 시대에 따라서 일정하지 않았다. 종류로는 오차론, 최소 제곱법, 보간법, 수치계산법, 도식계산법 등이 있다.) 쪽으로 발전을 해 와서 그런가, 눈앞의 이 사람들은 새로운 방향의 수학적인 내용이 출현하자, 이 수학적인 것들로 삶 속에 직면한 어떤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론적으로도, 체계적으로도 완벽히 수학적인 내용을 분석하여 이론부터 응용까지 모든 내용을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는 서적은 매우 드물었기에, 그의 책은 나오자마자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게 되었다. 

이런 책 덕분에 사람들이 산술을 학습할 때의 난이도가 낮아졌는데, 그의 책에는 쉬운 것, 어려운 것, 간단한 것부터 복잡한 내용들 까지 모두 풀이 과정과 설명 등을 대동하여 명명백백하게 잘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한 차례의 모임 때문에 고청운은 성공적으로 그들의 무리에 속할 수 있게 되었는데, 예를 들어, 이 무리에서는 예전까지만 해도 그를 산술학계의 후발주자이자 눈 여겨 볼만한 관찰 대상으로만 여겼었다면, 이제는 거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으로 쳐 주었다. 

당연히 이는 산술학계에서만 해당되는 내용이었고, 벼슬 생활에 있어서는 감히 언급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는데, 우 대사 외에 다른 두 분의 덕망은 고청운이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까마득히 높은 위치에 있는 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고청운은 자신이 ‘고 대사’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챘다. 

고청운은 아직까지는 자신의 생활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고 느끼지 않았는데, 다만 성남에 가는 횟수가 더 많아졌을 뿐이었다. 성남의 그 사합원은 경성에서는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곳으로, 그 안에는 서당이 하나 차려져 있었다. 사실 말이 서당이지 이곳은 학원 같은 곳으로, 전문적으로 산술 분야가 약한 동생들이나 수재 혹은 거인들까지 와서 산술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나이가 젊은 고청운은 산술 학문의 발전을 위해 그곳을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끊임없이 연습 문제를 내주게 되었다. 이 외에도 이곳에서는 산술, 천문, 지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어 서로 교류하며 학식을 늘려가는 등 분위기가 매우 좋았는데, 유교학(儒学) 학계에서 보이는 각양각색의 언쟁이나 핍박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점은 이들이 소수 단체여서 가질 수 있었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고청운은 때때로 만약 이들이 편을 갈라 서로 공격하게 된다면, 이들이 어렵게 쟁취했던 산술학계에 불어온 호재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모두의 관심사는 열기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열기구가 사람을 태우고 비행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쏟아 붓고 있었고, 이 밖에도 항해 기술의 발전 쪽으로 관심을 쏟고 있었는데, 요즘 항해에 대한 열기가 뜨거워서일 것이었다. 

이공계형 집돌이들이 함께 모여 있으니 자연히 즐거웠다. 다만 몇몇 사람이 기부한 돈으로 얼마나 이곳을 오래 운영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학원이 생겨나 수입도 좀 있을 것 같았다.

고청운은 상황을 보아하니 사람들을 조직하여 대량의 문제 은행식 연습 문제집 몇 권을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암암리에 했다.

후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다량의 문제 은행식 연습 문제집을 찾아 풀어대는 것을 봐오지 않았던가. 학생들이 이 문제집들을 어찌나 신봉하는지, 괜찮은 문제집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후세에서는 이 연습 문제집이 불티나게 팔렸다. 

얼마 후 그는 장 대사에게 자신의 견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세 사람이 동의하자 연습 문제집 만들기 계획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5월 중순, 고청운은 드디어 사람들을 조직해 연습 문제들을 기출하기 시작했다.

* * *

고청운이 막 연습 문제 은행 기출에 몰입하기 시작하여 지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9월 말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운에게 소식이 하나 전해져 왔는데, 그의 막내아들 고영진이 단번에 향시에 합격해 신인 거인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석차는 합격자 순위의 맨 끝을 장식하고 있었으나, 단숨에 유명세를 타게 되어 고청운까지 그 덕을 톡톡히 보게 되었다.

그가 자녀교육에 대해 일가견이 있다는 평판이 순식간에 자자해진 것인데, 그래서인지 전문적으로 그의 가르침을 청하러 그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번에는 처남인 간유도 시험에 합격했는데, 석차는 중간 정도였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 장연해가 보결합격자 명단에 들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낙방했다. 이에 고청운은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자기 집안의 아이들 덕분에 기뻐할 수 있었다. 

그들이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집안의 막내아들과 딸에 대한 평판이 덩달아 상승하며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문턱이 다 무너질 지경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잘된 일이었는데, 어찌되었건 확실히 여러 집안에서 그의 집안과 사돈을 맺겠다는 의사를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는 곧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소식도 같이 전해 받았다. 고청운이 40세가 되는 해에, 그와 간미는 첫 손자를 보게 되었다.

* * *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고청운은 매우 기뻐했다. 

‘이제 5대가 함께 지내게 된 것도 모자라 소어의 향시 합격 소식까지 전해지다니, 그야말로 겹경사구나.’ 

요즈음 그의 걷는 모양만 봐도 매우 맵시가 있는 것이, 누가 봐도 그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고영진의 석차가 최하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서 고청운은 그리 문제를 삼지 않았는데, 모든 아들들에게 해원으로 시험에 합격하라고 요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영진은 황립 서원을 수료한 후부터 과거 시험을 준비한 것이라, 고영량처럼 국자감에서 일정 기간 연수 기간을 거치거나 그와 방인소로부터 과거 시험 합격을 위한 전문적인 특별 교육도 받지 않았었다.

고영진은 애초부터 어른들이 고영량과 진교 위주로 교육을 시키고 있을 때 같이 그냥 공부를 해 보았을 뿐이라, 그때 전혀 고영진의 공부에 정력을 쏟지 않았었던 어른들은 이렇듯 지금 그가 시험에 합격하여 거인이 된 것만으로도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한편, 그의 고향집 둘째 사촌 동생은 줄곧 과거 시험에서 낙방을 거듭하고 있었고, 셋째 동생인 고청안의 경우 아직 원시조차도 통과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상적으로 하는 공부 외에 이미 표구 작업을 하고, 서화점을 운영하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간미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며칠 동안이나 연달아 연 씨와 함께 작은 옷들을 만들어 부칠 준비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만약 국공부가 복상 기간만 아니었다면, 영씨 집안의 둘째 마님도 틀림없이 찾아왔을 터였다.

고경은 자신이 고모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궁금증과 기쁨에 휩싸여 덩달아 함께 바빠졌다.

모두 다 이 어린 아가를 만날 날만 고대하고 있었지만, 아이를 보려면 적어도 1년 반의 시간이 필요했다. 막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것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쯤이면 량가아가 월성에서 출발했겠군요. 이제 우리 손자는 어미와 둘이 임계촌에 머물게 될 텐데, 우리 집에서 요요를 너무 힘들게 고생시키는 건 아닌지…….”

간미가 바느질을 하면서 한탄했다. 아이는 8월 10일에 출생했는데, 아이가 태어난 지 막 한 달도 얼마 안 되어 친부가 상경하여 시험을 치러 가야 해서 영요의 입장이 정말 난처할 것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누가 고영량 내외가 임계촌에 그렇게 오래 머물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다행히 고향집에는 아직 소진씨가 있었다. 그녀는 경험이 있어 언제나 곁에서 이들을 도울 수 있었는데, 가장 다행인 건 며느리의 오랜 몸종들과 김 씨도 곁에 있어 영요가 고생하지 않도록 잘 도울 것이라는 점이었다. 

고영진은 이번 회시에 참가하지 않을 예정이었기에 고향에 더 남기로 하였는데, 집안에는 늙은 노인들이나 너무 어린 사람까지 있으니 아무래도 자신이 남아 있는 편이 좋았던 것이다. 

고청운은 만약 이후에 그가 진사 시험에 합격이라도 한다면, 벼슬이란 기본적으로 평생을 밖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라, 아직 기회가 있을 때 그가 고향에서 오래 지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산수가 수려하고 민풍이 순박하니, 경성만큼 유혹거리도 없어 조용히 공부해보는 것도 가능했다. 

간미의 말을 들은 고청운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다시 추켜들고 웃으며 말했다.

“미아, 우리 량가아가 자신의 처를 위해 이번 시험을 포기하는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았소?”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던 간미는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고청운을 노려보며 답했다.

“제 아들이 그렇게까지 애정에 지나치게 몰두해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설사 그 아이가 그렇다 하더라도 요요가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고청운은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사실 그 역시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이제 막 한 달이 된 아들이 걱정된다고 시험을 치러 가지 못했다가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시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큰아들이 이번 기회를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3년에 한 번 열리는 회시를 포기한다면 또다시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세상 그 누가 몇 번이나 3년씩 하릴없이 마냥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반드시 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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