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85)화 (385/504)

385화. 황제의 스승

돌아가는 길에 고삼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숙부, 장씨 나리께서는 왜 산술책을 꺼려하시는 거죠?”

그는 진사 나리들은 시와 책들을 실컷 읽는 사람들이니, 그 어떠한 서적이라도 어렵지 않게 여길 것 같았다. 

고청운은 그를 힐끗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가 그저 농담한 것이다. 산술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런 서적을 다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지.”

왕조가 바뀌고 나서, 개국 초반에 치러졌던 몇 회의 과거 시험을 제외하고, 그 뒤에 과거에 급제한 진사들 중 산술 실력이 떨어지는 진사들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장수원의 반응이 이런 이유는, 그의 업무 범위가 산술이라는 학문과 관련이 없거나, 혹은 최근 새로이 발표되고 있는 산술학적인 내용까지는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필경 장수원의 취향은 시문 쪽에 더 가까웠으니 말이다. 

고청운 역시 요즘 어느 문인의 시부(*诗赋: 옛 선인들의 시구나 명언 인용)가 제일 잘 쓰였는지, 어느 사람이 유명한지 주동적으로 알아보지 않았던가. 소보에 실릴 정도로 아주 명성을 크게 떨치고 있는 시들이라면, 그도 비로소 겸사겸사 한 번 보고 지나갈 수는 있었겠지만, 평소에 관심을 갖지 않아 이쪽 방면으로는 간미보다 못했다. 사람이 아무리 총명하다고 한들, 어느 한 분야에 대한 한계는 늘 따르는 법이었다. 

“삼원아, 나중에 나는 벼슬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면 아마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너는 계속 경성에 정착해 지낼 테냐, 아니면 함께 고향으로 내려갈 테냐?”

고청운이 또 물었다. 예전에 수재였을 때부터 그는 이미 고삼원을 받아들여 같이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그때의 고삼원의 나이가 너무 어려 불쌍하다고 여겼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의 가족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했을 때, 고삼원이 일을 도와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 몇 년 동안 고삼원은 확실히 자신의 일을 많이 도와주었다. 게다가 또 자신과 같은 문중의 친척관계가 아닌가. 그는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고청운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일을 진행해 주었고, 고청운을 대신하여 세를 받을 때 역시 중간에서 잔꾀를 부린 적이 없었다. 

그간의 상황이 이러하니, 고청운이 고삼원의 미래를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고삼원이 자신의 집에서 한평생 지낼 수 없다고는 하나, 현재 그가 자기 곁에 있는 것은 잘된 일이었고, 최소한 자신의 문중에서 이를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다. 

고백산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 고청운은 고영량에게 고향의 가족들에 대한 상황을 이해시켜 주었다. 지금 고향에선 고신하(*顾申河: 고청운의 큰할아버지인 고백산의 아들)가 임계촌의 촌장직과 문중의 수장직을 이어받아 줄곧 잘해 오고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고백산이 남긴 마을의 규칙인 촌규와 문중 가족들 간 지켜야 할 족규에 따라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었다. 

고청운은 이 왕조의 관리는 종4품까지 승진에 이르고 나면, ‘은음(*恩荫: 선대가 공이 있어 후손에게 음서로 채용될 수 있는 대우를 갖게 해 주는 것으로, 일종의 음서 제도로 중국에서는 상고 시대부터 내려온 세습제도의 변형)’의 혜택을 받아 집안사람 중 한 사람을 종9품의 관리직으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비록 종9품이라 품계가 매우 낮은 데다가, 은음으로 벼슬자리에 올라 보았자 기껏해야 보통은 정8품까지밖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라, 7품 품계에까지는 오르기 어려울 수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품계는 품계였다. 이는 하급 관리도 아닌 데다 과거 시험을 치지 않고서도 오를 수 있는 벼슬자리가 아니던가. 

물론 이 혜택을 다시 세습하기란 매우 어려웠으나, 여러모로 뇌물을 쓰거나 상황을 타진하면 세습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고삼원은 자신을 따라 워낙 이곳저곳을 다녀보았기 때문에 처세술이 좋았고, 글도 알아 학문적 소양이 있었으며, 산술을 잘하는 편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고청운은 만약 그가 원한다면 기꺼이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은음 제도의 혜택을 그 혹은 그의 자식에게 주고 싶었다. 

다만 이렇게 일을 진행하려면, 우선은 숙부인 고이하 일가와 먼저 이야기를 해보아야 했다. 만약 숙부 집에서 이쪽에 속뜻이 있다고 한다면, 고청운은 이 혜택을 숙부 쪽에 넘겨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집안이 화목해야 만사형통한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와 혈연관계로 가장 가까운 친족인 숙부 쪽에서 이 혜택을 보는 건 그 누구라도 당연하게 여길 것이었다. 

이 찰나의 순간에 고청운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던 고삼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숙부,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게요. 만약 숙부 가족분들이 모두 다 귀향하신다면, 저도 당연히 함께 돌아갈 겁니다. 헤헤, 저희 집은 지금 팔아버려도 은자 차익을 꽤 남길 수 있어요.”

이때마다 고삼원은 꼭 드는 생각이 있었는데, 처음에 숙부의 말을 듣고 일찍이 경성에 주택을 구매해서 망정이지, 만약 그때 말을 듣지 않고 지금 와서 경성에서 주택을 구매하려고 했다면 그때의 몇 배나 되는 은자를 지불해야 했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고청운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고, 자신의 의중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는 일을 파악한 후 확실해지면 그때서야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말을 뱉고 난 후 도중에 변수가 생기는 상황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절대적인 일이란 없는 법이라 비록 그는 아직 자신이 젊기는 하나, 그래도 25년간 쌓아 올린 신용을 떨어트리느니 우선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잠시 꾹 누르고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 네 아들인 전양(*传阳: 고삼원의 큰아들 이름)이가 진사 시험에 합격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되면 너도 사람들에게 예의 바른 어르신 소릴 듣게 될 게야. 그때 가서는 어디를 가도 상관없겠구나.”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고전양은 고영진보다 3살 어렸는데, 아직 서당에서 공부 중이어서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 시험을 치지 않아, 아직 그 학문적 소양을 가늠해 볼 수 없었다. 

“숙부, 그건 불가능해요. 저놈한테 무슨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겠어요? 그 녀석, 수재에 합격만 해도 저는 아주 뿌듯할 것 같아요.”

고삼원은 비록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고청운은 몇 마디를 더 하다가 앞쪽 길에 사람들이 좀 적어지자, 급히 말에 올라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

집으로 돌아와 평상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고청운은 간미에게 오늘 저녁 식사는 집으로 돌아와 먹지 않겠다고 알리며, 고경이 준 염낭을 받아 들었다. 

그는 그 안에 오향육포가 들어 있는 걸 발견하고 그녀를 빠르게 칭찬하고는 곧장 고삼원과 소만을 데리고 황급히 문을 나섰다.

* * *

고청운은 약속한 시간 내에 겨우 경성 남쪽에 위치한 한 사합원 형식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 저택은 밖에서 보기엔 평범해 보였지만, 대문만 들어서도 바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었다. 

이곳은 일반적인 삼중정원 형식으로 지어진 사합원 저택이 아니었는데, 안에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았고 방마다 서당처럼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책상은 크기가 큰 것도, 작은 것도 있었으며, 그 모양은 네모난 것도, 또 둥근 것도 있어서 만약 지금 누가 수업이라도 진행하고 있었더라면 이곳을 서당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다.

고청운은 앞마당을 가로질러 곧장 중문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사물의 배치나 구성이 앞마당과 비슷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들어와도 바깥의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았다.

그중 방 한 칸에는 온통 책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사서오경부터 운문을 다루는 책 등등 모든 책들이 다 망라해 있었다. 그중 제일 많은 비율은 산술과 관련된 책들이었다. 

가림벽을 돌자, 고청운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술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모습이 보여 그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번져나갔다.

“고 선생님!” 

이때 사람들이 고청운의 모습을 발견하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인사를 건넸는데, 다들 고청운을 매우 존경하는 모습이었다.

“고 선생님, 오셨습니까.”

“고 선생님.”

…….

고청운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따금 그들 중 한두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빛 도포를 입은 열 네다섯으로 보이는 동그란 얼굴의 소년이 다가와 예를 갖추어 인사를 건넸다. 

“고 선생님.”

고청운은 그를 보고 웃으며 물었다.

“양쟁(梁筝)아, 네 스승님께서는 오셨느냐?”

“오셨습니다, 장 대사(蒋大师)님과 우 대사(于大师)님께서도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양쟁이 웃음을 내보였다. 동그란 얼굴에 한 쌍의 커다란 눈을 지닌 그는 웃을 때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었는데, 산술학계의 대가인 양불언(梁不言)이 그의 숙부였던지라 산술 방면에서 대단한 천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고청운은 나머지 세 사람이 다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더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곧장 후원으로 들어섰다.

* * *

후원에 심어진 화초의 종류는 극히 다양했다. 지금 같은 4월은 마침 화초와 나무들이 새순을 막 내뿜고 있는 시기였다. 

꽃들과 어우러진 짙푸르고, 푸르고, 또 연하게 푸르르고, 파르스름한 녹음이라니……. 각종 다양한 녹음을 뽐내는 푸르른 수목 이파리들에 온갖 종류의 아리따운 꽃까지 더해져 그 광경이 매우 아리따웠고, 주변에는 꿀벌들도 바삐 노닐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들이 어우러진 정원은 자칫 어수선하게 보였는데, 나뭇잎 가지들이 정돈이 좀 안 되어 무성하게 자라 있기에 전문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은 것이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이런 점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움을 부각시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청운은 꽃향기를 맡으며 정신을 가다듬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만, 장 대사님께서는 확실히 처음부터 선견지명이 있으셨습니다. 키우기 좋은 화초들만 심을 줄만 알았지, 이리 일일이 간섭하지 않고도 자라게 둔 모습이 보기 좋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꽃들이 아주 여기저기 어여쁘게 피어났군요.”

이 정원은 그가 방금 언급한 ‘장 대사(蒋大师)’의 소유였다.

“고신지, 자네 정말 양쟁 앞에서 또 이 노부를 엮다니.”

이때, 안채 쪽에서 나이 들어 보임에도 우렁차고 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청운이 껄껄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간 곳엔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상석에는 바로 집주인인 장 대인이 위치해 있었고, 그의 좌우 양옆에는 우 대사와 양 대사가 각각 앉아 있었다. 세 사람 앞에는 문방사우와 서적이 구비된 책상이 하나씩 놓여 있어, 평소의 일반적인 손님 접대 자리와는 달라 보였다. 

세 사람의 연령대를 살펴보자면, 나이가 제일 많은 장 대사가 70대였고, 양 대사가 57~8세로 제일 젊었다. 세 사람은 모두 오늘날 산술학계에서 덕망이 높은 산술학계의 대사들로, 그간 많은 저서들을 발표해왔다.

물론 그들은 산술이라는 학문뿐 아니라 유교, 지리, 천문 등의 방면에서도 연구해 오고 있었는데, 그간 그들의 추진력이 없었더라면 산술이라는 학문은 과거 시험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십수 년 전에 진작 문항 수가 축소되었거나 과거 시험 문제에서 아예 축출되었을 것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 삼인방 중 장 대사가 바로 현 황제의 첫 글공부 선생, 즉 황제의 스승이었기 때문이었다. 

우 대사의 경우, 벼슬자리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줄곧 한림관에 있었기에, 고청운은 그와 이미 안면이 있어 일전에 교제해 본 적이 있었다. 우 대사는 사관수사(*史馆修史: 국사 편찬 기구에서 역사를 편찬하는 일)직을 역임했던 터라, 퇴임을 했음에도 아직까지 화개전대학사(*华盖殿大学士: 정5품 품계에 달하는 관직명)라는 직사가 없는 허직(*虛職: 명칭만 있고 직무가 부여되지 않은 관직)에 봉해져 있었다. 

양 대사의 경우,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이 중에서는 제일 뛰어난 역대급 학자 가문 출신인 데다 그 개인의 학식 역시 매우 뛰어났는데, 지금은 태부(*太夫: 태자의 스승)로써, 황자(皇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오늘날 산학이라는 학문이 세간의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된 데에는, 그들의 노고와 큰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만 산학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는데, 산술학계의 대사로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이들 셋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도 두루 퍼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꼭 경성에만 거주하라는 법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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