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진보
방희림을 떠올리면 고청운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그는 운남에서 6년 동안 현령으로 지냈는데, 3년의 기한을 두 번이나 채운 것이었다. 이때 그는 현지를 매우 잘 다스렸고, 평가 점수도 모두 우등 등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민전강매 사건’의 영향으로 승진도 못하고 조정에서 다시 버거운 곳이라는 인상이 있는 귀주 현령으로 발령이 났는데, 다른 관점으로 이를 바라보면 또 다른 기회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노 낭중은 문득 알게 된 바가 있어 옆을 쳐다보니, 고청운이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꼿꼿한 자태를 뽐내며 떳떳한 풍채를 보이고 있었다. 그는 두 아들을 둔 사람으로 몇 년 전 자신이 낭중(郞中)직으로 있을 때 겨우 주사였었는데, 지금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 사람 뒤에 분명히 누군가 있을 거야. 백엽 대인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
노 낭중은 암암리에 궁리를 해 보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잠시 생각해 보고는 방직 공방의 일을 물었다.
“대인의 둔전사는 작년에 방직 세금으로 은자 30만 냥이 넘는 수익을 거두어 들였다지요? 저희 사보다 훨씬 더 많군요.”
그의 어투에는 부러움이 묻어 있었다.
노 낭중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방금 궁리 중이었던 생각을 팽개치고 답했다.
“아닐세, 영선사만큼은 많지 않았지. 그들이 경영하는 유리 공방은 최근 몇 년 동안 더욱 번창하고 있는 형국이네. 특히 새로 나온 거울들을 원가에 따라 차등을 두었는데, 그중에서도 붉은 보석이 박힌 반신 거울이 무려 500냥에 팔리고 있다고 하네! 500냥 말일세! 왜 이런 사업은 뺏지 않고 있는가?”
그의 말투에는 꽤나 불평불만이 묻어 있었다. 그는 집에 있는 애첩이 그 거울을 사러 가자고 졸랐던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고청운은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좋지 않은 안색을 하고 있는 그를 보고, 살짝 놀라며 물었다.
“노 대인, 어디 몸이 안 좋으신가요?”
정신을 차린 노 낭중이 어색하게 웃더니 얼른 말을 돌렸다.
“괜찮네. 참, 작년에 자네 사의 세수(*稅收: 국민에게서 조세를 징수하여 얻는 정부의 수입)도 늘지 않았는가? 그리고 작년 여름에 보내 준 얼음에 대해 아직 감사인사를 전하지 못했구려.”
“그건 모두 조 대인의 공로입니다.”
고청운이 공수를 하며 말했다. 조 대인이 벼슬을 내려올 때, 윗사람들은 이 치적이 조 대인의 실무적 공로인 것을 알고는 문연각 대학사(文渊阁大学士)라는 직함을 붙여 벼슬직에서 퇴임하게 배려해 주었는데, 이렇게 되면 이후에도 그간 받던 녹봉을 절반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점이 고청운에게는 참 위안이 되었다. 조 대인은 인간관계가 매끄럽지 못하여 남의 미움을 많이 샀지만, 확실히 많은 일을 해낸 인재였으니, 충군 보국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두 위에서 내려온 이 처사를 보고 매우 기뻐했는데, 조 대인마저 이러한 명을 받아들고는 눈물을 흘렸었다.
이어 고청운은 마침내 생각난 것이 있어 질문했다.
“노 대인, 제가 듣자 하니 수직형 방직기를 발명한 장인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 옛날 평면형 방직기보다 효율이 몇 배나 높아졌다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요?”
그러자 노 낭중은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고, 재빨리 그를 마주 바라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겐가?”
그조차 이 소식을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요즘 소보가 아주 많이 발행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중 <상인시보(商人時報)>가 있는데, 늘 여기 실리는 기사에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그 소식이 실려 있었지요.”
‘이 사람은 평소에 소보를 읽지 않는 걸까?’
노 낭중은 잠시 어리둥절해져 있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내 이 일로 골치가 아프네. 예전에 공부에 현상금을 내걸어 효용성을 높인 방직기 개발을 장려한 적이 있는데, 이리 하루아침에 소원을 들어주게 될 줄은 몰랐지 뭔가. 새로운 골칫거리로 급부상했네. 송강부(松江府) 지역 쪽에 방직공이 많은데, 이들이 오히려 조정에서 이 신식 방직기 사용을 못하게 해달라고 백성들의 원말이 들끓고 있으니. 아휴, 이젠 관리해 먹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어.”
예전 같으면 농부 등의 민중들이 아무리 항의한다 한들 그냥 제압을 하면 끝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각양각색의 소보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기에, 조정 대신과 황제는 민간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들을 수시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특히 소보에 글 투고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가증스러운지 기사에 붙이는 제목 하나하나가 자극적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어사대와 대리사의 사람들이 정말 그들을 모두 붙잡아 넣어야 할 정도였다!
노 낭중은 이러한 상황만 생각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었다. 자신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일을 당하는 바람에, 이제 일을 잘못 처리한다면 관직 생활과 이별을 고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 공부에까지 좌천되어 오다니, 그는 자신이 정말 재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백성들의 원성이 들끓는다고?’
고청운도 덩달아 눈살을 찌푸렸다. 이 일은 그가 경솔했던 면이 있었는데, 그가 예전에 쓴 책론에 포목(*布木: 베와 무명)의 수출량이 증가하여 이익이 되는 것을 보고, 또 전생에 영국이 공업 혁명을 발전시킨 것을 방직기의 발전이 가져다준 영향으로 여겨, 조정에 현상금을 많이 걸어 민간에 보다 효율적인 방직기 개발을 장려할 것을 건의했었던 것이었다.
그때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참 많았고 특히 상인들이 더욱 이쪽 일에 열성적이었다.
‘그리 했던 게 오늘날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게 되다니.’
고청운은 어제 본 소보에 실린 방직기 개발 성공이라는 기사만으로 기뻐하고 있었는데, 강남 일대의 방직공들의 생계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으니 그들의 반발이 나올 만했다.
“이런 일은 잘 처리해야지, 거칠게 다루었다가는 좋지 않을 겁니다.”
고청운이 한마디 했다. 하지만 내심 이쪽의 기술이 이미 발전된 이상 상용화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정에서 쓰지 않더라도, 공방의 사업주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면 자연스러운 역사의 흐름을 따라 이러한 발전 순리는 절대 막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고청운은 이 뒤로도 이 방면의 소식에 반드시 주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머릿속으로 기존 방직 종사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노 낭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쉰 뒤, 자기 집 마차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고청운과 작별을 고하고 떠났다.
* * *
고청운은 그를 떠나보내고, 말을 끌고 걸어오는 장수원과 인사를 나누며 고삼원이 가져온 말의 고삐를 쥐었다.
장수원이 다가와 나지막이 물었다.
“신지, 자네 공부의 새로운 우시랑이 부임한다고 하지?”
“장 형은 소식통이 정말이지 영험하군요.”
고청운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성은 노(卢)씨인데, 우리 월성(省)의 군성 출신이라고 하더군요. 어제 막 부임하셨습니다.”
이전의 공부 우시랑은 병으로 벼슬에서 내려오게 되었는데, 새로 부임한 노 대인은 55세로 같은 고향 사람이었다. 그는 지방의 승선포정사사(*承宣布政使司: 각 성(省)의 행정 사무를 감독하던 장관으로 총독 순무(巡撫)에 직속한 정3품직)에서 승진하여 종3품 좌참정에서 정3품 우시랑으로 승진하여 전근 온 사람이었는데, 큰 승진을 한 셈이었다.
장수원은 듣자마자 부러운 듯이 고청운을 보며 그의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의 개똥같은 운수가 또 온 게야. 우리 성(省) 출신의 동향분이시잖은가. 자네의 직속상관이니 분명 자네를 달리 대해 주실 걸세.”
고청운은 그의 머리를 밀쳐냈다. 그는 장수원이 말하는 개똥같은 운은 무시하기로 하고 작은 소리로 답했다.
“모르는 일입니다. 부자도 상잔하는 마당에 하물며 동향 사이는 어떻겠습니까?”
이 시대의 동향 출신이란, 때로는 자연스레 결탁하기 마련이었는데, 지금의 수사(*水师: 옛날, 수군(水軍)을 말함)가 그러했다. 수사직엔 복건성 사람들이 대부분으로, 육훤은 그에게 서신으로 푸념을 전한 적이 있었는데, 수사들 사이에서 복건성 출신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불평했었다.
노 대인이 외부 지방직에 있다가 경성으로, 그것도 중앙 정부인 6부의 부서로 전근되어 돌아온 것임을 생각하면 고청운은 상대가 분명 능력 있는 사람이고 내세울 만한 치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서로간의 관계는 견고하면 좋았지만, 고청운은 그가 어떤 사람됨을 지니고 사람을 대하는지 아직 잘 알지 못했다.
“며칠 뒤 환영회에서 그의 태도를 보고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걸세.”
장수원은 고청운에게 말을 아끼며 화제를 돌렸다.
“진가아가 올해 8월 향시에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은가?”
고청운이 노려보며 말했다.
“당연히 희망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장연해가 수재 시험을 봤을 때만 해도 등수가 자신의 둘째 아들 뒤에 처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해가아도 합격은 따놓은 당상일세.”
“그래요, 둘 다 모두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청운은 웃기 시작했다. 지금 둘은 나이가 많이 들어,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아이들 이야기로 빠지고는 했다.
주위의 사람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본 고청운은 고삼원이 자신에게 보내는 눈짓을 감지하고 말했다.
“장 형,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겠군요. 오늘 오후에 모임이 있어서 참석하러 가야해서…….”
지금은 춘분이 지나 오후 퇴근 시간이 30분이 늦춰졌기에, 지금은 이미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약속시간에 늦게 될 테니, 집으로 돌아가서 얼른 평상복으로 옷부터 갈아입어야 했다.
밖에서 모임에 참가할 때, 그는 특별한 자리가 아니면 관복을 입고 가지 않았는데, 관복은 너무 눈에 띄기 쉽기 때문이었다.
“무슨 모임이 있는가?”
장수원이 덩달아 한마디 물었다.
“산술 학계의 선배님들 몇 분을 뵈어야 합니다.”
고청운이 개의치 않고 설명해 주었다.
“그들이 <기하상해>라는 책에 관심이 많으셔서 한번 만나 뵙고 의견을 들어보려 합니다.”
장수원은 잠시 멍해져 있다가 다시 반응했는데, 꽤 부러운 눈치였다.
“만약에 이 모임에서 그들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다면,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자네를 ‘산술의 대가’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군. 참, 자네 책에 새로운 내용이 수록되었는가?”
장수원은 친한 친구가 40살에 산술계의 선지자 반열에 올라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부러웠다. 자신도 문단에서 어느 정도 명성이 있었지만, 성공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정도로 갈 길이 아직 멀었던 것이었다.
“저는 지난번에 <기하학> 저서를 번역한 뒤, 좌표 개념을 도입했었습니다. 좌표 기하학, 즉 X, Y로 기하학을 해석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 평면에 두 개의 축, 즉 X축과 Y축이 있다고 가정하면 한 축에 있는 두 개의 좌표 X와 Y가 해석 기하학이 되는 것이죠. 이 덕분에 해석 기하학적인 방법으로 기하학적 토론과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고청운이 끊임없이 말했다. 좌표 기하학은 그가 전생으로부터 조그마한 인상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각고의 추측과 연구를 통해 마침내 써낸 내용들로, 그의 심혈이 응집되어 있었다.
물론 그가 전생에 받았던 교육에도 감사할 일이었다.
후대에 사용될 기하학에 비해 고청운은 지금 자신이 쓴 내용이 얼마나 정확한지 알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당연히 중시하게 되었다.
“그만, 멈추시게!”
장수원은 머리가 아프기 시작해, 손을 흔들어 그의 말을 끊었다.
“나는 그런 설명을 듣기 싫네. 자네가 잘난 거 알겠으니 빨리 가보시게.”
그는 어렵게 진사 합격을 하고 나서 다시 산술 분야를 접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갑자기 수학적 이야기를 들으니 귀가 막혀버린 것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고청운은 아쉬운 듯 입을 다물고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장 형, 그럼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