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3화. 일상
마지막으로 은자 300냥의 비용을 지불한 후, 사장정은 옆에서 고청운의 안색을 다시 살펴보았는데, 그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자신이 예상한 어떤 단서도 보이지 않아, 결국 참지 못하고 실망한 기색으로 물었다.
“자네, 돈이 부족하지 않은가? 자네 집 위의 이중정원 저택을 한 채 더 사들이겠다고 하지 않았나?”
고청운이 그를 힐끗 쳐다봤다.
“아직 돈이 남아 있네.”
‘자존심 상하는군, 내 수입 사정이 사장정의 눈에도 이리 투명하게 보였다니.’
자신의 집안 형편이 어느 정도인지 6~7할 정도는 사장정도 가늠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사장정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자네가 돈이 부족하면 좋겠네. 그럼 자네가 쓴 새 화본을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요즘 난 꽤 재미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네, 공주께서 나보고 종인부(*宗人府: 왕족이나 황족의 종실에 관한 사무를 관리하는 기구)에라도 들어가 일을 해 보라고 하시는데, 아직도 고민 중일세.”
그는 게으름에 길들여져서 이런 말을 신봉하고 있었다.
[인생에 뜻을 이루었을 때 마음껏 즐겨야 한다.]
또한, 그는 종인부에 귀속되어 속박당하는 것이 싫기도 했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노려보았다.
‘내 경제 여건이 얼마나 많이 좋아졌는데.’
그가 가진 점포만 해도 이미 시세가 은자 1,000냥의 가치 이상이 되었는데, 그저 아직은 팔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허락되면 그는 틀림없이 다른 책을 쓸 것이나, 화본은 당분간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중에 그가 벼슬에서 내려오고 나면, 그때 비로소 많은 시간이 남아돌 것이었다.
“나는 공주께서 자네에게 강요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하네, 자네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될 걸세.”
고청운은 그래도 사장정이 부러웠는데, 사는 것에 걱정이 없고, 자신의 취향대로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근 사장정은 다시 꽃 가꾸기에 푹 빠졌는지, 그가 길러낸 십팔학사라는 품종은 호평을 받으며 경성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 사람은 딸아이들의 시집 문제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얼마 지나지 않아, 고청운은 영승언에게서 영국공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고청운은 매우 놀랐다. 애초에 그들 양가가 아이들을 빨리 성혼시킨 것도, 바로 이 일을 우려해서였던 것이다. 영국공의 몸 상태는 계속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계속 더 버텨 주실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상태가 악화될 줄은 몰랐다.
이때는 다들 벌써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고청운과 간미가 직접 찾아가 조문했을 때, 두 사람은 영국공 집안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큰아들 부부가 아직 먼 월성 지역에서 지내고 있는 바람에, 이번에 시기를 맞춰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영승언은 초췌한 얼굴에 정신을 못 차릴지언정,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들이 고인을 기리는 마음만 지니고 있으면 되네. 집안에 있는 여식들 대부분이 남쪽과 북쪽에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으니 올 수가 없다네. 또 요즘처럼 이리 추워진 날씨에 다녀가라 할 수도 없지. 특히 요아가 지금 회임까지 하지 않았는가.”
국공부는 딸과 손녀가 대대로 많은 집안이었기에, 제때에 문상을 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또 그렇다고 마냥 그들을 기다릴 수도 없으니, 결국 춘절 전에 서둘러 하관을 마쳐야 했다.
고영량 부부가 월성 임계촌에 머무르게 되었을 때, 고청운은 일찍이 영승언에게 이 일을 알린 적이 있었는데, 그도 그 집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해해 주었었다.
회임에 관해서는, 그래, 며칠 전에 막 듣게 된 소식이었는데, 계산해 보면 지금이 12월이니, 그들이 소식을 접했을 때는 영요가 이제 막 회임 2개월 차가 되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두 집이 기뻐하기도 전에 영국공은 작고(*作故: 고인이 됨의 높임말)를 하고 말았다.
고청운은 이번 장례식에서 다시 한번 영국공의 영향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그의 발인 날, 노제(*路祭: 유교식 상례의 절차에서 영구를 상여에 싣고 장지로 운반하는 발인(發靷) 중, 행상을 나가다가 친척과 빈객이 길가에 장막을 치고 망자의 집을 나와 장지로 가는 길에 고인과 절친했던 친구나 친척이 제물을 준비하여 상여가 지나가면 제를 지내는 것)의 규모가 대단했는데, 황자를 물건을 보낼 정도로 규모가 컸다.
그 후, 영승언은 부모상으로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고청운은 그 집안의 영향력이 있으니 부모상 복상 기간이 다하는 3년 후에 그가 다시 관직으로 복귀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닐 것 같았으나, 계속 호부에 머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복상 이야기가 나오니, 고청운은 육택이 떠올랐다. 병부에 다시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그는 지금 병부의 정3품 좌시랑직을 역임하고 있었는데, 복상 기간 적에 역임했던 직급과 큰 차이는 없었고, 허울뿐인 종1품에서 품계만 내려갔을 뿐이었다.
육택이 올해 겨우 44살이라는 것을 생각한 고청운은, 아직 매우 젊은 육택이 만약 경성 외부로 나가 총독직을 수임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 *
춘절이 다 지나고 2월이 되었는데도 고청운은 고향에서 온 서신을 받지 못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 이렇게 추운 겨울이 한 번 더 지나갔고,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또 일 년을 버티어 주었다.
이어서 봄이 찾아왔고, 또다시 꽃피는 계절이 되었다. 겨울이 지나자 고청운은 어르신들의 건강이 조금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쯤 고청운이 쓴 <기하상해>와 번역한 <측량학>의 정식 판매가 시작되었다. 그는 어느 날 심심해서 변장을 하고 서점에 가서 판매 상황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하급 관리의 복장을 한 학생들이 ‘고 선생님이 또 책을 냈다.’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책을 구입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중에는 산술에 별로 능하지 않은 자도 있었는지, 그가 분노해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 선생님은 어찌 늘 이렇게 많은 산술 서적을 내시는 거람. 이렇게 책을 낼 때마다 우리가 반드시 사 봐야 하지 않는가. 만약 이전처럼 과거 시험에 산술 문항이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네.”
‘살 생각이 없으면 사지 말지.’
하지만 다른 시험관들은 자신의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과거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을 좋아했다.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쓰셨는데, 고 선생님은 아직도 그렇게 젊은 나이시라지? 만약 앞으로도 계속 서적을 집필해 나가신다면…….”
그는 말을 아꼈고, 모두들 서로 한 번 쳐다보고는 잠자코 있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고청운이 멍하니 있었다.
‘아니, 원래 다들 이렇게 불만이 많았던 건가?’
그는 자신이 다시 책을 한 번 싹 정리하여 내놓으면 배우기가 더욱 쉬워지고,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리가 되니 다들 기뻐할 거라고만 생각했다.
말이 나온 김에, 과거 시험에 산술 문항이 도입되기 시작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지났는데, 그동안 황제와 조정 대신들은 점차 산술 도입의 좋은 점을 깨닫게 되었다. 바로 신임 진사들이 사무를 처리할 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인데, 사무 능력이 갈수록 좋아지고 실행 불가한 공론이 제기 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고청운은 전생에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났는데, 고대의 사람들 중 관원들이 상인을 적대시하고 또 일반 사람들이 장사하기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상인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녀야 해서도 있지만, 산술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다루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때 고청운은 보고 웃기만 했는데, 지금 문득 그 생각을 다시 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지금은 수재든, 거인이든, 진사든 간에 모두가 실무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해내고 있었고, 또 공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산술을 배워야 했다. 이것은 문과에서 이과 지식을 융합하여 이과적 사고방식을 기르는 방법이었다.
국가적 상업 발전이 왕성해지고 있어, 상업세도 해를 거듭할수록 많이 거두고 있었고, 토지세와 염세 모두 예산을 초과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내각의 큰 수장들은 무역 교류를 금하자고 의견을 제기했었다가 많은 사람들의 극렬한 반대에 직면했는데, 특히 호부의 관리들이 그러했다. 더구나 해외 무역으로 거두어들이는 수입이 어마어마해서 이미 멈출 수 없는 지경이었다.
사람의 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익창출과 관련된 얽히고설킨 사회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또 그는 지금 하 왕조의 국력이 나날이 향상되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 역시 나날이 향상되는 것이 보이자 마음이 매우 기뻤는데, 이대로 계속 발전해 나간다면 300년 후의 굴욕이 재현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만 하나 실망스러운 것은 자신이 큰 발명을 하나 해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에게는 국가적 발전에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국가 발전을 더 빠르게 앞당기지 못했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있었는데, 여기 사람들과 같은 의식수준으로 동화된 부분이 있긴 한 것 같았다.
자신은 얼마나 무기력한 사람인가! 고청운은 남몰래 고민하며 자신의 머리를 툭툭 쳤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냥 보통 사람인 줄 여기고, 고대에 다시 태어났음에도 전생의 많은 것을 기억하거나 살리지 않고 그저 무리하지 않고 일단 이 세계에서 잘 지내고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그는 최근에 영국공의 작고로 인해 옛날의 기억이 떠올랐는데, 예전에 어머니가 봉작을 받았을 때 할머니가 이를 부러워하던 눈빛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허나 지금 자신은 어떻게해도 갑작스레 3품이라는 품계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당분간 큰 공을 세우지 않는 이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인생에 있어 십중팔구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고, 이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이날 오후 업무가 끝나 퇴근한 고청운이 집무실에서 나올 때, 마당 입구에서 이웃 둔전사의 노 낭중(鲁郎中)을 마주쳤다.
노 낭중은 예전에 호부낭중으로 있던 사람인데, 작년에 잘못한 일로 전근을 오게 되었다. 같은 품계로 전근발령이 난 것을 보면, 잘못이 크지는 않은 것 같았다. 고청운과 그는 축국 경기장에서 만난 적이 있어 구면이었는데, 3월 말 축국 경기를 통해 다시 한번 한 조의 동료가 된 뒤 예부와 비기는 성적을 거머쥐게 되었다.
지금 길에서 마주친 이상 본체만체하기 어려워, 고청운과 그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며 어제 있었던 시합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부에 두군걸(杜君杰)이라는 주사가 있는데, 어제 그가 시연한 원앙괴(*鸳鸯拐: 원앙괴는 원래 무술 동작으로, 좌우의 발로 연속으로 공을 차서 보내는 기예를 말한다. 수호지의 고구라는 인물이 시연한 동작) 기술은 막을 수가 없더군. 예전 자네의 7~8할 정도는 되는 수준이었다네.”
노 낭중은 팔자걸음으로 걸으며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치더니, 자신의 불룩 나온 배를 두드리며 실눈을 하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자네와 그는 서로 아는 사이던데?”
요 몇 년 동안 축국 경기가 매우 발전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축국의 기예 중 수준이 높은 ‘원앙괴’라는 동작이 인기를 끌고 있었다. 시합에서는 그 기술을 연습을 했더라도 구현하기가 어려운 동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 평행 시공간처럼 축국이 계속 발전해서 축구로 이어진다면, 내가 살았던 전생과는 다르게 축구 강국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고청운은 잠시 상상에 나래를 펼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잠시 읊조렸다.
“원앙괴 동작은 그가 저보다 더 낫더군요. 그리고 저희 둘은 면식이 있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한 번은 상성의 부시험관으로 갔었지요. 진 대인께서 향시를 주관하실 때 그를 해원으로 뽑도록 도왔었습니다.”
이것은 그와 진 대인의 공로 중 하나였다. 조정에는 불문율이 있었는데, 바로 향시를 주관하여 뽑힌 거인이 회시에서도 상위권에 든다면, 주임 시험관의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여 조정을 위해 좋은 인재를 선발한 공로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두군걸은 확실히 패기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도리를 따지자면, 자신도 그의 좌사라고 할 수 있었지만, 진 대인이라는 이름이 더 그럴듯한 주임 시험관이 하나 더 있어서 자연히 더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을 뿐이었다. 게다가 좌사와 제자 사이의 관계를 공공연히 맺는 것을 금지한 조정이 있었기에 은연중에 좌사로 서로를 여기고 있을 뿐이었고, 고청운 역시 이를 과시할 생각은 없었다.
또한, 두군걸과 방희림의 이전의 갈등 양상도 그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