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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생활 (378)화 (378/504)

378화. 소식

요 몇 년 동안 모처럼 만에 집에 증손녀가 생겼는데, 심지어 제일 막내였으니 고경은 자연히 방인소와 연 씨의 슬하에서 자랐다. 

그녀를 꾸며 주는 것을 매우 좋아했던 연 씨는, 이번 춘절에 다른 사람을 시켜서 아주 붉은 옷을 짓게 했다. 원래 호의로써 고경에게 붉은 옷을 입히고자 하였으나, 고경은 이런 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그녀가 이런 색상의 옷을 입자, 마치 10살짜리 어린애처럼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고경은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자기는 연한 색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고, 아이를 위해 옷을 지어 와서 흥분해 있던 연 씨는 그 말에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녀는 증조 외손녀와 심미적인 견해가 다르자, 자신이 스스로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꼈는데, 결국에는 고경이 이 옷을 입기로 하면서 다시 처음처럼 화기애애하게 보이고는 있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둘은 아직도 어색했다.

어릴 적 고경은 희고 귀엽게 생겼었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대부분 간미를 닮았지만, 커갈수록 용모가 조금씩 달라지며 이목구비의 생김새가 더욱 정교해졌는데, 간미와 고청운 두 사람이 거의 결합된 모습이었다. 

고청운과 간미의 장점이 결합된 고경의 모습은 연 씨와 간미를 놀라고 기쁘게 만들었지만, 얼굴이 예뻐질수록 그리고 12살의 소녀다운 자태가 두드러질수록, 성격은 다른 집 처녀들의 발랄함에 비해 오히려 더 차가워졌다.

적어도 애교 부리는 일은 최근 2년 동안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청운의 눈에는 자기 딸이 예쁘기만 하고 기질도 좋아 보였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적은 게 우아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 적당히 어린 여신 정도로만 보이지, 무슨 냉미녀 같은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으니 괜찮았다.

고청운은 딸아이와 연 씨 사이의 사소한 문제들을 그냥 무시하고 있었는데, 어차피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분쟁이었고 분명 고경이 연 씨를 달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금 걱정하고 있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며칠 전에 그는 고영량으로부터 그들이 무사히 임계촌에 도착했다는 것과 고계산의 건강이 좋지 않아 의원을 모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고청운의 할아버지인 고계산은 얼마 전부터 병상에 누워 있었는데, 이제 겨우 거동하실 정도로 회복했으나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마을을 돌아다닐 수는 없다고 했다.

고청운은 그 말을 몇 번이고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어떤 예감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할아버지는 올해 82살이 되었다. 이러한 나이는 이 시대에서는 지극히 장수한 것으로,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는 직접 노동을 할 필요도 없었고 또 건강 관리를 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래도 고청운은 할아버지의 몸이 편찮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이 쓰였고, 언제라도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질까 봐 속상했다.

지금 그는 임계촌에서 보내올 다음 서신이 기대되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조마조마했다.

* * *

연말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길 기다리며 고청운은 방인소와 연 씨, 고경에게 들어가 휴식을 취하라고 하였고, 이제 응접실에는 자신 외에 간미만이 남아 있었다.

집안은 조용했고 저 멀리 폭죽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고청운의 기분에 매우 민감했던 간미가 그에게 물었다.

“할아버지의 일을 아직도 걱정하고 계시는 겁니까?”

고청운은 고개를 약간 끄덕인 뒤, 화로를 바라보며 묵묵부답이었다. 방금은 노인분들과 딸아이 앞이라 그 모습을 숨기고자 했으나, 간미 앞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당신이 어르신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압니다만, 할아버지께서도 서신에서 늘 당신이 자신 때문에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오거나 고향에 휴가를 내고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지 않으셨습니까.”

간미는 고청운의 손을 잡고 다시 물었다.

“휴가를 내고 다녀오실 수 있는 상황인가요?”

고청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휴가를 내는 방법을 그도 이미 생각해 보았는데, 지금의 수도사는 일손이 너무 빠듯하여 8~10일 정도의 휴가는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두 달은 휴가를 내줄 가능성이 없었다. 게다가 지금 이 시기가 결정적인 관문을 지나고 있다는 예감이 든 그는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를 비워 거의 다 된 일을 막판에 실수로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승진에 목을 매서가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이는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얻기 어려운 기회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두 아들이 함께 고향에 머무르고 있고, 다른 증손자가 곁에 더 있어 어르신들께서 많이 기뻐하실 거예요.”

간미가 그를 위로했다.

이 말을 듣자, 고청운은 아들과 며느리가 고향에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조금은 풀어졌다.

수년간 쌓아온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고청운의 애정은 매우 깊었는데, 처음에는 전생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조부모에 대한 정 때문이었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자신의 공부에 반대하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바꿀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감정이 더욱 돈독해지기만 했다. 

그는 그들이 주었던 사랑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는데, 고청운이 목석도 아닌데 어찌 그에 대한 두 노인분들의 감정이 어떤지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었으랴.

“참, 임 언니가 보내온 서신은 보셨어요?”

간미가 갑자기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청운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청운이 조문헌과 절교한 뒤부터 간미와 조문헌의 처인 임 씨만이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을 뿐, 서신이 왕래하는 횟수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임 언니 말로는 그 집 일가가 내년에 경성으로 온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음, 그 집 상공 분도 공부를 더 하여 회시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셔요?”

간미가 의향을 파악하고자 질문했다.

“사람은 다 변하는 법이더군요. 예전에는 임 언니가 누군가를 싫어하는지 마음속으로 어떤 한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자꾸 저를 시켜 누구누구에게 좋은 말 좀 전해 달라고 서신으로 자꾸 부탁하더라고요. 어쩌면 이렇게 행동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요.”

그녀는 웃으며 또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네요.”

한숨을 내쉰 고청운은 지난달에 하겸죽과 했던 조문헌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하겸죽도 조문헌의 서신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허송세월하며 그도 예전에 비하면 좀 변한 바가 있는 것 같았다. 서신에 써 있는 내용은 겉으로 보나 뜻을 파헤쳐 보나 결국 화해를 하자는 것이었으나, 하겸죽은 답장을 하지 않았고 어떠한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원래부터 조문헌과 하겸죽 사이는 크게 별것이 없었는데, 고청운의 일로 인해 둘 사이가 더 냉랭해진 지는 오래였다.

“그가 경성에 온 다음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고청운은 생각을 해 보고 대답했다.

사실 세월이 흘러서 그는 그때 일을 진작부터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 그때 그가 괴로워한 것은 자신이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친한 친구가 뒤에서 자신을 중상모략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일이 지금 발생했다면, 그때만큼의 충격이나 슬픔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조문헌과 다시 화해하는 건 좀 내키지 않았다. 무슨 소꿉놀이를 하자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이미 감정은 다 변질되었고, 그 상태로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버렸다. 

이것이 바로 그의 또 하나의 고민거리였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 본다고 한들, 시간은 그냥 흘러갈 뿐이었다. 

* * *

꽃피는 3월이 되자, 조 낭중은 벼슬자리에서 내려가게 되었다. 이 공석에 모두가 눈독을 들이며 움직이고 있을 때 황제의 명이 내려왔고, 고청운은 순조롭게 조 낭중의 후임 자리를 잇게 되었다. 이제 그는 공부의 정5품 낭중직을 맡게 되었다.

이 해의 고청운은 이미 39살의 나이로, 거의 불혹에 가까워져 있었다.

승진을 한 고청운은 이제 사의 우두머리가 된 것인데, 지위가 높아진 것은 경사였기에 고씨 집안은 이를 축하하는 연회를 열었고, 비교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술을 청했다. 다만 큰 연회를 열고 손님을 맞이하지는 않았는데, 정5품이라는 품계는 경성에서는 그다지 큰 직위가 아니었기에 지나치게 떠벌리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니 이미 밤이 되었다. 달이 두둥실 떠올라 밝은 광채를 쏟아내고 있었다.

오늘 하루 매우 기뻤던 방인소가 웃으며 말했다. 

“노부는 지천명(*50세)의 나이가 가까워서야 네 품계에 앉았는데, 지금의 너는 벌써 10년을 앞서 이러한 성과를 이룩해 냈으니 나중에 정4품에 오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좋다, 청출어람이로구나.”

고청운은 머리를 긁적이곤 웃으며 대답했다.

“스승님, 그건 또 모를 일이지요. 나중 일은 예견하기가 어렵습니다.”

사실 한미한 가문 출신의 관리가 정5품직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선 큰 기회와 인연이 필요했다. 그는 스스로 중립을 지키며 공부와 학문에만 몰두해 왔었지만, 비록 맡은 일을 성실하고 빈틈없이 한다 하더라도 관청의 높은 사람들과의 교제는 깊이 파고들지 못했기에 나중에 좋은 자리가 난다고 해도 그의 차례까지 돌아오기는 어려울 수 있었다. 

이번에 이 자리에 오르게 되었을 때, 고청운은 비록 일찍부터 예감은 하고 있었음에도 실제로 황제의 명이 내려왔을 때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방인소는 그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별로 개의치 않고, 그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이런 모습을 계속 유지해 나가도 좋을 것 같구나. 필경 네 뒤에는 다른 가족들이 있지 않더냐. 너는 권세에 빌붙는 성정도 못되니, 억지로 그렇게 행동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네가 이후에도 계속 책을 쓰고 산술 방면에서 계속 정진하면서, 이쪽 방면의 대가가 되는 것도 네게 적합한 길이 될 것 같구나.”

여러 해 동안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방인소는 진정으로 자신의 제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고청운은 정직하고 또 성실한 탓에 이렇게 관직 생활을 오래 영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교한 수단을 배우지 못했다. 권세욕은 옅은 편이었지만 미련한 사람은 아니었고, 또 어찌어찌 복이 있어서 기회가 왔다 하면 대부분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고청운도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 이후에 다시 학술 방면으로 조금 더 정진하여 발전을 보게 되면, 더욱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중간에 어떤 일을 잘못해서 앞길이 틀어진다 한들, 가장 나쁜 경우는 고작 낙향 정도일 것이었다.

방자명과 비교하면, 이 차이는 매우 컸다.

“스승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고청운이 하하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이가 좀 더 들면 국자감에 다시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황립 서원에 가고 싶었지만, 문관이고 위상이 높지 않아서 아마도 그것은 이루기 힘들 것 같았다. 

“국자감? 그 또한 좋구나.”

이 기쁜 날에 방인소는 고청운에게 큰 뜻이 없다고 말하기는커녕 ‘아니면 한림원에 가서 노후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라며 함께 골똘히 생각했다.

“하하, 스승님, 정말 저를 잘 아시는군요.”

고청운이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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