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대생활 (372)화 (372/504)

372화. 혼인 (1)

“그러게 말이에요, 아버지가 피부는 검고 몸은 마르게 변해 버리셨어요.”

고경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너무 수고가 많으세.”

고청운은 딸아이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만 한단다. 이건 아버지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들이야. 시간이 지나 일에 익숙해지면 많이 여유로워질 게다.”

5월쯤 공부에 부임한 후부터, 그는 매일같이 연장 근무를 할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와서까지 심야에 불을 높이 걸고 시간 외 근무까지 하고 있었기에, 확실히 좀 고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시간들을 매우 충실하게 보내고 있었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지식들을 습득해 가면서 자신이 가진 이론과 실제 상황을 제대로 연계시켜 나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 낭중은 비록 말투가 좀 나쁘기는 했지만, 사람 자체는 확실히 진정한 재능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고청운은 기꺼이 자신이 가진 지식을 전수할 준비가 되어 있던 그를 따라다니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런 배움은 행운과 같았는데, 매번 스스로 자료들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기 발로 뛰어다녀야 하는, 이런 과정은 확실히 시간이 매우 오래 소모되었다.

약간의 아쉬운 점은, 방인소가 예전에 근무했던 부서가 둔전사(屯田司)라서 자신이 근무하는 부서와 겹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렇지만 않았더라도 번거로운 일들이 많이 줄었을 터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은, 개인적으로 하던 일들을 잠시 멈춰야 했다는 점이었다. 고청운은 <측량학> 번역을 중단했고, 반 정도 완성했던 <기하상해>의 경우에도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 아직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있었다. 간미가 쓴 <택투사례(*宅斗事例: 간미가 쓴 소설로, 택투란 암투 장르를 말함)>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고경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새까맣고 커다란 눈을 빛냈다.

“참, 진가아는 누가 데리러 갔소?” 

고청운은 아들을 십여 일이나 못 봤다는 생각에 순간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져서 황급히 입을 열었다.

황립 서원은 매 5, 10일마다 쉬는데, 내일이 마침 쉬는 날이라 누군가 오늘 오후에 그를 데리러 가야했다. 

“벌써 사람을 보내 서원에서 아이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간미가 그를 한 번 노려보았다.

“이래도 마음이 안 놓이십니까?”

“그럼 량가아와 유가아(*간유)는 어찌 되었소?”

하하 웃은 고청운은 자신이 집에 돌아온 지 한참인데 아직 고영량이 보이지 않자 다시 또 물었다. 

한편, 그들 집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던 진교는 예전에 수업을 가르쳤던 서당에서 잠시 교편을 잡기로 했고, 매일같이 일찍 집을 나서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큰 오라버니랑 작은 외숙은 외증조할아버지와 함께 나갔는데, 저는 못 따라가게 했어요.”

고경의 입이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예전에 그녀는 외증조할아버지인 방인소에게 껌처럼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듯 함께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적어지게 되었다. 

“따라가서 뭐 하려고? 오늘은 해가 너무 뜨거워서 자칫 너무 탔다가는 못생겨질 거란다.”

간미는 아이에게 한마디 하고는 또 고청운을 보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것 보렴, 네 아버지도 햇볕에 타서 피부가 벗겨질 정도이지 않니. 참, 부군 제가 행낭에 양산을 함께 챙겨드리지 않았던가요? 같이 데려간 하인을 시켜 양산을 좀 받쳐 들어 달라고 하지 않으시고요.”

“그들을 탓할 필요 없소. 조 대인도 양산을 쓰고 다니질 않으시니, 나도 양산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소.”

고청운이 쓴웃음을 지으며 더 말했다.

“나는 그나마 나은 편이오, 피부만 좀 그을렸을 뿐인데, 조 대인은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까지 하셨다오. 다행히 우리가 더위 먹은 데 쓰이는 약을 챙겨가 잘 대응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소. 아이고, 조 대인은 벌써 64살씩이나 된 노인이신데도 여전히 어찌나 성실하게 일을 하시는지 모르오.”

조 낭중은 너무 고집이 셌고, 심지어 자신의 건강이 매우 좋다고 여기고 있었다. 고청운은 사람을 불러 그의 곁에서 양산을 받쳐 들고 있게 시켰었는데, 그가 이 무슨 여인들이나 할 짓을 하느냐고 불쾌해하자 너무 답답했었다.

그 결과, 그를 따라야만 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모두 이글거리는 땡볕 아래 아무것도 없이 제방 위를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정오도 되지 않았음에도 해가 어찌나 뜨거운지, 마치 찜통 안에 있는 것만 같았다. 

아, 이번에 그 긴박한 순간에 고청운이 제때 사람들에게 명령해 그의 옷을 편하게 풀어헤치고 약을 먹이는 등의 상황을 통제하지 않았더라면, 또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저 멍하게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었더라면, 조 낭중은 그 나이에 먹은 더위 때문에 아마도 병에 걸려 어떤 합병증까지 생겼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일면으로는 고청운도 그에게 감탄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조 낭중의 진지하고 빈틈없는 태도였다. 대부분의 관리들은 유능했지만, 고청운은 요 몇 년 동안 탐욕에 눈먼 관리들을 많이 봐왔었다. 심지어 자신과 함께 일하던 동료들 역시 구닥다리에 진취적이지 못했다. 

자신들이 다시 경성으로 떠날 때, 고청운은 현지 관리들이 아주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았다.

“조 대인께서 무탈하시다니 다행입니다.”

간미는 두 손을 모아 불경을 한 마디 외웠다. 혜향이 온수가 이미 준비되었음을 알리자, 간미는 서둘러 고청운이 목욕하러 갈 수 있도록 보내 주었다. 

“참, 미아, 기억하기로는 며칠 후가 조 대인 노모의 팔순 잔치인데, 이번에 보내드리는 선물은 평소보다 3할 정도 더 후하게 준비해 주시겠소? 평소에 업무를 많이 가르쳐 주셔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소.”

고청운은 씻으러 가기 전에 잊어버릴까 봐 또 한마디 했다.

간미는 알았다고 하고는 고경을 바라보았다.

고경은 미소를 지으며 작은 수첩을 꺼내어 몇 글자 바삐 적어 내려갔다. 

* * *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아, 고청운이 공부의 업무에 서서히 착수하기 시작하여 점입가경에 이르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9월 15일, 중양절(*重阳节: 음력 9월 9일, 어르신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날이다)을 막 지냈을 무렵이었다. 

마침내 고영량의 성혼 일자가 도래했다.

* * *

날이 아직 밝지 않았음에도 고택과 방택은 이미 바빠지기 시작했는데, 도처에는 사람들이 오갔고 하인들도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고청운은 아들의 성혼식이라 진즉에 이틀간의 휴가를 신청해 두고 지금은 집안일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간미와 연 씨가 너무 유능한 데다, 고씨 집안과 방씨 집안 두 집의 하인들까지 있었기 때문에 그가 나설 일은 많지 않았다. 그가 가장 많이 거들 수 있었던 일은 역시 청첩장을 써서 지인들을 성혼식과 연회에 초대하는 일이었지만, 이 일마저도 이미 한 달 전에 끝마쳤다. 

간미는 밖에서 급히 방으로 들어왔다가 고청운이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채 침상의 베갯머리 쪽에 멍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보았고, 이 보기 드문 장면에 걸음을 멈추고 웃음을 머금은 채 물었다.

“부군, 무슨 일이십니까? 어디 몸이 안 좋으신 겁니까?”

고청운은 잠시 멍하게 있다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더니 그녀를 주시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소석이가 장가를 들지 않소. 이제는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게 되면, 우리가 그에게 더 이상 가장 중요한 사람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허해지는구려.”

고청운은 어젯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에 들었는데,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렇게 늦게 침상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런 기상시간은 그에게 전대미문의 사건과도 같았다. 

간미는 피식 웃으며 걸어와 그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언젠가는 겪게 될 일인데, 하필 이 시점에 그런 말을 꺼내시다니요. 아이가 장성했으니, 장가들어 아이를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소석이는 제 남동생과 같지 않으니, 우리는 이 일을 경사스럽게 여겨야 해요. 

제 남동생을 좀 보세요, 경성에 올라온 지 이리 오래되었는데도, 온종일 돌아다니며 밤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오질 않습니까. 외할아버지께서는 화를 내시면서도 그 아이를 많이 봐주고 계시죠. 

우리 소석이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어찌나 다행인지, 저는 이 혼사에 아주 만족하고 있습니다.”

고청운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나도 이 혼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지만, 미아, 소석이한테 부인이 생겼다는데, 당신은 조금도 상실감을 느끼지 않는 거요?”

간미는 어찌 고청운이 이 새벽부터 아닌 밤에 홍두깨를 내미는 듯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부군의 이런 망연자실한 눈빛을 보는 건 정말이지 보기 드문 일이라, 그녀는 이내 마음이 약해져 부군의 옆에 앉아 어깨 위에 늘어트린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도 서운이야 하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기쁨이 더 클 뿐입니다. 내년이면 오동통한 손자를 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는 이 일이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그러한 이치야 나도 알고 있소, 다만…….”

고청운은 아무리 머리를 긁적거려 보아도 지금 자신의 느낌을 제대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이 뿌듯하면서도 허전한 마음을 어찌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다가 그래, 고청운은 순간 아들이 장가를 들어 처가 생기고 아이도 낳고 나면 그의 중심이 또다시 가족의 안위에 맞춰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는 자신 역시 지나온 과정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모든 세대가 다음 세대의 자녀들을 보면서 이런 기분을 느낄 것이었다. 오늘 유일하게 안타까운 일은, 그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 임계촌에서 오기에는 오는 길이 너무 멀고, 또 건강 문제도 있어서 성혼식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고청운은 그들이 함께 이 자리에 있었다면 무척이나 즐거웠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더라면 아마 그는 이렇게까지 애수에 젖어 감상적이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고청운은 자신이 비정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필 이럴 때 슬퍼지다니.’ 

뒤이어 그가 얇은 이불을 젖혀 침상에서 내려와 세면 준비를 하러 가면서 말했다.

“아이들이 크면 다 그런 것이겠지요. 우리도 예전에 이와 같은 길을 가 보지 않았소. 하하. 다 납득이 되었으니, 나는 이만 세수를 하러 가겠소. 세수를 마치고 당신을 도와주러 가리다.”

그래, 보아하니 이제는 손자, 손녀 세대를 기다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간미가 그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들며 말했다.

“납득이 되셨다니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와줄 일은 없어요. 차라리 이참에 몸 건강을 좀 잘 살피시는 게 어떠세요? 요 며칠 휴가를 내시기 위해 오랫동안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은 연회 때문에 밤늦게까지 북적일 테니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실 것 없습니다. 아이 참, 창고 열쇠를 가지러 들어왔었는데 까먹을 뻔했습니다. 정신이 없네요.”

말을 마친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방에 들어온 목적이 생각나 다시 막 방을 나서려고 했다. 

고청운은 간미가 이렇게 바쁜 것을 보고 자신도 연신 서둘렀다.

“오늘은 소석이의 경삿날인데, 내가 왜 이렇게 늦잠을 잤을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