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1화. 파견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은 흘러 7월이 되었다. 이치대로라면 ‘칠월류화(*七月流火: 음력 7월경을 뜻하는 말로, 아주 무더웠던 여름 날씨가 다음 차례의 가을 기운에 자리를 내주는 때)’라 하여 날씨가 점점 시원하게 바뀔 때가 되었음에도, 고청운이 느끼기에는 날씨가 여전히 나날이 더 더워지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택의 개축 공사가 이미 끝났다는 것이었다.
새로 단장한 과원(*跨院: 중국식 가옥에서 안채 곁에 있는 뜰)을 둘러싼 담장에는 담쟁이덩굴과 자등 나무 등 덩굴식물을 심어 정원에 짙푸른 기운을 더해 청량감을 선사해 줄 수 있도록 꾸몄다.
방택에서 다시 고택으로 이사를 오자, 혼례일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고영량은 초조하고 불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고, 간미 역시 여러모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만 고청운만이 일이 바빠 혼례 준비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는 공무로 바쁜 것이었다.
말을 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것이, 고청운은 새로운 부서로 전근을 가게 된 후, 근무에 필요한 지식들을 새로 학습해야 했는데, 당장 뛰어난 전문 기술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업무상으로 사용되는 전문 용어를 이해하고 제방, 저수지, 수로 같은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했다.
그는 이러한 공정에 은자는 얼마나 드는지, 예산을 어떻게 잡아야 기한 내에 완성할 수 있을지 뿐만 아니라 관리 중인 공부 소속 장인들의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까지도 파악해야 했고, 그들 중 몇몇은 대단히 뛰어난 자들이라 일일이 찾아뵈며 인사를 드리러 가야했다.
본 왕조에서 운영하는 공부 소속 장인에 대한 사회적 지위는 좋은 편이었는데, 황제가 그들을 매우 중시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아직은 장적(*匠籍: 국가의 건설 사업에 필요한 모든 기술자는 국가가 직접 관장하는 직영 공사의 형태의 공부의 국가 직속 장인으로서 장적에 등록하고, 그 밖의 잡역은 백성을 징발하여 사역함)에 들어 국가적 관리하에 놓여 통제를 받고 있기는 했으나, 그들이 받는 월급은 앞선 몇 왕조를 통틀어 매우 높은 편이었다.
또한, 조정에서 수주한 일이 없는 기간 동안 국가사업 외에 바깥의 의뢰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그들에게는 큰 수입이 되었다.
고청운은 정통 유교 사상만 아니었다면, 그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가 벌써 한참을 올라가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게다가 전 왕조의 타임 슬립자인 황제가 죽고 나서, 그가 추진하던 정사들도 함께 폐지되는 바람에 좋은 사상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것도 있었다.
이 고대판 ‘과학자’, ‘기술자’들을 매우 존경한 고청운은 명단의 장인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인사드리고 수리 공사에 대한 문제를 여쭈었다. 그중 측량, 산술과 접목되어있는 방면의 지식에 대해서는 그들도 좀처럼 잘 알지 못했으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경험과 기술로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해내고 있었다.
고청운의 직속상관인 조 낭중(赵郎中)은 그의 움직임을 알고 나서도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고청운에게 임무를 부여하고, 고청운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기꺼이 대답해 주기도 했지만, 가끔씩 고청운이 몇 가지 사항을 더 물어볼라치면 한 차례씩 질책하기도 했다.
고청운은 그의 호된 꾸지람을 당하고 나서, 왜 방인소가 그를 가리켜 인정이 없고 거칠고 욱하는 성정의 인물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성격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관료인가.
보통 이 정도 직위에 오른 관료 정도씩이나 되면, 아랫사람한테 짜증이 나고 귀찮다고 느끼더라도 말투만은 좀 좋게 하는 편이었다. 언젠가 부하 직원이었던 자의 권세에 기대야 하는 일이 생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부하 직원이 어느 날 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경성으로 돌아와 직속상관이 되어 있는 일은 종종 일어나는 일이었다.
“대인, 괜찮으십니까?”
문 앞에서 기다리던 황 주사가 작은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조 대인께서 오늘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가 봅니다.”
고청운은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과 함께 새로 들어온 정6품 황 주사(黄主事)로, 한림원의 종6품 사관수찬(史官修撰)으로 있다가 옮겨와서 고청운과 같은 길을 걸었던 그의 후배라고 볼 수 있는 자였다.
그는 둔전청리사(*屯田清吏司: 공부의 4개 하위 조직 중 하나로, 주둔지 개간, 군비 확장, 상업세 징수, 임금 지급용 숯 관리, 모든 관리들의 장지(묘) 관리 및 소속 장인들의 급료와 식량 문제를 관장하는 부서)에서 인사 이동되어 온 미씨 성을 가진 미 주사(米主事)보다 고청운과 훨씬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괜찮네, 볼일 있으면 어서 들어가 보시게.”
고청운은 조 낭중이 욕을 날린 쪽을 보며 얼굴을 문질러댔다. 또 다른 부하 직원이 문 앞에 대기하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욕설을 퍼붓다니, 고청운이 편협한 사람이었다면 벌써 한을 품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어쩐지 하 왕조의 초대 장원씩이나 한 인물이 아직도 이런 자리에 머물러 있다 했다.’
고청운은 그가 이런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으니, 만약 이미 높은 자리에 올라 있는 친한 동료나 대단한 배후라도 없었다면, 벌써 한 방 맞고 지방으로 유배됐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황 주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 서류 뭉치를 안은 채 문을 두드렸는데, 그 소심한 모습에 고청운은 웃음이 절로 났다.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 미 주사에게 사무청에 경비 신청을 하게 시킨 고청운은 다시 신청서를 받아 들더니, 다시 한번 고쳐 조 낭중에게 전했다.
그 후의 일도 그렇게 처리하며, 고청운은 층층이 쌓여 있는 업무를 처리해나갔다.
* * *
며칠이 지나고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내용은 즉슨, 짐을 싸서 황제에게 인사를 올린 후, 조 낭중을 따라 통주(通州) 지역으로 가서 새로 건설이 완료된 제방을 살피고 오라는 것이었다. 이번 시찰은 흠차(*钦差: 황제를 대리하는 파견 관리) 업무였기에, 황 주사 외에도 어림군(*御林军: 황제의 근위군(近衛軍)) 1소대를 대동해야 했다.
공부의 규정에 따르면, 공사 사업에 있어 공정에 들어가는 비용이 은자 500냥, 원자재 값이 은자 200냥 이상이 넘어가는 사업은 비교적 큰 규모의 공정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정들은 모두 상주문을 올려 황제의 어비(*御批 : 황제의 재정(裁定), 즉 결재)를 받아내야 했다.
이런 작업에는 검수 작업이 뒤따랐는데, 공부의 인력을 다시 현지에 파견해 현황을 검증하게 했던 것이었다.
통주 지역의 수리 공정과 관련된 이번 공사는, 본래 고청운과 조 낭중까지 나설만한 일은 아니었다. 주사 하나를 내려보내면 그만이었는데, 가끔 일이 너무 바쁘면 정9품의 대사나 종9품의 부사를 현지로 보내 살펴보는 것으로 끝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 낭중은 고청운 외 새로 들어온 이들이 어리숙하게 업무에 임하거나, 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염려되어 직접 이 대오를 인솔하기로 했다.
고청운을 포함한 사람들은 이번 흠차 임무에 별 불만이 없었다. 그들의 전임자들이 어떤 연유로 곤두박질쳤는지를 생각하면, 이번 흠차 업무 정도야 귀찮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게다가 고청운 입장에서는 경험이 많은 조 낭중이 한 번 데리고 나가 시찰 업무를 인솔해 주는 것이 정말로 필요했는데, 이렇게 한 번 경험하고 나야 나중에 이 업무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청운은 조 낭중보다 젊으니, 나중에 이런 출장 업무가 대부분 그에게 돌아올 것이 뻔했기에 이런 일은 반드시 잘 배워 둬야 하였다.
* * *
통주에서는 5일밖에 머무르지 않았지만, 왕복으로 오가는 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되었기에, 고청운이 공사 상황의 전반 사항을 검토해 공정이 합격점으로 실시되었음을 확인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7월 19일 오후였다.
그는 막 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마중 나온 간미와 고경을 보았고, 그를 본 두 사람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 아버지…….”
고경은 연신 다급히 손수건으로 그의 땀을 닦아 주며 속상한 듯 말했다.
“아버지, 살이 빠지셨네요. 또 많이 그을리셨어요!”
고청운은 하하 웃으며 아이가 땀을 다 닦아주는 것을 기다렸다가 말했다.
“타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지, 매일 같이 땡볕에 나가 있었으니 말이다.”
얼른 하녀에게 살짝 얼린 수박을 내오게 하고, 그에게 다가가 그를 좌우로 찬찬히 살핀 간미는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었다.
그녀가 땀투성이가 된 고청운에게 물었다.
“부군, 수박을 먼저 드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씻으시겠어요? 따듯한 물로 씻으셔야죠?”
그녀는 혜향을 얼른 주방으로 보내 목욕물을 준비시켰다.
그가 이제 막 도착했을 뿐인데, 온 고택의 하인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차 안에서 이미 옷을 갈아입었음에도 날이 너무 더워서 땀이 또 나고 있던 고청운은 생각해 보니 찬물로 몸을 씻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았다.
“수박부터 먹으리다.”
고청운은 마차를 타고 다니며 이번 일정을 소화했으나, 엄청난 날씨 때문에 고생을 꽤나 했다.
“수박을 좀 더 챙겨서 삼원이 일행에게 보내 주겠소? 이번에 나를 따라 밖에서 오래 지낸다고 다들 고생들이 많았소.”
“네, 제가 사람을 따로 보낼게요.”
간미는 그를 의자에 앉히고 수박을 건네주었다.
고경은 부채를 들고 필사적으로 그에게 부채질을 해 주었다.
게걸스럽게 수박 한 조각을 먹어치우고 나서야 갈증이 조금 풀어졌는지, 고청운은 침착함을 되찾았다.
“공부는 정말이지 갈 곳이 못 되는구려. 이런 타오르는 날씨에 경성 밖으로 출장을 가야한다니. 이번 통주행은 경성과 가까우니 그나마 낫지, 만약 다음번 행선지로 무슨 운남(雲南)이나 귀주(貴州) 같은 곳이라도 걸렸다가는 왕복으로만 한두 달이 걸릴 것이오.”
간미도 덩달아 부채를 꺼내 그에게 부채질하며 땀을 닦아 주었다.
“공부의 업무가 다 이런가 보오. 사람들에게 속지 않고자 하거나 남들에게 횡포하게 굴지도 죄를 짓지도 않으려면, 직접 부지런히 보러 다녀야만 하니 말이오.”
고청운은 수박이 너무 달콤하여 간미에게 물었다.
“이 수박은 우리 밭에서 난 것이오? 아니면 밖에서 사 온 것이오? 맛이 정말 좋군.”
“우리 땅에서 난 수박은 제일 가격이 좋을 때라 진즉에 다 팔아 치웠어요. 딱 몇 통만 남겨두었다가 그저께 진가아(*고영진)에게 두 개를 보냈고, 나머지는 집안의 량가아(*고영량)와 소아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지 이미 다 먹어치워서 남은 것이 없어요. 부군께서 드시는 건 장 씨네에서 보내 주신 것인데, 그들 소유의 장원에서 키운 거라고 합니다. 듣자 하니 올해 수박이 유독 맛이 좋기에 형님이 따로 챙겨 보내준 거라고 해요.”
그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간미는 몇 달간 재보았던 그의 옷 치수가 생각나 정말 속상했다.
“공부로 옮겨가신 후에 살이 너무 많이 빠지셔서, 입고 계시는 옷의 치수를 전부 다 다시 고쳐야 할 판이네요. 낮에도 바쁘시고, 밤에도 또 바쁘시니, 예전에 호부에 계실 때는 이렇게까지 고생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장 씨네?’
고청운은 장수원이 3년으로 정해져 있던 학정 직무 기간을 다 채운 후, 올해 예부로 돌아온 것이 생각났다. 그는 경성을 나설 때는 정6품 주사였지만, 지금은 고청운과 같은 품계인 종5품의 원외랑이었다.
장수원은 다시 경성 외 지방에서 지방직인 지주 직무를 역임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부친이 아직 지방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거기에 본인의 의향까지 더해져 결국엔 다시 예부로 돌아와 익숙한 곳에서 익숙한 업무를 맡아 유유자적하게 지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