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영씨 가문 (2)
고영량의 얘기가 나오자, 오 씨가 웃음을 드러냈다.
“그 아이는 어린 나이에 해원으로 급제를 하다니, 그 말인즉슨 앞으로 진사에 합격할 가능성도 높다는 거겠지요. 그리되면 우리 첫째만큼이나 잘될 겁니다.”
영승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말 훌륭한 아이지. 만약 내 손이 더 빠르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뻔했지 뭐요. 내 알기로는 이미 아주 여러 집에서 그 아이한테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오.”
고씨 집안보다 품계가 더 높거나 혹은 다른 학자 집안에서는 늘 너무 신중해서 생각과 생각만을 거듭하다가, 아예 고씨 집안의 의향이 먼저 닿기를 기다리거나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영승언은 고영량이 마음에 들었을 때부터 먼저 다가가 끊임없이 혼사의 의향이 있음을 암시했다.
다행히 고씨 집안에서도 더 이상 앞뒤를 재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고영량이 진사에 합격하기를 기다려 더 좋은 가문의 사람들이 혼담을 꺼내들었을 것이었다. 요즘 같이 믿음직스럽고 잘생기고 심지어 공부까지 잘하는 사내아이는 정말 찾기 쉽지 않았으니 말이다.
사실 그는 자신의 큰아들과 고영량을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영량과 달리 자신의 첫째는 고향에 돌아가 수재 시험을 볼 때, 현지의 지현(知縣)이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현시와 부시에서 그에게 높은 차석을 할 수 있게 점수를 높이 쳐주었는데, 원시에서 두 집안의 관계가 드러나 두 번이나 시험에 낙방하고 나서야 겨우 수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일 때문에 첫째는 정신을 번쩍 차렸고,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공부하더니 몇 번 더 시험을 본 끝에 급제할 수 있었다.
지금 첫째는 이미 27살이 되었는데, 언제 진사에 합격할 수 있을지 몰랐다. 이쯤 되면 그 집에서의 영향력은 무용지물이 된다고 봐야 했는데, 부정행위를 하지 않고서야 합격은 요원할 것이었다.
진사 시험에서의 부정행위 같은 위험한 일은 그의 아버지나 큰형도 도와주지 않을 터였다.
오 씨는 이 말을 듣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자신이 어떻게 된 것 같았다.
‘고씨 집안이 무관 집안도 아니니, 보내오는 은자가 더 적은 게 당연한데, 진작 각오하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두 사람은 이어서 이번에는 고청운의 전근에 대한 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신지는 정말이지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오. 그가 자리를 옮기고 나서 새로 온 원외랑 하나가 한 달이 넘도록 아직 업무 파악도 못 해서 잠 대인마저 함께 덩달아 바빠졌다지 뭡니까. 최근에 나는 그가 차 마시러 가거나 음악을 듣는 것을 본 적이 없다오. 흥, 좋은 조수를 만났다고 내 앞에서 자랑을 해대며 빈둥거리더니.”
영 낭중과 잠 낭중은 업무적으로도 그렇고 자주 마주치는 사이였는데, 사이가 나쁘지 않아 같이 찻집에 자주 다니기도 하였다.
“신지가 공부로 전근을 간 게 나쁘다고는 생각지 마시오. 사실 내 생각에 그는 그 부서에 참 잘 어울릴 것 같소, 그리고…….”
‘아직 확실한 게 아니기는 하지만, 공부의 낭중 자리 하나가 마침 비어 있지 않은가. 그가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는 우선 말하지 말자.’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이에 대한 말은 생략한 채 계속 말을 이었다.
“내 보기에는 그도 전근 간 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소. 마침 그가 쓴 <기하상해>에 사용할 통계 수치가 조금 부족하던 차에 공부로 가게 되었으니 딱 들어맞았다고 볼 수 있소.”
고청운의 전근을 꼴좋다고 생각하고 있을 사람들에겐 은근히 이를 악물고 있을 형국일 것이었다.
“저는 그분이 다시 화본을 쓰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오 씨가 말을 이어 나가 주제를 화본으로 돌렸다. 그녀는 산술이니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매화 반지>를 얼마나 잘 쓰셨는지, 그간 수많은 화본을 읽어보았습니다만, <매화 반지>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원래 이 화본은 이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는데, 희곡이 워낙 크게 유행한 후부터 모두 다 같이 그렇게 <매화 반지>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원래 제목은 무슨 장군인가였는데, 별로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었다.
“아무튼 혼수 준비나 잘해 주시오. 6월의 날씨는 정말이지 너무나 더워 얼음으로 안 되겠소. 나는 밖에 볼일이 있어 그만…….”
혼수에 대한 일이 해결되자, 그가 급히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씨는 그의 말을 듣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가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것을 보니, 정을 통하는 시녀를 찾아가거나 외출을 하려는 것 같았다.
* * *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영요가 몸종 요나(袅娜)를 대동하고 걸어들어왔고, 안채에 오 씨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자리에 안 계세요? 집에 귀가하셨다고 들었는데.”
오 씨는 정신을 차리고 자애롭게 활짝 웃으며 그녀를 끌어당기더니, 품에 안긴 그녀의 예쁜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아버지께서는 일이 있으셔서 다시 나가셨다. 너는 어찌 자매들과 함께 있지 않고?”
“여섯째 언니는 혼례복에 수를 놔주시고 계시고, 다른 언니들은 다 저를 놀리느라 바쁩니다.”
영요의 뽀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럼 네 혼례복은?”
오 씨가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3개월만 있으면 곧 성혼식이니 서둘러야 한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수를 놓거나 책을 봐서는 안 돼. 그러다 눈 상할라.”
“알겠어요, 어머니.”
영요의 얼굴이 더욱 빨개졌다.
“이게 뭐가 부끄럽니? 나와 네 아버지가 찾아준 신랑은 분명 네 큰언니네 못지않을 게다. 얼마 전에 가서 집을 측량했는데, 비록 우리 집만큼 넓지는 않으나, 식솔이 적어 너희들은 따로 정원 하나를 끼고 살며 문을 닫고 조용히 지내게 될 거야. 그리고 네 미래의 시어머니에 대해서 내가 일찍이 만나 본 적이 있는데, 인자하고 온유해 그 집 아들이 그렇게 뛰어난 것 같더구나. 요아야, 넌 이 두 가지를 잘 기억하거라.”
영요는 오 씨의 품에서 빠져나와 꼿꼿이 몸을 세우고 대답했다.
“네.”
그녀는 등을 곧게 편 채, 오 씨를 바라보며 아주 열심히 경청했다.
“그 집에 이웃한 방택은 네 미래 시어머니의 외할머님 댁이란다. 네 시아버지의 스승님이기도 하시지. 너는 어떤 면에서든 두 어르신을 공손히 대해야 한다. 그리고 예비 사위에겐 여동생과 남동생이 하나씩 있는데, 아마 너도 만난 적이 있을 게야. 서로 사귀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니 잘 대해 주면 될 게다. 마지막으로 고씨 집안의 고향집은 농가 출신이니, 앞으로 그들의 고향집으로 돌아갈 때는 태도를 조심해야 한다. 그 집에서 너를 싫어하지 않도록 말이야…….”
오 씨는 너스레를 떨고 웃으며 말했다.
“네가 이쪽으로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내 알면서도, 이 어미가 괜한 당부를 하고 있구나. 다만 너는 내 몸에서 난 혈육이라, 네 오라버니나 남동생보다 더 마음이 쓰인단다. 네가 시댁에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 계속 말을 반복하게 되는구나.”
“어머니!”
영요가 그 말을 듣고는 그녀의 품에 다시 뛰어들어 안겼다.
“어머니,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그녀의 눈이 시큰시큰해졌다.
부군이 될 사람은 그녀의 마음에도 들었다. 성혼에 대해 많은 신경을 써왔던 그녀는 드디어 소원을 이루어 그와 성혼하게 되어 매우 기뻤음에도, 16년 동안 살았던 집을 떠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오 씨가 웃기 시작하자, 눈가의 주름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어 그녀는 검은 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고씨 집안의 사내들이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신의 순결을 지키는 사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 집에는 40살이 되어도 자식을 못 보았을 때만 첩을 들일 수 있다는 집안 규칙이 있다고 하는구나.
네 예비 부군은 황립 서원에서 공부하는데, 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사촌 오라버니들한테 자세히 알아봤더니, 그는 문인임에도 집안 단속을 잘해서 풍월을 읊는 불결한 장소에도 가 본 적이 없고, 인품이 좋고 정직하다더구나. 무엇보다 집에 정을 통하는 시녀에게 내주는 통방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지 뭐냐! 이래야 제대로 된 문인 집안이라고 할 수 있지.”
그녀는 문득 집에 요 몇 년 동안 물 흐르듯 정을 통하는 시녀들이 집안을 들락거렸던 것이 떠올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너무 싫었지만, 요 몇 년간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천천히 달관하게 되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다 보니 무뎌진 것 같기도 했다.
젊은 시절 남편과의 깊은 애정을 떠올리면, 얼마나 찰떡같은 금실이었는지…….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밖에서 사이가 좋아 보여도, 진즉에 동상이몽을 하는 중이라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저려왔다. 남편의 마음에 자신이 있다고는 하나, 그가 그리도 젊은 여자들을 좋아하는 것을 보면 왠지 그도 못미더웠다.
‘이런 것을 보고 무언가를 바라기 시작했다고 하는 것이겠지? 모든 여인들이 그 집 간씨 부인만큼만 운이 좋았더라면, 자신만을 바라보고 배신하지 않는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더라면…….’
“그리고 고씨 집안은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고는 하나, 정용후부, 사 부마와 친분이 있단다. 네 큰언니가 정용후부의 세자와 성혼하지 않았니? 세자와 네 예비 시아버지의 관계가 매우 좋단다. 세자가 그를 아주 존경하고 있지. 게다가 네 예비 시아버지는 문인들 사이에서 명성이 참 좋으시단다. 내가 듣기로는 산술 학계에서도 명성이 매우 드높다고 하는구나.
이런 것을 다 따져보면 고씨 집안에는 나쁜 점이 보이지 않지. 다만 가산이 견실하지 못하다는 게 유일한 단점인데, 내 듣기로는 가산 상태가 그렇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라고 하니, 네가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게다.”
오 씨는 중간에 정신을 차리고 딸에게 그간의 분석을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영요도 “네.” 하고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큰언니가 말해줬거든요, 예비 시아버님이 좋으신 분이라고요.”
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려고 그녀의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오 씨는 생긋 웃으며 그녀의 검푸른 머릿결을 어루만졌다.
아까 남편 때문에 생겼던 울적함은 다 날려버린 그녀가 다시 온화하게 딸에게 말했다.
“요아야,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만, 만약에라도 말이다……. 네가 시집가서 억울한 일을 당하면 반드시 다시 돌아오너라. 내가 다 책임져 줄 터이니.”
“네, 누가 절 괴롭힌다면 반드시 말씀드릴게요. 어머니, 제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 안심하세요.”
영요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다시 기억 속의 그 준수한 얼굴이 떠오르자, 자기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오 씨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두 사람은 작은 소리로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